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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부터

위즈덤하우스

2023년 08월 30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8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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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91.49MB)
ISBN 9791168128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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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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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경유해, ‘여성’의 ‘자기다움’과 ‘안전한 공간’을 모색해가는 책 『19호실로부터』가 출간되었다. “19호실로부터”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제목을 뒤집어 만든 이름으로,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빌려 소수자의 서사를 조명해온 예술활동가 제람이, 나만의 ‘19호실’로 가겠다고 선언한 어머니의 일을 사유한 끝에 구상한 동명의 다원예술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다. 예술활동가 제람, 문학평론가 오혜진, 시각예술 기획자 여혜진, 공연예술 기획자 고주영, 장애연극인 김지수, 트랜스젠더 활동가 박에디, 섬유예술가 무아, 글 짓는 사람 드므가 필자로 참여해 글을 보탰다. 필자들은 이 프로젝트에 기획자나 운영자, 참가자로 참여한 이들로, 프로젝트를 관통하며 길어 올린 ‘자기다움’과 ‘안전한 공간’에 대한 각자의 사유와 실천을 저마다의 화법으로 책에 풀어놓았다.
나의 ‘19호실’과 타자의 ‘19호실’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이 과정이 어떤 기획의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까. 올 하반기엔 인천과 강화도로, 내년엔 또 다른 곳이나 해외로 장소를 옮겨, ‘19호실’ 프로젝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책은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기획되었다.
전시 화보

19호실로부터 | 제람
모든 안내는 따르거나 따르지 않아도 된다 | 여혜진
언제든 돌아오라는 인사 | 고주영
‘19호실’에서 천천히 | 김지수
위로의 방 | 박에디
올록볼록한 날들의 합 | 무아
달과 해가 있는 방 하나 | 드므
낯선 어둠 속에 아늑하게 파묻히는 법 | 오혜진

에필로그: 다시 19호실로부터 | 제람
부록

나는 지난 몇 년간 성소수자ㆍ난민ㆍ농인ㆍ청소노동자 등의 서사를 조명하는 예술 작업을 줄곧 해왔다. 소수자라 여겨지는 여러 집단 안에서도 ‘여성’은 한층 더 소외당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자기에게 ‘안전한 공간’을 찾지 못해 어딘가로 가야 하는 이들이, 대체로 ‘여성’으로 호명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기르고 대하면서 만든 구조 안에서 엄연히 남성과 ‘여성’이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에게 ‘19호실’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19호실’을 갈망하는 ‘여성’을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한정할 수도 없다. ‘19호실’로 가서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이어갈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 사유해 보고 싶었다. _「19호실로부터」 (78~79쪽)

나와 가까이에 영역을 표시한 분이 내 영역에 한 발을 내딛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놀랐는지에 대해서도 말로 풀어 이야기하다 보니 살면서 언어화해 보지 않은 내 심리 상태도 살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피해 주지 않고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벽을 증명받기 위해 내 몸을 딱 누일 만큼의 좁은 영역만 차지했음에도 다른 사람이 예고 없이 내 최소한의 안전 영역을 침범하니까 나 자신을 해친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굳이’ 그 말을 하고 누군가 경청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마음이 풀어졌다. 나중에는 마음이 열려서 그 참가자의 영역과 내 영역 사이에 색상 테이프로 사다리를 만들어 연결하고 싶어졌다. _「19호실로부터」 (88쪽)

‘19호실’에서는 (안전에 대한) 인식도, (자기다움의) 인정도 필요치 않다. 무엇의 필요도 되지 않을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타자를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달리 말해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난 공간이, ‘19호실’이다. _「모든 안내는 따르거나 따르지 않아도 된다」 (101~102쪽)

아무도 없다는 감각, 혼자라는 감각은 이런 거구나. 한 명 한 명의 방문자들이 이곳에서 느꼈을 기쁨, 슬픔, 두려움, 안도감 같은 수많은 감정을 상상한다. 나는 그 고독과 적막의 순간에 바깥채에 누군가가, 혹여 내 울음소리를 듣더라도 못 들은 척해 줄, 내 동선을 가늠하면서도 절대로 직접 시선을 주거나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는 무해한 누군가가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안녕히 다녀오라는 인사」 (125~126쪽)

장애를 갖고 살면서 주시당하거나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일을 자주 겪는다. 전자는 항상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좋은 마음에서’라지만 일거수일투족이 너무 답답하고, 후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이라, 내 몸은 늘 그대로 존재하지만 마음은 항상 긴장되어 있다. 그래, 맞다. 이곳 ‘19호실’이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한 이유는 바로 나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_「19호실에서 천천히」 (144쪽)

늘 예민하게 치부를 감추듯 꽁꽁 싸매고 살아서 그랬을까. 내 피부와 털, 그리고 수술 흉터에 햇살이 닿자 미세하게 체온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얼굴부터 가슴까지 나 좋자고 ‘칼 댄’ 곳을 하나하나 손끝으로 찬찬히 살폈다. 이제는 자세히 봐야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잘 아물어 뿌듯했다. 성별을 바꾸느라 많은 수술을 해야 했던 내 몸에게 소리 내어 말했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했고, 앞으로는 이 몸을 건강하게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값비싼 재질의 부드럽고 얇은 이불로 온몸을 감싸듯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평하게 위로했다. _「위로의 방」 (157쪽)

나다움이란 나와 타인을 소외하지 않으면서 올록볼록한 나로 살아가는 날들의 합이다. 어느 면은 볼록하고 어느 면은 안으로 옴폭하게 들어간 오늘의 나를 그대로 드러낸 채, 또 다른 올록볼록한 존재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려는 노력 속에서 나의 쓰임을 발견해 보기로 한다. _「올록볼록한 날들의 합」 (178쪽)

혼자만의 방. 내게 더는 세상의 바깥으로 떨궈 나온 곳이 아니다.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어지러운 생각을 비울 수 있는 곳, 잠시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곳, 그럼으로써 내가 나로서 충만해지는 곳. 그 어느 공간에 있어도 세상 한가운데로 나가는 방법을 이제는 안다. 나를 마음 놓고 펼쳐둔다. 오늘도 글자를 뒤적거린다. 이 방에 꽉 들어찬 것은 나만의 시간과 글자다. 물기 머금은 순백의 달도 떴다. 시원하고도 차분해지는 밤이다. _「달과 해가 있는 방 하나」 (188~189쪽)

하지만 내가 숙소에 놓여 있던, 소설 「19호실로 가다」를 낭독한 음성 파일이 담긴 아이팟을 충전 단자에 꽂아두지 않고 내 가방에 몰래 스윽 밀어 넣었다면 어땠을까. 모르는 사람들을 마구 초대해 진탕 술을 퍼마시고 도박이나 마약, 성매매 같은, 범죄로 규정된 행위를 저질렀다면? 사전 예약 없이 아무 날에 불쑥 찾아와 이곳에서 무상으로 무기한 투숙하겠다고 행패를 부렸다면? 그랬대도 나는 이 공간의 침입자가 아니라 방문자일 수 있었을까. _「낯선 어둠 속에 아늑하게 파묻히는 법」 (218쪽)

나는 ‘안전’이 확보됐을 때 비로소 회복되리라 믿어지는 ‘나’의 본질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아닐까? 내가 단독자로서 존재할 때에도 나는 반드시 누군가의 물질적ㆍ비물질적 노동과 연결돼 있고, 나의 오리지널한 욕망은 이미 사회적 규범에 의해 순치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다운 것’과 ‘나답지 않은 것’을 식별하기란 얼마나 난망한가. ‘나다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지겹도록 ‘나’이고, 고작 ‘나’이며, 언제나 ‘나’를 초과하는 무엇일 수밖에 없는 이 항상적이고 기묘한 상태를 지시할 것이다. 이 간명하고 자연스러운 진실을 깨닫는 데 이렇게나 기나긴 여정이 필요했다니. _「낯선 어둠 속에 아늑하게 파묻히는 법」 (222~223쪽)

‘자기다움’을 상상하고, 이를 위한 토대로서 ‘안전한 공간’은 무엇일지 살펴보는 실험을 일단락 짓는 단계인 지금, 무엇 하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고 내릴 수도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감각하고 머물렀던 경험이 각자가 지속하여 의문을 던지고, 잠시 안도하고, 불현듯 공감하고, 또다시 불화하는 삶의 여정을 선명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정리한 기록이 자신만의 ‘19호실’을 상상하고, 만들고, 누리는 여정을 시작하는 분들께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좋겠고, ‘19호실’이 필요할 이웃에게 넌지시 선물하고 싶은 작은 응원이자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_「에필로그」 (227쪽)

온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가능하게 할까?

“19호실로부터”의 여정

예술을 경유해, ‘여성’의 ‘자기다움’과 ‘안전한 공간’을 모색해가는 사유와 실천이 담긴 책 『19호실로부터』가 출간되었다. 『19호실로부터』는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다원예술 분야에 선정된 동명의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나온 책이다. 예술활동가 제람, 문학평론가 오혜진, 시각예술 기획자 여혜진, 공연예술 기획자 고주영, 장애연극인 김지수, 트랜스젠더 활동가 박에디, 섬유예술가 무아, 글 짓는 사람 드므의 글을 더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19호실로부터”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제목을 뒤집어 만든 이름이다. 설치미술, 영상, 서체, 출판, 워크숍, 전시 등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빌려 성소수자 군인, 난민, 미등록 이주민, 농인, 청소노동자 등의 서사를 조명해온 예술활동가 제람이, 소설 「19호실로 가다」를 읽고 나서 나만의 19호실로 가겠다고 선언한 어머니의 일을 사유한 끝에 구상한 프로젝트이다. 제람은 그간 이어온 일련의 예술활동 작업에서 소수자로 여겨지는 집단 안에서도 ‘여성’이 한층 소외당한다는 것을 포착했다. “일상에서 자기에게 ‘안전한 공간’을 찾지 못해 어딘가로 가야 하는 이들이, 대체로 ‘여성’으로 호명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다고 모든 여성에게 ‘19호실’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19호실’을 갈망하는 ‘여성’을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한정할 수도 없다. ‘19호실’로 가서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이어갈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 사유해 보고 싶었다”(78~79쪽).

2022년 봄가을엔 작가 은유와 함께하는 두 차례의 ‘글쓰기 워크숍’을, 여름에는 안무가 공영선과 함께하는 ‘몸쓰기 워크숍’을, 겨울에는 다섯 예술가(공영선, 노윤희, 여혜진, 제람, 홍초선)의 작품을 설치한 ‘19호실’을 제주에 만들어, 1박 2일간 홀로 머물며 관람하는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를 열었다. 필자들은 이 프로젝트에 기획자나 운영자, 참가자로 참여한 이들로, 프로젝트를 관통하며 길어 올린 ‘자기다움’과 ‘안전한 공간’에 대한 각자의 사유와 실천을 저마다의 화법으로 책에 풀어놓았다.


혼자가 되는 시간에서 찾는
나다움과 안전함의 감각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난 공간
〈19호실로부터〉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로도 참여한 시각예술 기획자 여혜진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난 공간”을 ‘19호실’로 규정했다. 그는 ‘19호실’이 ‘안전’을 인식하거나 ‘자기다움’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무에 갇히지 않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여혜진은 ‘19호실’ 공간에 있는 듯 없는 듯 놓인 여러 작품들을 작가의 의도에 기획자의 해석을 더해 설명한 끝에, 예술이야말로 ‘혼자’ 있는 시간의 감각을 가장 잘 안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기존 전시의 문법과는 길이 다른 〈19호실로부터〉 전시의 실천 또는 실험은 답을 강요하거나 단정 짓지 않는 예술의 화법 안에서, 저마다 ‘자기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한다.

홀로, 또 같이 있다는 공공의 감각
〈물고기로 죽기〉 〈래러미 프로젝트 & 십 년 후〉 등의 연극을 기획, 제작한 공연예술 기획자 고주영은 전시의 자문 및 공간 운영자로 참여했다. 제주의 ‘19호실’ 바깥채에 머물며 익명의 관객(방문자)이 머무는 공간을 살뜰히 정비한 그에게 ‘19호실’은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되 무해한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안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비대면 체크인-체크아웃이라 거의 모든 방문자의 얼굴이나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황. 그는 창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나 눈길에 난 발자국으로 ‘19호실’에 찾아온 이의 안부를 살핀다. 고주영은 일본의 소도시 우에다에서 경험한 문화예술 공간의 공적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문화예술 공간을 개방해, 팬데믹이나 가정폭력 등으로 곤란을 겪는 사람이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이 묵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피난처와 쉼터로 기능하는 타국의 공공 공간이 환기하는 바는, ‘19호실’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든 있고 ‘19호실’을 제공할 방법이 얼마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우에다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19호실’이, 공공의 영역에서 기획돼 예술의 차원으로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시당하지 않는 안전함
장애연극인 김지수는 ‘19호실’에 묵으며 오래전 혼자 나선 여행길을 회상한다. 휠체어를 타고 혼자 여행 온 장애인을 대단하다거나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수시로 객실을 노크해 불편한 게 없는지 확인했던 숙소 직원은 그가 혹시 극단적 선택을 하러 온 게 아닐지 직원들끼리 긴장했다는 말을 전했다. 김지수는 편견 어린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사람이 없어 ‘나답게’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러나 언제든지 도움 청할 사람이 근처에 있어 ‘안전한’ 상태를 ‘19호실’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환대하는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당사자 활동가인 박에디는 대부분의 여성은 그리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인 자신은 스스로 ‘여성’이라 정체화할 수 있음을 우선 밝힌다. 그는 ‘19호실’ 복층이 외부에서 들여다보이는지 확인한 뒤 옷을 벗고 공간을 유영한다. 그에게 ‘19호실’은 남들이 말하는 정상성을 의식하느라 늘 부족하다고만 여겼던 자기 몸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자기만 아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위로의 공간이다. 그는 전시를 떠나 집으로 가는 길에,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는 친구와 이웃이 있는 곳이 ‘19호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리적 공간과 관계적 공간을 아우르는
예술의 실천과 모험

“익명적 존재”의 자기만의 장(場)
무아와 드므는 첫 번째 글쓰기 워크숍의 참가자들이다.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맡은 자리가 있었거나 책을 위해 일찌감치 섭외된 다른 필자들과 달리,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처럼 스스로 19호실에 찾아든 “익명적 존재”인 셈이다. 네 차례에 걸친 글쓰기 워크숍을 통해 완성한 한 편의 자기서사 글 외에는, 책의 필자로 초대하고부터 출간이 임박한 시점(책 표지에 넣을 약력을 확인하기)까지 아무런 정보를 알지 못했다. 이들이 누구이며 봄의 글쓰기 워크숍과 겨울의 전시 관람을 거쳐 이듬해 봄의 집필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리하여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알지 못한 채 필자로 초대한 것은 책의 모험이자 불가결한 실천이었다. 무아와 드므는 아픈 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별히 초대된 두 필자는 뜨개 작업과 모임을 통과해 자기 몸의 쓸모와 특성을 돌아보고(무아), 진공과 멸균과 순백이 담보할 수 없는 ‘안전한 공간’에 대해 질문하는(드므), 솔직하고 치열한 자기서사를 이 책에 보태주었다.

안전한 예술, 안전한 공간, 안전의 역설
기획자 제람과 두 차례의 대담을 가지며 기획 단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날카롭고 경쾌한 비평으로 혹자가 품었을 모든 의문들을 헤집는다. 그는 최근 예술 실천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 ‘안전’과 ‘무해한 예술’에 대해 질문한 다음, ‘안전한 공간’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제람의 작업과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의 면면을 분석한다. 제주의 ‘19호실’에서 “안락하고 쾌적한 공간”이 보장하는 ‘안전’을 구성하는 것들(“사전 협의와 참가자들의 선의 또는 시민교양, 조율된 규칙들”)에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를 거슬러 위반해보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나’의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안전한 공간을 찾아왔는데, 그 공간의 안전은 내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존재로 간주되게 확보된다는 역설”(221쪽)을 성찰하기 위해 정동이론의 ‘약속’과 아즈마 히로키의 ‘오배’ 개념을 관통한 그는 밭작물을 위해 조도를 낮춘 제주의 어둔 밤길을 통과한 끝에 ‘약속된 어둠’ 속에 아늑하게 묻히는 법에 도달한다. 나름의 사유를 정리하려던 독자의 허를 찌르는 오혜진의 예리한 비평은 정해진 답이 없으며, 끝이 아니라 과정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모든 안내는 따르거나 따르지 않아도 된다”
책의 도입 ‘전시’와 마지막의 ‘부록’에는 사진가 이민지가 촬영한 전시 〈19호실로부터〉의 화보와 전시에서 제공된 식사 레시피가 수록돼 있다. 각 사진에는 별도의 캡션을 다는 대신 숫자 기호(①②③…⑯)를 달아, 관련 본문과 사진을 연결해 볼 수 있게 했다. 독자들은 본문에 등장하는 숫자 기호로 해당 이미지를 찾아봐도 되고, 무심히 지나치거나 따로 떨어뜨려 훑어봐도 된다. “모든 안내는 따르거나 따르지 않아도 된다”(여혜진)라는 전시의 지침처럼, 직결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나길 바랐던 편집의 의도다. 아예 이 연결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글(「낯선 어둠 속에 아늑하게 파묻히는 법」)에는 아무 기호도 달지 않았다.

끝이 아니라 시작
어머니가 왜 자기만의 ‘19호실’을 찾았는지, ‘19호실’이 필요한 ‘여성’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19호실’이 어떤 공간이어야 할지 알고 싶어 시작된 이 여정은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까. 나의 ‘19호실’과 타자의 ‘19호실’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이 과정이 모두에게 어떤 기획의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까. 제람은 책을 통해 앞으로도 구체적인 일상의 토대로서 ‘안전’이 무엇일지 공통의 생각과 감각을 벼리고 싶다고 말한다. 올 하반기엔 인천과 강화도로, 내년엔 또 다른 곳이나 해외로 장소를 옮겨, ‘19호실’ 프로젝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책은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기획되었다.

작가정보

저자(글) 제람

예술활동가. 누구나 ‘자기답게’ 존재할 수 있는, 물리적이면서 관계적인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넓히는 작업과 활동을 지속해왔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청소노동자, 성소수자 군인, 난민, 여성, 농인, 미등록 이주민 등의 이야기를 설치미술, 영상, 디지털 서체, 여행, 팝업다방, 숙박형 전시, 출판, 강연, 워크숍, 음악감상회 등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빌려 조명했다. 다원예술 프로젝트 《19호실로부터》를 기획ㆍ총괄하고 있다.

저자(글) 오혜진

문학평론가. 서사ㆍ표상ㆍ담론의 성정치를 분석하고 역사화하는 일에 관심 있다. 저서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과 공저 『연구자의 탄생』 『원본 없는 판타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그런 남자는 없다』 『을들의 당나귀 귀』 『민주주의 증언 인문학』 등이 있다. 《19호실로부터》를 위해 2022년 6월과 7월, 기획자 제람과 두 차례의 대담을 진행했고, 2022년 12월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에 투숙객으로 참여했다.

저자(글) 여혜진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사람들을 엮어내고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성을 즐거워하며 ‘비효율적’인 예술 생산 방식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팩토리 콜렉티브’와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들토끼들’ 멤버로 활동하며 ‘코스모40’의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를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했다.

저자(글)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연습 프로젝트》(〈연출 연습-세 마리 곰〉 〈연기 연습-배우는 사람〉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 《플랜Q 프로젝트》(〈래러미 프로젝트 & 십 년 후〉 〈내 얘기 좀 들어봐〉) 등을 기획ㆍ제작하고 있다.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의 자문과 전시 기간 중 절반의 공간 운영을 맡았다.

저자(글) 김지수

연출가, 극작가, 배우. 2007년에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대표를 지냈다. 함께 살아가는 삶에 관해 질문하는 좋은 대본을 쓰고 싶다. 장애인 동료상담가로도 활동한다. 저서로 구술자로 참여한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공저)이 있다. 2022년 12월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에 투숙객으로 참여했다.

저자(글) 박에디

MTF 트랜스젠더 당사자 활동가.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을 거쳐, 연분홍TV 〈퀴서비스〉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가 있다. 2022년 12월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의 투숙객으로 참여했다.

저자(글) 무아

뜨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섬유예술가. 전이성 유방암,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며 겪는 마음의 오르내림을 작품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야기 뜨개 모임 ‘마음을 뜨는 시간’의 진행자로 활동한다. 2022년 5월부터 6월까지 4회 차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했고, 2022년 12월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의 투숙객으로 참여했다.

저자(글) 드므

글 짓는 사람. 종이에 갇히지 않는 글자를 꿈꾼다. 『2W』의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세이 『바다가 건넨 ㅁㅇ』을 썼다. 2022년 5월부터 6월까지 4회 차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했고, 2022년 11월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의 투숙객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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