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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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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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나에게 제2의 자연이 되고 있다.
여러분은 나중에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간
이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_괴테
한국 괴테 학회를 창설했던 故 박찬기 교수가 주축이 되어 2004년 최초의 한국어 완역본으로 출간했던 민음사의 『이탈리아 기행』이 편집자 주석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편집은 『평균의 마음』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등을 통해 고전의 현대적 가치를 신선한 감각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수은 작가가 맡았다. 편집자는 약 900개의 주석으로 이 책이 쓰였던 당대 유럽의 역사와 문화,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탈리아의 명소와 예술 작품, 그들과 함께 언급된 수백 명의 실존 인물들, 그리고 이 모험 가득한 기행에서 드러나는 청년 괴테의 허기, 예술가로서의 열망, 내면의 성장과 변화 등에 대해 세심한 해설을 덧붙이며 250년 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생동감 넘치게 재생시켰다.
이탈리아 기행
1권 1786년 9월~1787년 6월
1부
카를스바트에서 브렌네르까지 37
브렌네르에서 베로나까지 61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 88
베네치아 130
페라라에서 로마까지 190
로마 237
2부
나폴리 333
시칠리아 408
나폴리 553
2권 두 번째 로마 체류기_1787년 6월~1788년 4월
6월 595
7월 618
8월 646
9월 665
10월 694
11월 726
12월 747
1월 793
로마의 카니발 807
2월 852
3월 866
4월 893
괴테 연보 916
* 『이탈리아 기행』은 괴테의 모든 작품 가운데 주석 없이는 온전히 감상하기 가장 어려운 논픽션이고, 18세기 풍속사 연구에 귀한 빛을 던져주는 생생한 증언으로 가득한 사료이자, 괴테 문학이라는 거대한 유적지를 헤매는 이들을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책이다. (7쪽)
* 이 책에 언급된 문화유산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 비잔틴에서 18세기까지 2500년에 걸쳐 있고, 특히 회화와 건축은 전기 르네상스부터 바로크까지 약 300년간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다. (10쪽)
* 주석을 원작의 권위에 기대 주석자 자신이 돋보이려는 지적 허영으로, 작품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방해하는 사족으로 여기는 분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이런 주석 혐오가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다. 주관적이고도 정서적인 고유 체험으로서 독서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며, 독자 개개인의 자유로운 독해로부터 가장 창조적인 재해석이 생산된다. 하지만 만일 내가 250여 년 전에 쓰인 기록문학을 어떠한 부가 지식도 없이 읽어야 한다면, 나는 스스로의 이해나 판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책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섣불리 말하지도 못할 것 같다. 자세히 모르고도 오랫동안 많은 독자가 읽고 즐겼으니 이 책이 고전 걸작인 것이고, 새롭게 알아가며 다시 읽는다면 보다 풍요로운 시선으로 음미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12쪽)
* 그는 자기 자신과 이탈리아 시민 모두를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으로 대등하게 간주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기행』 전반에 흐르는 괴테의 ‘세계시민’ 의식은 다름 아닌 이러한 자기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괴테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럼에도 사적 개인인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네 문명의 기원’에 다가가려는 탐구자로서, 말하자면 고전주의자로서 그 세계를 바라보았다. (14쪽)
* 우리는 곧 『이탈리아 기행』에서 괴테의 시선으로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7세, 파르네세 가문 출신의 교황 바오로 3세, 교황 바오로 5세의 조카인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 같은 신권통치자들이 엄청난 권력과 자금을 동원해 탐욕스럽게 수집해 놓은 수많은 걸작 예술품을 보게 될 것이다. (18쪽)
* 하지만 『이탈리아 기행』을 진정한 활기로 채우는 이들은 18세기 이탈리아의 이름 없는 서민들이다.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 나폴리 하숙집 주인, 거리의 제빵사와 아이들, 마부, 수도사, 어릿광대 배우들까지, 괴테는 수많은 평범한 인물들의 삶과 생활을 살아 숨 쉬는 풍경으로 포착해 낸다. 로마 카니발 시즌 동안 시내 한복판 도로에 말들을 풀어놓고 치렀던 경마 대회의 엄청난 열기와 인파는 글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다. 이들이 소설 속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무수한 색채와 음향을 만들어내며 살아간 실제의 인간들이었기에, 그리고 어떤 우연과 필연으로 그들과 같은 시공간에 있게 된 한 뛰어난 관찰자가 그 생활상을 소박하면서도 매력 넘치는 문장으로 기록했기에 『이탈리아 기행』이 오늘날까지 읽을 가치가 있는 여행문학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따라가는 여정은 우리가 가본 적 없는 다른 세기의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놀라운 시간여행 체험이기도 하다. (20~21쪽)
* 10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종단여행을 마친 괴테는 10개월을 더 로마에 체류하며 글쓰기에 전념했고, 이로부터 『이탈리아 기행』은 성격이 매우 다른 두 권의 책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1권에서 괴테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장소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리고 풍광에 감탄한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 방랑자다. 자유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시선으로 가톨릭과 헬레니즘의 유산들을 관찰하면서 때로 번뜩이는 통찰을 또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모든 대상들이 신선하고 경이롭다. 그에 반해 2권은 로마에 사는 예술가로서, 고전주의 정신을 내면화하면서 자신만의 예술론을 숙성시키는데, 그래서 특히 2권은 괴테라는 작가가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나가게 된 과정과 예술적 목표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단서가 된다.” (25~26쪽)
* 무엇보다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괴테가 40대부터 써낸 모든 대작들이 이 여행의 경험과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특히 『파우스트』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1부와 2부로 구상되게 되었는지와 관련한 많은 단서가 이 책에 들어 있다. 가령, 『파우스트』의 결말부에서 파우스트 박사가 자신만의 치적을 쌓아 위대한 통치자가 되겠다면 간척사업을 벌일 때는 정말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 알고 보니 그것은 팔순의 괴테가 45년 전 로마 근교 폰티노 습지대를 지날 때 관찰한 배수로 공사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28쪽)
* 『이탈리아 기행』을 편집하고 주석을 다는 과정은 특색 없는 위대한 작가였던 괴테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동하는 인간으로 재발견하고 깊이 사귀어 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주석본은 시작일 뿐이다. (...) 여기에 묘사된 이탈리아는 시시때때로 바뀌고 있는 이탈리아의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시대, 괴테라는 한 인간의 눈에 포착된 것들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언젠가 여러분이 이탈리아에서 저마다의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를 발견하게 될 때, 이 책의 내용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29쪽)
■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 그리고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곳은 밝고 해맑게 충분한 광선을 받고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그 밖의 천장화를 보고 우리는 다 같이 감탄했다. 나는 쳐다보면서 그저 경탄할 따름이었다. 거장의 내면적인 확실함과 남성적인 힘, 위대함은 도저히 필설로 다할 수 없다. (267쪽)
* 이런 예술가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은 마치 거울 방에 있는 것 같아서 싫어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의 영상을 발견하게 된다. 티슈바인이 자주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 것은 진작부터 알아차리고 있었으나, 그가 나의 초상화를 그리려 한다는 것은 이제야 명백해졌다. 밑그림은 벌써 다 되었고 캔버스도 준비되어 있다. 나는 등신대의 여행자 모습으로 하얀 망토를 입고 야외에 쓰러져 있는 오벨리스크 위에 앉아서, 멀리 배경에 깔려 있는 로마평원의 폐허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질 예정이다. (289쪽)
* 나는 이번 여행에서 여행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살아가는 법도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생활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인간은 그 기풍이나 성격에 있어서 너무나 나하고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재능을 내 몸에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안녕. 내가 여러분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듯 여러분도 나를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406쪽)
* “그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젊고 기운이 넘치며 사람들을 슬프게도 즐겁게도 만들던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의 저자 말입니다.”
나는 주저하듯 좀 시간을 두고서 대답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사나이는 바로 접니다.”
그는 놀라운 표정을 역력히 나타내고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외쳤다. “그럼 무척 많이 변했군요!”
“그럼요.” 나는 대답했다. “바이마르와 팔레르모 사이에서 나는 매우 많이 변했습니다.”
(434쪽)
* 이들 모든 해안과 곶, 만과 후미, 섬과 해협, 함석과 모래사장, 관목이 우거진 언덕, 완만한 목장,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 손질이 잘된 수목, 매달려 있는 포도 넝쿨, 구름에 휩싸인 산과 언제나 청명한 평야, 단애와 여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바다의 천변만화의 양상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보전하고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오디세이아』는 비로소 나에게 생명이 넘치는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555쪽)
* 대체로 모든 사람은 다른 인간들의 보충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인간이 가장 유익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특히 여행기나 여행자가 그런 점에서 유의미할 것이다. 개인 각자의 성격, 목적, 시류, 우연한 사건에 따른 성공과 실패 등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르게 경험된다. 그렇지만 앞서 간 여행자가 있다는 사실만 알게 되어도 나는 그에게 반가움을 느끼고, 또 내가 그와 함께 나중에 올 여행자를 돕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에게 그 지방을 몸소 찾아가 보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 미래의 여행자에게 마찬가지로 친밀하게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다. (592쪽)
* 친애하는 여러분에게, 다시 이곳 소식을 전한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며, 점점 더 내면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나 자신의 고유한 것과, 내게 생소한 것들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모든 면을 받아들여 내면으로부터 성장하고 있다. 지난 며칠은 티볼리에 가서 지냈고, 자연경관들 중 하나를 처음으로 구경했다. 폭포들과 폐허, 그리고 경치 전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깊은 곳까지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596쪽)
* 세상에 로마는 단 하나뿐이고, 나는 이곳에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다른 액체 속에서는 가라앉았지만 수은 속에서는 맨 위에 뜨는 작은 알갱이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오로지 단 한 가지, 이 행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체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602쪽)
*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내 머릿속은 수백 가지 새로운 착상으로 가득하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작업한다는 사실이다. (620쪽)
*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 커다란 결함 두 가지를 요즘에야 찾아냈다. 첫째는 내가 계획했거나 해야만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작업 방법을 전혀 배우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한 까닭에 타고난 재주가 많았음에도 이룬 일이 별로 없다. 정신력으로 억지를 부렸기 때문에 행운이 따를 때는 성공했지만, 우연에 따라 실패도 했다. 아니면 어떤 일을 심사숙고하여 잘하려고 작정하면 겁이 나서 완성시킬 수가 없었다. 이와 비슷한 둘째 결함은 내가 일이나 사업에 요구되는 만큼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626쪽)
* 내게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이 풍요롭게 넘치고 있다. 요 몇 달간 비로소 여기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이제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나에게 제2의 자연이 되고 있다. 이 예술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처럼, 위대한 인간들의 머리에서 창조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나중에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간 이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649쪽)
* 그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일상생활과 감정의 무한한 자유가 없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12년 전에 썼던 작품에 다시 손을 대, 새로 쓰지 않고 완성하는 일이다. 특별한 시간적 제한이 그 일을 어렵게도 만들었지만, 또한 쉽게도 만들었다. 아직도 내 앞에는 그러한 바위가 두 개 더 놓여 있다. 그것은 『파우스트』와 『타소』다. 자비로운 신이 내 미래에 시시포스의 형벌을 내린 듯하니, 내가 이 짐들 역시 산 위로 메고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726~727쪽)
* 나는 적들이 침묵하고 떠나는 상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병적이고 편협한 것으로 평가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사랑하는 친구여, 사고하고 행동하게. 그리고 그 최상의 것으로 나를 위해,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게. 그러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 채 파멸할 테니. (752쪽)
*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독자를 슬픔에 잠기게 만들기를 겁내지 않는 나는 우리의 카니발을 재의 수요일에 대한 고찰로 끝맺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독자 모두가 우리와 함께 자유롭게 가장한 카니발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순간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즐거움이 갖는 중요성을 새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생은 로마 카니발처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도 향유할 수도 없으며, 의혹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851쪽)
* 첫 번째로 『파우스트』 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 수술 작업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이 지금 쓰이든, 15년 전에 쓰였든, 그것은 다른 문제다. 내 생각에는 모든 것을 살려야 할 것 같다. 최근에야 전체를 연결하는 실마리를 다시 찾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톤에 대해서도 별 걱정이 없다. 이미 한 장면을 새로 썼다. 이제 내가 원고를 연기로 그을려놓으면, 아무도 옛날 원고에서 새로 집필한 장면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기간의 휴식과 은둔생활로 나의 고유한 자아가 원하는 상태로 지내다 보니, 완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868쪽)
* 지난 8주 동안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시기였으며, 적어도 이제는 미래의 내 존재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극히 외적인 기준을 알게 되었다. (873쪽)
* 우리가 몰두해야 할 가장 존엄한 것은 인간의 형상이라는 점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형상들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찬란하게 의식된다. 그러나 이를 보는 순간에 곧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정말 하찮게 느껴진다. 인체의 균형, 해부학, 동작의 규칙성에 관해 어느 정도 지식을 쌓은 내 눈에 여기서 너무나 강렬히 눈에 띄는 것은 형식이 마지막에 모든 것을, 즉 인체의 각 부분들의 합목적성, 관계, 특성, 아름다움까지를 전부 포괄한다는 사실이다. (894쪽)
■ 베로나,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그리고 다시 로마로!
괴테의 인생을 뒤바꾼 700일의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 기행』은 1786년부터 1788년까지, 2년에 걸쳐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기록이다. 1774년 단 6주 만에 완성했다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친 괴테는 스물일곱에 바이마르 공국의 고문관이 되었다. 그 후 십 년간 공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부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지만, 작가로서는 침체기를 겪었다. 공직 생활의 권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싶다는 갈증이 겹쳐 서른일곱 살의 괴테는 휴양차 머무르던 카를스바트에서 어느 날 새벽, 돌연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그로부터 1788년 초여름까지 괴테는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이탈리아의 곳곳을 밟는다. 볼차노, 트렌토, 베로나, 비첸차, 파도바, 베네치아, 페라라, 볼로냐, 피렌체, 아시시, 로마, 나폴리, 팔레르모, 메시나 등 30여 개 도시를 찾아간다. 바이마르에서의 틀에 박힌 공직 생활로는 메울 수 없었던, 자연과 예술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문학적 영감을 환기하는 시간을 보내며 괴테는 이탈리아라는 문화적 토양에서 위대한 인간들이 이룩해 놓은 것들 앞에서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때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전율한다.
그 700일 동안 괴테는 이탈리아 곳곳에서 부지런히 일기를 쓰고, 바이마르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데, 그 안에는 예술에 대한 열광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들끓던 괴테의 집요한 탐구의 결과들, 즉 식물학, 기상학, 지질학, 광물학, 동물학, 색채학 등 대단히 다채로운 영역에 걸친 꼼꼼한 관찰도 담겨 있다. 『이탈리아 기행』 1권의 일기와 편지들은 괴테의 여행 경로에 따라 충실히 엮였다. 이탈리아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 끝까지, 새로운 곳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며 헬레니즘과 르네상스의 유산들에 대한 부러움과 경이로움을 전하는 글들이다. 그 종단 여행의 끝, 시칠리아까지 돌아본 괴테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그곳에서만 10개월을 더 체류하는데, 2권 「두 번째 로마 체류기」는 이 시기에 고전주의 정신과 그것의 예술적 실현 방법을 탐구하며, 오랫동안 미완으로 멈춰 있던 작품들의 완성을 위해 매진하고, 자신의 예술론을 숙성시켰던 과정의 기록이다. 그곳에서 실제로 괴테는 『타소』와 『에그몬트』를 완성하고,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를 다시 쓰며, 『파우스트』를 발전시키기 위한 실마리도 찾는다.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흥과 묘사로 이탈리아의 자연과 유적, 예술 작품에 대한 감동을 고백하는 그의 활기찬 여행기는 ‘여행 에세이의 정전’으로서뿐만 아니라 당대 유럽 사회와 문화에 대한 매우 희귀한 사료로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에게 이탈리아를 직접 탐험할 다양한 동기를 부여한다. 괴테는 그러나 그토록 갈망했던 이탈리아 여행에서 쓰인 글들을 곧바로 책으로 묶지는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거의 30년이 지난 1816년에야 이 책 1권의 1부가, 이듬해에 2부가 출간되었고, 1829년 2권 「두 번째 로마 체류기」가 쓰인 다음 『이탈리아 기행』은 비로소 지금 우리가 만나는 작품으로 완결되었다. 말하자면 『이탈리아 기행』은 30대 괴테의 여행을 60대의 괴테가 시간을 두고 반추하며 완성한 책이다. 그에게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주었던 이탈리아 기행은 이후의 삶을 관통하는 씨줄이자 그의 온 생애로 완성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 용감한 여행자, 집요한 예술가 괴테를 따라가는 길
“자정이 지나면 바람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분다. 그래서 호수를 내려가려고 하는 사람은 이때 배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해가 뜨기 한두 시간 전이면 벌써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북쪽으로 불기 때문이다. 오후인 지금은 내가 있는 쪽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 뜨거운 햇볕을 식혀준다. 폴크만은 나에게 호수가 이전에는 베나쿠스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이름이 언급된 베르길리우스의 시구 하나를 인용하고 있다.”(「브렌네르에서 베로나까지」, 71~72쪽에서)
이탈리아로 떠나며 괴테도 여행가이드를 지참했을까? 그렇다. 요한 야코프 폴크만의 『이탈리아 역사문화 탐방기』. 폴크만은 유럽 전역을 여행하고 무려 98권에 이르는 탐방기를 써낸 꽤 활동적인 작가였다고 한다.(71쪽 주석 45) 괴테는 자신이 고른 가이드가 흡족했을까? 로마에 이르러 그 책을 향한 괴테의 불만은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산타 마리아 델라 파체 성당에서 폴크만이 라파엘로의 무녀 그림에 대해 펼친 얼토당토않은 평가를 읽고 그는 마침내 분통을 터뜨린다. 폴크만이 사용하는 용어와 비평의 내용에 오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764쪽 주석 168)
『이탈리아 기행』은 편지와 일기로 엮인 만큼 글이 쓰인 정황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는 온전히 이해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다. 주석본 『이탈리아 기행』에는 약 900개의 편집자 주석이 추가되었다. 주석 작업은 ‘맥락의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해설’을 원칙으로 삼았음에도, 200자 원고지로는 800~900매, 어지간한 단행본 한 권 분량이다.
『이탈리아 기행』에는 400명이 넘는 실존 인물들이 언급된다. 편집자의 주석은 우선 이들의 면면을 충실히 알려주는 데 상당 부분 할애된다. 괴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시대에 공존했던 인물들, 예컨대 이 책에 실린 편지의 수신인으로 거의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되는 헤르더, 시칠리아까지 여행을 함께한 화가 티슈바인,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 괴테를 위해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를 그렸던 크니프 등을 비롯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소환되는 통치자와 정치가,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 중에 스친 공국의 제후, 지방 태수, 각국 외교관, 추기경, 촉망받는 젊은 작가, 부유한 미술상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편집자의 소개로 만난다. 남편 윌리엄 해밀턴의 묵인하에 넬슨 제독의 연인으로 아이까지 낳으며 한집에 살았던 에마 해밀턴(383쪽 주석 50), 사촌의 행적 때문에 스파이 혐의를 쓰고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적국의 장교가 되지만, 거듭된 불운 끝에 결국엔 타국의 스파이로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에서 처형된 트렝크의 기묘한 인생(673쪽 주석 90)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석들은 마치 『이탈리아 기행』에 부록으로 딸린 한 편의 드라마 같은데, 이들에 비하면 요제프 2세(78쪽 주석 48), 레오폴트 2세(125쪽 주석 110), 프리드리히 대왕(219쪽 주석 223) 등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통치자들의 치적은 그저 무미건조할 지경이다. 자연사를 연구하는 여행가였던 발사자르 하케(46쪽 주석 16), 가난한 모자 견습공에서 베를린 왕립예술학교의 교수가 된 카를 필립 모리츠(274쪽 주석 311), 고대 유물을 연구하기 위해 사제가 된 법학박사 카를로 페아(280쪽 주석 317), 외교관이자 지리학자였던 코르넬리우스 데 파우(574쪽 주석 207), 공작부인 신분으로 왕비의 시종장이 되었다가 화산과 광물을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이혼 후엔 시인이자 교육 저술가로 이름을 남긴 율리아네 조반네(586~587쪽 주석 220), 귀족들의 그랜드투어를 가이드하며 화가들의 에이전트, 환전상, 골동품 판매상까지 겸한 토머스 젠킨스(640쪽 주석 53), 철학자이자 해부학 교수로 인종 발달사를 정리한 페트루스 캄퍼르(706쪽 주석 118) 등, 아직 세상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이름의 이력을 밝히고 알아가는 일이 흥미진진한 것은 그들의 소속과 직업과 업적 안에 당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널려 있고, 그들의 삶으로 짜인 세계가 바로 괴테의 여행이 펼쳐진 무대였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주석은 『이탈리아 기행』 안에 보통 명사로 쓰여 있으나 고유 명사로 읽어야 하는 특별한 장소와 공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786년 9월 6일에 쓴 편지의 ‘미술관’은 뮌헨의 알테피나코테크 미술관(42쪽 주석 7)이며, 10월 18일 볼로냐에서 본 기울어진 ‘탑’은 가리센다 탑(199쪽 주석 198)이고, 며칠 후 그가 피렌체에서 마주한 ‘대성당’이 산타마리아 델피오레(214쪽 주석 218)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괴테의 여행은 우리에게 한층 구체적인 영상으로 다가온다. 편집자의 주석은 옛 지명이나 축약된 표기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명확히 알려주고, 필요한 경우 지명의 유래나 변천도 밝혔다. 괴테가 세상에 다시없는 절경도 마다하고 먼저 달려갔던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와 「성녀 체칠리아」가 있는 곳, 어울리지 않는 양식의 건축물 사이에 끼어 있는 팔라디오의 바실리카를 보며 안쓰러워했던 곳(196쪽 주석 190, 582쪽 주석 215, 112쪽 주석 89), 수 세기가 흐른 뒤에도 건재한 수도(水道)를 바라보며 고대 건축의 위대함에 넋을 잃었던 곳(230쪽 주석 237), 그런 공간에서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까지 찾아주는 편집자의 감각은 괴테의 여행과 우리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를 바싹 좁혔다.
나아가 신화 또는 허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명, 특정 용어의 쓰임, 종교, 건축, 역사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이해 없이 일률적으로 번역되어서는 안 되는 단어,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 결정적 사건의 전후 맥락 등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테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동하는 인간으로 재발견하게 해주는 것”은 그의 작품과 관련해 편집자가 비하인드스토리를 들려주는 주석들이다. 상당한 손실을 감수하며 괴테의 첫 전집을 출간했던 괴셴 출판사의 원고 독촉이 그의 등을 이탈리아로 떠민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57쪽 주석 25),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자극 「새」를 패러디하여 괴테가 「새들」이라는 희곡을 쓰고 트로이프로인트라는 인물을 직접 연기하며 무대에 섰던 일화(58쪽 주석 27, 28),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와 그것을 변형한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사이 달라진 것(59쪽 주석 29),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떠올리며 『나우시카』를 구상하기 시작하는 순간(521쪽 주석 175), 13세기 유럽에 퍼졌던 기독교 전설 「영원한 유대인」에서 『파우스트』의 결말을 떠올렸다는 고백(233쪽 주석 242) 등을 포착하여 문필가 괴테의 좌절과 도취와 집요함을 짚어내는 편집자의 주석은 그가 남긴 작품들의 안과 밖으로 독자의 시선을 확장한다.
“계몽주의 시대에 교양교육을 받고, 파우스트 같은 만물박사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추구했던” 괴테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 싶어 했다. 관심사만 다양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폭넓은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기도 했다. 바이마르에서는 궁정극장의 감독으로 대본을 쓰고, 작곡도 하며, 직접 무대에 섰다. 대공의 지속 비서기관인 추밀원 고문으로 일하며 광산 개발을 총괄하는 광산 장관을 겸했다. 시, 소설, 희곡 등의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과학논문,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고, 셰익스피어, 단테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바이마르 도서관이 출판한 괴테 전집은 무려 143권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기행』은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분출한 예술가, 사상가 괴테의 성장과 변화를 생생하게 따라가며, 그가 이룩하게 될 세계의 예고를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되면 그가 시스티나 예배당을 보고 남겼던 소회를 그에게 돌려주고 싶어질 것이다.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이 보고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시스티나 예배당을 보지 않고서는, 한 명의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들에 관해서 우리는 이야기도 듣고 책을 읽어서 알고 있다. 여기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머리 위와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652쪽)
★ 주석본 편집에는 그리스어와 독일어 고문헌 전문가 페터 슈프렝겔(Peter Sprengel) 베를린 자유대학교 문헌학 교수의 주석본 『이탈리아 기행』과 괴테와 관련된 박물관, 도서관의 아카이브 자료를 참조했다.
작가정보
저자(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황실 고문관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조부모에게 신년시를 써 보낼 정도로 문학적 천재성이 엿보였다. 열여덟 살 때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고, 1773년에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774년에 약혼자가 있는 샤로테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소재로 삼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해 전 유럽에 걸쳐 큰 명성을 얻었다. 1775년 희곡 『스텔라』를, 1778년 『에그몬트』를 집필했고, 1779년 『이피게니에』를 완성했다. 1782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쓰기 시작했으며, 1786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1788년 실러를 처음으로 만났으며, 후에 정식 부인이 된 평민 출신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났다. 1808년 『파우스트』 1부가 출간되었고, 나폴레옹과 두 차례 회견했다. 1821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출간했으며, 1829년 『이탈리아 기행』 전편을 완결했다. 1831년 『파우스트』 2부를 완성했으며, 이듬해인 1832년, 여든세 살로 생을 마쳤다.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화부에 당선되었으며 주한독일문화원 수석비서를 지냈다. 역서로 『우리 애들아 안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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