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2119
2020년 09월 01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8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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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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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가설과 선입견에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추적할 네 명의 시간 여행자들이 박물관 지하에 숨겨진 타임존으로 모여 든다. 무명지 지문이 없는 자그마한 권총, 상처 입은 마트료시카, 가죽끈마저 삭아 버린 비행 고글, 손때 묻은 육혈포……. 이 유물들이 간직한 기억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게 될까?
『한국사 복원 프로젝트 타입슬립 2119』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네 명의 작가가 한국사와 SF, 그리고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기획한 단편소설집이다. 임어진, 정명섭, 이하, 김소연 작가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시간 여행자가 되어 유물의 주인을 추적한다. 그 흥미로운 추적의 끝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혹은 영화나 책에서 마주쳤으나 무심히 지나쳐 버린 여성들이 있다.
비상의 시간 ㆍ 임어진
마트료시카 ㆍ 정명섭
흰머리의 전사 ㆍ 이하
육혈포의 주인 ㆍ 김소연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을 찾아라!
서기 2119년, 한국은 의문의 사이버 테러로 일제 강점기 자료 일부를 잃고 말았다. 기록 복원에 힘쓴 연구자들 덕분에 대부분의 기록이 복구되고, 이제 독립운동가의 소장품임에 틀림없으나 정확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은 몇 가지 유물만 남았다. 한국독립운동사박물관은 양자역학 기술에 기반한 타임존을 통해 유물이 존재했던 과거로 시간 여행자들을 파견하기로 한다. 이들의 임무는 유물이 존재했던 과거 시점으로 진입해, 그 유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 여행 개발자인 나선형 박사는, 이미 찾아낸 자료로 유물의 주인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총만 해도 그래. 총에 남겨진 흔적을 보면 사용자에게는 왼쪽 무명지가 없었어. 그럼 더 볼 것도 없잖아?”
나선형 박사가 동의를 구하듯 아이들을 돌아보자, 은테 안경을 쓴 소년이 말했다.
“안중근 아닐까요? 이토를 저격한…….”
그러나 타임셋 앞에 선 소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인 남성의 총이라기엔 작아 보여요. 제가 쏘기에도 적당할 것 같은데요?” (8쪽)
프롤로그 속 짧은 대화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은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빈틈을 파고든다. 실제로 3ㆍ1운동은 세계사에서도 독보적일 만큼 전국적인 규모의 만세운동이었으며, 국내외에서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다. 익히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은 그중 극히 소수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나선형 박사가 그렇듯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얽매이기 쉽다. 모든 시간 여행자가 청소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알아낸 사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선입견 없이 인물과 사물을 판단해 진실을 밝혀 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전국청소년체전 공기권총 금메달리스트 한소율, 사회주의청소년동맹 의장 이서준, 항공고등학교 재학생으로 세계 청소년 행글라이더 대회 우승자인 하연수, 고전 무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역사 마니아 한우현. 프롤로그에 짧게나마 소개된 시간 여행자들의 범상치 않은 이력과 뚜렷한 개성은 이어질 사건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시간을 거슬러서라도 만나야 할, 세상을 바꾸려 한 여성들
시간 여행자들과 독자들은 한국독립운동사박물관 연구자들이 추측한 ‘유물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을 인식한 채 과거로 떠난다. 그러나 역사와 시간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면서 드러나는 것은, 청소년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이다.
「비상의 시간」의 주인공 연수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의 것이라고 짐작되는 낡은 비행 고글을 따라간 곳에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안창남이 경성에서 미국인 비행사의 곡예비행을 보며 비행사의 꿈을 품었을 때, 평양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 여성. 그는 바로 동양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한국 공군 창설에 이바지한 인물 권기옥이다. 연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항공학교 입학을 거절당하고, 입학 후에도 생명을 위협받는 권기옥을 보며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낀다.
“언니, 공부 다 마치면 뭐 할 거예요?”
“당연히 비행사가 되어야지. 그리고 임시정부 청사로 곧장 달려갈 거야. 임정 어른들한테 말하려고. 비행기를 사 주십시오! 제가 몰고 가 조선 총독부를 폭파하겠습니다. 임정에 그럴 능력이 없으면 중국 항공대에 몸을 담고서라도 싸우겠습니다. 하늘에서 저는 조금도 약하지 않습니다!”(53쪽)
흠집이 있는 마트료시카의 흔적을 따라 1928년 11월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서준(「마트료시카」, 정명섭)은 만삭의 여인 코레예바를 만난다. 박물관 소장품과 같은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모스크바로 간다는 코레예바의 말에, 서준은 그가 마트료시카를 다른 독립운동가에게 전달할 거라고 생각한다. 코레예바는 그런 서준에게 차가운 웃음을 보인다.
“그래,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중략) 나는 여성이기만 한 게 아니라 혁명가이고, 독립운동가야. 그런데 적들조차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아. 나는 이런 세상을 반드시 바꿔 주겠어.”(88-89쪽)
양반이 평민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고작 힘이 세다는 이유로 일본이 조선을 억압하고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코레예바는 여성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세죽이다.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주세죽은 배 속의 아이에게 “혁명가 주세죽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혁명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기차에 오른다.
1920년대의 경성, 상해, 운남,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이루어지는 2119년의 청소년과 일제 강점기 여성들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200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가장 큰 힘은, 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과 굳은 신념에서 나온다.
시간과 공간, 모든 차별과 선입견을 뛰어넘기 위한 실험
『한국사 복원 프로젝트 타임슬립 2119』는 청소년들에게 일제강점기의 선각자들을 소개하기 위해, 작가들이 직접 기획한 작품이다. 3·1운동 100주년을 전후해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그들을 알리는 데에 청소년문학이 할 몫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일제 강점기에 ‘신여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활약한 여성들은, 새롭게 출현한 존재가 아니다. 근대화 이전의 조선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수한 사회적 제약을 받던 이들이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기회를 통해 세상으로 한 발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들은 일제 강점기에 인간으로서 자아를 실현하고, 동시에 조국 독립이라는 사명을 다하려 애쓴 용감한 여성들을 SF라는 장치를 매개로 청소년 독자들과 만나게 했다.
독립된 단편들을 모은 평범한 앤솔러지와 달리, 하나의 세계관 속에서 각기 다른 인물이 되어 단편소설을 집필하는 작업은 작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시도였다. 작가들이 기획과 인물 선정, 토론과 집필, 수정까지 2년여의 시간 동안 이 책에 몰입한 원동력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다.
「흰머리의 전사」를 집필한 이하 작가는 남자현의 활약을 알고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놀랐으며, 그다음에는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회고한다. 남자현은 40대 중반에 무장 독립운동에 투신해 수차례 일제의 요인 암살을 시도했고,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네 번이나 손가락을 잘랐다. 그런 그가 ‘독립운동의 어머니’ 같은 수식어로만 설명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경성 일패 기생으로 이름을 날리다 독립운동에 뛰어든 현계옥은 의열단 최초의 여성 단원으로 육혈포를 잘 다루는 변장술의 귀재였다. 그러나 현계옥의 존재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영화 ‘밀정’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 이후부터다. 「육혈포의 주인」을 집필한 김소연 작가는 기생이 독립운동을 할 리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우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사상 기생’으로 불린 현계옥이 부딪혀야 했던 높은 벽을 보여 준다.
역사소설과 SF라는 두 장르를 융합시킨 탄탄한 세계관,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 사실과 허구를 긴장감 있게 엮어 내는 필력이 있었기에 이 독특한 작품집이 완성될 수 있었다. 권기옥, 주세죽, 남자현, 현계옥. 조국 독립에 생을 바친 이들의 위대한 삶을 단편소설에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사 복원 프로젝트 타임슬립 2119』가 오늘의 독자들이 이 귀한 이름들을 기억하고, 시대와 성별에 가려진 그들의 삶과 신념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작가정보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시 「전화 결혼식」 외 4편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중국 북경과 상해 등의 한인 마을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시와 소설을 썼다. 시집 『내 속에 숨어사는 것들』, 청소년 소설 『기억을 파는 가게』, 『괴물 사냥꾼』, 『타임슬립 1932』 등을 썼다.
저자(글) 김소연
역사와 전통문화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근 SF에까지 장르를 넓히고 있다. 청소년 소설 『야만의 거리』, 『광장에 서다』(공저), 『격리된 아이』(공저), 동화 『내 짝꿍의 비밀』, 『꽃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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