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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친구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아무튼 시리즈 57
양다솔 지음
위고

2023년 07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7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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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6.99MB)
ISBN 979116089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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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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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공자가 말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아(벗이 멀리서 찾아와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한편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친구가 뭐 대수인가.” 작가 양다솔은 이 말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놀랄 것이다. 시간도 없고 돈도 부족하여 마음마저 차가워진 이 시대에 그는 오직 우정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친구가 가벼운 목소리로 와주겠냐고 묻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폭설로 대중교통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눈길을 맹렬히 질주하는 사람이 된다. 머리에서 비눗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도, 지금 막 맛있는 밥 한 술을 뜨려는 찰나여도, 참고 참았던 볼일을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참인데도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한결같이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는 사람. 그는 언제나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 만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온 마이 웨이
열혈 우정인
문턱에 서 있는 사람
무소식이 비(悲)소식
스투키와 나
모든 것의 공주
빗의 속도
보름간의 별거
마운테인 다이어리
아빠는 이데아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본 것처럼
“지금 딱 좋아”

내 소개는 간단하다. “양다솔입니다. ○○의 친구입니다.” 누군가 “무슨 일 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멀쩡히 회사 다니는 직장인임에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의 친구입니다. 그것이 제1 직업입니다. 아직 명함은 못 팠습니다. 갖가지 사이드잡을 하고 있습니다만 저를 별로 설명해주지 않네요.” 특히 잘 보이고 싶은 상대에게는 여러 명을 열거하기도 했다. “아시죠? 저는 ○○의 친구이자 ○○과도 절친하고 ○○에게는 유일한 친구라는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p.21)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적부터 좀 서슴없었다. “너 남의 집에 가서 냉장고 휙휙 여는 거 아니야!” 엄마가 맹렬히 쏘아붙였다. 이미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단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머릿속에 입력했다. 남의 집 냉장고를 휙휙 열지 말 것.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 되는 모양. (p.24)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사람이었던 나 자신을 항상 버거워했다. 몹시 끔찍하다고 느꼈다. 이런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차라리 내 친구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려주는 사랑을 빌려 자랐다. 그들을 믿는 마음을 조금씩 반사하여 나 자신을 믿었다. (p.29)

“너는 학교가 끝나면 동네에 있는 친구들을 열심히 꼬셔가지고 집으로 데려왔지. 그러고서는 정작 놀지는 않고 현관문을 지키고 서 있었어. 애들이 곧 갈까 봐서.”
어릴 적부터 타인에게 몹시도 진심이었던 나를 엄마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발바닥에 닿았던 문턱의 서늘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pp.35-36)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발 이런 나를 두고 가지 마.’ 그 마음이 지금도 놀랍도록 생생하다. 발의 아치에 딱 맞던 문턱의 단단하고 시원한 촉감까지. 그럴 때면 시간이라는 것이 정말 흐르고 있는 걸까 싶다. (…) 시간이 갈수록 내 삶의 어떤 부분들은 새로운 것들로 덮이며 형태를 바꾸고 있는데, 그 옆에는 여전히 문턱을 지키는 아이가 서 있기 때문이다. (pp.37-38)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함께한 대부분의 순간 ‘함께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언제든 내 옆에 있다고 믿기보다는, 언제든 말없이 떠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으며, 나를 배신하고, 버리고, 홀로 남겨둘 거라 믿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기도 했다. 그 마음은 밤하늘처럼 넓고 어두운 불신의 바다에서 작은 별처럼 빛났다. (pp.53-54)

하소연 따위는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으며 고난은 늘 알아서 해결해왔던 그는 줄줄이 이어지는 나의 슬픔 앞에서 시종일관 어쩔 줄 몰랐다. 입을 뗐다가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는 위로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그가 이내 속삭였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공주 개미야.” (p.72)

그들에 대해서 나는 영영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나에 관한 것이다. 내가 매일같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이다. (…) 하루에도 최소 열 번씩 “예쁜아”, “이 사랑스러운 것아”, “바보야” 같은 말을 속삭이는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은 나도 살아야겠다고, 그들과 내가 먹을 정도는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이 카펫을 망쳐놓고, 집 안을 어지르고, 접시를 깨뜨리고, 목화솜 이불에 오줌을 싸놓고, 내 발목 위에 똥을 싸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한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pp.96-97)

한참을 달렸을 때 먼 곳에 작고 동그란 점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팔을 들어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저 멀리엔 숲과 들판이, 커다란 수영장이, 이국적인 건물과 오색찬란한 꽃들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지나쳐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었다. (…) 나는 요요처럼 엄마로부터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길은 여러 번 갈렸다가 이어졌다. 순간들은 멀어졌다 겹쳐졌다. 매번 엄마는 멀리서부터 웃고 있었다. 무얼 보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본 것처럼. (pp.134-135)

그들이 전화를 받으면 하루는 달라졌다. 바위처럼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던 것들은 수화기를 들고 그것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훌쩍 가벼워졌다. 골라도 골라도 끝없이 솟아나던 비관의 돌들이 잠시 딴청을 피웠다. 그들이 웃는 순간 그것들은 돌멩이처럼 작아져 내 손바닥 위를 빙그르르 굴러다녔다. 고통스러웠던 기억 어딘가에 귀여운 구석마저 있어 보였다. 비로소 그것은 일화가 되었다. (p.142)

_내 소개는 간단하다. “양다솔입니다. ○○의 친구입니다”
양다솔 작가의 이런 ‘너무한 우정공세’에는 오래된 기원이 있다. 아이들이 집에 놀러오면 어린 양다솔은 같이 놀기는커녕 내내 문간을 지키고 서 있었다. 친구들이 곧 자리를 털고 집으로 돌아갈까 봐서. “나 내일 전학 가”라고 꾸며내기도 했다. 친구들의 마음을 붙들어두고 싶어서. 내일이면 들통 날 거짓이래도 오늘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했기 때문에. 타인에게 몹시도 진심이었던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어린 양다솔의 그 마음은 ‘이런 나를 혼자 두지 마’라는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안에는 여전히 문턱을 지키고 섰던 아이가 남아 있다. 친구들과 통화를 즐겁게 마친 날이면, 바위처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것들이 훌쩍 가벼워진 듯하고 끝없이 솟아나는 비관적인 생각들도 잠시 딴청을 피웠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돌연 귀엽게 느껴지면서 비로소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일화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혼자가 아니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잠시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

_친구에 몰두했다. 그것이 살길이었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스스로를 버거워하고 몹시 끔찍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차라리 친구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려주는 사랑을 빌려 자랐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보다 친구들의 말을 믿는 것이 더 쉬웠고, 친구들을 믿는 마음을 조금씩 반사하여 그 자신을 믿었다. 말하자면 작가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신히 스스로를 지켜냈다. 한편 그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해준 존재가 바로 친구였기에, 『아무튼, 친구』에는 산과 절(또는 산 속의 절)의 이야기, 그리고 고양이 친구들,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 또한 담겨 있다.

_눈밭을 달리는 강아지처럼, 소나무 옆에 피어난 송이버섯처럼
양다솔은 누군가의 친구로 소개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결국 자기 자신과 있기보다는 친구들 속에 머무르고 싶었던 다치기 쉬운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친구라는 존재의 크기가 각자에게 잔인하리만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에야 관계가 성장할 수 있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너무 두려워지는, ‘일방적이고 너무한’ 양다솔식 우정행각이 우리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누군가는 동시에 ‘나는 우정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칠지 모른다. 놀랍고 신기한 우정행각에 깃든 작가의 쓸쓸함과 불안을 이따금 마주할 때면 때로 친구들의 이름 속에서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잊으려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제는 어차피 혼자임을 알기 때문에 친구들의 이름이 필요치 않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양다솔은 친구의 전화가 어떤 상황에 걸려온대도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지금 딱 좋다고.

작가정보

저자(글) 양다솔

사흘 밤낮을 새우더라도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열혈 우정인. 제일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다. 친구들의 모임이 하필 글쓰기 모임이어서 10년 가까이 글을 썼고 늘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글을 쓴다. 더 많은 이들과 친구이고자 비건 지향을 실천한다.
수필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출간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을 발행하고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만든다. 글쓰기 공동체 ‘까불이 글방’의 글방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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