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023년 07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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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언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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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8159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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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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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듣는 세계’보다 ‘읽고 쓰는 세계’를 지향하며 책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나 책을 써보자고 제안했던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유유히)에서는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가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이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부지런히 글을 지어 먹고사는 소설가의 일상과 더불어 문학을 대하는 본심을 숨김없이 풀어놓는다.
소설가 장강명은 오후 11시 반쯤 자고 오전 6시 반 전에 일어난다. 글 쓰는 시간은 스톱워치로 재고 매일의 생산량을 엑셀에 기록한다. 앉아서 오래 일하는 직업이라 아프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집에서 간단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롤 모델은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 조지 오웰, 그와의 공통점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를 쌓고 있다. 전업 작가 생활의 외로움은 일과 이후 맛있는 맥주로 달랜다. 장강명은 책을 낸 뒤에는 자신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읽어서 즐거운 소설이 없다. 해피엔딩 애호가 장강명은 소설을 쓸 때마다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소설만큼은 쓰다 보면 진지해진다. 작업을 하는 내내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이유를, 의미를 찾다 보면 그렇다.
소설을 집필하다 보면 다른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왔지 하고 궁금해질 때가 있다. 실존 고유명사를 쓰고 싶은데 업계 관행에 따라 현실과 다른 고유명사를 꼭 지어야 하나? 무슨 가이드라인 같은 건 없을까? 『재수사』를 쓰면서는 실제 기관이나 지명을 쓰는 대신, 독자들이 실존 대상의 특징으로 착각할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소설에서 표절의 기준은 무엇일까? (출처를 밝힐 의무가 없음에도, 작품 속 ‘작가의 말’에서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시시콜콜 밝히고 있다) 발표한 작품의 주제를 묻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작가 자신도 책을 내고 낸 다음에도 정확히 뭘 썼는지 모르는 건 아닐까? (소설을 쓰는 동안 ‘이 작품의 주제가 뭐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하고 스스로에게 자주 물으며 답을 준비하는 편이다) 등등.
한편 소설가의 수입에 관한 궁금증도 하나씩 풀어본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21세기 문화 강국이 된 덕분에 소설 판권이 활발히 팔리는 중이고 미디어업계에서는 소설가에게 협업 및 고용 제안도 한다. 정확히 책으로 먹고사는 건 아니지만, 2차 판권 수입은 전업 작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분명 도움을 주고 있다. 더불어 대부분의 작가들은 강연으로 돈을 번다. 단 그 강연료를 먼저 제시하지 않거나 안 주는 식으로 공연히 작가들을 속앓이하게 만드는 단체들이 많다. 또 고료 체불이나 인세 지급 누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끝내 계약 해지까지 이른 경험을 토로하면서 장강명은 이렇게 말한다. 출판은 문화 운동이기 이전에 엄연한 비즈니스이므로, 기본을 제대로 지켜달라고. “입금, 교정, 예의 같은 것을.(241쪽)”
1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나는 독자를 보았다
저술 노동자의 몸 관리
조지 오웰과 술과 담배
집필실과 레지던시
우리가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해피엔딩이 좋은데
고유명사를 어찌할까요
표절 공포
프로 거짓말쟁이의 걱정
작가님, 이 작품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동지애와 꿀팁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 두꺼비는 수컷인가요
영상의 은밀한 유혹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설가들은 어떻게 친해지나요
세계 모든 작가들의 습성이란
작가님은 이 글을 못 읽으시겠지만
퀀텀 점프!
2부 소설가의 돈벌이
내 책은 얼마나 팔리는 걸까
4쇄는 5,000부? 아니면 2만 부?
소설가와 강연
강연료는 얼마로…?
입금 잊지 말아주세요
추천사 쓰기
요즘엔 별걸 다 해야 돼요
계약은 어려워
표지 정하기
제목 정하기
소설가의 자기소개
소설가의 사진
2020년대 한국 소설가와 영화 판권
출간 계약을 해지하며
정부 지원과 한국문학
우리가 사라지면
3부 글쓰기 중독
청소의 도(道)와 선(禪)
전업 작가의 일상
한국 소설가와 문학 편집자
문학은 나에게
재현의 구조, 재현하려는 구조
‘거대하고 흐릿한 적’과 작가들의 공부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들
현대 추리소설을 쓰는 법
타자조차 되지 못한
임성순의 ‘회사 3부작’
우리의 적의에 대한 당신의 응답
작가와 리뷰어
주 작가의 독서량과 집필량이라면
품위냐, 종잣돈이냐
나아질 수 있을까요?
작가의 말 나의 사생활과 한국문학
소설가는 어떤가. 소방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굉장히 매력 있는 직업이다. 신문사와 건설사에서 길고 짧게 일해본 경험과 비교하면, 적어도 내게는 분명히 그렇다. 원고 작업은 가장 괴로운 순간에도 내 삶을 갉아먹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라고 느낀다. 그 힘은 돈벌이, 밥벌이와는 관련 없는 측면에서 나온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불쉿 잡이 아닌 이유를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우선 주체적으로 일한다. 원고 안 풀린다며 머리 쥐어뜯을 때에도 그는 자기 일의 주인이다. 그는 매번 매 순간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건 만만찮은 모험이라서 꽤 흥분된다. 드물지만 상쾌한 몰입의 순간도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개성이 듬뿍 담긴, 스스럼없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하며, 어떤 순간에는 틀림없이 온전한 보람을 맛본다.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걸 스스로 느끼고, 가끔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평가해준다. 희박한 확률이라도 대박을 꿈꿀 수 있고, 그래서 전망을 품을 수 있다. 거대한 의미의 흐름에 참여함을 느낀다. 부속품이 되는 것과 다른, 기분 좋은 감각이다. 헌신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확신이 든다. (프롤로그 중에서)
근육, 식사, 커피, 술 등 관리해야 할 대상들을 적다 보면 거꾸로 내가 어떤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그것도 울트라 마라톤이나 투르 드 프랑스 같은 초장거리 경기다. 그렇게 관리를 해가며 내가 매달리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하고 내 업(業)의 본질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아무 글이나 쓰는 건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다. 책이 될 글을 써야 한다. 나는 ‘단행본 저술업자’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32쪽)
비유하자면 내게는 소설의 절정부를 만들어내는 일이 바둑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일처럼 여겨진다. 그 수를 두고 나면 바둑의 규칙에 따라, 이후로는 외길 수순이 펼쳐진다. 주인공이 결단을 내리면, 세계를 움직이는 힘에 따라 그의 운명도 결정된다. 아마도 이게 나의 세계관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인 모양이다.
그 세계는 회색으로, 선과 악이 섞여 혼란스럽다. 한 인간의 내부도 그렇고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도 그렇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한 사람의 행복이라든가 정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고로 ‘이후로는 착한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늙어서 편안히 죽었답니다’라는 결말도 없다. 그 우주에는 그런 일을 보장해줄 하느님이 없다. 역사의 심판도 없다. 그 세계는 기댈 곳이 없다.
그리고 나는 소설만큼은 진지하게, 내가 믿는 세계관에 입각해서 쓰고 싶다. 쓰다 보면 진지해진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보다 훨씬 힘들고, 강연이나 방송 출연보다 투입 시간 대비 이익이 미미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내내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유가,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소설을 쓰느니 낮잠을 자는 게 낫다. (61~62쪽)
소설을 쓸 때도 그런 자세다. 나처럼 강퍅한 독자가 책장을 넘기다 말도 안 된다며 콧방귀를 뀔까 봐, 읽던 책을 내려놓을까봐 신경이 쓰인다. 첫 문장을 쓰기도 전에 이미 글의 성격이 ①~③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정하고, 마지막 문장까지 그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원래도 소설을 쓰려고 거짓말을 지어낼 때 그게 그럴싸한지를 오래 따지는 편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스트레스도 제법 받는데, 얼마나 유용한 습관인지 모르겠다. 대개의 독자들은 나보다 훨씬 더 관대한 것 같다. 재미가 있다면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나 설정,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 버릇이 더 심해져 요즘은 거의 강박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원고를 쓰다가 혼자 이건 아니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울산에 내려간 주인공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는 대목을 쓰면서 울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분식점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보는 스스로를 자각했던 것이다. 그 정도는 그냥 지어내라고! (79~80쪽)
특히 전업 소설가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자꾸 전날이나 전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또 자기 자신에 대해 곱씹게 된다. ‘그 편집자한테 내가 한 말이 무례하게 들리지 않았을까’와 ‘이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 이유가 뭘까’를 같이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그 두 생각이 비극적으로 만난다. 흔히들 고된 밥벌이를 가리켜 “춥고 배고픈 일”이라고 표현하는데, 외로움도 지나치면 추위나 허기만큼 해롭다. 그 또한 이 업을 택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132쪽)
“요즘엔 별걸 다 해야 돼요”라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해도 콘텐츠와 책은 다르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엄연히 다르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190~191쪽)
사실 내게는 집필 초기 단계에서부터 제목이 무척 중요하다. 글을 쓸 때 주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먼저 정리하고 소설을 쓴다.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이름(가제)에 반영되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기간에는 다른 일을 할 때도 원고를 잊지 않기 위해 그 가제를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머리를 감으면서 “산 자들 산 자들 산 자들……”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식이다. 그러니 원고 완성 전이라도 제목은 꼭 있어야 한다.(208쪽)
나는 방바닥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방바닥과 소통하지는 않는다. 나는 방바닥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먼지로 몸을 덮어 유적이 되고자 한다), 그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을 밀어내고 인공의 세계를 유지한다. 나의 질서를 강요한다. 먼지가 쌓인다. 쓸어버린다. 얼룩이 진다. 제거한다.
이는 소설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와 매우 닮았다. 소설이 없는 자연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허무한 세계다. 사건의 입자들이 브라운운동을 하듯이 떠다니다가 부딪쳐 불을 내기도 하고 떨어져 바닥에 쌓이기도 하는 혼돈. 나는 그것이 세계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맥락도 의미도 없다. 제정신인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다.
나는 정보들을 고르고 이어 붙여서 맥락을 일으킨다.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세운다. 이것은 세계의 본모습과 상관없는, 가공의 질서다. 나는 그 질서를 독자들에게 강요한다. 내게 있어 소설 쓰기는 어떤 사건을 이용할 것인가, 어떤 도구를 쓸 것인가, 그 도구로 사건 입자들을 어떻게 자르고 잇고 뒤틀고 뭉칠 것인가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엔지니어의 일이다. 재료와 도구가 허용하는 안에서 내 마음대로 의미를 발명한다. 그렇게 의미의 집을 지은 뒤 거기에 불안한 정신을 누이는 것이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다.(276~277쪽)
내가 원하는 작가의 이상적인 일상은 이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소설 원고를 쓰기 시작, 배고플 때 식사하고, 낮잠을 조금 잔 뒤 또 원고를 쓰고, 다시 배가 고파지면 두 번째 끼니를 먹고, 또 원고를 쓰고, 자는 것. 그 사이사이에 운동을 하고, 집 청소를 하는 것. 한마디로 교도소 독방에 갇힌 죄수 같은 생활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몹시 심심한 상태가 되어야만 글에 속도가 붙는다. 소설 쓰기는 대개 장기 프로젝트이고 마감이 명확하지 않다. 또 세상에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흥미로운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한눈을 팔기도 쉽고, 그날 써야 할 원고를 차일피일 미루게 되기도 쉽다. 그래서 낮 시간에는 휴대전화기를 무음 혹은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고, 꼭 찾아야 할 정보가 아니면 인터넷도 접속하지 않는다. 자료 검색을 한답시고 웹 서핑을 하다 하루를 홀랑 다 까먹은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원고에 푹 빠져 밥을 먹을 때에도, 걸어 다닐 때에도 이야기를 구상하고 인물들의 대사를 중얼중얼 읊게 되는 바람직한 상태를 몇 번 겪어보기는 했다. 평생을 그런 상태로 살고 싶다는 게 내 소망이다. 소설 쓰기의 러닝 하이, 즉 ‘라이팅 하이(writing high)’라고 불러볼까? (280쪽)
우리가 함께 만든 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변덕스러운 시장 반응을 놓고 나중에 누가 옳았는지 따지는 게 의미 있을까? 우리는 성공하면 함께 성공하고 실패하면 함께 실패한다. 다만 그렇게 성공하거나 실패하기 전에 활발히 두 머리를 짜내어 후회 없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기를 원한다. 한쪽에서는 이런 관계를 맺는 힘을 에디터십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다른 쪽에서는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296쪽)
“세상에 10년 노력이 아깝지 않은 일이 몇 가지나 있을까.
이건 헌신할 수 있는 직업 정도가 아니잖아.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이잖아.”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강명이 털어놓는 본업분투 에세이
흔히 소설가라는 직업은 영감을 얻어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예술의 영역에 속한 사람으로, 출퇴근을 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평범한 직장인들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건설회사 직원에서 신문기자로, 다시 전업 작가로 업(業)을 세 번 바꾼 장강명은 솔직히 말한다. 처음에는 글만 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생활이 막막했지만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작품을 쓰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돈하고 상관없이 되게 뿌듯하다고.
그 뿌듯함은 ‘임금의 대가로 종사자에게 시간을, 추가 노동을, 감정을, 가끔은 건강이나 그보다 더한 것까지 요구’받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으로 일하는 상태에서 온다. 스스럼없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하고, 일을 할수록 부속품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일이 자신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대답해주며,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직업이라고.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욱 헌신하고 싶어질 뿐이다.
“소설만큼은 진지하게, 내가 믿는 세계관에 입각해서 쓰고 싶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소설가의 루틴, 그리고 창작과 돈벌이를 둘러싼 고민들
소설가 장강명은 오후 11시 반쯤 자고 오전 6시 반 전에 일어난다. 글 쓰는 시간은 스톱워치로 재고 매일의 생산량을 엑셀에 기록한다. 앉아서 오래 일하는 직업이라 아프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집에서 간단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롤 모델은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 조지 오웰, 그와의 공통점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를 쌓고 있다. 전업 작가 생활의 외로움은 일과 이후 맛있는 맥주로 달랜다.
장강명은 책을 낸 뒤에는 자신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읽어서 즐거운 소설이 없다. 해피엔딩 애호가 장강명은 소설을 쓸 때마다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소설만큼은 쓰다 보면 진지해진다. 작업을 하는 내내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이유를, 의미를 찾다 보면 그렇다.
소설을 집필하다 보면 다른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왔지 하고 궁금해질 때가 있다. 실존 고유명사를 쓰고 싶은데 업계 관행에 따라 현실과 다른 고유명사를 꼭 지어야 하나? 무슨 가이드라인 같은 건 없을까? (『재수사』를 쓰면서는 실제 기관이나 지명을 쓰는 대신, 독자들이 실존 대상의 특징으로 착각할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소설에서 표절의 기준은 무엇일까? (출처를 밝힐 의무가 없음에도, 작품 속 ‘작가의 말’에서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시시콜콜 밝히고 있다) 발표한 작품의 주제를 묻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작가 자신도 책을 내고 낸 다음에도 정확히 뭘 썼는지 모르는 건 아닐까? (소설을 쓰는 동안 ‘이 작품의 주제가 뭐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하고 스스로에게 자주 물으며 답을 준비하는 편이다) 등등.
한편 소설가의 수입에 관한 궁금증도 하나씩 풀어본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21세기 문화 강국이 된 덕분에 소설 판권이 활발히 팔리는 중이고 미디어업계에서는 소설가에게 협업 및 고용 제안도 한다. 정확히 책으로 먹고사는 건 아니지만, 2차 판권 수입은 전업 작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분명 도움을 주고 있다. 더불어 대부분의 작가들은 강연으로 돈을 번다. 단 그 강연료를 먼저 제시하지 않거나 안 주는 식으로 공연히 작가들을 속앓이하게 만드는 단체들이 많다. 또 고료 체불이나 인세 지급 누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끝내 계약 해지까지 이른 경험을 토로하면서 장강명은 이렇게 말한다. 출판은 문화 운동이기 이전에 엄연한 비즈니스이므로, 기본을 제대로 지켜달라고. “입금, 교정, 예의 같은 것을.(241쪽)”
‘도대체 뭐가 잘못됐지? 무엇을 해야 하지?’ 라고 묻게 하는 힘,
기꺼이 문학의 도구로 살아간다는 자세로 쓴다
어릴 때 문학은 ‘자유’였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안전한 모험의 세계로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20대 초반 서툴게 소설을 쓸 때도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자유의 감각이었다. 자신이 쓰는 소설 속에서 누리는 자유. 그러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게 되고 나서부터 문학은 ‘의미’로 다가왔다. 작은 것이라도 의미를 붙들고 싶어서, 아무리 글을 써도 이르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쓰고 있다는 위안이라도 없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확신한다.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 거고,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정확히는 몰라도 무엇을 어떤 식으로 쓰고 싶은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좋은 작품을 쓰고 싶지만 그 좋은 작품은 상, 돈, 명성, 자유, 의미와는 다른 것이라고. 대체로 열정 없는 저에너지 인간인 장강명이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문학, 한국문학, 출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격렬해지고 말 거라고.
장강명은 어떤 작가로 남을 것인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다. 작품만 생각하며 그저 우직하게 쓰자. 문학을 도구 삼지 않고 문학의 도구로 자신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보여줄 차례다.
“계속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잘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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