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2023년 07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7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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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8526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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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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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마그리트의 예술에 관한 철학. 그에게 있어, 보는 것, 시각적으로 묘사되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유이다.
YAP(Young Artist Power) 분들과의 인터뷰 기획으로 인연이 된 정진 작가의 작업 노트에 있던 글들을 정리해 출간해 보자고 제안을 드린 기획이다. 영감을 온전히 믿지는 않는다는 그녀에게, 영감의 순간은 생각을 촉발하는 트리거(trigger)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뒤의 지속적인 시간들이다. 저자에겐 그 시간의 해석 방법이 글쓰기이다.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 부호들까지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글들이다. 함축적 의미와 작가 자신만의 미학으로부터, 편집의 일반성은 잠시 접어 두어도 좋을 만큼, 예술에 관한 글인 동시에 생각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1. 밤 12시
2. 마음 풍경
3. 영역 인간
4. 남겨진 감정들
5. 낮 12시
에필로그
물체를 자극하면, 물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 온다. 정서적 변화도 다르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에도, 트리거는 필요하니까. 누군가는 홀로 그것을 찾아내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관계 안에서 그것들을 발견한다. 실은, 그 안에 파묻혀 사는 듯하다. -p18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진화해 왔다고 한다. 서점에 가면 인간들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분석해놓은 책들을 종류별로 볼 수 있는데, 개중 흥미로운 것은 즉각적으로 범주를 만들어 적용하는 일. 즉, 머릿속으로 카테고리 만들기. 선입견이다. -p29
어른이 되는 어느 시점에서, 나는 모두가 사랑하는 그런 사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자신에게 실망이야 하겠지만, 마음이 자유롭다. 어차피 자유는 어느 정도의 포기를 동반하니까. 적당한 인간이라는 것.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p55
이성과 감정. 인간을 이루는 근본 요소는 모순된 둘이다. 인간은 이성적이다. 인간이라 그렇다. 인간은 감정적이다. 인간이라 그렇다. 모순된 저 둘이 만나야만, 인간이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모순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p63
갑 질. 을 질. 본인이 갑이나 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식. 스스로를 갑이나 을이라 규정할 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서글프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무시를 통해 표현할까. 타인을 무시하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최고로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 -p99
누가 울면 따라 운다. 그것이 창피하다. 고치자! 매몰차게 가열하게. 그리고 이제는 따라 울지 않는다. 그랬더니,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읽고 쓰고 미술하며 운다. 홀로 운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인간과 함께 산다는 것인데. 나는 다시 따라 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어떻게 하는 거였지… -p102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미술가, 그 촉발제. 작가에게 생각의 트리거는 영감이라 불린다. 그리 대단한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그것은 두 가지 길로 찾아온다. 하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생각이 어느 순간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순간적으로 대입되는 것. 다른 하나는, 순간 튀어나오는 생각의 파편. 그것들은 빛이 날 때까지 다듬어야만 무엇이 된다. 결국 영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뒤의 지속적인 시간들. 준비된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것을 가꾸는 사람만이,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 -p112
죽음은 간단하다. 생명을 끝내는 일.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다. 인간의 특성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는 것보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데 생각까지 하는 것이 기이한 것이라고. 우리는 이렇게 신기한 죽음과 더 신기한 살아있음, 그 사이를 산다. -p141
예술가가 감정만을 전달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물론, 그런 예술은 잘못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런 미술가가 아닐 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미술가나 그들의 작업을 보며, 무언가를 느껴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의 작품이 방아쇠가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의 어떤 생각을 죽이는, 당신의 어떤 생각을 깨우는. - p148
잃어버렸다는 것은 의지가 없는 상태의 없음이고, 버렸다는 것은 의지를 가진 상태의 없음이다. 둘의 공통점은 현재 내게는 없다는 것. 우리는 꿈, 삶, 물건, 사람, 감정 등의 일부를 시간과 함께 하얗게 잊곤 한다. 그것은 마치 마법 같아서 갑자기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없는 것, 잊혀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p204
어른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만,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렵다.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렵다. 괜찮은 어른 없다 욕하는 너도, 그저 그런 어른으로 자라거나, 이미 그런 어른일 확률이 높다. -p218
대부분의 젊음은 즐겁고 답답하다. 열정에 즐겁고 미래가 답답하다. 아마도 어른들에게 답을 구하고 싶겠지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시시하거나 세속적이다. 그러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p236
예술이 ‘가장’ 고결한 직업이라 믿지 않는다. 펜이 칼보다 ‘더’ 강하다 믿지 않는다. 지금 가진 그의 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나를 믿어! 하는 대부분의 ‘말’들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믿음은 속함과 비슷하다.소속감을 주고 안도감을 선사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도 준다. 믿을 권리가 있다면, 믿지 않을 권리도 있을 것이다. 믿지 않으면 분주하고 외롭지만,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p251
일상, 그 이상의 순간들!
“나는 사물들 안에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아름답다고 보기 위해 더 많이 배우고자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사물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니체의 〈즐거운 지식〉에 적혀 있는 구절이다.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니체의 테제는, 자신의 삶을 예술로 바라볼 수 있을 심미안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전제이기도 하다. 우리네 삶이란 게 그 자체로야 뭐 특별할 것이 있겠는가. 사랑이란 것도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이 원인인 것처럼, 삶 역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것 자체가 특별한 게 아니다. 의미를 담고서 바라보는, 그 시선 끝에 맺히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다.
하이데거는 예술의 의미를 그런 비일상성에서 찾는다. 신발장 한 구석에서 방치되어 있던 낡은 구두가 화폭에 담겨질 땐 예술이 되듯, 일상을 일상의 순간들로부터 떼어 내어 비일상적으로 담아 내는 그 모든 것들이 예술이다. 예술가들은 특별함을 찾아나서는 모험가가 아니다. 사유의 형식을 통해 일상 속에 묻혀 있는 특별함을 발견해 내는, 어쩌면 철학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예술적 순간들로부터,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처럼 피어오르는 그것들을 각자의 예술 형식으로 표현해 내는, 어쩌면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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