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2023년 07월 12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6월 1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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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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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바닷가 숲이 있었다. 그는 그 숲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소신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거대한 숲을 팔아치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서였다. 그는 어느 날 결단을 내렸다. 마음 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주는 사람에게 그 숲을 양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단, 부동산으로 팔아치워서 개인적인 수익을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6쪽)
필리피노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자신,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무엇이 있나 생각해봤다. 그것은 ‘추방’이었다. 우리 인간은 아름다움에서 추방 중이었다. 아름다움을 스스로 추방하기도 했다. 우리는 화가라면 누구도 붓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추한 그림의 일부, 지옥도의 일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이 생각을 하면 필리피노는 짐을 챙겨 떠나버리고 싶었다. (28쪽)
필리피노는 방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한 인간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빌로니아의 황금 정원을 사랑하던 여자. 젊은 왕의 광적인 야망에 동의할 수 없던 여자.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길을 갈 방법이 있다고 여전히 믿던 여자. 많은 생명의 죽음에 이미 울고 있던 여자. 어미와 새끼 동물의 죽음에 오래전부터 인간성의 많은 부분을 의문시하던 여자. 자기 방식으로 세상의 본보기가 되기로 마음먹은 여자. 이미 흘려진 피를 모아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로 마음먹은 여자. 가장 마음이 찢어지는 이야기들에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내기로 마음먹은 여자. (31쪽)
사람들은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모두들 MBTI 같은 성격유형 검사나 점술에 매달렸고 서둘러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했다. “응, 내가 그래서 그렇다는군.” “네가 그래서 그래.”
나는 어쩌면 무사의 영향을 받아서 이 이야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너를 말하려면 네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말하라!” (37쪽)
나는 우리 몸에 대한 믿음, 우리의 손, 입술, 눈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의 카메라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보는 눈과 쫄깃한 고기를 씹는 입술에 지나치게 길게 초점을 맞춰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는 먹는 이야기 말고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42~43쪽)
우포늪에 다녀온 뒤 고니 한 마리가 얼마나 하늘을 바꿔놓았던가 생각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고니의 수중 질주 소리가 반복적으로 떠오르자 마음속에 내가 머무를 새로운 장소가 생겼다. 이전에 나는 공허와 슬픔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과 슬픔 사이에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밤 그곳을 거처 삼아 쉴 것이다. 그러나 그해 고니는 다른 어느 해보다 많은 개체수가 순천만의 흑두루미와 함께 조류독감으로 폐사했다. 나는 논바닥에 누워 있는 흑두루미 사체 사진을 찾아보곤 했다. 고니, 흑두루미, 모두 눈처럼 별처럼 멀리서 온 단어였다. 알 수 없는 먼 곳을 연상시키는 그들의 여행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어떤 사랑은 이 세상의 많은 일들에 반대하게 만들어. 반대하는 힘이 한 사람의 진짜 힘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반대자가 될 거야. 사랑해.’ (49~50쪽)
“도대체 추도문을 몇 개나 쓴 거야?”
“정말 많이 썼어. 그사이 추도문 전문가가 되었어. 책임감을 위한 추도문, 양심을 위한 추도문, 관대함을 위한 추도문, 추방당하는 야생동물들을 위한 추도문, 공사장의 삽으로 잘려 나가는 도롱뇽을 위한 추도문, 살처분당한 동물들을 위한 추도문, 마지막 코뿔소를 위한 추도문, 몸이 똥으로 뒤덮인 채 죽은 펭귄을 위한 추도문, 멧돼지를 위한 추도문, 자라지도 못하고 팔려 나가는 나무들을 위한 추도문도 다 써뒀어.” (58~59쪽)
그 시절엔 누구나 디스토피아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다. 말하자면 디스토피아의 시대였다. 신종 감염병 약간, 바이러스 약간, 산불 약간, 해수면 상승 약간, 이상기후 약간, 동물 멸종 약간. 감염병과 기후위기는 인기 있는 글과 영화의 재료였다. 그러나 그것을 삶의 재료로 받아들인 사람은 희귀했다. 적어도 너무 적었다. (63쪽)
“나는 지금이 위기 상황인 줄도 모르는 사람과는 더 이상 잘 수 없어!” 나는 적어도 지금이 황금시대이자 태평성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억울했다. “세상에 이런 이유로 결별하는 사람은 없어!” (67쪽)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들이 사는 마을을 찾았다. 한번 찾은 사람이 다음번에 장미 묘목을 들고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이것은 신기한 일이고 신기한 일이 아니기도 했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 본 아름다움은 잊히지 않고 마음속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꽃이 피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꽃 핀 그늘 아래서 이야기와 사랑이 영원히 다시 시작된다. (97쪽)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바치는 ‘사랑과 슬픔 사이’의 이야기
“반대하는 힘이 한 사람의 진짜 힘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반대자가 될 거야.”
에세이스트 정혜윤의 첫 소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이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정혜윤은 저서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앞으로 올 사랑》 《그의 슬픔과 기쁨》 등을 통해, 세상의 슬픔과 기쁨이 아름답다고, 우리의 힘이라고 말해왔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은 라디오 연출과 집필 활동을 통해 세상의 슬픈 일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로 바꾸는 일에 열중해온 정혜윤의 관심과 진심이 응축된 소설이다. 에세이스트로서 그간 보여준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과 다층적인 스토리텔링이, 소설 장르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살면서 한 번도 마음 편해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마음 편하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싶었던 그는 자기 소유의 거대한 숲이 있는 섬을 부상으로 걸고 대대적인 글쓰기 워크숍을 연다. 전 국민의 10퍼센트나 되는 많은 사람이 참여한 이 워크숍의 당선작은 어떤 글일까. 소설은 ‘워크숍’이라는 액자 안에 여러 ‘이야기’를 겹쳐 놓는다. 조류독감으로 폐사된 고니 흑두루미와 ‘추방당하는’ 도롱뇽 코뿔소 펭귄 빙하, 라슬로 소설 〈추방당한 왕후〉와 스웨덴 난민 아동들의 체념증후군 같은, 작가가 “우리 시대 생명의 본질에 관해 중요한 부분을 건드린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악수와 키스가 사라져가는 시대를 사는 두 연인의 이야기와 교차시킨다.
이 이야기들에는 깊은 슬픔을 딛고 ‘이야기를 만들어’ ‘이야기를 바꾸기로’ 결심하는 이들이 나온다. “이미 흘려진 피를 모아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로 마음먹은 여자. 가장 마음 찢어지는 이야기들에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내기로 마음먹은 여자”(31쪽). “잠자는 숲속의 공주들을 깨우는 키스는 뭐야? (…) 무사는 마음을 뒤흔드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이야기를 바꿔야지”(95쪽). “이야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 부모들이었다. 부모들은 이 일이 발생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95쪽). 거절당한 난민들과 살처분당한 동물들, 모욕당한 재난 참사 가족 등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은 ‘아름다움’에서 ‘추방당하는’ 지금을 거스르며, ‘이야기를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정혜윤은 ‘작가의 말’에서 “무언가를 ‘살리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이 소설을 쓰면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전에 나는 공허와 슬픔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과 슬픔 사이에 있게 되었다”(50쪽). “공허와 슬픔 사이”가 아닌 “사랑과 슬픔 사이”에 서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다.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50권의 책으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위픽’을 통해 공개된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한다. 3월 8일 첫 5종을 시작으로, 이후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하며 1년 동안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또한 책 속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소설 한 편 전체를 한 장의 포스터에 담은 부록 ‘한 장의 소설’이다. 한 장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 시리즈 소개∥
위픽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입니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작은 조각이 당신의 세계를 넓혀줄 새로운 한 조각이 되기를,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당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한 조각의 문학이 되기를 꿈꿉니다.
한 조각의 문학, 위픽
구병모 《파쇄》
이희주 《마유미》
윤자영 《할매 떡볶이 레시피》
박소연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김기창 《크리스마스이브의 방문객》
이종산 《블루마블》
곽재식 《우주 대전의 끝》
김동식 《백 명 버튼》
배예람 《물 밑에 계시리라》
이소호 《나의 미치광이 이웃》
오한기 《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
조예은 《만조를 기다리며》
도진기 《애니》
박솔뫼 《극동의 여자 친구들》
정혜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황모과 《10초는 영원히》
김희선 《삼척, 불멸》
최정화 《봇로스 리포트》(근간)
정해연 《모델》(근간)
정이담 《환생꽃》(근간)
문지혁 《크리스마스 캐러셀》(근간)
김목인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근간)
전건우 《앙심》(근간)
최양선 《그림자 나비》(근간)
이하진 《확률의 무덤》(근간)
이유리 《잠이 오나요》(근간)
심너울 《이런, 우리 엄마가 우주선을 유괴했어요》(근간)
최현숙 《창신동 여자》(근간)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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