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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지음 | 최정수 옮김
이봄

2023년 07월 03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6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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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1.48MB)
ISBN 979119058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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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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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캐나다 최초로 조력 사망이 실행되던 해, 그 최전선에 있던 스테파니 그린 박사가 쓴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는 의료조력 사망MAiD의 근접 관찰 보고서로서, 특별한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환자들이 이러한 죽음의 방식을 원하는 이유에서 신청 기준, 시행 절차, 임종의 모습 등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나아가 생경한 작별의 순간을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 그 속에서 차오른 복잡다단한 감정이 저자의 개인사와 함께 촘촘히 직조된 이 책은 논쟁적인 주제를 충실히 다룬 논픽션이자 잘 쓰인 에세이로도 손색이 없다. 그린 박사는 독자들을 자신이 자리한 방으로 데려가 환자, 의료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죽음을 보는 시각뿐 아니라 실행에 관한 현실적 문제, 의료윤리 등의 맥락을 두루 살피게 한다. 그가 기록한 성공과 시행착오, 의의와 우려는 안락사 제도화 이전 우리가 살필 풍성한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ㆍ들어가며

1부 시작
1. 첫 번째 환자, 하비
2. 최초의 죽음
3. “나는 갈 준비가 됐어요”
4. 조력 사망이 합법화되던 날
5. 암스테르담 ‘안락사 2016’ 컨퍼런스

2부 여름
6. 우리 중 누구도 줄 수 없는 것
7. 로열 주빌리 병원 436호
8. 줄리아와 더그의 작별인사
9.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10. 헬렌의 마지막 분노

3부 가을에서 겨울로
11. ‘누가 적합한가’라는 난제
12. 워싱턴주의 환자에게 걸려온 전화
13. “네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다……”
14. 호스피스 의료진과의 협업
15. 안전장치의 역설

4부 봄
16. 에드나 가족의 반대
17. 작별 뒤 남겨진 사람들
18. 정신질환자와의 상담
19. 어머니의 회복탄력성
20. 친구의 죽음을 돕던 날

5부 다시 여름
21. 나 자신을 위한 시간
22. “엄마를…… 정말로 용서해요”
23. 언론에 공개된 존의 죽음
24. 침대에서의 포옹

ㆍ나가며 ㆍ마지막말 ㆍ덧붙임
ㆍ감사의 말 ㆍ자료들 ㆍ미주

그의 죽음이 예정된 날 가서 보니 그는 병원의 작은 1인실에 있었다. 그가 거기서 죽기로 한 건 뜻밖의 선택이었다. 일단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준비가 된 듯했다. 기다리느라 지쳤고 얼른 실행하고 싶은 듯했다. 몇 분 뒤 그가 화장실에 갔다가 광대 복장으로 돌아왔다. 홀치기염색을 한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알록달록한 광대 가발을 쓰고, 빨간 코도 붙였다. 빨간 코는 붙일지 말지 망설였다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냥 붙이기로 했다고. 이전에 나눈 모든 대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드가 아마추어 광대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 왜 오늘 입을 옷으로 광대 복장을 골랐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거라 생각했다. _「들어가며」(9쪽)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끝내고 싶어하는 이유는 자율성을 잃은 것, 삶에 의미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 그리고 자존감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진술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환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증상만큼 괴롭거나 심지어 더 괴로운 것 같았다. _「암스테르담 ‘안락사 2016’ 컨퍼런스」(97쪽)

때로는 비통해하는 딸이나 아내로, 때로는 죽어가는 엄마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그것은 현실이 될 것이고, 나는 적어도 그 역할들 중 하나를 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몹시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머릿속에서 마음껏 펼치면서 통찰력을 얻게 되는 것은 분명했다. 헬렌과 함께하면서 나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_「헬렌의 마지막 분노」(185쪽)
내가 볼 때 에드윈의 진단명은 명확하지 않았고, MAiD를 요청하는 의사능력도 확실히 의문이었다. 정신질환은 그 본성상 환자가 세상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임상의는 합리적인 조력 사망 요청과 정신질환의 부차적 자살 충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어떤 환자의 MAiD요청이 사실과 개인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것인지 아니면 이성적이지 못한 동기에 떠밀린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조력 사망이 가능할 수 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건강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할 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음을 나는 의식했다. 하지만 이런 구별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_「정신질환자와의 상담」(325쪽)

리즈가 조력 사망을 고려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궁금증이었다. 물론 나는 조력 사망이 모든 사람을 위한 선택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 불가피함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끝까지 싸우는 쪽을 택한다. 이 선택이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삶과 죽음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한다. 만약 지금 내가 말기 병을 앓고 있다면, 나는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삶을 끝내는 편을 더 원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더이상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면, 작별인사를 이미 했다면, 지속된 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고통받기만 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오직 쇠퇴만 남아 있다면, 내가 언제 죽을지 결정할 의사능력이 남아 있음에 감사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도 남는다._「친구의 죽음을 돕던 날」(346~347쪽)

“제 소원은 죽음입니다”
캐나다 최초로 조력 사망이 실행되던 해,
한 의사가 써내려간 특별한 기록

2022년 9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 주자,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죽음(향년 91세)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가 여생을 보내던 스위스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은 약물을 직접 복용해 사망하는, 이른바 ‘조력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투병을 이어온 배우 알랭 들롱 또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길 원한다며,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가 전한다. 우리는 어떤가. 스위스 디그니타스(비영리 조력 사망 지원단체)에 따르면 2022년까지 조력 자살을 선택한 한국인은 3명이며 100여 명 남짓한 신청자들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한 국회에서도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어(2022년 6월, 안규백 의원) 조력 자살을 둘러싼 국내의 논의에 불을 지폈다.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 제목처럼 죽음은 마침내 ‘네 멋대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된 것일까? 유명인의 죽음이나 법안 발의를 계기로 하지 않더라도 삶의 끝을 통제하고 싶다는 바람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일 것이다. 우리는 죽어가는 순간 어디에 머물지, 누구와 함께 있을지, 어떤 대화를 나눌지 결정할 수 있다면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고통을 덜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법안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률(82퍼센트)에도 불구하고 조력 사망 제도화를 둘러싼 우려도 여전하다. 자칫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며 의료취약 계층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모두에게 평등하고 ‘존엄한 죽음’은 불가능한 것일까?
2016년 캐나다 최초로 조력 사망이 실행되던 해, 그 최전선에 있던 스테파니 그린 박사가 쓴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는 의료조력 사망MAiD의 근접 관찰 보고서로서, 특별한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환자들이 이러한 죽음의 방식을 원하는 이유에서 신청 기준, 시행 절차, 임종의 모습 등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나아가 생경한 작별의 순간을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 그 속에서 차오른 복잡다단한 감정이 저자의 개인사와 함께 촘촘히 직조된 이 책은 논쟁적인 주제를 충실히 다룬 논픽션이자 잘 쓰인 에세이로도 손색이 없다. 그린 박사는 독자들을 자신이 자리한 방으로 데려가 환자, 의료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죽음을 보는 시각뿐 아니라 실행에 관한 현실적 문제, 의료윤리 등의 맥락을 두루 살피게 한다. 그가 기록한 성공과 시행착오, 의의와 우려는 안락사 제도화 이전 우리가 살필 풍성한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내 환자들 대부분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그들이 나눈 기이한 마지막 대화, 남편과 아내가 속삭인 사랑의 말들, 엄마와 자식의 눈물 어린 작별, 조부모가 손주에게 한 마지막 조언의 목격자였다.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들과 가족이 모여서 건배하는 가운데 자기 삶의 궤적을 회상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사람은 자신이 죽을 날짜와 시간을 알면 마지막 말과 행동을 심사숙고해서 계획할 수 있다. _「들어가며」(16쪽)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실행되는가?
의료조력 사망 제도 최전선의 생생한 이야기

MAiD가 합법화되기까지 캐나다 또한 조력 사망을 둘러싼 소송과 판결, 논쟁의 긴 여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린 박사는 자신의 의대생 시절부터 전문의로서 경력을 쌓아온 현재까지 조력 사망 합법화의 주요 국면을 마련한 사건들을 전하며 이를 보는 자신의 관점과 여론의 변화를 중계한다. 1992년 루게릭병을 앓던 수 로드리게스는 조력 사망을 금지하는 법에 이의를 제기하며 발언을 담은 영상-“내가 나의 죽음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이 몸은 누구의 몸이란 말입니까? 누가 내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거죠?”-을 캐나다 의회에 보냈지만 그의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다. 2000년대로 넘어온 시점에는 케이 카터 사건으로 캐나다 전역이 떠들썩했는데, 척추관 협착증을 앓던 그는 이 병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유발한다며, 삶에 통제권을 갖겠다고 선언하고 2010년 스위스로 건너가 조력 사망을 맞이한다. 이후에도 글로리아 테일러 소송 등 여러 사건을 목도하며 대중의 감정은 변화했고 마침내 대법원은 2016년 카터 판결로써 조력 사망 금지 조항을 폐지한다. 그렇다면 MAiD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인가?

캐나다 법은 MAiD 적합성을 엄격하게 규정한다. MAiD를 받기 위한 요건 중 ‘위중하고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앓아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위중하다grievous’라는 말은 극히 심각하고 기능에 의미심장한 쇠퇴가 있는 상태를 뜻하고, ‘치료 불가능한irremediable’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치료가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환자가 고통을 견딜 수 없어하고 자연사가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할 것을 포함한다. 이런 기준이 법률에 명시되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시행되어왔다._「첫번째 환자, 하비」(29쪽)

조력 사망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캐나다를 비롯해 이를 제도화한 여러 국가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캐나다의 경우 환자가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의사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고, ‘위중하고 치료 불가능한’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실제로 그린 박사가 만난 환자의 65퍼센트 이상이 전이성 말기 암 환자였다). 환자가 MAiD를 신청하면 조력 사망 전문의는 적합성 여부를 심사하며, 그가 조건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10일간의 숙려 기간과 절차 직전 최종 동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시행 초기의 혼돈은 불가피한 것이어서 조력 사망 전문의들 가운데에서도 ‘무엇이 위중하고 치료 불가능한 고통인가?’에 대해 이견은 존재해왔다. 또한 환자가 명백히 기준을 충족한다 해도 실행 과정에서 난관도 뒤따른다. 가령 MAiD에 거부감을 가진 약사들이 약물 조제를 거부하거나 2차 의료기관의 의료인이 소견서 작성에 비협조적인 경우 등이다. 이러한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그린 박사가 점차 MAiD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의사들과의 협력뿐 아니라 환자들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충만한 경험 덕분이었다.
남은 생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도록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다
“선생님은 어머니께 우리 중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주셨어요”

사람들이 조력 사망을 원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질병으로 인한 극한의 통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일까? 더이상 회복될 가망이 없을 때일까? 혹은 알츠하이머 등으로 인지능력이 저하될 때일까?
그린 박사의 경험에 따르면 사람들이 삶을 끝내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육체적 고통보다는 자율성과 자존감을 잃은 것과 관련된다. 누군가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 삶에 의미나 기쁨을 주는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에서 깊은 회의를 느낀다는 것이다. 말기 환자들은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울 뿐이라면 평온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의식이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폐암 환자로 화학요법을 3차까지 시도했지만 온몸이 혹으로 뒤덮인 채 ‘총체적 통증 위기’에 시달리던 레이는 죽음을 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통증 완화 관리를 받고 있으면서도,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 없는 상태로 시간을 끌다 죽는 상황을 그는 극도로 두려워했다. 다행히 레이는 조력 사망 기준에 부합했고 호스피스 병동 루프탑으로 침상을 옮겨 가까운 친구 3명 곁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간부전, 다발성 경화증, 흑색종 등 그린 박사가 만난 환자들이 앓는 질병은 다양했지만 이들이 조력 사망 적합자임을 알게 된 순간 보인 반응은 공통적이었다. 삶의 끝에 통제력을 갖게 되자 그들의 고통은 줄어들었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남은 삶을 사는 데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정된 죽음 앞에 떠나온 삶을 충만하게 수용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말한다. “MAiD는 죽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에서 조력 사망 전문의로
스테파니 그린 박사가 함께한 환자들의 마지막
준비된 애도는 상실의 고통을 덜어준다

흥미롭게도 저자 스테파니 그린은 이 일을 하기 전 응급 대기를 하며 아이를 받아온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삶을 향한 여정을 돕던 그가 정반대로 죽음을 향한 여정을 돕게 된 것은 운명이었을까. 생명의 탄생을 지켜본 그린 박사였기에 생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경험은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죽음의 과정을 돕는 독특한 위치의 외부인으로서, 내밀한 임종 현장을 목격하며 그가 기록한 환자들의 마지막은 저마다 개인의 삶을 요약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 곁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환자들, 황망해하면서도 죽음을 마주한 이에게 사랑을 표하고 그를 필사적으로 기억하려는 몸짓들…… 케이티의 가족은 그녀를 기억할 물건이나 일화를 돌아가며 소리 내어 말하는 의식을 치렀고, 리처드의 아내 메그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키스하며 남편의 몸을 품은 채 그를 떠나보냈다.

“딸기잼.”
내 뒤 오른쪽에 있는 케이티의 막내딸이 한 말 같았다.
“모두를 위한 울 니트 양말.”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
“토마토 통조림 만들기.”
사람들은 몇 초마다 한 번씩 다른 기억을 떠올렸고, 절차가 진행되는 내내 몇 초마다 한 번씩, 그를 말해주는 것에 대한 헌사가 나왔다.
뜻밖에도 너무나 멋졌다. 그 자발적 분출, 이상하게 힘이 넘치는 그 소박함. 창밖에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방안으로 드리운 빛이 어룽거리며 케이티의 퀼트 이불을 가로질렀다. 나는 그 아름다운 순간이 펼쳐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_「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175~176쪽)

물론 마지막 순간이 모두 화해와 추억이 오가는 아름다운 자리만은 아니다. 헬렌은 자신이 키워온 손자의 막돼먹은 행실에 분노하며 임종의 순간에도 입바른 말을 하고 “건실하게 살라!”고 훈계한다. 앤이 약물 주입 후 약간의 의식이 남았을 때 그의 딸 질은 또렷하게 말한다. “용서할게요, 엄마, 그 모든 것을.”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갈등을 드러내는 것조차 준비된 죽음이기에 허락될 수 있으며, 고유한 마지막 순간들은 그린 박사에게 잊지 못할 소회를 남긴다는 점이다.

이 일을 할 때 제 기분이 어떠냐고요? 제가 만나는 분들이 비범하다고 느낍니다. 사랑과 지지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라요. 그리고 제 자신의 죽음은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는지 궁금해지죠.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좀더 힘주어 끌어안는답니다.”_「워싱턴주의 환자에게 걸려온 전화」(232쪽)

삶을 완성할 인간다운 죽음을 향하여
더 나은 죽음을 제도화하기 위하여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결정된 이후 2023년 현재까지 160만여 명이 연명의료 중단 의향서를 등록했지만, 우리 사회 내, 더 나은 죽음을 향한 논의는 아직 더디다. 말기 질환으로 삶이 산산이 조각나버린 환자에게 삶의 마지막 통제권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조력 사망이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존엄한 마지막을 위한 윤리적, 제도적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한 아주 특별한 선택들이 담긴 이 책은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게 할 디딤돌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선택안을 제공한다. 환자들에게 그들이 조력 사망에 적합하다는 걸 알려줌으로써 자율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조력 사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력 사망을 제공받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게 필요하다면 진행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통의 축소다._「침대에서의 포옹」(409쪽)

작가정보

Stefanie Green
가정의학과에서 10년, 산부인과와 신생아 치료 분야에서 12년간 일한 뒤에 조력 사망 전문의로 분야를 바꾸어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캐나다 의료조력 사망 평가자 및 제공자 협회CAMAP의 공동 창립자이자 대표로 이 단체의 전국 온라인 포럼을 진행했으며, 의료조력 사망MAiD에 관한 전국 컨퍼런스를 주최하기도 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보건부 MAiD 감독위원회 의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와 빅토리아대학교의 임상 교수로 재직중이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오 자히르』 『마크툽』, 기 드 모파상의 『오를라』 『기 드 모파상-비곗덩어리 외 62편』,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 『어떤 미소』 『신기한 구름』 『잃어버린 옆모습』,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아모스 오즈의 『시골 생활 풍경』, 이 외에 『찰스 다윈-진화를 말하다』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우리 기억 속의 색』 『딜레마-어느 유쾌한 도덕철학 실험 보고서』 『조지 오웰』 『미술관에 가기 전에』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노 시그널』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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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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