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에 반대한다
2023년 07월 05일 출간
국내도서 : 2017년 01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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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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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녀 평등의 이름 아래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이중 구속의 현실을 들추어내는 한편 ‘비정상’ 혹은 ‘소수자’라 불리는 젠더 규범 외부의 존재들을 억압하는 권력을 드러내며, 한국 개신교의 유별난 동성애 반대의 감추어진 이유를 밝히고,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을 통해 규제 중심의 청소년 섹슈얼리티를 분석하며, 메갈리아 미러링 논쟁을 통해 새로운 페미니즘 주체의 출현 가능성을 엿본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_ 정희진
남성과 여성의 지위는 대칭적이지 않다
양성 개념의 문제 - 인간은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중 노동으로서 양성평등 - 성별 분업의 근본적 문제
음란과 폭력을 다시 생각한다 _ 루인
전 지방검찰청장 사건의 등장
범죄자로 등장한 퀴어와 퀴어 범죄학
성과 범죄 사이
공공성을 다시 묻는다
‘괴물’을 보호하라
미성년자 의제강간, 무엇을 보호하는가 _ 권김현영
미성년자와 성관계한 성인을 처벌해야 할까?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이 만들어진 이유
미성년자에게 진짜 유해한 것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을 둘러싼 오해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섹스할 권리가 아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 메갈리아 미러링 _ 류진희
메갈리아를 둘러싼 지형
2000년대 여성들 : 촛불소녀, 배운녀자, 메갈리안
여혐 vs 남혐? 대항 발화로서 미러링
포스트(post) 여성 주체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 _ 한채윤
왜 교회는 동성애를 ‘싫어하는가’라는 의문
개신교, 차별 금지법을 ‘금지’하다
‘거룩한 혐오’가 탄생하다
통일 대박과 ‘공동의 증오’의 필요성
동성애라는 훌륭한 적과 식어버린 인두
<b>여성주의는 양성평등을 지향하는가?
이분법적 젠더 규범 밖에서 다시 만나는 페미니즘</b>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은 가부장제 비판과 남녀 차별 극복의 바탕이 되는 개념으로서 여성주의의 주요 전략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화인 ‘여성 혐오(misogyny)’에 대응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남성 혐오’로 명명되면서, 성을 ‘남성/여성’의 대칭적 이분법으로 파악하는 양성평등 담론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문화(性文化) 연구 모임 ‘도란스’가 내놓는 기획 총서의 첫 번째 책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양성평등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한국 사회의 성차별 인식을 결코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남녀 평등의 이름 아래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이중 구속의 현실을 들추어내고, ‘비정상’ 혹은 ‘소수자’라 불리는 젠더 규범 외부의 존재들을 억압하는 권력을 드러내며, 한국 개신교의 유별난 동성애 반대의 감추어진 이유를 밝히고,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을 통해 규제 중심의 청소년 섹슈얼리티를 분석하며, 메갈리아 미러링 논쟁을 통해 새로운 페미니즘 주체의 출현 가능성을 엿본다.
“페미니즘은 여성 특권주의, 여성 우월주의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성평등”이라는 남성들의 모순된 주장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양성평등’ 담론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현실을 어떻게 은폐하는가? 여성과 남성은 ‘메갈리아’와 ‘일베’로 대표되는 상호 혐오를 통해 마침내 ‘평등’해진 것일까? 성 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양성 담론은 어떻게 남성 중심 사회의 이익에 기여하는가? 이 책은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젠더 이슈들을 제시하고, 이분법적 젠더 규범의 틀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제안한다.
본래 언어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데올로기’지만,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말처럼 반대 진영에 의해 완벽히 전유된 경우는 드물다. 그 효과도 엄청났다. 지난 30여 년간의 여성 운동의 경험과 역사는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고, 많은 여성 운동 단체들이 전망을 모색하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다시 증명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여성 운동은 “여자 일베, 미러링이라는 또 다른 혐오……”로 폄하되었다. 양성평등이라는 ‘무기’는 여성이 쥐었을 때는 칼날이었지만, 남성이 쥐었을 때는 무소불위의 칼자루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양성평등 담론이 대칭적인 논리로 오용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논리 자체의 모순에 주목한다. 또한 오랫동안 ‘미루어져 왔던’ 혹은 당연하게 유통되어 왔던 한국 여성주의의 주요 인식론인 양성평등의 실체를 분석하고자 한다.
…… 양성평등 담론에 대한 비판은 남성/여성의 범주와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밝힘으로써 개인이 좀 더 젠더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성차별에 대한 저항)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성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와 투쟁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젠더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성애 제도가 가부장제의 전제임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성적 소수자 억압은 물론 젠더 문제도 풀 수 없다. - 〈들어가는 글〉(정희진) 중에서
<b>양성평등 패러다임의 틀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첨예한 젠더 이슈들을 읽는다!</b>
양성평등은 여성에게 유리한 담론인가? 양성평등 개념은 여성에게 저항 가능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가? 아니, 오히려 여성의 노력과 저항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의 저자 정희진, 루인, 권김현영, 류진희, 한채윤은 이 책에서 다루는 당대 한국 사회의 이슈가 기존의 양성평등 패러다임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현실이라 보고, 젠더와 관련한 기존의 논쟁 구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저자들은 여성주의는 남성과 대립하고, 남성을 대체하고, 남성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제안하는 사유임을 보여준다. 여성주의는 다양한 인식자의 위치를 드러내고, 그 입장과 조건을 경합하는 사유이다. 이 책이 그러한 여정에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정희진)는 양성평등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해제에 해당하는 글이다. 동성애자 ㆍ 양성애자 ㆍ 트렌스젠더 ㆍ 인터섹스(간성間性) 등 성적 소수자의 존재를 구체화하면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양성 개념이 허구임을 입증하고,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평등 담론의 문제점을 논한다.
〈음란과 폭력을 다시 생각한다〉(루인)는 속칭 ‘바바리맨’ 사건으로 분류된 한 고위직 남성 공무원의 ‘성추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음란이 범죄가 되는 과정을 깊이 분석한다. 또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양성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퀴어(queer)란 어떤 존재인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시화되는지를 다룬다.
〈미성년자 의제강간, 무엇을 보호하는가〉(권김현영)는 오직 연령만을 기준으로 삼아 ‘양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의 모순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파고들면서 기존의 양성 개념에서 연령이 어떻게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를 탐색한다.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 메갈리아 미러링〉(류진희)은 양성평등 패러다임 이후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다룬다. 기존 페미니스트들에게 혼란과 성찰의 계기를 가져다준 온라인 페미니즘의 대명사 ‘메갈리아’를 2000년대 이후 여성 정치 주체의 계보 속에서 살펴본다.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한채윤)는 동성애자를 사회의 뿌리인 이성애 가족을 위기에 빠트리고 성 윤리의 타락을 불러오는 집단으로 낙인찍는 한국 개신교의 논리에 맞서, ‘동성애와 개신교’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전복하고 재해석한다. 이러한 시각은 곧 이성애 커플과 가족을 당연시하는 양성 중심의 젠더 개념을 재구성하고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b>양성평등에 반대한다
- 남녀 구분을 전제로 하는 ‘양성’ 개념의 허구성</b>
“여성부는 있는데 왜 ‘남성부’는 없는가?”, “여성 전용 주차장은 남성을 차별하는 제도 아닌가?”, “매 맞는 남편도 있다”, “평등을 원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여성들이 이미 ‘여성 상위 시대’에 살고 있으며, 여성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양성평등을 넘어 마침내 여성 상위 시대가 열린 것일까?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이처럼 대칭적 이분법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인가?
정희진은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통념을 반박하고, 그동안 한국 여성주의와 여성 운동의 바탕이 되어 온 양성평등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평등의 기준이 남자일 때 여성에게 그것은 평등이 아니라 이중 노동이 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한다.
<b>남성과 여성, 그들은 누구인가?</b>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가? 여성은 출산을 경험해야 ‘여성으로서의 생물학적 의무’를 다한 것인가?
정희진에 따르면,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는 것 같지만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남성의 비율은 1986년 51%, 2014년 89%, 2020년 이후에는 90%(추정)로 시대에 따라 다르다. 또한 비혼으로 인한 저출산, 딩크족의 출현, 원래 전체 여성의 20% 정도는 불임이라는 의학적 사실을 고려해볼 때, 여성의 출산 역시 생물학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성 역할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상적인 남성과 여성’의 범주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별화된 사회라 해도 우리가 실제로 남성과 여성으로 인식하는 ‘진짜’ 남성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 모든 인간은 인간이기 전에, 남성과 여성이어야 하는 젠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진정한 남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기존 자원까지 갖추어야 하는 압력이 추가되었다. 요즘 여성은 젊고 예쁜 데다 ‘능력 있는 개념녀’여야 한다. ‘아줌마’는 여성이 아니고(‘아저씨’는 비칭이 아니기 때문에 남성으로 간주된다), ‘노숙자 남성’은 남성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나 여성이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가 싫어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 ‘매력적이지 않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남성과 여성이 아니다. (36, 37쪽)
<b>남녀로 구성된 ‘양성’ 개념이 허구인 까닭</b>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거쳐 이성애만이 성적 지향에서의 절대적 정통성을 인정받았으며, 동성애 ㆍ 양성애는 인륜과 도덕을 위협하는 이단적 패륜 행위로 지탄받아 왔다. 정희진에 따르면, 이분법적 양성 체제에서 누가 남성이고 여성인가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성적 지향’이다. 남성이 남성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면 남성이 아닌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면 여성이 아닌가? 정희진은 성별은 남/녀로 구성되는 한 쌍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이며 동성애자 ㆍ 양성애자 ㆍ 이성애자의 존재는 이분법적 양성 체제가 허구라는 가장 강력한 반증이라고 설명한다.
가부장제, 젠더 체제는 모두 이성애를 전제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남녀 간의 섹스와 생식, 성적 긴장을 가장 중요한 성차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여성(남성)을 규정하는 수많은 개념의 핵심은 성적 활동(sexuality)이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만큼 성별이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를 보자. ‘생물학=자연’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욕망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은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를 욕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만들어진 여성 중 하나이다. (38쪽)
<b>‘평등’이 은폐하는 여성의 이중 노동</b>
정희진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평등’으로 오해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 변함없는 상태에서 그간 한국 여성 운동이 지향해 온 평등(여성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은 여성에게 “허울뿐인 평등만을 약속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여성 해방이 아니라 여성의 ‘이중 노동’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정희진은 양성평등 담론이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위계를 비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여성이 ‘사회’에 나와 있다(즉, 집은 사회가 아니라고 인식된다). 특히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불안 속에서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여성이 집 밖으로 나와 사회로 진출한, 그 내용은 무엇인가? 이중 노동, 워킹 푸어, 비정규직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 남녀 임금 격차의 지속……. 사회 진출 자체가 평등 혹은 여성 상위로 인식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있을 곳은 집”이라는 강력한 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노동 시장 진출이든 사회 운동이든 지식 생산이든 지하 경제(‘black’ economy)든 간에 일하지 않는 기혼, 비혼, 미혼 여성은 거의 없다. 여성들의 공적 영역 진출에 비해, 남성들의 사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즉 가사 노동, 육아, 돌봄 노동은 ‘없다’. 여성 인구는 거의 모두 공사 두 영역에서 노동하지만, 남성 인구는 극히 일부만이 사적 영역의 노동에 종사한다(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쪽)
<b>음란과 폭력을 다시 생각한다
- ‘퀴어 범죄학’으로 재구성한 ○○○ 전 지검장 사건</b>
2014년 11월 ○○○ 전 제주지방검찰 지검장(이하 ○○○ 전 지검장)이 공연음란죄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3개월 전인 2014년 8월, ○○○ 전 지검장은 음식점 옆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자위행위를 했고, 이 장면을 마침 지나가던 여고생이 목격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루인은 ○○○ 전 지검장이 공공장소에서 벌인 음란 행위를 두고 범죄인지 아닌지, 어떤 처벌이 적절한지를 논하는 대신, 공공장소에서 성행위를 한 것이 범죄로 구성되는 맥락과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를 두고 합법/불법의 위계를 만드는 ‘권력’이 퀴어의 존재를 어떻게 은폐하는지를 질문한다. “인간은 남녀 양성으로 뚜렷이 구분되며 그것이 자연의 법칙으로 철저히 규범화된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b>‘공공성’의 모순</b>
현행 형법에 따르면, 공연음란죄의 근거가 되는 공공성은 제3자의 현존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 전 지검장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성행위를 했지만 목격자(여고생)가 없었다면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었다. 루인은 제3자의 현존이나 인지만으로 공사 영역을 구분하고 공공성을 구성하는 공/사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은 거의 모든 공적 공간이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곳은 거의 항상 누군가가 엿볼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린 구조를 취한다. 모텔이 그렇고 DVD방이 그렇다. 이른바 공적 공간이 성행위가 발생하는 공간이며 모텔 주인이나 DVD방 매니저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조되고 권장된다.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리는 방식, 즉 제3자가 언제나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제3자의 현존/목격/인지 가능성을 차단한 것처럼 인식하도록 공적 공간을 사적 공간처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에서 데이트 성폭력을 비롯한 많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지만 다른 많은 이유와 함께 증인/제3자가 현존할 가능성이 희박하여 성폭력 사건은 입증되기 어렵거나 사건으로 구성되지 않고 은폐된다. 혹은 피해자가 ‘성관계를 즐기고선’ 뒤늦게 돈을 뜯어내려고 고소한다며 피해자를 ‘꽃뱀’으로 비난할 공간적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공적 공간의 구조 자체가 성폭력 사건을 조장하고 은폐한다. (84, 85쪽)
<b>공공장소에서의 음란 행위가 범죄로 구성되는 방식</b>
대법원은 ○○○ 전 지검장 사건에 관해 “공공장소에서의 음란 행위 혹은 성행위 자체가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에 비추어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루인은 ‘건전한 사회 통념’,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 ‘보통인’이라는 논쟁적 표현을 문제 삼는다. 이 표현들은 “이성애 입장으로 구성된 것이지 LGBT/퀴어를 포함하거나 사유”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LGBT/퀴어나 이분법적 양성 체제에서 벗어난 비규범적 젠더가 공공에서 이성애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애정행각을 한다면 공연음란으로 고소될 수 있다.
JTBC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선암여고 탐정단〉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다. 그중 한 회에서 두 여고생이 키스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장면을 문제 삼아 경고 조치를 했는데 경고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흥미로운 발언이 나왔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박효종 위원장은) 가족 모두가 볼 수도 있는 방송에서, 이성애자 부부의 애정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성관계 장면을 방영할 필요가 없듯 동성애자의 키스 장면도 내보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 ‘동성애’가 ‘보통인’의 ‘건전한 사회 통념’에 비추어 성애적 형태가 없는 ‘건전한’ 모습으로 공공에 출연한다면 괜찮다. 하지만 동성으로 인식되는 사람 사이의 키스는 ‘이성애자의 성관계’와 같은데 그런 키스/성관계 장면이 공공에 등장한다면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을 위반하기에 경고/범죄라는 의미다. (80, 81쪽)
<b>이성애라는 ‘권력’</b>
루인은 언론에 보도되는 많은 성범죄 사건이 이성애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호명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동 성폭력이 문제가 되어도, ‘바바리맨’ 사건을 심각한 성폭력 범죄로 인식한다고 해도 가해자는 정신이상이나 성도착증 환자로 추방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성애는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토대임에도 범죄와 가장 무관한 것으로 규정된다.
‘바바리맨’ 사건은 여성이 놀라거나 충격받는 상황을 통해 남성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행동이란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인 동시에 남성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일상 행동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성범죄 행위는 이성애-이원 젠더 관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바리맨’ 사건은 그들의 실제 성적 선호나 지향이 무엇이건 성기 중심으로 판단하는 남성의 이성애적 능력,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사유하는 태도, 즉 모든 개인을 남성과 여성으로 환원하고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며, 여성은 남성을 통해서만 의미를 획득한다는 이성애-이원 젠더 토대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바바리맨’ 사건을 언급할 때는 아무도 이성애를 말하지 않으며 ‘피해자’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건 하지 않건 가해자가 피해자를 ‘여성’으로 규정하는 젠더 폭력이 발생함을 말하지 않는다. (87쪽)
<b>미성년자 의제강간, 무엇을 보호하는가?
- 의제강간법의 이중성과 청소년의 섹슈얼리티</b>
미성년자 의제강간이란,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강간으로 취급’하여 법적 처벌을 가하는 법 조항을 일컫는다(형법 305조). 당사자들끼리 동의한 관계이므로 본질적으로는 강간이 아니지만 법으로 정한 성교 동의 연령(만 13세)에 이르지 않는다면 강간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권김현영은 미성년자 의제강간 문제를 통해 연령만을 기준으로 삼아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의 이중성을 밝혀내고,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신체의 발달 여부나 연령이 아닌 정치경제학적 조건에서 탐색한다.
<b>의제강간죄의 ‘이중성’</b>
권김현영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이 ‘아버지의 자산인 딸의 순결’을 보호하는 문제에서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문제로 쟁점이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미성년자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회적 보호 담론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이 성인과 미성년자 모두를 ‘성 중립적인 존재’로 가정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소녀와 소년이 경험하는 현실적 차이와는 무관하게 성별 중립적인 기준을 통해 특정 연령 이하의 소년ㆍ소녀들을 모두 순진한 천사이자 잠재적인 피해자로” 만듦으로써,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현실을 경험하는 사실을 은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 범죄에서 수사관과 재판관들은 피해자의 상황을 끊임없이 문제시한다. 특히 사건 당시의 옷차림, 당사자의 외모, 직업, 가족 관계, 혼인 여부, 성 경험 여부 등에 대한 질문들처럼 피해자가 성적인 주체로서의 위치를 드러내는 경험과 태도는 사건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고 믿는다. 피해자의 상황을 묻지 않는 유일한 예외는 연령이다.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성비와 연령 통계를 살펴보면, 성인 남성들이 가장 많이 가해를 저지르며 최근 들어 청소년 가해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의제강간의 경우, 보도된 사건들의 성비는 양성의 비율이 매우 잘 맞춰져 있다.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이 현실을 가리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101쪽)
<b>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을 둘러싼 오해 </b>
권김현영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이 특정 연령까지의 아동을 더 강력하게 보호하는 법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의제강간에서는 연령이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말하지만, 가해자는 피해자가 13세 미만임을 몰랐거나 피해자가 나이를 속였다고 주장하면 처벌을 면한다.
또한 현행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동의 여부를 결정할 능력’이 특정 나이에 따라 단계별로 구축된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권김현영은 “청소년기의 섹슈얼리티는 언제나 ‘아직’이라는 유예 명령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인식론에서 청소년의 사랑과 성적 욕망은 “사회적 의미를 얻는 데 실패하고 오직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소비하는 행동으로 간주”되며, 결국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부정당하게 된다.
욕구에 대한 금지는 가해자의 자유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제한한다. ‘보호’는 가해자의 권력을 제한하고 피해 당사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미성년자에게 관심을 집중할수록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된다. 미성년자가 성적인 것에 관심을 보이고 성적 호기심과 모험을 하는 행위 자체를 ‘오염’되는 것으로 보고, ‘면역력이 저하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 자체를 매우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고 보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 미성년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성에 대한 지식을 드러내고 토론하게 하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불가해하고 순수한 것으로, 오염되지 않은 어떤 순백의 것으로 상상된다. (118~120쪽)
<b>‘성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의 관계</b>
권김현영은 성과 관련된 권리는 혼인 가능 연령, 직업 결정권, 투표권 등의 경제적 ㆍ 사회적 ㆍ 정치적 권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말한다. 전 세계의 선거 가능 연령 기준을 살펴보면, 주요 국가의 선거권이 대부분 18세부터 주어진다.(세계 190개국 중 147개국) 한국의 선거 가능 연령은 19세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8세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반면, 한국에서 미성년자 의제강간이 적용되는 연령인 만 13세는 조혼 풍습이 남아 있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와 혼전 성교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처럼 선거 연령과 의제강간 연령 기준 사이의 격차는 현재 한국이 가장 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무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성에 대해서만 동의 여부를 만 13세 이상부터 결정할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성관계를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부모 혹은 성인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야말로 성적 자기 결정에 유해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미성년자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장할 수 있게 하려면 이 문제를 청소년의 신체적ㆍ정신적 ‘건전한’ 발달 과정의 문제라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성교육을 받을 권리, 미성년자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더 좋은 교육 환경과 정치 제도를 요구할 권리, 생활 임금이 가능한 최저 임금을 받을 권리 등이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123쪽)
<b>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
메갈리아 미러링
- 포스트 여성 주체의 탄생에 부쳐</b>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시작된 메갈리아 현상은 2016년 소라넷 폐쇄, 강남역 살인 사건, 넥슨 성우 교체 사건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메갈리아 현상의 주체인 ‘메갈리안’은 여성 혐오(misogyny) 발화를 그대로 되비추는 ‘미러링’을 수행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문제를 제기했고 온라인 페미니즘의 주체로 떠오르게 되었다.
류진희는 메갈리아 현상을 ‘여혐 대 남혐’이라는 젠더 논쟁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온라인 페미니즘이라는 방식을 가능케 한 새로운 정치 주체의 탄생에 주목한다. 그리고 미러링이라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 역량에 주목하면서 메갈리아를 둘러싼 쟁점에 접근한다.
<b>“여혐혐을 수행하라”, 메갈리아의 탄생</b>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 당시 홍콩을 방문한 한국 여성 두 명이 격리 검진을 거부했다는 낭설이 일자 곧 “한국 여자 개념 없다”고 조롱하는 혐오 발화가 등장했다. 그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발화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불만이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 여성들은 성별 역전 콘셉트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차용해 자신들을 ‘메갈리아’라고 지칭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던 젠더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류진희는 여성 혐오 발화와 이에 대항하는 메갈리아의 탄생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허용하는 사회에 내포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2013ㆍ2014년〉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어나는 강력 범죄의 피해자 대다수, 즉 10명 중 8, 9명이 여성이다. 그리고 대검찰청 통계 자료 〈2015년 범죄 분석〉은 성폭력 범죄가 지난 10년간 형법 범죄가 증가하는 주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 통계 자료 〈2015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배우자와 연인 등 가까운 사이에서 거의 이틀에 한 명꼴로 여성이 죽거나, 죽을 만큼 다친다고 밝혔다. (128, 129쪽)
<b>새로운 정치 주체 : 촛불소녀, 배운녀자, 그리고 메갈리안</b>
2000년대 이후 젊은 여성 대중이 한국의 정치 현상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등장한 ‘촛불소녀’, ‘배운녀자’, ‘유모차 부대’는 “집단적이고도 산발적인, 또 익명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여성 청년들의 행위성”을 보여주며 “민주화 이후 ‘탈정치’ 시대에 도래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예고했다.
류진희는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여성 주체들이 여성 혐오를 비판하고 가부장제를 폭로하는 방식이 온라인에서 현실 세계로 나아갔다는 데 주목한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규범과 금기를 찢는 이들의 활약은 가정 폭력, 성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이별 범죄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새롭게 접근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2016년에는 ‘소라넷’ 문제와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전 사회를 뒤흔들었다. 해외 서버라서 “절대 없앨 수 없다”던 ‘소라넷’은 결국 폐쇄됐다. 이 사이트는 웬만한 광역시 인구에 버금가는 1백만 회원을 보유한 맹위를 떨치며 ‘몰카’, 즉 몰래 찍은 인권 침해 사진과 강간 모의 범죄 동영상들을 유통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 노래방 공용 화장실 여성 살해 사건은 피의자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동기를 밝혔는데, 경찰은 그의 정신과 병력을 이유로 삼아 ‘묻지마 살인’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은 ‘포스트잇’ 추모 시위를 통해 ‘여자라서 죽었다’는 페미사이드(femicide)로 재의미화되었다. 이 사건 이후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온ㆍ오프라인 모두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슈화를 위해 이들이 감행하는 집단 활동, 즉 ‘화력 지원’에 힘입어 곳곳의 젠더 이슈들이 긴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129, 130쪽)
<b>미러링은 또 다른 혐오 폭력인가?</b>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피해자로서 여성에게 허락됐던 목소리, 즉 비탄ㆍ절규ㆍ울음이 아닌 조롱ㆍ호통ㆍ웃음을 자신의 전략”으로 내세웠다. 메갈리아는 주로 여성 혐오 용어를 반전시켜 “남성 중심적 구조에 깃든 일반적 서사를 낯설게하고 단숨에 해체하는 패러디”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삼일한(여성은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에 대응하는 ‘삼초한(남성은 3초에 한 번씩 때리겠다)’이나 ‘낙태충(낙태한 여자)’의 반례로 나온 ‘싸튀충(싸고 튄 남자)’은 여성에게만 적용되었던 기존의 성 규범을 조롱하고 전복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발화는 한국 사회의 젠더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메시지로 전환되었다.
많은 이들이 메갈리아에서 나온 미러링 표현을 도저히 여성들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 수년간 여성들도 혐오 발화의 문법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다만 이번에는 침묵하는 게 아니라 적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활용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미러링은 린치를 수반하는 증오 발화(hate speech)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여성의 저항이다. 여성 혐오 발화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지만, 소위 ‘남성 혐오’ 발화는 오직 온라인에서만 가능하다. …… 미러링은 역전된 혐오 발화로 원본을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그 표현에 대항하며, 결국 여성 혐오의 시대를 생생하게 고발하게 된다. (143쪽)
<b>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
- ‘반(反)동성애’, 한국 개신교의 생존 전략</b>
한국 개신교는 기독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삼아 동성애를 격렬하게 반대해 왔다. 《성경》에 동성애가 ‘죄’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성서주의적으로 해석할 때 동성애는 하느님의 섭리에 반(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동성애뿐만 아니라 수백 개가 넘는 죄목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한국 개신교는 왜 동성애만을 집요하게 문제 삼는 것일까? 이들은 왜 동성애를 향한 혐오를 ‘조직적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한채윤은 사회적 ㆍ 역사적 맥락에서 ‘동성애 혐오’가 구성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한국 개신교는 자신들의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대표적 타자’인 동성애자를 외부의 적으로 삼아 비리, 횡령, 세습 등 개신교 내부의 문제와, 식민지와 전쟁, 친미 독재 정권이 주도한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정치계와 결탁해 성장해 온 교회의 세력화를 묵과해 왔다는 것이다.
<b>‘공동의 증오’의 필요성</b>
2007년 10월 법무부가 차별 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이 포함된 차별 금지법을 입법 예고했다. 같은 해 7월에 정부가 추진해 온 사립학교법 개정에 격렬하게 반대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했던 개신교는, 정부의 입법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단체를 대거 조직했다. 한국 개신교는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는 교회가 범죄자가 될 것이고, 국가는 점차 교회를 장악하고 인사권이나 교육 내용, 재정권에 간섭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이후 한국 개신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개최를 둘러싼 개신교 내 교파 간 다툼, 대형 교회의 예배당 증축 계획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 행위, 그리고 스타 목사의 성추행 사건까지 내부적으로 갈등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개신교는 이러한 행보를 반성하고 더 투명한 종교 활동에 매진하는 대신, 갈등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동성애’라는 강력한 외부의 적을 이용한다.
반동성애 운동을 이끄는 목사들은 동성애자가 교회를 없애려고 한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로 동성애자가 반기독교 운동을 펼치거나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공격하고 싶어 하는 ‘외부인’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곧 교회에 ‘고난’이 닥쳐온 것으로 설정할 수 있다. …… 고난을 극복하자는 이러한 목표 제시는 언뜻 내부 분열을 봉합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부패와 부조리, 모순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어느 것부터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에서 우선순위를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교회 세습과 담임 목사의 전횡, 횡령, 금권 선거 등 비민주적 조직 체계, 여성 목사 안수 불허 등 교회 내 성차별과 성직자들의 성폭력 문제 등을 거론할 틈이 없어진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 사상은 이런 문제들을 내부의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 (180, 181쪽)
<b>동성애 반대는 왜 교회의 사명이 되었는가?</b>
한채윤은 한국 개신교가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사회적 지배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동성애를 활용해 왔다고 말한다. 목사들의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이 지속적으로 폭로되고 있는 현실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개신교는 가장 절실히 동성애를 필요로 하는 곳이 되었다. ‘건전한 사회’, ‘올바른 성문화’를 기독교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동성애 혐오를 통해 자신들의 폐단을 덮어버리고, ‘성적으로 타락한’ 동성애자로부터 가족ㆍ결혼ㆍ국가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위치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개신교가 근본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근본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사실상 젠더 이데올로기”였다는 강남순 교수의 지적도 기억해야 한다. 신학자 잭 로저스는 “남녀 평등을 반대하는 것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 사이에는 강한 연결고리가 있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가부장제 가족 구조를 교회와 국가의 안정에 열쇠가 되는 것으로 본다. 이런 견해에서 가부장제와 애국심과 기독교는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며, 그 깃발은 동성애에 대한 모든 논의 위에서 휘날린다. 동성애와 여성 평등은 둘 다 남성 우위의 모델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확대하면 교회와 국가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184,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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