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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김리원 택배도시에서의 일주일
강미량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전현우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김민호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
김유민 알고리즘을 대하는 자세
이두갑 창작자의 정당한 몫 찾기
김혜림 K 카다시안의 고백
문호영 번역을 공유하는 놀이터
김예찬 잃어버린 시민을 찾아서
구기연 인스타스토리로 연대하기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
팬데믹 이전,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던 나의 이동도 확진자 수가 증가할수록 제한되었다. 사회 기능과 개인의 편의성이 사람의 이동이 아닌 물건의 이동으로 유지되면서 개인은 이동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내가 택배도시를 목격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 김리원, 「택배도시에서의 일주일」
만약 플랫폼이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손쉽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플랫폼은 타는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데 꾸준히 실패하고 있다. 걷는 몸에게 열린 플랫폼이 타는 몸에게는 닫혀 있다. 과연 이 플랫폼이 로봇을 탄 몸을 환영할 수 있을까?
─ 강미량,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독점의 올가미로 오늘날 한국인의 관심을 장악하고 있다. 어느 플랫폼이 더 싼지 확인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가락들. 나 역시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 위 동료 시민들과 나란히 서서 이렇게 손가락을 놀린다.
─ 전현우,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중 어느 것도 인터넷 전체가 아니고 그것들을 모두 합쳐도 인터넷 전체가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원리적으로 그런 총괄적 전체는 불가능하다는 관점. 여행자는 이런 복수적 파편성을 자신의 존재론으로 채택하는 사람이다.
─ 김민호,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
나는 우리와 인공지능이 맺어야 할 규범적 관계는 지나친 우려와 지나친 낙관 사이 어딘가
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충실한 조력자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막연한 기대는 무책임하지만, 인공지능이 불러올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이 두려워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을 막는 것은 태만하다.
─ 김유민, 「알고리즘을 대하는 자세」
많은 이들은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의적 일을 대체할 혁신적 기술이 될 수 있을까 질문한다. 사실 더욱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과연 텅 빈 유령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창작물을 향유하고 싶은지, 이러한 기술을 만들어낸 플랫폼 기업이 큰 이윤을 누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가 아닐까?
─ 이두갑, 「창작자의 정당한 몫 찾기」
K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노마드라는 비평 플랫폼에서 교환하고자 했던 욕망, 얻고자
했던 부산물, 우연과의 마주침이 지금 가능한지. 답은 ‘아니다’였다.
─ 김혜림, 「K 카다시안의 고백」
《초과》를 통해 나의 번역은 달라졌다. 하나의 텍스트에 여러 번역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실제로 그 텍스트를 여러 사람이 번역하고 한자리에 모아 나눠 본 것은 전혀 다르다. 원작에 아무리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이 나오더라도 나 혼자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었다.
─ 문호영, 「번역을 공유하는 놀이터」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스펙터클에 심취해, 그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설득하는 과정 없이 섣불리 우리의 주장이 곧 ‘촛불’이라고 선언했던 것은 아닐까? 갈등과 논쟁에 쏟을 에너지 소모가 두려워 정작 단체의 활동가, 회원들과 속내를 털어놓고 토론하는 것을 피해 온 게 아닐까?
─ 김예찬, 「잃어버린 시민을 찾아서」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과 사회 비판의 공론장을 구축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파편화된 목소리를 모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연대는 느슨해 보이지만 강력하다. 이것이 바로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이란 정부가 인터넷을 엄격하게 차단하는 이유다.
─ 구기연, 「인스타스토리로 연대하기」
범람하는 플랫폼에서
실제로 교환되는 것은?
수많은 콘텐츠들이 주목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지금,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소통하는 플랫폼은 콘텐츠 생산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양식이 된 것도 같다. 그럼 《한편》을 비롯한 잡지와 뉴스레터, 시민단체도 플랫폼이라 할 수 있을까?
《한편》 8호 ‘콘텐츠’가 콘텐츠 생산의 법칙을 제안했다면, 11호 ‘플랫폼’에서는 콘텐츠가 교환되는 세계, 즉 플랫폼을 탐사한다. 플랫폼에서의 상호작용이 지금 인간의 존재 양식이라면, 《한편》은 ‘무언가 주고받은 기분’을 들여다보자고 제안한다. 도시계획학, 과학기술학, 철학, 사회학, 인류학, 비평 등을 담은 열 편의 글은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산만한 연결망 위에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기입할 방법을 탐색한다.
매끄러운 연결과
울퉁불퉁한 이동
제대로 비판하기
100여 개의 상품을 한 번에 보여 주는 플랫폼에서 하나를 골라 구입하면 하루 만에 택배가 도착해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급속히 늘어난 물류 인프라와 배달 노동자들의 스케치에서 11호는 시작한다. 도시계획학 연구자 김리원의 「택배도시에서의 일주일」은 지하철이 쇼핑 공간이 되고 아파트 현관에서 주민과 배달 노동자가 부딪치는 도시민의 삶을 전한다. 일상의 편의가 커지는 동안 비물리적 인프라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이처럼 클릭 한 번이면 물건이 집 앞에 도착하는 일상은 울퉁불퉁한 이동의 경험을 가린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강미량의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은 걸음 보조 로봇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현장을 관찰한다. 걷기 로봇과 휠체어 사이를 저마다의 몸짓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장애인과 함께 걷기”라는 문제를 “함께 움직이기”라는 문제의식으로 확장한다.
디지털상에서 끝없이 확장하며 증식하는 플랫폼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교통·철학 연구자 전현우는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서 한때 수탈의 도구였지만 기후 위기 시대 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된 촘촘한 철도망의 효과를 논한다. 네트워크 확장의 순기능을 살피는 이 글은 IT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을 평가할 균형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프랑스철학 연구자 김민호의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은 하나의 플랫폼이 아니라 플랫폼’들’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모두 합쳐도 하나의 인터넷, 하나의 세계가 될 수는 없다는 존재론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플랫폼이 그 안에 모든 것을 품으려 한다면 이는 더 이상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플랫폼의 철학에서
비평과 연대의 방법까지
연구자, 번역가, 활동가의
현장에서 도착한 이야기
인간과 세계를 정보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는 인간, 식물, 인스타그램의 게시물 모두를 ‘정보 존재자’로 파악한다. 정보철학 연구자 김유민의 글 「알고리즘을 대하는 자세」는 정보 세계의 번영을 가져오는 정보 존재자라면 윤리적으로 좋다고 주장하는 플로리디의 윤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스마트폰의 ‘추적 금지 요청’을 꼬박꼬박 누르는 일이 현명한 사용법이라는 철학적 논증이다. 과학사학자 이두갑의 글 「창작자의 정당한 몫 찾기」은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를 비롯해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생성형 인공지능 플랫폼들이 걸린 지식 재산 소송을 들여다본다. 인공지능이 생산한 결과물을 가지고 재미있어하기에 앞서 ‘인간의 삶과 사회적 관계들’을 ‘디지털 소작농’ 삼는 기업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김혜림의 「K 카사디안의 꿈」은 비평 플랫폼에서 겪은 웃기고도 슬픈 실패담을 픽션으로 전한다. 킴 카사디안 같은 사교계 인사가 되고 싶다는 욕망,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비평계에 자리 잡고 싶다는 욕망들은 끝끝내 공유되지 못했고 플랫폼은 터졌다. 한편 번역가 문호영의 「번역을 공유하는 놀이터」는 작고 다정한 공동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환의 경험을 나눈다. 하나의 시에 대한 여러 번역을 싣는 웹진 《초과》의 번역가들은 성실한 독자로 다른 번역들을 감상하며 이로써 번역의 자유를 넓힌다.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김예찬의 「잃어버린 시민을 찾아서」는 일상에서 정치 이야기가 사라진 시민단체의 현재와 미래를 탐색하고, 인류학자 구기연의 「인스타스토리로 연대하기」는 2022년 이란 히잡 시위의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을 기록하며 이들과 연결된다. 관심 자원을 잃어버린 시민단체 내부를 보는 김예찬은 임원급 활동가와 신입 활동가만 남은 단체에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은 ‘옆 사람과 대화하기’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작성 후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게시물을 ‘밤잠 설쳐가며’ 따라간 구기연은 2억 5000만 개 이상 게시된 인스타스토리의 연대를 이란의 삼엄한 현실에서 가능한 개인의 용기로 본다. 점선으로 이어진 목소리의 연결은 “느슨해 보이지만 강력하다.”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나아가 연결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가끔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하지만 산만한 연결망에서 나와 네가 만나 실제로 주고받는 것은 무엇인지 그 울퉁불퉁한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현실감을 되찾게 한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한편》의 편집자가 만드는 ‘탐구’ 시리즈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11호 ‘플랫폼’에 적용된 글꼴은 계단과 사다리 등 구조물을 자소로 표현한 건축조각체로,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빗면으로 미끄러지는 이동의 모습을 구현한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 ‘외모’, ‘대학’, ‘플랫폼’에 이어 2023년 9월 ‘우정’을 주제로 계속된다.
작가정보
하루 3~4시간을 들여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가운데 철도와 교통 정책을 연구하게 되었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을 썼고 이 책으로 61회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상을 받았다. 『미래를 여는 길, 한국철도: 제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대안연구』 등의 연구를 수행했고, 정부와 여러 지자체에 철도 정책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이동의 위기 탐구』에서 기후위기 시대 이동의 의미와 도시계획의 방향을 철학적으로 탐구했고 『오송역: 이상한 분기역의 비밀과 오차 수정의 길』에서 고속철도 오송 분기가 탄생한 맥락을 추적했다. 『그리드』(공역), 『사고실험』, 『증거기반의학의 철학』(공역) 등을 옮겼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이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번역하고 글을 쓴다. 성의 수필집 『남은 인생은요?』, 황인찬 시집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한정현 단편 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이랑의 앨범 「신의 놀이」 가사 등을 번역했다. 하나의 한국어 시를 여러 영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웹진 《초과chogwa》의 애독자이자 기고자이며, 번역 모임 ‘촉’을 통해 아직 출판되지 않은 동시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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