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한밤의 시간표

정보라 지음
퍼플레인(갈매나무)

2023년 06월 07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6월 05일 출간

(개의 리뷰)
( 0% 의 구매자)
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2.62MB)
ISBN 9791191842524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전자책 화면에 표기된 주석 등을 모두 읽어 줍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 '교보 ebook' 앱을 최신 버전으로 설치해야 이용 가능합니다. (Android v3. 0.26, iOS v3.0.09,PC v1.2 버전 이상)

소득공제
소장
정가 : 11,060원

쿠폰적용가 9,960

10% 할인 | 5%P 적립

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3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한밤의 시간표》는 《저주토끼》 이후 처음으로 펴내는 정보라의 신작 소설집이다. 부커상 소식 이후 지금까지는 그동안 정보라가 써왔던 기존 작품들이 다시금 조명을 받은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지금의 정보라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시작을 알리는 첫걸음이다.

현실과 환영이 뒤섞이고, 인간과 비인간이 교통하는
한층 더 진화한 정보라식 환상 괴담

“결말을 알 수 없는, 한없이 이어지는 스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소문.” ─ 강화길

“한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민담을 구술하는 듯한
막힘없는 전개에 내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김보영

《한밤의 시간표》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수상한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묶은 연작소설집이다. 연구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과 그곳에서 보관하는 물건들에 얽힌 일곱 편의 기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구소에는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조금 특이한 안전수칙”이 있다. 그 수칙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은 직원들은 그에 맞는 응당한 결과를 맞이한다. 한편 연구소 소장품들이 지닌 각기 다른 기묘한 사연들도 있다.
그(것)들의 이야기는 한여름 밤 더위를 가시게 만드는 오싹하고 무서운 괴담이면서도 동시에 슬며시 온기가 도는 이상한 여운을 남긴다. 이는 정보라 특유의 저주와 복수의 테마에 담긴 선악에 대한 엄정함뿐만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에까지 뻗치는 온정 어린 시선 덕분일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로 자아내는 기이한 위로.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기묘한 돌봄을 실천하는 이상한 연구소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줄거리]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나’가 출근하는 연구소에는 ‘조금 특이한 안전수칙’이 있다. 정체불명의 평범한 남자가 안내하는 한마디를 그대로 따르면 된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손수건
“무서운 이야기 좋아해요?” 첫 출근한 ‘나’에게 ‘선배’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하얀 바탕에 꽃이 핀 나뭇가지와 그 나뭇가지에 앉은 새 한 마리가 수놓아져 있는 손수건. 이 손수건에 얽힌 “새롭고도 오래된 가족 드라마”.

저주 양
연구소에 근무했던 직원 ‘DSP’가 겪은 이야기. ‘DSP’는 정장을 입은 평범한 남자의 안내를 무시하고,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서 연구소 소장품 중 하나를 훔친다. 그 후 ‘DSP’는 온갖 기괴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양의 침묵
연구소에 있는 양 그림이 그려진 운동화는 ‘부소장’의 물건이었다. 양의 저주가 서린 이 운동화는 어떻게 ‘부소장’의 손에 들어와 연구소에 오게 된 걸까? 운동화가 품고 있는 양의 저주, 혹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

푸른 새
야간 순찰을 끝내고 직원실로 돌아온 ‘나’는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 책에는 오래전 어느 나라가 멸망했을 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멸망한 나라의 마지막 후손과 이를 증명하는 ‘손수건’에 얽힌 저주와 복수의 이야기.

고양이는 왜
연구소의 206호에는 ‘나’가 연구소로 데려온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묻는다. “그런데 나를 왜 죽였을까?” 그 의문에 답하지 못하고 ‘나’는 되묻는다. “나랑 같이 갈래? 네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어.”

햇볕 쬐는 날
연구소의 밤을 지키던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낮에 출근한다. 그날은 연구소의 물건들이 햇볕을 쬐는 날이다. 연구소에서 보살핌을 받던 물건들에 깃든 존재들은 때가 되면 햇볕을 쬐는 날, 떠난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고, 그렇게 직원들은 “생명 없는 존재”를 지키는 업무를 이어간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손수건
저주 양
양의 침묵
푸른 새
고양이는 왜
햇볕 쬐는 날

작가의 말│귀신 이야기의 즐거움에 관하여
작품 해설│연구소에 밤이 오면 ─ 박혜진 문학평론가
추천의 말│강화길, 김보영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숙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말했다.
직원은 평범했다.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어두운색 정장 차림이었고 목소리도 말투도 평범했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 앞을 막아서지 않고 길에서 마주쳤다면 돌아서자마자 잊어버려 한 시간 뒤에는 생각도 나지 않을, 그런 특징 없는 사람이었다.
─ 9쪽,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층계참에 양이 앉아 있었다.
DSP는 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양도 그를 마주 쳐다보았다.
양의 털은 지저분했다. 그의 머릿속의 이미지나 인터넷에서 가끔 보았던 사진과 달리 양은 흰색이 아니라 회갈색이었다. 양의 몸 여기저기에 털이 깎여 나간 곳이 있었다. 양의 맨살이 드러난 자리에는 수술 자국 같은 커다란 흉터가 조명 아래 벌겋게 드러났다.
─ 119쪽, 〈저주 양〉

그렇게 집안의 모든 문제는 구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떨어져서 그 집안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 위에 고이고 쌓였다.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에 그 구정물을 감당하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었다. 딸, 며느리, 엄마, 손녀.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느니 아들 가진 엄마는 길에서 손수레 끌다 죽는다느니 하는 말의 의미는 모두 같았다. 가장 만만한 구성원의 피와 골수를 빨아먹어야만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된다. 그렇게 모든 역기능 가족은 비슷한 형태로 역기능적이다.
─ 132쪽 〈손수건〉

“심야 매표소”라는 조그만 팻말이 달린 창구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창구는 하얀 칸막이로 안쪽이 보이지 않게 가려진 채 닫혀 있었다. 부소장님은 “심야 매표소”와 그 밑에 영어로 MIDNIGHT TIMETABLE이라고 적혀 있는 파랗고 두꺼운 글씨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래쪽에 손으로 쓴 작은 글씨로 “심야버스 당분간 운행 중단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 152쪽, 〈양의 침묵〉

“그거, 어느 연구실에서 도망친 책이었을 수도 있어요.”
선배가 말했다.
“책이 도망을 쳐요?”
내가 웃었다.
“그거 302호 손수건 얘기잖아요.”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손수건에 수놓인 새도 가끔 도망치는데, 책이 도망치지 말란 법은 없죠.”
─ 187쪽, 〈푸른 새〉

“고양이는 왜 죽였어?”
아이가 물었다.
“고양이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아이가 종알거렸다. 남자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천진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의 커다랗고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대답을 재촉하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아이에게서 물러섰다.
─ 209쪽, 〈고양이는 왜〉

마당에 줄지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는 무작위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유실물 센터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유실물을 남기고 떠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뭘 남길 생각하지 말고 그냥 떠나는 게 최고예요.”
선배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게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깨끗하게 떠날 수 있었다면 이 연구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223쪽, 〈햇볕 쬐는 날〉


《한밤의 시간표》에 등장하는 연구소는 밤이 오면 그제야 존재하기 시작하는 비존재들의 장소입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나는 사물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성과 합리, 과학과 지성의 서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246쪽, 〈작품 해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 저주가 내릴지니

초기 환상문학 단편들을 엮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에서부터 ‘복수 전문 작가’라는 별명을 붙여준 《저주토끼》까지, 정보라는 자신의 작품세계 안에서 저주와 복수라는 테마를 끊임없이 다뤄왔다. 정보라 소설 속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는 저주와 복수의 원리는 세상 모든 것이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순리다. 악한 행위를 한 자들은 저주와 복수를 통해 응당한 결과를 맞이한다. 그리고 《한밤의 시간표》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저주와 복수의 테마는 이어진다.
《한밤의 시간표》 속 연구소에는 야간 순찰을 도는 직원들 앞에 불규칙하게 부정기적으로 나타나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통행을 제지하는 누군가가 있다. 직원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그 말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강제력 없는 느슨한 금기가 이 기묘한 연구소의 “조금 특이한 안전수칙”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 사람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소장님이 나타나서 막아줄 것이다. 그것은 조금 특이한 안전수칙이지만 연구소에 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 45쪽,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한편, 연구소의 직원들은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야간 순찰 근무를 한다. 박혜진 평론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연구소는 “학문의 공간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낮’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밤’의 연구소에는 문학적 정의가 필요하다. 《한밤의 시간표》 속 연구소는 “밤이 오면 그제야 존재하기 시작하는 비존재들의 장소”이자 “이성과 합리, 과학과 지성의 서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연구소의 사전적 정의가 ‘낮’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면 연구소의 문학적 정의는 ‘밤’에 이루어집니다. 《한밤의 시간표》에 등장하는 연구소는 밤이 오면 그제야 존재하기 시작하 는 비존재들의 장소입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나는 사 물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성과 합리, 과학과 지성의 서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246쪽, 〈작품해설: 연구소에 밤이 오면〉

‘시간표’는 이성과 합리, 과학과 지성이 힘을 못 쓰고 저주와 마법, 환상이 지배하게 된 한밤의 연구소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인간의 규칙이다. 낮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시간표’라는 규칙은 물건들에 깃든 비인간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한밤에는 아주 최소한으로만 허용된다. 그래서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근무하는 직원들은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복도를 그저 순순히 돌며, 설령 말도 안 되는 것을 보았다고 해도 “그냥 없는 척, 모르는 척”하며, 주어진 일(“반복적으로 잠긴 문들을 확인하는”)을 해야 한다. 한밤의 연구소에서 인간이 ‘시간표’나 ‘안전수칙’을 어기고 무언가를 하려 할 때, 그것은 저주가 되어 되돌아온다. 〈저주 양〉에서 한밤을 틈타 사적인 욕망을 채우려 한 DSP가 겪은 일처럼 말이다.

거대한 흰 운동화 발뒤꿈치가 다시 DSP의 머리를 노리고 쫓아왔다. DSP는 무시무시한 운동화 뒤꿈치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가려 했으나 뒤에는 하얗고 단단한 벽뿐이었다. 그가 들어왔던 열린 문은 사라지고 없었다.
─ 123쪽, 〈저주 양〉

연구소의 직원들이 겪은 일들뿐만 아니라 연구소의 물건들에 얽힌 이야기들 또한 마찬가지다. ‘부소장’의 곁에 있게 된 ‘양’은 부소장을 해하려는 남자를 벌주었고, ‘손수건’은 나라를 멸망케 한 이들에게 복수를 가져다주었다. 물건들에 얽힌 저주는 생의 의지를 지닌 약자와 소수자에게는 되레 아픈 과거를 딛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선한 자에게는 다정한 미래를, 악한 자에게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것. 그것이 정보라의 작품세계에서 저주와 복수가 작동하는 원리다.

무섭고 기이한 저주와 복수의 세계에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연민과 돌봄의 미래로

《한밤의 시간표》 속 이야기들이 모두 저주와 복수가 서린 기기묘묘한 괴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의 터널이나 〈저주 양〉의 계단 등 오싹하고 소름 돋는 공포를 선사하는 탁월한 호러의 순간들이 담겨 있지만, 일곱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두려움과 긴장감 뒤에 따라오는 안도감과 더불어 따스한 햇볕을 쬐는 것 같은 온기가 스민다.

그러나 지금 고양이는 햇빛 아래 느긋하게 온기를 즐기고 있다. 그 옆에는 부소장님의 양이 있다. 털 동물들은 친하게 잘 지낸다. 햇볕 쬐는 날에 함께 밖에 나오면 고양이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양을 핥아준다. 햇볕을 쪼이며 앉아 있는 양의 등에 고양이가 기어 올라가 행복하게 낮잠을 자기도 한다.
─ 227쪽, 〈햇볕 쬐는 날〉

《한밤의 시간표》 속 연구소는 귀신 들린 물건들이 즐비하고, 존재하지 않는 복도나 계단이 수시로 나타나며, 잘못하면 기괴한 환영과 환청을 보고 듣게 되는 괴담의 공간이다. 한밤에 연구소에서 근무해야 하는 직원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연구소의 규칙을 따라 성실하게 일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딛고 생의 의지를 다지는 이들에게 연구소는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앞날을 선물한다. “밤에 애들이랑 같이 집에서 푹 자는 게 꿈”이라고 했던 숙은 그 꿈을 이루며 연구소를 그만두었고, 학대와 차별로 범벅된 아픈 과거를 가진 성소수자 찬은 자신을 이해해줄 연인 각을 만나 다정한 미래로 나아가게 되었다.

찬은 각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씩 천천히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에 찬은 비로소 상처 속에 잃어버린 자기 삶의 일부를 애도하며 좀 더 자신을 잘 돌보는 다정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23쪽,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한밤의 시간표》를 다 읽고 나면 무서운 괴담이 끝없이 이어져 나올 것만 같던 기괴한 연구소가 어느새 약하고 상처 입고 잊힌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연민으로 기묘한 돌봄을 실천하는, 조금 이상하지만 다정한 장소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들이 저지른 이유 없는 악의로 다치고 죽은 약한 이들을 잠시 돌보아주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연민과 돌봄을 실천하며 무너진 자신의 삶도 재활할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정보라가 그려온 세계는 선악과 정의가 뒤틀린 세계에서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저주와 복수를 행해야 했다. 그리고 〈저주토끼〉의 결말이 보여주듯, 뒤틀린 세계에서의 저주와 복수는 또 다른 저주를 낳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밤의 시간표》에서 정보라는 뒤틀린 세계 속에서도 다친 이들에게 쉴 자리를 내어주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연민과 돌봄의 세계를 그려낸다. 괴담보다 더 괴담 같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도 억울하게 죽은 비인간 존재들을 기리고 약자와 소수자가 앞날을 도모할 수 있는 밑받침 같은 공간을 그려낸다. 생과 사의 경계에 위치한, 사자死者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아놓는 유실물 센터 같은 이 연구소가 더 이상 소용하지 않길 바라면서.

“뭘 남길 생각하지 말고 그냥 떠나는 게 최고예요.”
선배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게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깨끗하게 떠날 수 있었다면 이 연구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224쪽, 〈햇볕 쬐는 날〉

“《한밤의 시간표》는 내게 놀이동산 같은 작업이었다”
정보라가 작정하고 쓴 ‘진짜’ 귀신 이야기

정보라는 〈작가의 말〉에서 《한밤의 시간표》를 쓰는 일이 “계약이나 마감의 굴레가 딸려 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놀이동산 같은 작업”이었다고 회고하며, 귀신 이야기를 쓰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밤의 시간표》에는 쓰는 이가 진심으로 즐기면서 쓴 이야기의 힘이 담겨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귀신 이야기 혹은 무서운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귀신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추리나 스릴러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추리나 스릴러가 아닌 “진짜 귀신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방식이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연구소’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연결성을 가지는 연작소설 형식이다.

《한밤의 시간표》는 나에게 계약이나 마감의 굴레가 딸려 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놀이동산 같은 작업이었다. 귀신 얘기를 마음껏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
나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아니라 진짜 귀신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까 짧은 이야기들이 모인 형태가 되었다. 연구소의 방마다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 236~241쪽, 〈작가의 말: 귀신 이야기의 즐거움에 관하여〉

《저주토끼》의 부커상 최종후보 소식 이후, 새로 쓴 단편을 지면에 공개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작가의 기존 작품들을 엮어낸 단편집들이었다. 《한밤의 시간표》는 사실상 아주 오랜만에 책으로 출간되는 정보라 작가의 신작인 것이다.
부커상 소동 이후로 작가로서의 정보라의 삶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보내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순수하게 창작의 즐거움을 누렸다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짓고 소설을 써온 작가의 깊은 뿌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밤의 시간표》는 주변의 소란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색깔을 고수하면서도 선명한 변화가 느껴지는 신작이다. 정보라라는 이름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증명하면서도 지금껏 정보라 소설에서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선사하는, 정보라 작품세계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정보라

(CHUNG Bora)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지은 책으로는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아무도 모를 것이다》 《호》 등이 있다.
1998년 〈머리〉가 연세문화상에 당선되었고. 〈호狐〉로 2008년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 〈씨앗〉으로 2014년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2022년 《저주토끼》로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2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며 전 세계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작가의 말

귀신 이야기의 즐거움에 관하여

《한밤의 시간표》는 나에게 계약이나 마감의 굴레가 딸려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놀이동산 같은 작업이었다. 귀신 얘기를 마음껏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 ‘한의 정서’ 중심의 귀신 이야기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으로서 귀신 얘기를 쓸 때 나의 문제는 교훈적인 결론으로 흐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서운 귀신 얘기를 장편 분량으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 공포 이야기, 괴담이 무서운 이유는 알 수 없는 것,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이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길게 써봤자 알 수 없으니까 점점 재미없어질 뿐이다. 귀신 얘기를 길게 쓰려면 결국은 그 귀신이 어째서 귀신이 됐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헤치는 추리의 요소가 들어가거나, 같은 불운한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게 막으려고 주인공(들)이 애쓰는 스릴러의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나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아니라 진짜 귀신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까 짧은 이야기들이 모인 형태가 되었다. 연구소의 방마다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Klover리뷰 안내
Klover(Kyobo-lover)는 교보를 애용해 주시는 고객님들이 남겨주신 평점과 감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보문고의 리뷰 서비스입니다.
1.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평점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 운영 원칙 안내
Klover리뷰를 통한 리뷰를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공간인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부탁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 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 입니다. 교보eBook 앱에서 도서 열람 후 문장 하이라이트 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신간 알림 안내
    한밤의 시간표 웹툰 신간 알림이 신청되었습니다.
    신간 알림 안내
    한밤의 시간표 웹툰 신간 알림이 취소되었습니다.
    리뷰작성
    •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최초1회)
    • 리워드 제외 상품 : 마이 > 라이브러리 > Klover리뷰 > 리워드 안내 참고
    • 콘텐츠 다운로드 또는 바로보기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
    감성 태그

    가장 와 닿는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사진 첨부(선택) 0 / 5

    총 5MB 이하로 jpg,jpeg,png 파일만 업로드 가능합니다.

    신고/차단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내용은 이용약관 및 정책에 의해 처리됩니다.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주세요.


    이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모든 글은 블라인드 처리 됩니다.

    문장수집 작성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eBook 문장수집은 웹에서 직접 타이핑 가능하나, 모바일 앱에서 도서를 열람하여 문장을 드래그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P.
    한밤의 시간표
    저자 모두보기
    저자(글)
    낭독자 모두보기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프리미엄 이용권입니다.
    선물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
    sam 열람권 선물하기
    • 보유 권수 / 선물할 권수
      0권 / 1
    • 받는사람 이름
      받는사람 휴대전화
    • 구매한 이용권의 대한 잔여권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 열람권은 1인당 1권씩 선물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이 ‘미등록’ 상태일 경우에만 ‘열람권 선물내역’화면에서 선물취소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의 등록유효기간은 14일 입니다.
      (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이 상품의 총서 전체보기
    네이버 책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네이버 책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
    구글북액션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구글북액션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