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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잠이 좀 더 깊어지도록

김재순 지음
삶의문학

2023년 06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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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pdf (1.20MB)
ISBN 979118765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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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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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순 시인의 2번째 시집인 『그의 선잠이 좀 더 깊어지도록』에는 5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컬어 ‘중생’이라고 통칭되는 할머니, 어머니, 젊은 여인, 늙은 남자, 젊은 남자, 나, 아이들 등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미호, 고양이, 발바리와 산수유나무, 낡은 집 등이 막간으로 등장하며 저마다의 사연을 간절하게 하소연하며 이야기 마당을 펼치고 있다.
등장인물이 다양한 것은 곧 시인의 시선과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몇 가지 사물이나 현상을 중심으로 좁은 관점의 자기 시 세계를 펼친다. 원로급 시인들 중에는 한두 가지 주제를 수십 년 동안 우려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시들이 대동소이, 그렇고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재순 시인의 경우는 휴머니즘이라는 한 통로를 통해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전개한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인간상마다 내포하고 있는 정한과 의미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어 현실감이 중후하다. 시인이 살아오면서 직접 경험한 사람들과 상황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과장이나 꾸밈이 없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1부

삼대 13
연변에서 오신 할머니 15
어느 절 아래 마을에서 17
산수유 나무의 능력 19
11월을 노래하는 사람아 21
타서 그럴 뿐 23
구미호가 되었다는데 25
무산에서 왔던 사람 27
사람이 되어갔다 29
R에게 32
할머니 장군 33
핸드폰 나이트 클럽 35









2부

고향 마을 39
여수에 갔었다 41
마당에 꽃만 가득 44
한여름 밤의 축제 46
이사 48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설레네 50
조는 아이에게 52
유리문 너머 54
병원 소묘 56
도서관에서 복권을 긁다 58
말복 60
마지막 잎새 62
옥이네 집 근처 공원에서 64
그 기와집의 내력과 어머니 66







3부

식산정사에 간다 71
끝까지 파먹다 73
아프리카에 있었을까 75
차이 77
저기 경아가 산다 79
몸부림 81
유전자 83
몰래 찍다 85
화분을 갈아주다 87
최고의 식욕 촉진제 88
예술가가 되시려고 90
냄새 92









4부

시를 읽다 97
만추 98
느티나무 아래서 99
지난 밤 100
그 옛날의 꽃길 101
산란기 103
헌화가처럼 105
쑥물 한 잔 107
스크랩하다 109
포도 한 상자 111
동행 113
개와 사람 사이 115
원장현의 대금 연주 117
그곳에 살고 싶네 119

◆ 작품 해설 황사를 꽃이 되게 하는 치유의 시
- 박희용 121

삼대(三代)

유니세프 후원금 모금 홍보영상이
아프리카 니제르 어느 마을을 보여준다

화면에서 마음으로 건너오는 영상들
그중 가장 오래 마음을 붙들 이미지는
소녀가 낳아서 안고 있는 어린 것
갓난쟁이는 희미하고 커다란 눈을 천천히 껌뻑이며
그 무거운 목숨을 그만
스르르 놓칠 것 같다

에구, 나라가 왜 저래
애들이 기가 막히네
할머니는
아이들을 저 지경으로 만드는 지도층을
나라, 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옆의 아들은
목까지 차올라 찌르고 있는 무언가를 녹이려는 듯
소주를 꺼내 한 잔 홀딱 삼킨다
술 마실 돈 있으면
후원금 내시지, 툭 던지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손녀는
핸드폰 숫자를 길게 누른다

알고 있다
할머니와 아들은 직접 겪어서
손녀는 그들에게 듣고 책으로
안다
기브 미 초크릿을 외치며
영상 속의 아이들처럼 우리도
굶주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연변에서 오신 할머니

고드름이 주렴을 내린
소한의 아침
자동차 바퀴가 눈 속에 오솔길을 냈다
저 끝 집의 할머니
유모차에 종이박스 몇 장 싣고
꺾인 몸도 반은 싣고
어긋지는 한 발을 끌며 오솔길을 간다

중국에서 왔다는 할머니
우리말이 유창하니 조선족이지
붉은 댕기 휘날리며 아비 등에 업혀서
이 땅을 떠나던 때도 이런 날이었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데를 찾아서 간 그곳

그곳은 어땠나요. 소설처럼*
귀틀집에 우짖으며 달려드는 눈보라를
구멍 난 흙투성이 삼베 바지저고리로 막아내고
땅 주인이 빚을 갚으라고 머리채를 잡던가요
딸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었나요
그런 날은 겨죽을 먹고 살던 이 땅이 그리웠나요

죽기 전에 꼭 오고 싶었을 조국이라는 이곳
이제는 경제대국이라는데
조국의 겨울은 아직도 왜 이리 춥고 아득한가
영하 십도가 넘는 빙판길을 폐지 몇 장 실은
유모차에 의지해 미끄러질 듯 미끄러질 듯
혹한의 아침, 눈길을 가는 할머니

*최서해의 홍염에서



어느 절 아래 마을에서

녹음이 검은 그늘로 마을을 덮었네
뒤에 살찐 절이 있으니
사하촌이라 부르기도 했겠지

마을은 아직도 왜 이리 남루한가
담장과 지붕이 알록달록
분장을 마친 늙은 사당들 같네

맑은 하천 옆에 펼쳐진
논과 밭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누구인가
저 작은 집의 것이라고
쪼그라든 할머니들의 것이라고
어느 문서가 말을 해줄까

대대로 손 모으고 무릎을 꿇고 불전함을 채웠을
기원과 공덕은
어디서 날개를 접었나
풍경 소리처럼 범종 소리처럼 언제
마을로 내려오나



산수유 나무의 능력

사드는 가라
유람선은 뱃머리를 돌리고
한류를 차단하라
메이디 인 코리아를 불매하라
아우성치던 황사, 사라졌다

깨끗한 앞길로 시선이 멀리 가는데
길 건너 빈터 산수유 나뭇가지에
소복소복 모래알이 앉았다
붉은 띠도 현수막도 없다

무슨 흡족한 타협이 있었는가
표정이 환하게 피어나고
나뭇가지 단단하게 굵어졌다

황사를 꽃이 되게 하는
저 산수유나무
외교력이 뛰어난 지도자 같다

곧 초록 이파리 넘실넘실
넓게 넓게 번지고
평상이 놓이겠다



11월을 노래하는 사람아

기타를 치면서 몸을 흔들고
늘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십일월의 짧았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사람아
그만 반할 것 같은데

당신의 그림자는
무른 햇볕이 데워놓은 벽난로를
식게 해서
몸을 쬐던 할머니들이 옹송그리는데
저토록 애통한 당신의 노래를 두고 떠나서
거리의 흩어진 낙엽을 쓸어야 될 할머니들

화단 가, 꽃잎이 드물게 붙은 국화 한 송이
당신의 그림자가 엉성한 꽃송이를 가려서
단물의 찌꺼기를 줍고 있는 일벌 한 마리
빌빌 날개가 기울고 있습니다

몸을 조금만 틀어서
얼굴을 조금만 돌려서
이쪽을 보면서
당신의 그림자를 치워준다면
내 가슴 울렁이게 노래하는
당신에게 기꺼이 홀리겠습니다
오는 겨울이 따뜻하겠습니다

-13p~22p

이 시집 전편을 통하여 시인은 줄기차게 인간과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증언하고 고백하고 고발한다. 결코 과장하거나 사실성이 없는 상상으로 꾸미지 아니하고 순결한 영혼의 눈으로 조용히 다양한 인간상과 인생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상상도 보태지만 모든 시가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다. 일상의 평범한 인물들을 기록하여 시화함으로써 그들은 역사성을 갖는다. 시인은 민중사의 일부를 편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부유하는 수많은 시들과 시집 중에서 이 시집 『그의 선잠이 좀 더 깊어지도록』은 인간과 인생의 진실을 증언하는데 더 가까이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인물이다. 평범하므로 선량하다. 선량하므로 희로애락을 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간군상에 대한 관심은 애정이고, 그 애정은 중생에 대한 사랑이다. 육조혜능은 임종게에서 ‘한 생각 깨쳐서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라’고 하였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을 보는 시인의 눈은 따뜻한 평등이다. 가감 없이 그들의 생각과 말을 대신 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 즉 모든 사람을 시어로 표현하는 시인은 혜능 법문의 본지에 근접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오래동안 찾던 시인은 지쳐서일까 이제 ‘그의 선잠이 좀 더 깊어지도록’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잠’은 깊은 잠이 아니다. 곧 핸드폰 나이트클럽 음악이 선잠을 깨워서 시적 작업을 다시 시작하도록 할 것이다.
’황사를 꽃이 되게 하는/ 저 산수유나무‘처럼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언어, 치유의 시가 만개한 이 시집을 읽고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 박희용(시인)

작가정보

저자(글) 김재순

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작가 정신>으로 작품활동, 시집 『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2017년 경상북도 문예진흥기금 선정 수혜
2022년 경북문화재단 창작준비 지원금 수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 지회 및 상주 작가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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