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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한겨레출판사

2023년 05월 18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4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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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040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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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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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순하고 맑은 세계,
한국문학의 새로운 서정 이주란 신작 소설

조각나고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지금 우리에게
마침내 당도한 ‘다음이 있다는 마음’

“함부로 무엇을 알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고통을 그저 바라볼 줄 아는 이주란의 소설을 나는 사랑한다”(소설가 박상영), “극적인 장면 없이 고루 팽팽하고, 대단한 플롯 없이 완벽하며,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준다”(시인 박연준). 201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 온화하게 스며드는 특유의 서정으로 독보적 지지를 얻어온 이주란. 그의 소설들은 ‘담담한 듯하지만 위트가 반짝이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사람과 사람,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들여다보는 사려 깊은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가 출간되었다.
소설집 속 화자들은 욕심이랄 것 없이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이런 그들을 너무 쉽게 내친다. ‘나’는 힘겹게 잡고 있던 줄을 탕 놓은 것처럼 상처받은 몸으로 어느 소도시에 머문다. 그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걷고 이야기하는 일상을 보내며 회복해간다. 실패의 기억, 유년의 상처, 가족과의 이별 등 고통과 슬픔은 도처에 있지만 그 틈 속에서도 따뜻함이 반짝이는 8편의 단편들을 모았다.
별일은 없고요?
사람들은
어른
여름밤
위해
이 세상 사람
서울의 저녁
파주에 있는

작가의 말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너무 쉽게 부서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_〈별일은 없고요?〉

그날 밤 나는 숨죽여 울었다. 밤이었고, 엄마는 잠이 들었고, 나는 낮잠을 자고 저녁에 깨어난 뒤로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숨죽였으나 5평짜리 원룸에서 울음소리를 감추기는 어려워 복잡한 마음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지나 2시를 넘겼고 엄마의 방엔 엄마와 방과 내가 있었는데 엄마의 코 고는 소리도 작고 방도 작고 나의 울음소리도 작은, 모든 것이 작은, 그런 밤이었다._〈별일은 없고요?〉

헤어지는 게 두려우면 더 사랑하면 될 텐데. 그쵸?_〈별일은 없고요?〉

나는 순간 오래전 그 방을 떠올렸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고 잊고 싶지 않지만 잊혀지는, 그런 기억이 있다. 기억이라는 건 자꾸만 기억하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순간 기억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그게 누군가의 죽음이어도 되는 건지, 나는 그건 좀 싫었다._〈별일은 없고요?〉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이따금 새소리만 들려왔다. 대단한 소원은 아니었고 달라지는 나 자신을 알아가기를, 나끼리 매일 싸우지 않기를, 싸웠다면 화해하기를 빌었다._〈별일은 없고요?〉

고민 끝에 퇴사를 하고서는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늪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늪에 빠지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나 보다 싶을 만큼 그랬다. 뜻밖에 너무 잘되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도 그랬을까?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슬펐지만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힘겹게 잡고 있던 줄을 탕, 하고 놓은 것처럼 엄마가 내게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아팠구나, 미안하고 고마웠으며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다행이다, 너무 좋다,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그런 말을 엄마가 아주 많이 하는 게 마음 아팠지만 정말 좋다, 나 역시 그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나는 평생 엄마에게 받기만 했기 때문에 그땐 내가 모든 것을 주고 싶었으나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너는 이제 혼자가 될 거고 많이 울지도 모르니까.
엄마가 말했고 나는 옆집에서 종종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곤 한다._〈사람들은〉

은영 씨와 같이 일하던 회사 근처에서 살 무렵에는 매일 무릎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무릎을 굽힐 때마다 무릎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서로의 무릎을 베고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무릎은 그저 닳고 있구나, 스스로 닳게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_〈사람들은〉

나는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중에는 그날의 기억으로 살거나 그날의 마음으로 사는 거라고. 그런 기억으로 살거나 그런 마음으로 사람은._〈사람들은〉

겨우 두부인데, 나는 생각했고 아무튼 좀 따뜻하게 느껴졌다._〈어른〉

무성했던 것들이 하나둘 말라가고 있었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 더 많은, 그런 길이었다._〈어른〉

4년째 나는 4개월마다 계약을 했다. 계약을 이어왔지만 늘 심장이 뛰곤 했다. 그랬기에 내가 더 열정을 쏟아부었다면 누가 믿어줄까. 초조하고 불안해서 그만하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누가._〈어른〉

넌 최선을 다해 잘 살아왔어.
울던 내게 소맥을 말아주던 아줌마. 자기는 맥주만 마시면서 소맥을 잘도 말던 아줌마._〈어른〉

안 되는 줄 알아도, 계속해왔고, 계속할 거고.
어떻게 그게 돼요?
그냥 하는 거지. 하면 좋으니까.
아줌마는 늘 행동으로 내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줌마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_〈어른〉

나는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조금 흘린 것은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도, 무언가가 슬퍼서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_〈어른〉

은영 씨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었고 보지 못할 때조차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은영 씨는 내게 그런 사람._〈어른〉

몇 바퀴쯤 돌았을까. 이제 나는 아줌마와 멀어져 다른 사람들하고 섞여 뛰게 되었고 중간에 힘이 들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너무 힘들 땐 그러는 게 좋다고, 아줌마가 알려주었다._〈어른〉

내년 봄도 은영 씨와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어두운 밤 산책길엔 어디선가 풍겨오는 은은한 라일락 향기를 맡고 주말이면 준경 씨네 밭에서 쑥을 캐고 쑥국 한 그릇과 오이지를 두고 소박한 밥 한 끼를 먹는 일. 은영 씨는 이른 열대야가 계속되던 어느 여름밤 조용히 사라졌다._〈여름밤〉

사는 것도 이렇게 그냥 두 시간짜리 높지 않은 산이었으면 좋겠다. 힐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_〈위해〉

너한테 집이 될 것 같아.
응. 우리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
짐이 될 것 같다고 말하려던 것이 ㅁ을 ㅂ으로 잘못 쳐 그에게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타였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는 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믿고 싶었으나 실제로 며칠이 지나자 역시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_〈이 세상 사람〉

생각해보면 나도 슬픔을 다루는 방식엔 나름 일가견이 있지만 기쁠 때 어쩔 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동안 기쁜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경험 부족. 말하자면 기쁨 부족. 나는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기쁜 거랑 행복한 건 아마 다른 걸 거야, 라던 보라의 말을 곱씹곤 했다._〈서울의 저녁〉

어떤 말과 마음들은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게 되곤 하니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 을…… 정말 해야 하는 순간에 하리라고. _〈서울의 저녁〉

다음. 그렇지, 웬만하면 다음이 있지. 다음이 있다는 마음으로 살았었고 꽤 오래 그 생각을 지웠었지만 이제 다시 다음을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다신 없을 것 같은 말이라고 확신했던 날들과 너무 행복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던 날들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 보라와 나는 그것들을 함께 나누고. 그러니까, 그런 사이가 되었다._〈서울의 저녁〉

현경은 잠깐 재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현경아. 잘. 잘 살아야 돼. 재한이 다시 한번 말했다. 응. 잘 살게. 현경은 그렇게 말하고 ‘예약’ 등이 깜빡이는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_〈파주에 있는〉

“넌 최선을 다해 잘 살아왔어”
섬세한 일상과 감정으로 쌓아올린 최선의 이야기들

이주란의 소설 세계는 촘촘한 일상과 미세한 감정으로 일군 박물관과도 같다. 그 박물관에 들어서면 너무나 사소해서 그대로 지나칠 법한 것들이 어느새 절박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변모한다. 이를테면 “어두운 밤 산책길엔 어디선가 풍겨오는 은은한 라일락 향기를 맡고 주말이면 준경 씨네 밭에서 쑥을 캐고 쑥국 한 그릇과 오이지를 두고 소박한 밥 한 끼를 먹는 일”(118쪽)이 단박에 일으키는 정서 같은 것. 미안함과 고마움,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믿음직스러움과 따스함 등 ‘정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독자들은 초대된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 속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쓴 뒤 고향도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로 향한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 사건이 그간 오랫동안 해온 고민을 해결한 셈. 리 단위의 고요한 풍경 속에 내려온 ‘나’는 그날 밤 엄마의 5평짜리 원룸에서 숨죽여 운다. 겨울 내내 그림을 그리며 엄마가 밥을 해주는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철물점에 심부름을 다니는, 일상을 지속한다. 얼굴을 보고 먹고 이야기하고 산책하고 마음을 나누는 나날 가운데 이윽고 찾아온 봄에는 재섭 씨를 만나게도 된다. 우연한 서울 동행 후 귀갓길에 ‘별일은 없고요?’라는 재섭 씨의 안부 메시지에 불현듯 눈물이 날 듯한 마음이 든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 덕였다. 나만 너무 쉽게 부서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_〈별일은 없고요?〉

〈어른〉 속 ‘나’는 남은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의 장례 후 고인의 짐을 정리하고자 시골집에 머문다. 몇 해 전 우연히 알게 된 ‘아줌마’는 청계천 미싱사로 오래 일해온 정직하고 호방한 인물로 내 곁에 남아 힘이 되어준다. 계약직 사원인 나는 4년째 4개월마다 계약을 이어왔었다. 그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그래서 더 열정을 쏟아붓고 “초조하고 불안해서 그만하지 않고 그럴수록 최선을 다했으나” 회사로부터는 당연히 보답받지 못했던 터다. 삭막한 서울살이를 그나마 아줌마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것. 할머니의 집을 정리할 엄두는 나지 않고 아줌마와 함께 울고 웃으며 못 다한 감정을 풀어낸다. “마음 놓고 울라는 거야”(104쪽). 아줌마는 소맥을 말아주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내 인생을 긍정해준 단 한 명의 어른.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114쪽)을 느끼며 아줌마가 알려준 방식으로 나는 달린다. 힘이 들면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뛰는 것, 너무 힘들 땐 그러는 게 좋다는 것.

이야기는 끝나도 삶은 계속되듯, 떠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희망 쪽을 향해 있다. 이 무 자비한 세상에 맞서 “무자비한 따뜻함”(「어른」)을 전하는 그의 소설에 또다시 큰 신세를 입었다._오은(시인)


“떠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희망 쪽을 향해 있다”
상실 이후를 건너가는 단단한 발걸음

마치 한 편의 연작 소설처럼 각 단편은 다양한 상처와 상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사람들은〉은 엄마의 죽음을 겪은 ‘나’를, 역시나 엄마를 잃은 뒤 찾아와 신세를 지고 떠난 전 직장 동료와의 며칠을 담았다. 〈서울의 저녁〉은 객지에서 20대를 함께한 친구의 기일에 모인 이틀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 사람〉은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인 ‘그’에 관한 서류에 답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20년간 수없는 이사를 하고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살고 있지만, 지옥 같은 기억이 점령한 ‘나’에게 일상의 평화는 간절하다. 〈위해〉는 불우한 환경 탓에 어려서부터 뭔가를 아예 꿈꾸지 않는 법을 익혀온, 그게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에 길들여졌던 내가 어느 날 어쩌면 어릴 적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웃집 소녀와 함께한 하루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소설들이 단순히 상실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 건 이주란 특유의 소설적 태도 덕분일 터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슬픔 속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지나가고 조금은 고요해진 뒤의 상태나 감정에서 출발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상실이나 슬픔은 어느 시기, 누군가 혹은 어떤 감정이 들고 나는 삶의 심상한 흔적이다. 〈별일은 없고요?〉 속 엄마가 “새집이어도, 아무튼 언젠가 그 방에서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어”(25쪽)라고 하는 말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살고 죽는 것이 한 길 위에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작별한다. 그럼에도 그 길 위의 모든 발걸음은 결국 희망 쪽을 향할 수밖에 없음을 이주란의 소설은 세세히 일깨운다. 천천히 흘러가는 삶을 따스하게 바라보며 기어이 ‘다음’이 있다고.
남편의 죽음 이후 몇 달 만에 세상으로 외출한 ‘현경’이 옛 연인을 만나는 하루의 여정을 담은 〈파주에 있는〉 속 마지막 당부는, 그래서 다음 행보 앞에 선 우리를 향한 작가의 응원처럼 읽힌다.

현경은 잠깐 재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현경아. 잘. 잘 살아야 돼. 재한이 다시 한번 말했다. 응. 잘 살게. 현경은 그렇게 말하고 ‘예약’ 등이 깜빡이는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_〈파주에 있는〉

작가정보

저자(글) 이주란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장편소설 《수면 아래》, 중편소설 《어느 날의 나》가 있다.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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