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절에 버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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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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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서로를 부양했고, 부양하는 세 모녀에 대한 소설 세 편과 작가 이서수의 ‘딸 같은 엄마’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담고 있다. 출가를 결심한 엄마와 절에 가는 모녀의 여정을 담은 「엄마를 절에 버리러」, 화가 나면 늑대로 변하는 여자에 대한 소설을 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자가 격리를 위해 엄마와 딸 단둘이 모텔로 떠나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세 편의 소설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노동과 돌봄의 차원에서 가감 없지만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에세이 무지개떡처럼
해설 살짝 귀엽고 한없이 현실적인 ‘엄마’의 변신담 - 안서현
엄마, 우리는 가진 게 너무 없잖아. 아버지가 집도 안 사놓고 쓰러져버렸잖아. 그나마 있는 돈도 병원비로 다 까먹었잖아. 엄마는 종일 아버지한테 붙잡혀서 어미 귀신 같은 몰골로 살고, 나도 종일 일하느라 새끼 귀신 같은 몰골로 살았잖아. 우리가 귀신이었잖아. 그치? 근데 엄마, 이게 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래. 내가 이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게 당연한 거래. 청약 적금까지 해약하고, 집도 없이, 노후 대비도 전혀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갚아야 할 돈만 생각하며 기계처럼 일하는 게 당연한 거래.
_「엄마를 절에 버리러」, 27쪽
끝없이 이어지는 빚을 갚다가 모든 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의 가족을 내다 버리고 싶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엉뚱한 역에 내렸고, 난생처음 동작대교를 걸으며 나에게 가족을 버릴 만한 결단력이 있는지 고심했다. 우리가 가족으로 맺어져 있는 게 슬프고 한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더라도 부모와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서로를 아예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가족으로 만나, 이번엔 돈이 아주 많은 가족으로 만나 서로에게 든든하고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었다. 돈이 많으면 그런 가족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_「엄마를 절에 버리러」, 32~33쪽
어쩌면 엄마의 인생이 그런지도 모른다. 천 원짜리만 간간이 당첨되는 인생. 새 스크래치 복권을 받아서 이번엔 당첨될지도 모른다고 간절하게 소원하는 인생. 그런 인생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끝까지. 당첨 없이 소원만 비는 인생이 끝까지. 엄마가 내 이름을 김소원이라고 지은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이려나. 소망을 담아서 간절하게 뭔가를 바란 것이려나. 그 소망이 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_「엄마를 절에 버리러」, 41쪽
엄마와 로맨스라는 단어는 정말 안 어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딸은 어쩐지 불순하다. 그래도 엄마와 모텔도 아니고, 엄마와 로맨스는 그나마 낫지 않나. 엄마는 아버지를 제외하곤 평생 아무하고도 연애를 못 해봤을 거다. 나 역시 로맨스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와서 우리에게 로맨스가 필요할까? 필요 없다. 나는 엄마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나만 있으면 될까. 공원 벤치에 앉아서 바람 부는 운동장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엔 무엇이 가득 차 있을까. 그리움이나 외로움이라면, 그래도 나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63쪽)
너 비둘기 싫어하지 마. 물 먹는 친구를 기다려 주는 걸 보니 인간과 다를 바가 없네.
그럼 엄마도 쥐 싫어하지 마. 쥐도 기다려줄지 모르잖아. 바퀴벌레도 싫어하지 마. 바퀴도 기다려줄지 모르잖아.
바퀴는 안 기다려줄걸.
모르지.
징그럽다. 바퀴도 친구를 기다려주면 어쩌니.
미워할 게 없네.
우리는 동시에 서글프게 웃었다.
_「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77쪽
제가 이 서류들이 왜 필요하냐면요, 선생님, 이런 형편에 제가 더 살아서 뭐 하겠어요. 애들한테 짐만 되지. 근데 제가 지금 겨우 예순넷이에요. 요즘엔 수명이 길어져서 100세까지 산다면서요. 앞으로 삼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건데, 우리 애들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요. 생각해보세요, 선생님. 그 애들이 일흔이 되어 서도 저를 부양해야 해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 애들이 지금 저보다 더 나이 많은 노인이 되더라도 저를 부양해야 한다고요. 그래서요 선생님, 저는 꼭 장애인이 되고 싶어요. 정신장애인이요. 장애인이 되면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준다면서요. 그러려면 그 서류들이 꼭 필요해요.
_「있잖아요 비밀이에요」, 112쪽
서한지는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며 가이드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경멸도 아니고 무시도 아닌 그것은. 존중으로 포장된 업신여김을 느꼈다면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시간이 한참 흘러 서한지는 직장 동료 이오선이 확진자 남편과 두 마리의 반려견을 집에 두고 나와 머물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을 때, 예전에 보았던 에어비앤비 숙소를 선뜻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동유럽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보였던 태도가 이해되었다.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128쪽)
김월희는 곧 월셋집으로 이사할 것이고, 서한지는 이오선을 골탕 먹일 궁리를 하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할 것이고, 차기훈은 여전히 얼굴을 모르는 민해연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주말. 확진자 폭증. 날씨는 점점 따듯해지다가 더워지고, 그들은 한여름에 미지근한 소주를 마시면서 소주가 언제 이렇게 독해졌지, 하고 말하며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할 것이다. 그거면 된 것일까. 서한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월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도 벌레 같지 않고, 아무리 봐도 사람 같은 엄마의 얼굴을.
_「있잖아요 비밀이에요」, 132쪽
■■■ 해설
‘가족’이라는 단 한 마디로 독자들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려 하던 과거의 수많은 이야기들과 달리, 이 이야기는 ‘가족’이 아니라 눈을 돌려 ‘경제’가 인물의 욕망이자 사건의 원인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깨닫게 한다, 사실은 언제나 ‘경제’가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 ‘가족 서사’가 아니라 ‘가정 경제 서사’의 시대인 것이다.
_안서현 (문학평론가)
인생의 룰렛에서 불행이 당첨되더라도
당첨 없이 소원만 비는 인생이 끝까지 가더라도
『엄마를 절에 버리러』에는 세 명의 엄마와 세 명의 딸이 등장한다. 첫 번째 모녀, 「엄마를 절에 버리러」의 딸은 어린 시절부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십대 시절 친구들에게 콘돔을 팔아 번 돈으로 대학에 갔고, 연애보다는 일, 결혼이 아니라 아파트를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모든 게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기나긴 투병 생활과 오래된 가난에서 ‘아버지를 해약’하는 대신 평생을 모은 적금을 해약하기를 선택한 후 딸에게 남은 건 갚아야 할 빚과 육십대가 된 엄마뿐이다. 그런데 아빠의 장례식에서 엄마가 난데없이 절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다. 빚과 엄마가 있는 삶과 빚뿐인 삶. 무엇이 더 나은지 결정하지 못한 채로 딸의 ‘엄마를 버리러’ 가는 길이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려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여기까지 온 김에 바다부터 보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는 엄마의 표정이 무겁고 진지해서 나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배낭을 품에 안고 두 손을 맞잡았다. 엄마의 주름진 손가락과 검버섯 핀 손등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문득 우리 가족의 말로가 왜 이렇게 된 걸까 싶어서 코끝이 시큰거렸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 32쪽)
두 번째,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의 모녀는 단둘이 산다.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30만 원, 붉은 벽돌로 지은 다가구 주택 1층이 그들이 사는 곳이다. 딸은 퇴근 후 부업으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쓴다. 월세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아 공모전에 지원하고 밤을 새워 소설을 쓰는 일도 부지기수다. 소설 쓰기를 좋아하지만 돈이 되기 때문에 쓴다. 엄마는 딸의 소설을 전부 읽는 것으로 딸을 응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딸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읽어보겠냐며 제안한다. 엄마는 배움이 짧은 것이 평생의 콤플렉스라 딸의 소설뿐만 아니라 책, 잡지, 티브이까지 섭렵하며 온갖 지식을 배웠다. 그런 엄마가 쓴 소설의 제목은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화가 나면 늑대로 변하는 육십대 여성 ‘김수련’의 사랑 이야기다. 딸은 엄마의 이야기를 읽고 당황한다. “왜 하필 늑대로 변하는 여자와 과거엔 남자였던 여자의 사랑 이야기인가” 싶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김수련’은 엄마의 분신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나는 문서가 열리길 기다리며, 은빛 털을 휘날리는 암 늑대로 변한 엄마를 상상했다. 그 등에 올라타 털을 꼭 쥐고 있는 어린 나의 모습도……. 엄마가 달릴 때마다 나는 위아래로 들썩이고, 엄마의 털을 더욱 세게 거머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함께 가려고. 바람을 가르며 우리는 함께 달린다.
눈을 뜨니 엄마가 쓴 사랑의 세계가 화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85쪽)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는 엄마 ‘김월희’와 모텔로 떠나는 딸 ‘서한지’의 이야기다. 호텔이 아니라 모텔이고, 호캉스가 아니고 자가 격리를 위해서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던 어느 날 ‘김월희’와 함께 사는 사위 ‘차기훈’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다. ‘차기훈’은 정부 방침에 따라 자택 치료를 해야 했는데 화장실이 하나뿐인 것이 문제가 된다. 확진자인 ‘차기훈’을 집에서 내보낼 수도 없고 완전한 격리도 불가능한 상황. ‘서한지’는 서둘러 자가 격리자를 위한 숙소를 알아보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 결국 그들이 향한 곳은 대학가 근처의 저렴한 모텔이다.
서한지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김월희가 끄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서한지는 문득 김월희가 낮 동안 모텔 방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해졌다. 서한지는 김월희에게 물었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김월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_「있잖아요 비밀이에요」, 130쪽
듣기 싫은 음악을 참고 듣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엄마를 절에 버리러’ 가는 길이란 애초부터 시작된 적이 없다. 딸은 엄마와 함께 회를 먹어야지 결심하고, 밤이 되면 함께 불꽃놀이를 하기 위한 폭죽 세트를 사고, 배낭에는 속옷을 챙긴다.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처음부터 여행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부양을 받던 딸은 이제 ‘엄마의 엄마’가 되어 엄마를 부양한다. 어느새 뒤집힌 부양 관계에서 엄마는 딸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딸은 엄마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우리의 모녀는 이러한 ‘다정한 책임감’을 돈과 경제라는 현실적인 이야기 뒤에 숨김으로써 이전의 전형적인 가족 서사와 구분되는 ‘가정 경제 서사’를 보여준다.
이서수의 소설에는 감정적인 분노도, 울부짖음도 없다. 건조하게 나열된 불행의 상황은 “주거와 노동과 지갑 사정이 곧 인물 자신”(해설 안서현)이 되고 마는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렇듯 집도 없고, 노후 대비는 꿈도 못 꾸고, 복권은 사는 족족 천 원짜리만 당첨되곤 하는 ‘현실적인 소설’이지만, 팍팍한 현실을 살게 하는 ‘설탕 한 숟갈’이 이서수의 소설에는 있다. 이서수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 즉 “엄마의 귀여움이라는 치트키”(해설 안서현)를 발동함으로써 현실의 쓴맛에 고통스러워하는 독자의 손바닥에 ‘설탕 한 숟갈’을 올려준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아주 많이 후회해도 된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책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진. 그걸 깨닫고 나면 후회가 아무런 소용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완벽한 삶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뜻이다.
_「무지개떡처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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