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2023년 05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4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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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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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북쪽인데요.”
서울 한복판에서 자신의 출생지를 북쪽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은 곧바로 북한=이주민을 떠올릴 수 있을까? 다문화 100만 시대라 해도 북한 이주민의 수는 약 3만 여 명, 한국 사회에서 소수 중의 소수이기에 그 접점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게 된 북한이탈주민의 이야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인기가 있다. 다만 소비되는 이야기가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북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탈북 과정 같은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환된다. 하지만 한국으로 이주해 온 북한 이주민의 ‘현재’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조금은 특별한 연애사와 결혼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냈다.
홍콩영화와 중국 드라마, 대만 가수에 빠져 중국어 특기자 전형으로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에 입학한 작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박찬욱 감독이 수학한 철학과에 입학한 ‘민’을 만나게 된다.
‘민’은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나 1997년 탈북했고,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지내다 2005년 양친과 누나 두 명, 남동생 그리고 사촌 누나 두 명과 함께 한국으로 온 이주민이다. 둘은 5년 연애 끝에 결혼했고 지금은 북한 이주민 2세인 딸아이를 함께 양육하고 있다.
저자 김이삭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장르소설 작가이자 번역가이다. 작가의 첫 장편인 『한성부, 달 밝은 밤에』는 프랑스에 수출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 E-IP 마켓 피칭작으로 선정되어 드라마화 계약을 체결하였다.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는 작가 김이삭의 첫 에세이에는 북한 이주민과 맞닿은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part1. 만나서 반갑습니다
#01 덕후의 중문과 진학 014
#02 취업준비냐 학과 원어연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018
#03 고향은 어디예요? “북쪽인데요.” 022
#04 중국문화과에서 만난 사람들 028
#05 민의 고백 032
#06 토끼는 토끼굴 근처의 풀을 먹지 않는다 036
#07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040
part2. 본업은 ‘연애’입니다
#08 민과 나 048
#09 갑자기 나타난 교회 누나 053
#10 본업은 ‘연애’입니다 057
#11 베트남 여행 063
#12 민의 친구들 070
#13 북한 이주민도 다 같지는 않더라 073
#14 조금 달랐던 명절 풍경 075
#15 다른 곳에서의 삶 079
#16 사랑의 힘이었을까? 085
#17 청혼 089
part3. 비슷하게, 가끔은 다르게 삽니다
#18 소수자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 098
#19 도토리묵과 평양냉면 103
#20 흔하지는 않은, 배우자의 가족 106
#21 북한 이주민 남성이 한국에서 취업하기 112
#22 아빠 육아 보조금을 허하라 117
#23 제사는 안 지냅니다만 122
#24 추억의 음식 ‘두부밥’ 127
#25 딸이 뭐가 어때서 129
prat4. 그렇게 가족이 된다
#26 한국인 번역가 김 여사의 눈물 136
#27 첫 번째 앤솔로지를 출간했을 때 143
#28 북한 이주민 2.0 세대 149
#29 대만으로 떠난 가족 여행 155
#30 사랑의 불시착 159
#31 배우자의 담당형사 162
#32 앞으로 가족 모임은 167
(27쪽) 나는 ‘북쪽’이 ‘북한’을 말하는 줄 정말 몰랐다. 북한은 ‘한민족 국가’나 ‘통일 국가’라는 어휘를 듣지 않고서야 내 머릿속에 떠올릴 일이 없는 나라였으니까. 당시 내게 북한이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닌, 허상의 공동체였다고 할까? 사실 이게 더 문제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재하는 현실임에도, 내가 인식하는 세상에서 ‘북쪽’은 지워진 존재였으니까.-「고향이 어디예요 “북쪽인데요”」 중에서
(44쪽) 누군가에게는 민이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가 ‘두 살 연상’의 선배라는 것보다 ‘남한 여성’이라는 게 더 신기했던 것 아닐까? 나와 민은 까치와 까마귀였다. 남들에게 (심지어는 북한 이주민에게도) 우리의 연애는 종(?)을 뛰어넘는 결합처럼 보였나 보다. 우리는 그저 연애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중에서
(61쪽) 이동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마음의 거리는 좁혀졌다. 분주히 움직인 건 다리만이 아니었으니까. 나와 민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민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일(함경북도 산골에서 자란 민의 어린 시절은 충청남도 산골에서 자란 내 모친의 어린 시절과 매우 흡사하다.), 좋아하는 영화 등 생각나는 화제를 모두 끌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부터였다. 민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된 게. 오늘도,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심지어는 내년에도 당연히 민과 함께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본업은 ‘연애’입니다」 중에서
(74쪽) 알고 보니 민의 친구는 고향이 평양이었다. 함경북도 산골에서 자란 민과는 살아온 환경이 달랐기에 북한에 대한 기억도 전혀 달랐던 거였다.
나는 ‘북한 이주민 = 고난의 행군 때 생계 때문에 탈북한 함경도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민의 친구가 나타나면서 모든 북한 이주민이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뒤에도 더 많은 이들이 나타나 나의 고정관념을 부숴주었다.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해 사랑의 도피로 탈북한 사람도 있다.) -「북한 이주민도 다 같지는 않더라」 중에서
(104쪽) (지금도 민은 도토리는 물론 다른 묵 종류도 일절 먹지 않는다) 민과 사귀는 동안 그가 북한 이주민이라는 걸 실감(?)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때는 확실히 와닿더라. 어렸을 때 먹고 체해서 혹은 그냥 맛이 없어서, 가 아니라 (식량난으로) 먹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질리도록 먹어서, 라는 답이었으니까. 지나치게 강력한 이유였는지 그 뒤로 그가 도토리를 먹지 않는다는 걸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도토리묵과 평양냉면」 중에서
(120쪽) ‘북한 이주민 출산 지원 제도’만 해도 그렇다. 아빠는 지워지고 엄마만 남아 있지 않은가.(…)하지만 임신·출산·양육을 오롯이 여성의 일이라고만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민은 아이를 키울 때 양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따로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제도라는 건 지원을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도움이 긴요한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닐까? -「아빠 육아 보조금을 허하라」 중에서
(125쪽) 북한 이주민 중 상당수는 모일 가족이 없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뤘다고 해도, 두고 온 가족을, 헤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평화통일이 된다면, 혹은 종전이 된다면, 남북 교류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그때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도 덜해지겠지. 하지만 그날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마냥 외롭게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그럴 때면 순대를 만들어 먹으면서, 왁자지껄 복작복작한 명절을 보낸다.-「제사는 안 지냅니다만」 중에서
(153쪽) 무슨 일을 겪을 때 자신의 사회적 소수성을 ‘곧장’ 떠올린다면 그건 그 소수성이 사회에서 심한 배척을 당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래서 나는 딸과 시조카가 반사적으로 자신이 북한 이주민 2세대라는 걸 떠올리는 일은 영영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딸아이와 시조카가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성을 잊거나 부정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쉬이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북한 이주민 2.0세대」 중에서
(162쪽) 한국에 사는 북한 이주민은 자신의 담당형사(신변보호관)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현황을 알려야 한다. 예전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담당형사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들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자기를 감시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담당형사라면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우자의 담당형사」 중에서
“어쩌다가 이 둘은 사랑에 빠졌을까?” 이 책은 ‘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여주’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남녀북남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로맨스 콘텐츠는 정복의 서사이자 전복의 서사이다. 판타지가 집약된 캐릭터라할지라도 ‘메이드 인 노스(North) 코리아’ 딱지가 붙는 순간 욕망의 대상이 되기 힘들었을텐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당시(2019년) 남북화해 무드에 힘잆어 큰 인기를 끌었다. 현실판 남녀북남의 스토리는 드라마처럼 달콤하지 않다. 단짠단짝 사이에 매운 맛과 ‘현실 자각 타임’이 수시로 찾아온다.
“내가 여성이라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민은 북한 이주민이라서 조금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떤 문제에서는 내 상황이 좀더 나았고, 어떤 문제에서는 민의 상황이 더 나았지만, 오십보백보였던 것 같다.”(책 115쪽, 「북한 이주민 남성이 한국에서 취업하기」 중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느꼈던 사회적 제도나 관습이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또는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명절에 친지와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북한 이주민들 중에는 북한에 있는 가족과 함께할 수 없어 오히려 외롭고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구직 활동에서 북한 이주민이 겪을 수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규율은 명문화된 것도 있고, 암묵적인 것도 있다. 항공업계에는 취업이 불가하다든지, 중국 여행을 가지 말라든지, 경찰이 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틀림없이 면접에서 떨어질 거라든지…. (요즘 북한 이주민 취업 설명회가 경찰서에서 열리는데, 북한 이주민은 경찰이 될 수 없다니, 블랙코미디인가?)” (책 162쪽, 「배우자의 담당형사」 중에서)
이 책의 5장에는 미니인터뷰가 실려 있다. 작가는 서술자인 자신의 목소리만 담으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 이주민인 가족의 목소리도 함께 담으려고 했다.북한 이주민 1세대와 1.5세대 그리고 2.0세대까지 그들의 현재를 전달하고픈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북한 이주민이 하는 말 중에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라는 표현이 있다.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은 남한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종(?)을 뛰어넘은 이 둘이 발명한 ‘사랑’은 그래서 더 소중해 보인다. ‘까치’와 ‘까마귀’가 함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작가정보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 제1회 황금가지 어반 판타지 공모전에서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로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근간)을 썼고,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판소리 에스에프 다섯 마당』 등 여러 앤솔로지에 참여하였다. 자전적 에세이로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가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대만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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