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페루 여인의 편지
2023년 04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4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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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존재의 즐거움, 많은 눈먼 인간들이 잊어버린, 심지어는 아예 모르고 지내는 이 즐거움, 내가 있다,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이 감미로운 생각, 이 순수한 행복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즐길 줄 알고, 그 가치를 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 위에 떠 있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해안에 있는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우리를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카시크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집들은 태양의 나라에 있는 집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름다움으로 말하자면 태양의 나라에 있는 집들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하나같이 매우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집안에 있는 신기한 물건들로 말하자면 여기 집들이 훨씬 훌륭합니다.
사랑하는 아자, 오랫동안 나는 여성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멸의 이유를 알아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제야 겨우 그 이유를 알 것 같군요. 그건 바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여성의 실제 모습 사이에 너무도 큰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여성들에게는 많은 장점과 미덕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원래 천성적으로 그렇게 타고나지 않았다면 이곳 여성들은 결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여성 교육은 그런 목표와 전적으로 상충되니까요. 정말이지 이곳의 여성 교육은 프랑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순들 중 최고의 걸작입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영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인기에 영합해 다른 작가들에 의해 속편까지 출판되었다. 18세기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던 두 가지의 문학적 전통, 즉 애정소설의 전통과 이국취미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조합시킨 데 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질리아는 페루 잉카제국의 방계 공주로 태양신을 섬기는 처녀들의 수장이며 또한 페루의 왕위 계승자 아자와 정혼한 사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 그녀가 살고 있던 태양 사원에 난입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혀 유럽으로 끌려간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녀는 약혼자 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그들의 행복을 회고하며, 그녀의 사랑과 그리운 마음을 토로한다. 부재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여주인공의 편지는 멀게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작품들 및 중세의 수녀 엘로이즈의 편지의 전통을 이으며, 가깝게는 17세기 말 큰 인기를 끌었던 기유라그(Guilleragues)의 ≪포르투갈 수녀의 편지≫를 연상시킨다.
그라피니 부인의 소설이 ≪페르시아 편지≫, ≪캉디드≫ 등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편지의 발신인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질리아는 여성인 까닭에 남성과는 관심 분야도 다르고, 시각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각의 차이는 바로 여성 문제다. ≪페르시아 편지≫의 경우, 여성 문제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페루 여인의 편지≫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프랑스 사회의 여러 현상 중 오직 여성 문제만이 두 개의 편지에 걸쳐 논의된다. 실제로 질리아는 ‘편지33’과 ‘편지34’에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여성 폄하 현상에 대해 관찰하고 나름대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편지들에서 그녀는 불합리한 여성교육,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여성에게 불공정한 결혼 제도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여기에는 여성인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녀는 초기 습작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교육의 천박함을 실감했으며, 파경으로 끝난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특히 남편에 의한 아내 학대를 묵인하면서도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기를 기대하는 사회 통념에 대한 그녀의 비판에는 직접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예리함과 통렬함이 엿보인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이 소설이 프랑스 문학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소설의 하나로 인정받게 된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이러한 심층적 분석에 기인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프랑수아즈 드 그라피니
(Fran?oise d’Issembourg d’Happoncourt de Graffigny, 1695∼1758)
1695년 당시 독립국이었던 로렌 공국(현재 프랑스 서북부 로렌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712년 같은 지방의 귀족인 프랑수아 위게 드 그라피니(Fran?ois Huguet de Graffigny)와 결혼했으나 금전 문제와 남편의 폭력 문제 등으로 불화했다. 이들 부부는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유아기에 죽었고, 1725년 남편 역시 7년간의 별거 생활 끝에 사망했다.
1740년대 초부터 그녀는 켈뤼스(Caylus) 공작, 샤를 뒤클로(Charles Duclos) 등의 문인과 교류했으며 1745년에는 그들의 권유에 의해 <스페인 이야기(La Nouvelle espagnole)> 라는 제목의 중편과 <아제롤 공주(La Princesse Azerolle)>라는 요정 이야기를 발표했다.
1747년 발표한 ≪페루 여인의 편지≫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는데 이러한 인기는 이 작품이 초판 이후 30년 동안 46판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749년에는 위가리 드 라마르슈 쿠르몽(Hugary de Lamarche-Courmont)에 의해 속편인 ≪아자의 편지(Lettres d’Aza)≫가, 1797년에는 모렐 드 뱅데(Morel de Vind?) 부인에 의해 결말 부분에 데테르빌과 질리아의 결혼을 보충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페루 여인의 편지≫는 1835년까지 총 70판 이상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그녀의 작품은 남성 중심의 문학사에서 배제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녀는 주로 볼테르의 사생활을 다룬 편지들의 저자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대두하면서 ≪페루 여인의 편지≫는 여성의 관점에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한 매우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20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문학의 정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1985년부터 볼테르 재단에 의해 출간되기 시작한 그라피니 부인의 편지들은 당시의 문단과 풍속 및 여성 생활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서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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