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2023년 04월 13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4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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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8340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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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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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표현 등 작품 전반에 걸쳐 수정 보완 작업
2022년 한국 소설장에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소설가 정보라의 호러/SF/판타지 소설집 《저주토끼》가 래빗홀에서 전면 개정판을 선보인다. ‘만두 파동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표제작 〈저주토끼〉는 날카로운 분노를 생생하게 살리고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맥락이 선명히 드러나기를 바라는 작가의 뜻을 충실히 반영하여 결말 부분 일부를 최초 창작 버전으로 복원하였다. 또한 수록작 전반에 걸쳐 외국어 표기, 인물 간 대사와 말투, 그리고 일부 혼재되었던 명칭이나 부정확한 표현 등을 수정 보완했다.
정보라의 소설은 ‘예쁘지 않다’. 수록작 10편은 각각 거친, 미친, 기기괴괴한 면면을 가지고 있다. 욕망하고 배반하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타인에게 살의를 보이는 악다구니들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쾌감과 위로에 가닿게 된다. 《저주토끼》는 냉혹한 현실과 기괴한 환상을 자유자재로 겹쳐, 독자들을 익숙한 일상 속 낯선 공간으로 초대한다.
머리
차가운 손가락
몸하다
안녕, 내 사랑
덫
흉터
즐거운 나의 집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재회
작가의 말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대대로 저주 용품을 만드는 우리 집안의 불문율이다. 토끼는 단 한 번의 예외였다.
(〈저주토끼〉)
그녀는 길에 무작정 앉는다. 가느다란 목소리의 주인공도 옆에 앉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앉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 반지, 굉장히 중요한 건가 봐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녀는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둥글고 단단하고 매끄러운 물체를 만져본다.
“아……, 예.” (〈차가운 손가락〉)
“예? 하지만…… 피임약은 임신을 피하자는 약이잖아요?”
그녀는 미약하게 반박했다. 그녀의 말에 의사는 그 새파랗고 새까만 눈초리로 찔러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남용하다 부작용 생긴 건 본인 잘못이죠. 약이란 게 그렇게 맘대로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럼 이젠…… 어떻게 하죠?” (〈몸하다〉)
여우가 고개를 들고 마치 사람처럼 남자에게 말했다.
“나를 풀어주시오.”
남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동시에 남자는 덫에 끼인 여우의 발목에서 번쩍이는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여우는 피가 아니라 황금과 같은, 황금처럼 보이는 것을 흘리고 있었다. (〈덫〉)
그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했고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동네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런 동네를 찾아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만 그 건물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즐거운 나의 집〉)
“누구세요?”
공주가 물었다.
“왜 이 시간에 내 방에 들어와 있는 거죠?”
왕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대답했다.
“나의 신부를 만나러 왔습니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아름다워.”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 말하자면 뭔가 감상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폴란드도, 묶인 남자도, 나 자신도.
그리고 남자는 할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재회〉)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토끼는 단 한 번의 예외였다.”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는 마지막 해결책
“복수라기보다는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언제나 반드시 수반될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입니다.” (정보라 인터뷰에서)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고 중국, 대만, 일본, 프랑스, 스페인 등 전 세계 20개국 번역 계약이 이루어지며 한국 소설장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소설가 정보라의 호러/SF/판타지 소설집 《저주토끼》가 2023년 토끼의 해, 인플루엔셜 문학 브랜드 ‘래빗홀’에서 전면 개정판을 선보인다. 책을 찾을 수 없는 기간을 최소화하고자 하여 신속하게 개정판을 펴내면서도, 작가의 사전 작업과 더불어 밀도 있는 수정 보완 과정을 통해 작품 전반을 다듬었다.
익숙한 일상에 틈입하는 기괴한 환상
거칠고 격발된 감정들이 전하는 묘한 위로
어느 날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막 나오려 할 때였다.
“어머니.”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하나 튀어나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
그녀는 ‘머리’를 한참 동안 가만히 쳐다보았다. 물을 내렸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는 사라졌다.
그녀는 화장실을 나왔다. (〈머리〉, p. 41)
여러 민담과 설화, 동화, 전설의 형식을 차용한 정보라의 이야기는 마치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오싹하지만 멈출 수 없는 강렬함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몇몇 이야기는 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무섭다”(이종산)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작가는 익숙한 일상 풍경 속에 낯선 세계로 향하는 차원의 문을 세워두고 우리를 초대한다. 그 문 앞에서 ‘웰컴 투 정보라 월드’라는 표지를 든 친절한 얼굴의 화자를 따라서 우리는 기꺼이 어두운 길에 들어서고 함정에 걸려든다. 그곳에 숨겨진 반전들이 튀어나올 때면 우리는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혹은 등장인물의 가지고 있던 상처를 깨달으며 이로 인한 그들의 깊은 슬픔에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보라의 소설은 ‘예쁘지 않다’. 수록작 10편은 각각 거친, 미친, 기기괴괴한 면면을 가지고 있다. 욕망하고 배반하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타인에게 살의를 보이는 악다구니들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를 넘어선 어떤 이해에 도달한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라고들 한다. 과연 이 이야기가 우리가 사는 오늘보다 잔인하다 말할 수 있을까? 매일의 놀라운 뉴스와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뒤틀린 이야기들은 묘한 쾌감과 위로를 전한다.
사필귀정: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감
통쾌한 복수 뒤에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그가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 합당한 결말이라 해도, 그는 밀려오는 상실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주술과 환상과 잘못된 믿음에 빼앗겨버린 어린 시절, 매일이 생사의 기로였으나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어져버린 그때의 오랜 고통과 절망을 애도하며 그는 폐허가 된 마을에 멈추어 서서 울었다.
(〈흉터〉, p. 252)
소설집 《저주토끼》의 키워드는 ‘복수’다. 그런데 원수를 갚는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을뿐더러, 복수를 완수하고서도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특이점이기도 하다. 경쟁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비열한 악성 루머를 냈던 양조 회사 사장도(〈저주토끼〉), ‘대안적인 삶’을 외치며 위선을 떨던 남편도(〈즐거운 나의 집〉), 욕심에 빠져 가족을 비극에 빠뜨린 남자도(〈덫〉) 극단적인 파멸에 이르기는 한다. 일견 통쾌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에게 내려진 징벌은 그저 자업자득의 결과물일 뿐이며 상처받고 훼손당한 이들의 회복은 담보되지 못한다. 복수를 위한 저주는 되돌아오고, 폭력은 또 다른 값을 치르는 공동의 파국이 열린다.
인용된 정보라 인터뷰에서처럼 복수의 고리를 작용과 반작용, 이로 인한 그다음 차례의 반작용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흉터〉의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자신이 간절히 지키려던 이를 영영 잃게 되지만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그는 해가 뜨는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p. 252)한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 연인에게 배반당했던 공주는 다정한 절대자가 내미는 영생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며 담담하게 대답한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갈 테니까요”(p. 320)라고.
〈작가의 말〉에서 정보라는 이렇게 말한다. “책 전체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특별한 교훈이나 메시지는 없다.《저주토끼》는 환상호러 단편집이고, 환상호러 장르는 대중문학에 속하며, 대중문학은 교훈이나 가르침보다는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장르이다.” 하지만 이 책을 여는 우리는 낯설고 으스스한 세계의 재미에 빠져들며, 자신에게 상처 낸 이에게 손톱을 세우는 절박한 마음과 무너진 세계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굳센 용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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