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에스에프 다섯 마당
2023년 04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3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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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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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표현력, 사회비판적 소재,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 이번 앤솔러지에서는 현재 가장 활발한 SF 소설가로 작품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작가들이 한국의 판소리 열두 마당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다섯 마당을 SF 단편으로 변주했다. 곽재식 작가는 현전 판소리 중 음악적,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꼽히는 작품인 「춘향가」를 학교 교육 과정과 연계시켜 상상도 못 할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김이삭 작가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변강쇠가」에서 낭인(늑대인간) 소재를 뽑아내었으며, 김청귤 작가는 「심청가」의 배경과 부녀관계를 현실 SF로 뒤집어 새롭게 묘사해나간다. 또한 전혜진 작가는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의 삶과 권력욕에 물든 정치가들을 표현한 「적벽가」를 현대의 정치 상황과 선거로 풍자했으며, 박애진 작가는 고집불통에 구두쇠 옹고집 이야기인 「옹고집타령」을 스타 가수 호수의 이야기로 개작하여 완전히 다른 주제와 결론을 보여준다. 『판소리 에스에프 다섯 마당』은 한국인이기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때로는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판소리 작품들이 동시대 SF 작가들의 독특한 상상력과 만나 어떤 독창적인 단편소설로 재탄생했는지 얼마든지 기대해도 좋을 만한 단편 작품집이다.
한편 『다섯 가지 세계: 하드 SF 단편선』(가제), 『어느 노동자의 모험: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가제) 등 구픽의 장르 앤솔러지는 올해도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 줄거리
첫 번째 마당. 춘향가를 가장 재미있게 듣는 법(춘향가/곽재식)
프리랜서 피디인 ‘나’는 판소리 춘향가를 교육과정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에 열린 격렬한 반대 시위에 대해 취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춘향가가 그렇게나 중요한 작품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도중, 시위 참가자조차 이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하지 못하자 ‘나’는 춘향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취재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두 번째 마당. 낭인전(변강쇠가/김이삭)
천하절색인 옹녀가 혼인하는 남자마다 병사, 사고사, 효수 등으로 족족 죽어 나가자 혹여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마을 촌장은 옹녀를 멀리 쫓아내고 만다. 용기와 기백을 타고난 옹녀는 어떻게든 맞는 인연을 찾아 다시 혼인하리라 마음 먹고 길을 나서고, 산중에서 곱디고운 외모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세 번째 마당. 해사(심청가/김청귤)
땅은 오염되고, 간척지 농사를 위해 개량한 약품과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가 바다 역시 들어갈 수 없게 된 근미래. 농작물을 급속 성장시키는 약품 연구원이던 아버지가 실수로 시력을 잃고, 그런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던 ‘나’는 오염된 바다 연구를 위해 1인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들어가겠느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네 번째 마당. 눈 딱 감고 적벽강에 다이브(적벽가/전혜진)
적벽구 선거의 신, 무려 7선에 성공한 국회의원 유장락이 임기 중 청천벽력처럼 세상을 떠난다. 이 무주공산을 차지하기 위해 이민자의 자손인 동오당 손권지영과 명문가 출신이자 현 여당 국위당 조아만이 경쟁하는 가운데, 죽은 유장락의 참모 제갈영은 유장락이 후계자로 키우던 후보 유현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다섯 번째 마당. 호수의 여신(옹고집타령/박애진)
한때 슈퍼스타 가수였던 호수는 은퇴 후 팬들이 그의 이름을 붙여 사준 행성 호수로 떠났고 과거의 모습을 덧씌운 홀로그램 콘서트로 가끔 팬들과 만나고 있다. 새로운 도스 웜홀이 발견되자, 범우주항공국에서는 행성 호수에 우주선 정비소를 건설하기를 원하지만 호수는 그 누구도 자신의 행성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프리랜서 협상가 제레미는….
춘향가를 가장 재미있게 듣는 법 / 곽재식
두 번째 마당. 변강쇠가
낭인전 / 김이삭
세 번째 마당. 심청가
해사 / 김청귤
네 번째 마당. 적벽가
눈 딱 감고 적벽강에 다이브 / 전혜진
다섯 번째 마당. 옹고집타령
호수의 여신 / 박애진
“춘향가를 들으면 다른 판소리를 듣는 것보다 학생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강하게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잘 키우려면 우리나라 공교육에서는 반드시 춘향가를 가르쳐야 하고, 빼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춘향가가 뭐 어떻게 좋다는 건데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데, 춘향가를 듣고 나면, 다른 모든 과목의 성적도 같이 오른다고 합니다. 삶의 의욕과 적극성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성과 사교성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성실성, 온순함, 쾌활함, 긍정적인 삶의 태도 등등 사람의 성향을 측정하는 지표도 다들 좋아진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다른 판소리에는 그런 효과가 없고요?”
“춘향가만 그렇습니다.”
“엄청 이상하네요.”
“그래서 추가로 조사를 해 보려고 합니다.” _「춘향가를 가장 재미있게 듣는 법」(곽재식) 중에서
옹녀는 끙 하는 소리를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그런다고 포기할 옹녀가 아니었다. 매년 상부(喪夫)하며 송장을 치우면서도 다시 혼인하는 이가 누구던가. 바로 옹녀였다. 옹녀는 낙천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고, 누구보다 고집스러웠다. 어쩌면 하늘이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서에서 찾지 못한 인연을 삼도에서 찾으라고 말이다.
내 이번에는 아무와 혼인하지 않으리라. 제대로 된 낭군을 찾으리라. 마음씨는 비단결 같고, 용모는 천상 선인 같으며 수명은 삼천갑자 동방삭 같은 이를 찾아서 혼인하리라. 옹녀는 굳게 결심했다.
바위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데, 한 사내가 반대편에서 숨 가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멀리서도 훤칠함이 확연하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참으로 고운 용모였다. 나보다 곱겠구나. _「낭인전」(김이삭) 중에서
빚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은 한정적이라 도망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빚에 짓눌려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알았던 걸까. 아비는 온 동네에 내가 아비 대신 빚을 갚겠다고, 바다로 들어가 돈을 벌어 눈을 뜨게 해 줄 거라는 소문을 냈다. 나는 효녀 심청이었으니까, 사람들은 나를 안쓰럽고 가엾게 여기는 게 아니라 마땅히 그리할
자식으로 보고 아비를 칭찬했다. _「해사」(김청귤) 중에서
도플갱어 네트워크란, 우리의 의식 일부를 복제해서 업로드해 놓은 네트워크를 뜻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갈 수 없는 곳까지 가고,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열심히 사는 동안 자신의 도플갱어에게 게임 레벨업을 시켰다. 그리고 짧게는 하루에 몇 번에서 길게는 한 주에 한 번 정도, 우리는 그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우리의 복제와 ‘동기화’를, 소위 싱크를 한다. 어른들 세대만 해도 꺼림칙해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지금의 20대와 30대는 대부분 도플갱어 네트워크를 사용했다. 우리 도플갱어가 만나고 경험하는 감각은 그대로 우리 경험이자 감각이 되곤 했다. 그게 문제였다. 도플갱어 네트워크에 우리 후보님의 홍보 자료를 도배하고, 후보님의 도플갱어도 최대한 치장해서 내보낸다 해도, 네트워크에서의 경험이 현실에서 이질감을 주는 순간 기껏 쌓아올린 호감은 깎여 나가고, 자칫 “거짓말쟁이”라는 평판만 얻게 될 것이다.
_「눈 딱 감고 적벽강에 다이브」(전혜진) 중에서
행성 호수는 지구의 달보다 150퍼센트 정도 커서 행성치고는 작았다. 그러나 행성치고는 작을 뿐이지, 행성 호수에서 호수가 실제 사용하는 공간은 저택 하나 크기에 불과하니 정비소를 지을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저택에서 최대한 먼 곳에 짓겠다, 정비소 바깥으로는 일절 출입하지 않겠다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설득했으나 호수는 매번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범우주항공국 직원에 이어 페가수스 우주 정거장 함장까지 직접 그를 찾아가서 부탁해 보려 했지만 전부 행성 착륙 허가조차 얻지 못했다.
돈으로는 호수를 설득할 수 없었다. 은퇴 후 그는 예전 같은 히트곡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만들었던 노래들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판매되거나 리메이크되며 그에게 막대한 저작권료를 안겼다. 옛날에 지구의 어떤 가수는 집에 놀이공원을 만들었다는데, 호수는 행성 하나를 소유한 거부였다. _「호수의 여신」(박애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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