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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정지돈 지음
작가정신

2023년 03월 28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3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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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0263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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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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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이후 10년 간 독창적인 형식과 언어로 매번 새롭게 주목받아온 작가 정지돈의 첫 번째 연작소설집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이 출간됐다. 정지돈은 이번 연작에서 ‘모빌리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장소와 움직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어내며 다시 한번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과 그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소설집에 담긴 네 편의 연작은 파리와 서울을 배경으로 해‘나’와 그의 파트너 엠이 도시를 산책하고 또 뛰면서 겪는 일상적이면서도 기이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동시에 발터 벤야민의 산책부터 캡틴 아메리카의 달리기까지,‘모빌리티’에 대한 정지돈 특유의 매력적인 레퍼런스와 위트 있는 통찰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다소 생소한 용어인 ‘모빌리티’는 “움직임, 그것과 분리할 수 없는 움직임의 재현과 의미,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움직임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지돈은 이러한 개념을 소설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와 이동 혹은 움직임을 “A에서 B로 가는 것 이상을 의미”(안은별, 덧붙임)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그렇게 그가 소설 속에 담아내는 ‘모빌리티’에 관한 이야기들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나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그리고 소설과 소설이 관계 맺는 방식 등 인간과 세계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들을 전한다.
소설집에는 네 편의 소설에 더해 산책과 도시에 대한 작가의 에세이와 문화연구자 안은별의 ‘모빌리티’에 대한‘덧붙임’「생각의 열차」, 그리고 두 사람의 다정하고도 성실한 대화가 함께 실려 있다. 이 글들은 수록된 소설에 해설과 주석을 다는 방식이 아니라, 소설과 이어지며 ‘모빌리티’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이 책은 독자에게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던 새로운 움직임과 장소를 선사할 것이다.

호박돌은 집터 따위의 바닥을 단단히 하는 데 쓰는 둥글고 큰 돌을 말한다. 도시 건설 과정에서 무수히 깨지고 사라져간 이 돌들은 무의미하고 잡스럽게 여겨지거나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겐 이러한 여담이 세계를 지지하는 구성물처럼 여겨진다. 무슨 역할을 하는지 짐작하기 힘들고 진실 또는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때로는 실존하는지 여부도 불투명한 사물들, 기억들, 일화들의 우주. 걷기는 이러한 틈새를 마주하는 급진적인 행위다.
_에세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에서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p.6

「그 아이는 아주 귀여웠고 어렸기 때문에 인형을 보면 눈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 위해 눈알을 빼려고 했다」p.40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p.78

「내부순환」p.109

작가 에세이「시계 반대 방향으로」 p.141

환승: 덧붙임 「생각의 열차」_안은별(문화연구자) p.152

대화 정지돈*안은별 p.178

내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소설이 걷는 것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시 또한 마찬가지다. 시는 걸음을 영원한 행위로 만든다. 또는 순간으로.
P.9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엠의 말처럼 파리는 공유 킥보드로 가득했다. 바구니에 바게트를 실은 자전거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힘들게 페달을 밟지 않고 자기 차를 소유하지도 않고 걷지도 않는다. 정거장도 필요 없고 주차장도 필요 없고 아케이드도 필요 없다. (...)
이동 수단은 정치 체제다. 대의민주주의와 국민국가는 공유경제로 인해 와해될 것이다.
대신 거대 기업이 세계를 통합하고?P.18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엠은 운전대를 쥐고 있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망한 영국 비평가 스콧 딕슨의 기록에 따르면 야간 운전은 허공에 떠 있는 널빤지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 속도, 방향, 움직임의 감각은 송두리째 사라지며 엔진의 저음과 홍예의 속삭임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곧이어 나의 경계도 희미해진다. 스콧 딕슨의 글은 운전이 인류의 필수 기예가 되기 전 그 낯섦을 담은 최초의 기록 중 하나이다. 엠은 인공 불빛이 존재하지 않는 이국의 해안 마을에서 20세기 초 야간 운전자들의 시계 속으로 들어갔다.
P.59 「그 아이는 아주 귀여웠고 어렸기 때문에 인형을 보면 눈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 위해 눈알을 빼려고 했다」

엠은 10구로 돌아와 카페에서 커피와 뺑오레쟁을 먹었고 집으로 오는 길에 편집숍에서 데님을 샀다고 말했다. 평소에 눈여겨봐둔 일본 브랜드의 오카야마산 데님이었는데 팔더라구.
한국보다 더 싸게?
아니, 더 비싸게.
그런데 왜 샀느냐고 묻자 엠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소비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물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허영심 같은 거야?
아니. 지정학. 엠이 말했다.
P.83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

들뢰즈가 말한 좌파의 조건이 떠올랐다. “좌파라는 것은” “멀리 내다보는 것”이다. 그에게 좌파는 거리의 문제였고 지정학적 인간이었다. 멀리 있는 사람, 멀리 있는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반면 우파는 자신의 앞마당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은 좌우 모두 보수주의자다……. 너는? 흐릿한 형체의 엠이 묻는다. 나는 나를 위협하던 백인의 금발 머리칼과 팔뚝을 떠올린다. 나는…… 멀리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거리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관념과 매체 속에서 공간처럼 오갈 수 있는 장소다…….
P.100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

미색 A4 용지에 빽빽이 인쇄된 소설이 있었다. 제목은 ‘다람쥐 우리’, 쓴 사람은 미치-미치. 호준은 수줍게 웃으며 미치-미치가 필명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 사람이 별 특이할 게 없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타이밍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미치-미치는 아닌 거 같아요, 라고 나는 시간이 꽤나 흐른 뒤 호준에게 말했다. 필명으로 쓰기엔 지나치게 튀는 이름이었다.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얼마 전에 개명을 했다고 말이다. 개명이요? 호준은 본명을 미치 미치로 바꿨다고 했다.
P.138 「내부순환」

어느 곳에도 도착하지 않고
막연히 어디로든 계속해서 나아가는 소설들의 모음

연작의 첫 번째 소설이자 표제작「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에서 ‘나’는 “산책자에 관한 소설 겸 에세이”를 쓰기 위해 파리에서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와 함께 파리에 머무는 엠은 오래전 시 쓰기를 그만두었고 이제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두 인물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파리의 여름날, 술과 커피를 마시며 이동 혹은 움직임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서로에게 설명해준다. 이들이 자신의 계획에 대해 수다를 떠는 장면들은 창작에 진척이 없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들이 천천히 산책을 하듯 작품의 완성을 지연시키는 방식, 끝없이 이어질 듯한 대화 자체가 소설을 완성시키고 삶을 만들어나간다. 한편‘나’가 다양한 레퍼런스를 경유하며 펼치는 ‘모빌리티’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정지돈의 단편소설에서 기대해온 빛나는 사유와 유머러스한 수다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엮어내 보인다. 플로베르의『감정 교육』,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발터 벤야민 등의 텍스트와 이만희의 〈휴일〉, 루소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그리고 공유 경제 체제까지 매체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넘실대며 이어지는 사유는 독자에게 읽기의 쾌감을 선사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조깅으로 시작한다. 캡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행위는 달리기다. 그의 달리기는 날거나 순간이동 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독보적이다. 그것은 초라한 동시에 인간적이고 역동적인 행위이며 육체적인 행위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적인 시베리아산 사이보그 윈터 솔져는 절대 뛰지 않는다. 〈휴일〉의 신성일은 뛰지만 카메라는 뛰는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자기비하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인물에게는 신체가 없고 그러므로 자유도 없다. 그는 철저히 모더니즘적이다. 반면 캡틴 아메리카는 리얼리즘적이고 윈터 솔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이다.
_「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에서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을 넘어
지금 여기 상연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장면, 장면들

「그 아이는 아주 귀여웠고 어렸기 때문에 인형을 보면 눈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 위해 눈알을 빼려고 했다」에서‘나’와 엠은 앞선 소설에 이어 파리에 머물고 있고, 이름이 같은 커플인 두 명의 지수와 함께 노르망디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작품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모티프는 앙드레 브르통의 소설 『나자』로, 이 소설을 변주하는 방식으로 엠에서부터 초현실주의자 마르셀 무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브르통은 자신의 정부이자 예술가였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실제 삶 그대로”쓰겠다고 표방하며 기존과는 다른 문학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인물에게 ‘나자’라는 가명을 붙였고 초현실주의의 고전이 된 소설의 명성과 달리 실제 인물 ‘나자’는 세간에 잊혀지고 어려운 생애를 보낸다. ‘나’는 이 문제적인 작품에 대해 고찰하며 “『나자』에 기록된 이야기는 모두 진실인걸까”라고 묻는다. 이는 『나자』를 넘어서 “소설 겸 에세이”를 써나가는 ‘나’의 소설에 대한 물음이자, 문학 혹은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떠한 것이 진실이다 혹은 아니다 판정을 내리지 않고 “진정한 문학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라는 문장을 남기고 계속해서 다음 장소로 생각을 이동시킨다.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될 즈음 클로드 카엉과 마르셀 무어는 영국령인 저지섬의 저택을 사고 그곳에 틀어박혀 자신들만의 왕국에서 현실과 비현실적으로 연계되는 작업들을 수행했다. 그들의 작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저항 예술로 오직 그 순간 그 장소에서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드문 종류의 사건이었다.
_「그 아이는 아주 귀여웠고 어렸기 때문에 인형을 보면
눈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 위해 눈알을 빼려고 했다」에서

“불투명한 사물들, 기억들, 일화들의 우주.
걷기는 이러한 틈새를 마주하는 급진적인 행위다.”

이어지는 두 작품은 엠과 ‘나’가 독특한 인물들을 만나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에서 엠은 공유 자전거를 도둑맞고, 어딘가 투명인간 같은 인상을 지닌 한국인 유학생 엔씨의 도움으로 파리의 지하 공간, ‘분더캄머’에서 저절로 돌아온 자전거를 찾게 되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 「내부순환」의 배경은 서울로, ‘나’의 북토크나 강연을 늘 찾아오는 호준에 얽힌 일화들과 함께 그가 ‘미치 미치’라는 필명으로 쓰는 소설 혹은 “소설을 향해 느리게 전진하는 연속적인 메모들”을 중심으로 윌러엄 버로스, 데이비드 올, 러브크래프트 등의 소설가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에서 상술되는 걷기의 속성처럼 정지돈의 소설은 계속해서 시간을 늘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한 달리기와는 반대로 목표 지향적이지 않으며 사건의 전개와 결말로 환원되지 않는다. 정지돈은 다만 놓여져 있는 이야기들을 읽고 “그들 스스로가 있을 곳을 찾도록”그것들을 한데 모아 막연히, 때로는 급진적으로 소설 속에 배치한다. 우리는 그의 소설이 탐색하는 “꿈들이 이동하는 경로”(「내부순환」)를 따라 산만하게 이동해가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각자가 지닌 생의 단면들을 함께 이어가게 된다.

엠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걸어갈게요. 엔씨는 걱정 말라고 했다. 이 자전거는 이보다 더한 일도 해냈다고, 이 정도 역경은 문제도 아니라고. 엔씨는 헬멧을 썼고 광부처럼 헬멧에 달린 카바이드램프를 켰으며 천천히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엠과 엔씨를 태운 자전거가 어두운 국도 위를 천천히 달렸다. 걷는 것과 큰 차이 없는 속도로 움직였지만 때때로 검은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고 이상 기온 때문인지 9월 중순 파리의 밤하늘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지중해풍 바람이 불었다.
_「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정지돈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중편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야간 경비원의 일기』 『…스크롤!』, 산문집 『문학의 기쁨』(공저) 『영화와 시』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스페이스 (논)픽션』이 있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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