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문학동네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3년 03월 18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3월 18일 출간

(개의 리뷰)
( 0% 의 구매자)
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36.21MB)
ISBN 9788954691680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소득공제
소장
정가 : 11,600원

쿠폰적용가 10,440

10% 할인 | 5%P 적립

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2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엄선된 문학을 읽는 일, 그 강렬한 기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작가 손보미가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문학과지성사, 2018) 이후 오 년 만에 신작 소설집 『사랑의 꿈』으로 돌아왔다. 2009년에 등단해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쓴 손보미는 특히 사 년 연속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가 경력에 남다른 방점을 찍었다. 단편소설 「임시교사」로 네번째 젊은작가상을 받을 당시 이 이례적인 수상을 가리켜 문학평론가 권희철이 “손보미는 젊은작가상을 이미 세 번이나 연달아 수상했으므로 여간해서는 네 번 연속 수상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임시교사」는 여간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바, 손보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부수는 식으로, 다시 말해 ‘여간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설세계를 확장해왔다. 그러니 손보미의 소설에 대해 ‘손보미스럽다’고 하는 설명은 그다음 작품을 통해 뒤엎어지고 부서지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소설집 『사랑의 꿈』 역시 그러하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과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등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불안과 의심을 날카롭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온 손보미가 『사랑의 꿈』에서 공들여 묘사하는 세계는 그전과는 전혀 다르다. “한때는 부부에게, 한때는 특별히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지금은 일인칭에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웹진 비유 2021년 3월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 세계는 주로 ‘일인칭 십대 여자아이’로 이루어져 있다. 장편소설 『작은 동네』(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처음으로 일인칭 여성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 손보미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나이의 여자아이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며 “연약하지만 다채롭고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 속에 포함되어”(192쪽)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사랑의 꿈』 또한 손보미의 소설이기에 ‘십대 여자아이’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들은 짜릿하고 통렬하게 깨어지며 새로운 얼굴로 드러난다.
밤이 지나면 * 7
불장난 * 63
사랑의 꿈 * 133
해변의 피크닉 * 187
첫사랑 * 249
이사 * 315

해설 | 강지희(문학평론가)
소녀들의 사랑과 위대한 유산 * 363

작가의 말 * 392

엄마는 말로 내뱉을 수 없는 생각이라면 머리와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게 양심이라는 거야!”(「밤이 지나면」, 1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든 것이 부스러지듯이 망가지던 시기와 엄마가 내게 “우리 공주님, 언제 어른이 될래?”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시기가 일치한다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증오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이 같은 공간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밤이 지나면」, 50쪽)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를 정말로 매혹시켰던 것은 내가 금지당하는 대상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접근 금지 딱지가 붙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 딱지를 ‘그런’ 세계가 아닌 나 자신에게 붙여놓았다는 것.(「불장난」, 73쪽)

평정심. 양우정은 그걸 유지할 줄 알았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닌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못했다. 나는 그런 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타고나는 여자들이 있고 그들은 선택받은 존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불장난」, 94쪽)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불길은 허공에서 살아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에 내가 열기에 열기를 더한 거라고, 그건 아주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공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 그 장면은 눈앞에서 선명하고 집요하게 계속해서 떠올랐다.(「불장난」, 119~120쪽)

그래, 그녀는 딸을 떠나고 싶었다. 그 당시 그녀는 절대로 ‘딸을 버린다’는 표현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건 자기기만이나 허영심, 혹은 죄책감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아, 물론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사랑의 꿈」, 168쪽)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지금 미친 짓을 하려는 거야. (…) 어떤 사람들은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절대 멈추지 못한다. 아니, 자신이 하려는 일이 진실로 미친 짓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일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그 일을 완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녀는 그걸 알 것 같았다.(「사랑의 꿈」, 180쪽)

“아무래도 난 별로 예쁘진 않은가봐요.” (…)
“외모에 신경쓰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꼭 예뻐질 필요도 없어.”
나는 어머니가 내게 손쉬운 거짓말을 했다고, 어떤 것들을 숨기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약. 건너뛰는 것. 그건 어머니의 신념이 작동하는 방식이었고, 단순한 눈가림이나 위장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때때로 어떤 진실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런 식의 건너뜀이 필수불가결했다.(「해변의 피크닉」, 192~193쪽)

나는 나중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내 외부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의 핵심에는 허영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해변의 피크닉」, 198쪽)

그 순간 내가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 갈급하게 열망한 것은 나 자신이 어리고 어리숙한 여자아이가 아니라는 그의 승인이었다. 그가 나를 보고 감탄하고 나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과를 하고 나는 용서를 한다. 하지만 그가 도대체 내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해변의 피크닉」, 219쪽)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말마따나) 누구도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지만, 그게 곧 모든 사람의 삶이 공평하다는 의미는 아니리라고.(「해변의 피크닉」, 246쪽)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건 비밀이야.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돼.”
그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을 끝내 요동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 내가 그와 대등한 관계에 놓인 여자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아무에게도 말 안 할 거예요.”(「첫사랑」, 254쪽)

그러니까, 엄마가 복층 아줌마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 것과 외삼촌의 성취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성이 숨겨져 있는 거라고. 그런 내 추측은 막연하고, 누군가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한다면 금방 철회하고야 말 연약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네가 좀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거야.”(「첫사랑」, 301쪽)

나는 운동장에서 그 무리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귀걸이를 한 여자애들, 키가 크고 수염이 막 나기 시작한 남자애들. 하지만 그들 중 (피가 섞이지 않은) 중학생 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두 팔로 안기고,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경험을 한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가 그려본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한 건 나밖에 없었다.(「이사」, 344~345쪽)

“이번 소설집에서 손보미는 이전 자신의 모든 작품을 갱신했을뿐더러,
한국문학사가 보여준 성장의 순간들을 다시 썼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이렇다 할 야심이 없어 보이는 손보미 소설의 야심은
독자를 움찔하게 한다.” _김혜리(〈씨네21〉 편집위원)

비밀스런 공모부터 첫사랑의 시작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손보미식 일인칭의 세계

손보미가 그리는 십대 여자아이 이야기, 그 연작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밤이 지나면」은 열 살의 여자아이 ‘나’가 경기도에 있는 외삼촌 부부네 집에 맡겨진 첫해의 일을 따라간다. 그 당시 사람들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별난 애”라고, 그래서 “감정도 표출하지 않는 거라고”(25쪽).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시기, 동네에서 ‘정신 나간 여자. 미친 여자. 그러니까 미친년’으로 통하던 한 여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지냈으니까. 동네에서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그 여자에게는 온갖 소문이 따라붙었다. 그녀가 이혼을 했고 자식이 죽었는데 그녀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 동네 남자들을 꼬시려 든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지몽을 꾼다는 것. 그리고 ‘나’는 바로 ‘그런’ 여자와 함께 멀리 떠나기로 한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나’의 ‘비정상적으로’ 약한 마음을 이용한 거라고, “좀더 과격하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정신 나간 여자가 (…) 나를 ‘납치’했다고 말”(같은 쪽)하지만,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그녀에게 자신을 데리고 제발 멀리 떠나달라고 애걸복걸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그즈음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은근히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하루는 체육 시간에 피구 경기에서 아이들이 ‘나’에게만 공을 던졌고,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학교에 가는 일이 두려워진 ‘나’는 그 여자에게 자신을 데리고 떠나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비가 오는 저녁, 여자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그러니 납치를 둘러싼 사람들의 말에 대해 ‘나’가 다음과 같이 정정하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다. “내가 그녀를 부추겼다”(38쪽)고.
“단번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처음부터 정독할 때 새로운 충격을 느끼게 한다”(소설가 권지예)는 평과 함께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불장난」의 ‘나’는 또 어떤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바뀌면서 변화된 상황을 통과해야 하는 열두 살 ‘나’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달라진 새 가족에 적응하는 것. 새어머니는 학교 선생으로 일하다가 아버지와 재혼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나’의 어머니는 뭐라고 했던가. “남자에게 미치면 여자가 그렇게도 되는 거다. 알겠니?”(92쪽) 또하나의 과제는 같은 반 아이 ‘양우정’을 둘러싼 소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나’는 친구들과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남자아이들에 대한 것과 함께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르는 건 바로 양우정 무리에 대해서다. 양우정을 중심으로 하는 무리는 반에서 유일하게 숙직실을 청소할 수 있는 아이들로, 청소가 끝난 뒤에도 그곳에 머문다는 소문이 있다. 중학생 오빠들이 그곳에 찾아온다는 둥, 무리 중 하나가 중학생 오빠와 뽀뽀를 했다는 둥 하는 소문과 함께. 그러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숙직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예상외로 양우정은 ‘나’를 쉽게 숙직실 안으로 들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가 마주하는 건 중학생 오빠들이 아닌, 마치 자신들이 모델이라도 된 듯 음악에 맞춰 워킹을 하는 아이들이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양우정이 말한다. “어때, 너도 해볼래?”(107쪽) ‘나’는 자신이 그 정도쯤은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며 벽 앞에 서지만 어쩐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고 만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불장난이 시작된다. ‘나’는 집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라이터를 들고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계단을 걸어올라 옥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라이터를 켜고 종이를 태우기 시작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에 (…) 열기에 열기를”(119쪽) 더하듯이, 또는 숙직실에서 도망쳤던 일을 떨쳐내듯이, ‘나’는 그 불장난에 매혹된다.
「밤이 지나면」과 「불장난」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변화하면서 그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통과하는 여자아이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첫사랑」과 「이사」는 과외 선생이라는 타인과의 강렬한 만남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를 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의 차이라면 「첫사랑」의 과외 선생은 군 입대를 앞둔 명문대 남학생이고, 「이사」의 과외 선생은 주인공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중학생 언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이 또래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한편 상대를 향한 격렬한 감정을 품는다. 그 감정이 어찌나 강렬한지 「첫사랑」의 ‘나’는 평소와 달리 후줄근하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를 보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환상 속의 첫사랑’의 모습이 무너지지 않도록 눈앞의 흉허물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이사」의 ‘나’는 언니의 미심쩍은 행동보다는 언니가 자신을 안으며 했던,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343쪽)라는 말을 반복해 떠올린다. 그리고 또다른 축에서 두 소설을 이끌어가는 건 엄마를 추동하는 어떤 열띤 감정이다. 「첫사랑」에서 자신보다 “좀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301쪽) 마음으로 ‘나’에게 과외를 시키는 엄마의 마음 한쪽에는 자신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리해 있고, 「이사」에서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중학생 언니에게 맡기는 엄마의 마음 한쪽에는 “여자 혼자 아이를 먹여 살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319쪽)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은 현실이 자리해 있다.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얽혀드는 이 인물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몰두,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지만 뻔뻔하고 경박하게 타락할 수 있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있을 자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성장은 아름답지도 매끄럽지도 않다
십대 시절에만 열리는 감각, 그 세계에 대한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탐구

이번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삼인칭시점으로 전개되는 「사랑의 꿈」은 아이를 떠나 ‘도망칠 기회’를 얻고 싶었던 한 여자의 충동적인 겨울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날을 다시 떠올리는 시선 속에서 ‘여자’는 지금 차에 간단히 짐을 실은 채 초조하면서도 들뜬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 몇 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그가 사고로 갑작스레 죽은 뒤 그의 어머니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오던 그녀는 스스로 딸을 키워보겠다고 결심하고 몇 달 전 학교 행정실에 계약직으로 취직한 참이었다. 만족감과 비참함이 동시에 아로새겨진 그 시기에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행정실에서 일하는 ‘공주연’과 가까워지면서 공주연의 소개로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 모임에는 결혼한 여자도 있고 안 한 여자들도 있는데, 결혼한 여자들은 그 모임을 ‘탈엄’, 즉 ‘일탈중인 엄마들의 모임’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공주연을 따라 참석한 어느 날의 모임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다는 여자가 참석하고, 새로 온 여자는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에 피아노를 몇 차례 연주한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 집안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 그녀는 꿈속인 듯 그 연주를 들으며 몰래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의 차에 올라탄다. 차에 올라탄 것만으로도 이미 멀리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던 그때, 공주연이 차문을 두드리고는 묻는다. 말도 안 하고 왜 혼자 가려느냐고.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 했는지 불현듯 깨달으며 깜짝 놀란 눈으로 공주연을 바라본다. 언젠가 자신에게 “애들은 정말 성가셔요. 쓸데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잖아요. 가끔씩은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죠?”(159쪽)라고 말했던, 따지고 보면 자신을 이렇게 내몬 장본인과 마찬가지인 공주연을.
이어지는 작품인 「해변의 피크닉」은 「사랑의 꿈」과 긴밀히 묶어 읽을 수 있다. 엄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랑의 꿈」과 달리, 「해변의 피크닉」은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가족의 딸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매해 여름방학이면 부산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가 보름에서 한 달가량 머무르는 열한 살의 ‘나’는 이번 여름에도 평소처럼 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다. 자신을 아빠의 동생이라고 소개하는 남자, 그러니까 ‘나’의 삼촌인 그가 말한다. “너는 아빠를 별로 닮지 않았나보다. 너네 아빠는 마르고 키가 컸는데…… 엄마를 닮은 건가……? (…) 뭐 어쨌든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해. 너희 엄마가 여름마다 너를 여기에 보내는 대가로……”(207쪽) 그 말에 할머니는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려! 이러는 걸 네 아버지가 가만 두고 보실 것 같으냐?”(같은 쪽)라고 소리친다. 아버지의 이복동생인 그와 할머니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마음에 든다. 그와 가까워지는 게 할머니를 배신하는 일인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그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던 어느 날,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나’는 그에게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나’의 방을 찾아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태연하기만 하다. 조급해진 ‘나’는 이렇게 말하고야 만다. “할머니와 내가 해변으로 소풍을 가는 거 알아요? (…) 거기에 삼촌, 반쪽짜리 삼촌을 초대하고 싶어요.”(222쪽) 할머니를 배신하는 것보다 ‘나’를 더 두렵게 하는 건, 그가 방문을 닫고 자신 앞에서 그냥 사라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꺼이 배신자가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손보미의 여자들이 선택한 길인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밝혀질지언정 『사랑의 꿈』의 인물들은 얕은 속임수를 쓰고, 명백하게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 신경질적인 조바심과 반감을 표출하고, 사소한 충동으로 누군가를 들끓게 하면서 기존의 무언가에 흠집을 내고 그것을 깨뜨리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소심하고 평범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이 아이들은 독창적이고 집요한 방식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손보미에 의해 과감하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비틀리고 엉성한 모습으로, 끈덕지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다시 말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기꺼이 비밀과 비극, 사랑에 매혹되길 선택하는 손보미의 이 인물들은 우리에게 “영구불변한 흔적”(147쪽)을 남길 것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눈을 돌릴 수는 있어도 “살갗의 뜨거움”(118쪽)은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건대, 『사랑의 꿈』에 실린 소설들은 바로 그때 느꼈던 낭패감과 비정함을 바탕으로 쓰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에 실린 소설들을 쓰던 시간과 공간을 기억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소설을 쓰던 시간은 다른 누군가의 변덕스러움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그것들은 온전히 나의 변덕스러움이 선택한 세계였다. 때때로는 신이 났고, 때때로는 좌절했으며, 때때로는 현기증이 났다. 때때로는 주눅이 들었고, 때때로는 고양되었다. 내가 통과한 시간들을, 이렇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손보미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과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작은 동네』 『사라진 숲의 아이들』, 중편소설 『우연의 신』, 짧은 소설 『맨해튼의 반딧불이』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제4회, 제5회, 제6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Klover리뷰 안내
Klover(Kyobo-lover)는 교보를 애용해 주시는 고객님들이 남겨주신 평점과 감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보문고의 리뷰 서비스입니다.
1.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평점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상품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 운영 원칙 안내
Klover리뷰를 통한 리뷰를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공간인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부탁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 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 입니다. 교보eBook 앱에서 도서 열람 후 문장 하이라이트 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eBook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 / 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신간 알림 안내
    사랑의 꿈 웹툰 신간 알림이 신청되었습니다.
    신간 알림 안내
    사랑의 꿈 웹툰 신간 알림이 취소되었습니다.
    리뷰작성
    •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최초1회)
    • 리워드 제외 상품 : 마이 > 라이브러리 > Klover리뷰 > 리워드 안내 참고
    • 콘텐츠 다운로드 또는 바로보기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
    감성 태그

    가장 와 닿는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사진 첨부(선택) 0 / 5

    총 5MB 이하로 jpg,jpeg,png 파일만 업로드 가능합니다.

    신고/차단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내용은 이용약관 및 정책에 의해 처리됩니다.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주세요.


    이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모든 글은 블라인드 처리 됩니다.

    문장수집 작성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eBook 문장수집은 웹에서 직접 타이핑 가능하나, 모바일 앱에서 도서를 열람하여 문장을 드래그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P.
    사랑의 꿈
    저자 모두보기
    저자(글)
    낭독자 모두보기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프리미엄 이용권입니다.
    선물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
    sam 열람권 선물하기
    • 보유 권수 / 선물할 권수
      0권 / 1
    • 받는사람 이름
      받는사람 휴대전화
    • 구매한 이용권의 대한 잔여권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 열람권은 1인당 1권씩 선물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이 ‘미등록’ 상태일 경우에만 ‘열람권 선물내역’화면에서 선물취소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의 등록유효기간은 14일 입니다.
      (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이 상품의 총서 전체보기
    네이버 책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네이버 책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
    구글바이액션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구글바이액션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