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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이기병 지음
아몬드

2023년 02월 24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2월 24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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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1.10MB)
ISBN 979119246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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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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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의사 이기병은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한다. 그때의 그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안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난다.

《연결된 고통》은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이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건강과 불건강,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나와 너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시대에 이 책은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외노의원이 이제 폐원(2004-2017)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천의 말
머리말 - 잊히지 않아야 할 크고 작은 세계의 기록

1 갑상선 호르몬의 진실
: 재현의 목적은 본질의 장악에 있다

2 술과 심부전
: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다

3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
: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

4 옴과 헤테로토피아
: 그들에게 쉼터는 장소 바깥에 있는 장소였다

5 요통, 변비 그리고 실신
: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

6 질병이나 죽음은 형벌일까
: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 고통에 관하여

7 고통의 이분법
: 몸과 마음 사이의 간극과 관계에 대하여

맺음말 - 누군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고통과 통증은 오직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층위 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15쪽)

이 책은 외노의원에서 내가 만났던 환자들과 3년간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의 기록이다. 이제 외노의원이 폐원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 가리봉동의 작은 의원에 다녀갔던 수많은 이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 잊히지 않아야 할 그 크고 작은 세계의 기록이 어쩌면 이 책에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든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이 글의 목적은 기록하여 닫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게 환기되고 회자되도록 진입로를 열어두는 것에 있음을 밝혀둔다. (16-17쪽)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의사보다 병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환자의 몸이 현대 의학의 진단 체계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49쪽)

질환을 가진 삶은 분명 고통스러운 면이 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가족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환자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결코 원하지 않던 무엇인가를 떠안는다. 그러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그 교환의 관계가 지속되며 그는 질병이나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삶에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또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51쪽)

그는 “조금 마셨다”는 식의 변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매일 마시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거푸 되풀이했다. 나는 당신은 내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정도로 계속 싸우고 있는 중이었고, 나는 내 쪽에서도 그의 투쟁의 어딘가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68쪽)

잠시 머뭇거리던 환자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약간은 긴장한 듯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한 가지 더 검사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 HIV 검사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HIV 라는 단어를 듣고, 흠칫 놀랐으나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환자 분 말씀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는 건가요?” (90쪽)

의사라는 직업은 모순적인 면이 있다. 성경에 실려 있듯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기 때문’에 의사라는 업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불건강과 고통이 있어야 유지된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유지되는 의업의 목적은 고통을 근절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희한한 것은 고통의 연료를 때가며 고통을 근절하고자 하는 이 모순된 직업에 나같이 평범한 이들도 일말의 사명감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91쪽)

필수 불가결한 것들만 진행해도 시간과 여력이 모자란 생의학적 진료 현장에서 생사회적 관점이란 언제나 잉여의 논의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은 언제나 사회적 특성들에 기반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이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약 이전에 그 약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돈, 또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122쪽)

쉼터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옴이 돌고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그 쉼터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 의아했다. 옴 진드기가 뭔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쉼터가 가진 모종의 비밀이 있는 것일까. 그곳은 어떤 장소인가. (134-135쪽)

당일에 드물게 환자가 많지 않은 날이라 나는 비교적 긴 시간을 그들과 면담할 수 있었다. 나중에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당시 의도치 않게 일종의 인류학적 현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면담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보다 그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내 질문을 통해서보다 그들끼리의 환담과 대화를 들으며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37쪽)

나의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처럼 원인을 잘 모르는 통증이나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몸의 이상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병원의 여러 과를 돌아다녀본 경험을 지닌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말이다. 시간이 늘 부족한 진료실에서, 본인이 생각해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증상들을 불가피하게 열거할 때 일그러지는 의료진의 표정을 아마 당신도 보았을지 모른다. (180쪽)

어느 월요일이었다. 근무 시간이 끝나가고 모니터를 보던 눈이 침침해지던 때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한 남자가 진료실로 들어섰다. 조선족임을 알 수 있는 말씨였고 작업복에는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차림새가 단정했다. 다만 어떤 의사라도 첫인상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너무 창백했다.
“기침을 달포가 되도록 계속 하는데 가끔 피가 묻어나요.”
그의 이야기는 간결했지만 증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190쪽)

나는 석연치가 않았다. 일을 하다 보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찜찜한 순간이 한 번쯤은 꼭 있기 마련인데 그날이 그랬다. 뒷목 언저리가 서늘했다. 진료가 끝난 뒤 나는 병원에 홀로 남아 기록과 정황을 새로 검토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상황을 다시 보는 방식이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결국 왔던 길을 잠시라도 되짚어가야만 한다. 문득 환자의 기침 증상에 생각이 미쳐 엑스레이 사진을 열었다. 5분이 넘게 사진을 응시하던 나는 결국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196쪽)

내가 그와 만나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일은 질병의 발견이나 죽음의 언도가 아니라 아마도 그의 고통을 헤아려 보는 것, 그 고통의 현장에 일부 참여하는 것이었다는 점도. 어쩌면 그것이 본질이자 전부였을 수도 있다. (209쪽)

괜찮은, 정상적인 환자가 아니라 이상한 환자. 괜찮은 환자라니 여기부터 엄청난 역설이다. 정상적인 환자라니 무슨 말인가. 그럼에도 이분법은 간편하다. 망치를 든 사람 눈에는 못만 보이는 법이니까. 내 몸은 피곤하고 이 사람은 이상한 환자라고 일단 못 박고 나면 나머지 정보들은 상당히 탈색되거나 소거된다. 재고의 여지가 부족해진다. 이 환자를 향한 이분법은 자명한 검사 결과로 인해 다행히 망상 수준에서 끝이 났지만 이러한 선입견의 효과는 우리의 드러나지 않는 일상에서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괜찮은 것과 이상한 것을 나누며 여전히 진행 중일지 모른다. (223쪽)

이 책은 가리봉동의 좁다란 진료실 안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복기한 것에 불과하지만,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세상이 오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게 다녀갔던 외국인노동자 신분의 환자들, 그들은 이 땅에 살며 고통을 견디던, 우리 역사의 일부다. 바라기는 이 기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일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거나 적으나마 해석의 여지를 늘려주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고통에 개입하거나 고통을 완화시키기에 수월하기를, 또 다른 누군가의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고통이 잠시나마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259쪽)

“의사로서도 인류학자로서도 뛰어나지만,
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의사와 인류학자의 경계 속에서 탄생한다.”
-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현대 의학이 간과한 돌봄의 필요와 쓸모를 살뜰히 발굴해낸다.”
- 장일호, 기자 · 《슬픔의 방문》 저자

“누군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내과 의사이자 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3년의 기록
내과 의사 이기병은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한다. 그때의 그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안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난다.
의학의 진단 및 치료 체계는 특정 증상을 보이면 특정 질병으로 이어지는 병인론에 근거해 정해진 프로토콜에 의해 움직인다. 의학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인류 전체의 건강한 삶을 견인했으나 한편으론 환자 개개인이 겪는 질병 서사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이야기보다는 과학이, 숨은 맥락보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중요했다.
《연결된 고통》은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이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건강과 불건강,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나와 너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시대에 이 책은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코로나 시대 감염내과 의사로 일하며 틈틈이 옛 기록을 복원하는 작업은 지난하고 외로운 일이었으나, 여러 차례 고쳐 쓰고 다듬어 집필 4년 만에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외노의원이 이제 폐원(2004-2017)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구와 진료에 힘겨웠던 내 머릿속 의학의 영토 위에 인류학적 세계관이 새로이 거주하고 경합하면서, 비로소 그 진통에 힘입어 접근 불가의 영역과도 같았던 외노의원 3년의 시간을 재해석하고 재현해볼 수 있었다. 이제 보니 그 3년은 고통스럽게 반성하고 망설이며 좌절했던 기억이면서 삶이 때때로 보여주는 것처럼 간혹 기쁘고 감사한 나날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머리말 중에서

고통과 통증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역사와 문화와 사회의 층위에서 상연되는 것이다
저자는 2011년부터 3년간, 외노의원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중국 조선족에 이르기까지 10개국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권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내국인 환자들에게서 경험하지 못한 일련의 난관에 봉착한다.
첫째는 소통의 문제였다. 타국의 진료실에 환자로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곳 언어를 할 줄 알아도 진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어가 능통하지 않다면 더욱 곤란하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책에는 실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코트디부아르 청년의 사례가 등장한다.(7장 고통의 이분법) 진료실을 찾은 그는 한국어도, 영어도 그리고 불어도(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령이었다) 할 줄 몰랐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살던 지역의 토착어만 할 줄 알았던 그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오해’는 왠지 낯이 익다. 비록 극단적이긴 해도, 진료실에서 내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소통은 충분하지 않다. (배경지식이) 동등하지 않은 ‘의사와 환자’ 같은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둘째는 국내와는 다른 환경에서 태동한 다양한 질병을 감별해야 하는 어려움이었다. 저자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는 문진에 한두 가지 주요 증상이 아닌 여덟아홉 가지의 증상을 토로하는 조선족의 (한결같은) 사례에서 황망함을 느꼈다. 특정 증상을 증상의 원인인 장기와 질병으로 좁혀 들어가 마침내 진단에 이르는 ‘생의학’의 훈련만 받아왔기에 이런 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인류학 문헌을 통해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원인이 다분히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사회적일 수도 있음을 확인한 저자는, 일말의 해방감과 동시에 무거운 ‘의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환자들의 질환에 단지 진단명 하나로 압축되지 않는 ‘서사’가 있고, 더 나은 진단과 진료를 위해 들어야 하는 서사가 무엇인지 알려면 ‘역사적 ㆍ 사회적 ㆍ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과 통증은 오직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층위 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질환 서사는 현대 의학의 거대한 패러다임과 코드화된 카테고리 속에 갇혀버린 몸의 목소리를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재현(representation)’과 같다. 동시에 그것은 주변에, 그리고 치료자나 의사에게 그 고통의 의미를 전달하고 해석하게 함으로써 본질에 새롭게 접근하도록 돕는 우리 몸의 가장 오래된 레토릭이다.” - 52쪽

의학과 인류학의 경계에서 바라본 고통의 얼굴들
목소리를 잃은, 잊히지 않아야 할 크고 작은 세계의 기록
외노의원을 거쳐 이후 의사로 살아가면서 ‘진료실 내 의료’의 한계에 회의를 느낀 저자는 인류학에 입문한다. 그는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의학(과 인류학)을 감히 안다거나 할 수는 없”다면서도 의학과 인류학의 경계에 서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그 경계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은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즐겁고, 또 때로는 가슴 아프다.
현대 의학은 보편적 질병 범주와 함께 이를 진단, 치료하는 체계를 고안해냈다. 의학의 진단 체계가 정교해질수록, 치료법이 더 발전할수록 인간의 수명은 늘고, 고통의 범위는 줄어들었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러나 그렇게 정확도와 속도, 효율과 효과가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은 ‘질병 코드’로 암호화되면서 고통이나 증상을 통해 아픈 몸이 말하고자 했던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목소리가 검열, 절삭되어 일개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 그 목소리는 다른 말로 하면, 환자의 ‘서사’다. 책에는 환자의 몸이 의학의 진단 체계보다 더 정확히 ‘말’했던 사례가 등장한다.(1장 갑상선 호르몬의 진실)
알코올성 확장성 심근병증, 즉 술에 의한 심부전을 겪던 환자의 이야기(2장 술과 심부전)는 어떤 상황이나 결과가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음을 짚는다. 일상을 ‘건강’과 ‘불건강’의 의료적 언어로 재편하는 의료화 시대에는, 질병과 은유가 서로 유착된다. 예를 들어 ‘외국인노동자’인 환자에게 주어진 진단명 ‘알코올중독’에 모종의 경계와 위협, 나태한 일상, 잠재적 폭력 등이 상상되는 것처럼. 이런 차별적 시선과 낙인이 어쩌면 그의 병을 더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따라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혼자서) 건너는 것이 아님’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HIV를 보유한 청년의 치료를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득하려 시도한 경험(3장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은,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전방위적으로 다시 검토하게 만든다. 저자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것을 반성하는 한편, 치료 현장에서 ‘사회적’ 관점이 언제나 잉여의 논의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위층 쉼터에 전염병 ‘옴’이 번진 이야기(4장 옴과 헤테로토피아)에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와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를 연결시키는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인 장면이다.
저자가 책에서 심혈을 기울여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 개념은 ‘이분법’이다. 저자는 근대적 사유의 핵심인 ‘이분법’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삶과 죽음, 몸과 마음, 주체와 객체, 개인과 사회 등으로 간편하게 나누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나뉘지 않으며 이분법적 도해가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거나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의학이 지닌 어쩔 수 없는 이분법적 관념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의학에서 죽음은 삶을 위해 몰아내야 할, 적어도 지연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에는 완전히 연속적인 시계열상에 위치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죽음 앞에서 초연한 듯 보이는 어느 환자의 이야기(6장 질병이나 죽음은 형벌일까)를 통해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의제가 ‘고통’이라고 말한다. 또한 만성염증과 우울증을 동시에 겪던 환자의 사례(7장 고통의 이분법)를 통해서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분리하려는 이분법에 사로잡혔던 시간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이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는지는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 이 책에서 면면히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 - 251쪽

친절한 의료 지식과 치열한 인류학적 해석
이제, 그들의 고통에 나의 고통을 맞대어 본다
책에 실린 얼굴들과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게 된다.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몸과 마음, 삶과 죽음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 질병과 죽음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인가. 돌봄이란 무엇이며, 좋은 돌봄은 가능한가. 어느 하나 가벼이 다룰 수 없는 묵직한 질문들에 이 책은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는 대신,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검토하게 만든다.
이 책은 친절한 의료 지식과 치열한 인류학적 해석을 넘나들며,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던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책을 읽다 보면 가리봉동의 어느 좁다란 진료실 한 편에 슬그머니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때로는 의사의 마음이 되어 환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연신 전화를 해대며 노파심과 불안을 느끼고, 때로는 환자가 되어 내 말을 성의껏 들어주지 않는 의사의 무심함에 서럽고 속상하다. 외국인노동자 ‘환자’로서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나의 고통을 맞대어 보게 된다.
국내외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고통의 목소리들이 하루도 끊이지 않은 시대.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의 것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연결된 고통》은 고통의 시대를 함께 건너는 징검다리다. 누군가의 고통을 해석하고 줄여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한 걸음 한 걸음 알려주는 단단한 징검다리 말이다.

“이 기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일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거나 적으나마 해석의 여지를 늘려주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고통에 개입하거나 고통을 완화시키기에 수월하기를, 또 다른 누군가의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고통이 잠시나마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맺음말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이기병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교수.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졸업 후 세브란스에서 내과 수련을 받고 늦깎이로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의학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감염내과 전임의를 수료했으며 AI 패혈증 예측 스타트업 기업 AITRICS에서 의료 자문을 겸하고 있다.
‘고통받는 것만 실재’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등 분리될 수 없으나 분리된 것들의 경계, 의학과 사회과학 등 기반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경계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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