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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반비

2023년 03월 10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2월 17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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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8.18MB)
ISBN 9791192908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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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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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미국의 젊은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의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가 반비에서 출간되었다. 레슬리 제이미슨은 특유의 통찰력과 엄밀한 지성, 독특한 주제와 그것이 지닌 겹겹의 의미를 파헤치는 성실성으로, 전작인 『공감 연습』, 『리커버링』을 발표하여 수전 손택의 글쓰기에 비견되면서 국제적인 독자층을 형성한 가장 동시대적인 에세이스트다. 첫 산문집 『공감 연습』에서 직업 경험을 반추하며 고통에의 공감을, 회고록인 『리커버링』에서 알코올중독 경험과 회복 과정을 그려냈다면,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는 글쓰기라는 예술의 양가적인 측면과 쓰는 이로서의 수행에 대한 내면적인 고찰을 아로새겼다.

사람들을 재현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을 축소하는 일이며,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하는 것은 이런 축소와 불편한 휴전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심 이런 압축에 반발했다. 내심 이 말을 되풀이하고 싶었다. 이게 다가 아니야, 이게 다가 아니라고, 이게 다가 아니라니까. 내가 종종 의뢰받은 분량보다 1만 단어나 더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211쪽)

“갈망의 글쓰기, 관찰의 글쓰기, 거주의 글쓰기”라는 세 가지 부제에서 엿보이듯, 제이미슨은 자신에게 없는 타인의 무엇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관찰하고 응시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 그 안 혹은 그 언저리에 정주하고 거주하는 일에 대하여 치열하게 묻고 탐구해나간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제이미슨을 잘 아는 독자에게는 동시대와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작가의 현주소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주제를 발견하고 파헤쳐나가는 제이미슨 특유의 경이로운 글쓰기를 체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I 갈망의 글쓰기
52 블루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레이오버 이야기
심 라이프

II 관찰의 글쓰기
저 위 자프나에서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최대노출

III 거주의 글쓰기
리허설
기나긴 교대
진짜 연기
유령의 딸
실연 박물관
태동

우리가 52 블루에게 연민을 쏟아붓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고래를 가엾게 여기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쌓아온 것들을 가엾게 여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감정은 여전히 실재한다. 그럼에도 이 감정은 여전히 중대하다. 죽음의 목전에서 7주를 보낸 뒤 돌아온 한 여성을 도울 만큼.(44쪽)

꼭 환생을 믿어서는 아니었다. 회의주의를 깊이 회의하는 사람으로 자라나서였다. 사람들, 프로그램, 믿음 체계에 구멍을 뚫는 일은 언제나 그것들을 만들어내거나 옹호하거나 적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쉽다. 준비된 경멸은 너무 많은 수수께끼와 불가사의를 묵살한다.(47-48쪽)

회복이 “당신의 영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환생은 “당신의 영혼은 심지어 당신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회복이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면 환생은 “당신은 실제로 이 다른 사람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환생이 어떤 사람들이 위안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우리 각자에게 깃든 필수적이면서도 단일한 자아로서의 영혼이라는 개념 역시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환생은 영혼에 대한 이런 믿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분열시킨다.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그것은 죽지 않지만 어쩌면 애초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 내가 환생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굳건한 경계 없는 자아, 나 이전에도 살아 있었으며 이후로도 그러할 자아를 믿게끔 하기 때문이다.(71쪽)

어딘가로 가는 것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사이의 윤리적인 간극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바람에 비난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게 존중이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보는 것, 계속해서 보는 것, 필요한 것을 얻자마자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 존중이란 피사체가 늙어가는 모습을, 점점 더 복잡해지는 모습을,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써준 내러티브를 전복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일이다. 아직 다 끝낸 게 아니야. 충분히 보지 못했어라고 말할 만큼의 지구력과 겸손성을 갖추는 일이다.(206쪽)

내 팔에 길게 새긴 타투는 이 사람에 대해, 이 순간에 대해, 이 탄환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말이었다. Homo sum: humani nil a me alienum puto(나는 인간이다. 인간에 관한 그 무엇도 내게 낯설지 않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실제로 낯설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었던 걸까? 내가 이 세상에 사는, 총을 사랑하는 남자들 모두와 나 자신을 동일시할 필요가 있나? 그 누구와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은 건 순진한 일, 어쩌면 윤리적으로 무책임하기까지 한 일이 아니었을까?(60-61쪽)

내일 아침 그를 만나면 내가 이 사실을 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에티켓을 따르려면 서로를 구글에 검색해보았을 줄 뻔히 알면서도 줄곧 서로를 모르는 척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내가 목격한 그의 모든 행동(온갖 불평, 온갖 요구, 잡담을 걸고 싶어 벌인 온갖 짜증 나는 시도)을 새로운 틀에서 생 각하게 됐다. 피해자는 유아독존으로 굴 수 없기라도 하다는 듯. 이제 나는 한층 관대한 마음으로 그를 다룬 기사들을 전부 읽고 싶어졌다. 내 글 속에 목소리의 주인인 여자라는 인물로 등장할 수모를 보상하기 위해서.(78쪽)

나는 결국 화분과 무대 사이에 끼어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채로 콩가를 추려고 애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 어떤 즐거운 일들보다도 이때 느낀 창피한 기분이 내가 이곳에 속하고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고민이 들던 그 순간, 나는 마침내 내가 그들과 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의식한 것이다.(105-106쪽)

소년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내가 창 측 좌석에 앉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소년은 내가 아름다움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그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것이, 다채로운 초록에 경탄하는 것이 내가 이 풍경 속에서 담당한 역할이라는 것을 안 모양이었다. 소년은 잇몸을 드러내며 크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에게 학생이냐고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전 군인이에요. 저 위 자프나에서.”(140쪽)

내가 마을을 걸어 다니는 대신 책을 읽는 것이 이 장소를 가리는 일일까? 아니면 내가 책을 읽지 않은 채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이 이 장소를 가리는 일일까? 나는 여태껏 전자라고 믿도록 훈련되어왔으나, 이제는 후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137쪽)

카메라의 눈 뒤에는 언제나 사람(종종 브래디 자신)의 눈이 존재하고, 그 사람 뒤에는 보통 한 팀이 존재하며, 팀 뒤에는 언제나 지원금이 존재한다. 남북전쟁 사진의 원동력이 되고 양분을 준 것은 시장이다. 최고의 사진에 열을 올리며 현장 사진가들에게 자금을 대준 갤러리들, 그리고 평범한 민간인에게 사진을 판매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스튜디오. 해방된 노예인 소저너 트루스는 다른 해방 노예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 자기 초상을 팔았다. 트루스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본질에 힘을 실어주고자 그림자를 팔았다.”(147쪽)

에이지는 가상의 관찰자에게 문제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만, 『이제 훌륭한 인간들을 찬양하자』에서는 직접 제 반응으로 보여준다. 그는 매개나 변형 없이 진실을 전달한다는 리얼리즘의 환상을 폐기한 뒤 그 대신 모든 매개, 모든 조작, 모든 기교와 주관성, 그리고 이 기록을 하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불가피한 오염을 고백한다.(163쪽)

세컨드라이프의 완벽한 풍경 속에서 나는 자꾸만 예전에 감옥에 다녀온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자유를 빼앗기는 게 앞으로 얻을 쾌락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앞으로 저지를 실수에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완벽하게 축조된 세계, 표면적으로는 모든 걸 통제하는 세계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구축할 수 없는 세계이자 우리가 궁극적으로는 버릴 수 없는 세계가 주는 “체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120쪽)

자꾸 내 타투가 생각났다. 1년 전, 연대감과 호기심을 표현하겠다며 진심 어린 의도를 담아 새긴 것인데, 이제는 내 팔이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인간에 관한 모든 걸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134쪽)

나는 소통을 향한 그의 가차 없는 추진력, 그리고 자신을 취약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전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모든 뉘앙스와 모든 복잡성을 포착하고자 하는 그의 충동을 지켜주고 싶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애니의 집착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집착이 부분적으로는 나 자신의 구원자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고 느꼈다. 방법론과 정서에 있어 고집스러울 만치 냉정하지 못한, 눈부실 만치 거리낌 없고 센티멘털한, 제 열의에 관해 양해를 구하지 않는 어느 아웃사이더 예술가를 옹호하려는 나의 시도 말이다. 때로 예술가와 대상의 관계는 망가지고 부담스러워진다. 에이지는 그 사실을 알았고, 애니도 알았으며, 나도 마찬가지다.(210쪽)

네가 라임만 하다가 아보카도만 해졌을 무렵, 나는 피클을 끝도 없이 먹었어. 이로 베어 무는 짭짤한 맛이 좋았거든. 녹은 아이스크림을 그릇째로 마셨어. 그건 부재를 암시하지 않는 갈망이었어. 나에게 속한 갈망이었어. 갈망(longing)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임신에서 비롯되었지. 1899년에 나온 어느 사전에서는 갈망을 “임신한 여성이 겪는 특정하고 종종 변덕스러운 욕망의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어.(343쪽)

사람들은 출산을 말할 때 승리감을 느꼈다고들 하지만, 너를 낳는 과정은 극도의 수치심을 배우는 과정이었어. 내 이야기는 무너졌어. 내 몸도 무너졌고. 그렇게 세상에 도착한 너는 고통이 최고의 선생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지. 너는 세상으로 나와 내가 단 한 번도 통제된 적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어. 너를 낳는 건 내 몸이 고통을 느껴서, 내 몸이 충분히 아파서 중요했던 게 아니야. 그 일이 중요했던 건 네가 번들거리고 혼란스럽고 완벽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야. 넌 여전히 내 일부였어. 넌 나를 넘어선 존재였고.(359쪽)

에세이의 본질에 관한 통렬한 사유

이 작가가 어느 층위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감탄했다. 타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대체 어떤 행위인가? 혹은 타인을 경유하여 결국 나를 글쓰기의 도마에 올려야만 할 때 발생하는 본질적인 의혹을 해소하려면 대체 어떤 행위가 요구되는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고, 첫인상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관념들을 새기며 쓰는 이가 목도하는 세계를 단단한 문장들로 벼려낸다. 이 책은 삶이 간혹 허락하는 경이로운 순간들과 그 기나긴 사이를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통렬하고 아름다운 시도로 가득하다.- 한유주(소설가) 추천사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들에 대한 이끌림에는 희미한 독선이 묻어 있다. 어쩌면 나는 내가 패배자들을 변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는 겁쟁이인지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살아남고자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를 반박하기에는 너무 겁이 많은지도 모른다.(54쪽)

근래 몇 년간 '에세이'는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였다.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책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큰 환영을 받았고,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들을 건져 올려 책이라는 보편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일의 의미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그러나 과연, 에세이란 무엇인가? 에세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세이를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고, 우리는 나 자신의,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단연코 이런 쟁점들을 가장 치열하고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작가다. 한국에 앞서 소개된 『공감 연습』은 고통이라는 경험을 매개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파고들었고,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회복 경험에 관한 회고록 『리커버링』은 한 젊은 작가가 보편적 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받아들이는, 그럼으로써 에세이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이처럼 나-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있어 한층 성숙한 작가로서 제이미슨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녀는 고독한 고래에 천착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25년간 멕시코의 한 가족을 사진 찍은 미국 작가에 관해 다루며, 전생을 믿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침해적으로 친밀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진실'을 구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진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 하는 질문들을 하나씩 탐색해나간다.
아름답고 유려한 글쓰기만큼이나 제이미슨을 '지금 시대의 목소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이 집요함일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범람하는 시대, 한편으로 '남'의 이야기를 갈취해 내놓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시대에, 이 작가의 날카롭고 솔직하며 애정 어린 시선은 에세이라는 장르의 본질과 미덕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에세이를 읽는 독자, 에세이를 쓰는 작가, 그리고 더 넓게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럼에도 쓰기, 살기, 비명 지르고 불타오르게 하기

제이미슨은 1부 「갈망의 글쓰기」에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하거나 증명해내지 못하며 갈망하는 이들을 다룬다. 「52 블루」에서는 처음 발견된 음역대의 주파수로 관찰된 한 마리 고래와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이들을,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에서는 증명하기 어려운 환생의 경험을 주장하는 이들을, 「레이오버 이야기」에서는 레이오버를 하며 스친 이들의 배경을 알고 나서야 그를 평면 아닌 입체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심 라이프」에서는 온라인 환경에 제2의 삶을 꾸린 이들을 소개한다.

고래가 고래일 수 있도록 인정하여 우리가 떠안기는 은유로부터 쉬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준 두 번째 자아의 윤곽선도 포용해 그가 우리에게 해준 일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그 고래가 자신의 실제 형상과 우리가 그에게서 필요로 한 형상 둘로 쪼개지게, 그 둘이 따로따로 헤엄치게 한다면. 우리는 그 둘을 서로의 그림자에서 해방한다. 그리고 두 개의 다른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본다.(44쪽)

타인의 삶을 쓸 때, 타인의 삶으로 예술을 할 때, 타인을 경유해 나에 관해 쓸 때 우리는 곤경을 맞닥뜨린다. 정작 우리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며, 그것은 자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기껏 그려낸다 하더라도 그 윤곽은 완벽하거나 단일하지 않다. 2부 「관찰의 글쓰기」는 이 주제를 치열하게 파고든다. 「저 위 자프나에서」에서는 역사적 재난의 현장을 관광하고 무지를 진정성으로 포장하는 취재에 관하여,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에서는 남북전쟁의 참상을 찍고 전시하는 일에 관하여,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는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앨라배마의 소작농 가족과 머물며 다른 방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쓴 결과물에 관하여, 「최대노출」에서는 사반세기에 걸쳐 한 가족을 담은 사진가의 프로젝트에 관하여 쓴다.
특히 표제작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 제이미슨은 에이지의 글을 두고 “그는 매개나 변형 없이 진실을 전달한다는 리얼리즘의 환상을 폐기한 뒤 그 대신 모든 매개, 모든 조작, 모든 기교와 주관성, 그리고 이 기록을 하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불가피한 오염을 고백한다.”고 말하면서 본인 작업에 앞선 자취를, 또 본인이 뒤따를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마지막 장 「거주의 글쓰기」는 작가의 주무기인 자기고백과 감정의 농도가 짙은 파트다. 「리허설」에서는 친구와 부모의 결혼식 풍경을 회상하고, 「기나긴 교대」에서는 아빠의 아버지로서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진짜 연기」에서는 시뮬레이션 체험과도 같은 라스베이거스 방문과 거기에서의 짧은 연애를 복기하고, 「유령의 딸」에서는 계모라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기술하며, 「실연 박물관」에서는 이별과 연애의 잔해를 들여다보고, 「태동」에서는 식이장애를 겪던 동일한 몸이 동일하지 않게 느껴지는 출산의 경험을 현재형으로 순차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 「태동」은 “어원 자체가 임신에서 비롯”된 갈망(longing)이라는 낱말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며, 이번에는 이를 “부재를 암시하지 않는 갈망”, 자신에게 속한 갈망으로 갱신한다. 출산 과정에서 무너진 자신의 이야기, 무너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윤곽을 무너뜨리는 일의 경이를 포착하기를 작가는 잊지 않는다. 「52 블루」에서 두 개의 윤곽을 허용하자던 작가가 윤곽 없음마저 긍정하는 「태동」은 각별한 울림을 준다.

포르투갈어 사우다지(saudade)는 번역할 수 없는 단어로 악명이 높지만, 나는 순전한 노스탤지어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감정을 일컫는 이 단어가 항상 좋았다. 사우다지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노스탤지어와 비슷하지만, 사우다지는 가본 적 없는 장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뜻할 수도 있다. 마셜 할아버지가 가족 없이 살던 브라질에서 자연스레 쓰는 이 단어는 주로 소유나 동반을 나타내는 문법적 구조를 취한다. 사우다지를 가진다, 또는 사우다지와 함께 있다는 식으로. 그리움이 일종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것이 부재의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듯이.(231쪽)

이 책의 제목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시인이자 비평가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워커 에번스를 두고 한 말(“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든 일,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 제 삶을 재촉하고, 해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며 이를 유려하게 만든다. 에번스가 하는 것처럼, 비명 지르게 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제이미슨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노스탤지어보다 ‘사우다지’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가진 것보다도 그 존재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에 관해서 그리고 자신에 관해서 쓸 수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써낸다면, 쓰인 그것은 비로소 비명 지르고 불타오를 것이다.

작가정보

Leslie Jamison
워싱턴 D. C.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이후 아이오와, 니카라과, 뉴헤이븐을 거쳐 브루클린에 살고 있다. 영문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한 뒤 제빵사, 단기 사무직, 숙박업소 관리자, 개인교사, 의료배우로 일했다. 각 직업에 담긴 고유한 세계를 내부에 간직하며, 지금은 콜럼비아대학교 예술학석사과정에서 논픽션을 가르친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하퍼스》, 《빌리버》 등 지면에 꾸준히 글을 실었다. 나온 책으로 장편소설 『진 클로짓』, 산문집 『공감 연습』, 비평적 회고록 『리커버링』이 있다. 존 디디온, 수전 손택을 잇는 지성적인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한 제이미슨은 2019년 산문집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 창작자로서의 고통과 환희를 창의적인 글쓰기로 풀어낸다.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고 번역한다. 여성, 성소수자, 노인, 청소년이 등장하는 책을 좋아한다. 옮긴 책으로는 『서평의 언어』, 『벼랑 위의 집1』, 『그녀가 말했다』, 『불태워라』, 『사라지지 않는 여름』, 『당신 엄마 맞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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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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