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 열
2023년 03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2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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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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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수많은 매체가 격찬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
만일 여자들에게 궁금해할 자유가 더 많이 허락되었더라면
세상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어느 열세 살 소녀는 뜻밖의 비극이 찾아들자 슬픔을 곱씹는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가장 친한, 백인인 친구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한다. 유산 이후 회복 중이던 한 여자는 자신이 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일상에서 자꾸 딸아이의 몸 조각조각을 본다. 어느 십대 소녀는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나가기를 거부한 뒤 악마를 섬긴다는 비난을 받는다. 어느 정찬 모임에서 서빙을 담당한 직원들은 부유층 고객들의 탐욕스런 열망의 시중을 든다. 소원해졌던 두 남매는 재가 된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나고, 아버지가 둘의 삶을 계속 지배하고 있다는 괴로운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다.
젊고, 뜨겁고, 육체적이고, 선명하고, 눈부시고, 기운차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상한 여자들에게 바치는 이 찬가를 많은 독자들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읽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옮긴이 박경선
향연 41
혀들 63
천국을 잃다 85
적들의 심장 125
배의 바깥에서 165
스노우 191
필요한 몸들 221
물보다 진한 263
색다른 것들 297
뼈들의 연감 305
저자의 말 332
옮긴이의 말 336
같이 일어서며 느릿느릿 말하는 키라가 혼란스러워 보인다.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옥상들을 바라보더니 마치 무언가를 봤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종이접시를 난간 밖으로 날린다. 에바도 따라 접시를 날린다. 둘은 접시들이 둥실둥실 느리고도 아름답게 땅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본다. 에바가 다시 내려가려고 돌아선다. 그때 등 뒤에서 키라가 말한다.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에바의 머릿속에 이미지가 스쳐간다. 공기가 거세게 밀려나고, 뼈가 부러지고, 덩어리들이 시뻘겋게 철퍼덕. 끔찍해. 키라에게 이 말을 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눈앞에는 그 흉측한 건물들 뒤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뿐이다. 진정한 신의 파랑.
아래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다.
- 〈우유, 피, 열〉
나는 마치 몸의 열기와 샤워기의 수증기에 데워진 아기가 날것인 생명의 색으로 떨어져 나왔던 바로 그때처럼 애원한다. 간처럼 검붉은 색깔의 줄무늬가 있고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알 크기로 응어리진 붉은 핏덩어리들. 다음으로 나온 건 미끈한 은빛의 동전만 한 주머니. 조각조각 난 내 아가, 검붉은 무화과 빛으로 반짝이는 내 아가. 텅 비어버린 채 샤워기 아래 웅크리고 앉아서 물이 차가워지게 내버려두기 전에, 그 주머니를 지퍼백 안으로 미끄러뜨리기 전에, 히스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내가 내 아기를 집어 들고 흔들어 어르며 내 안에 있던 그 이질적 풍경 속에서 얼굴이나 아주 작은 무릎을 알아볼 수 있는지 확인해보려 애썼던 그때. 나는 손 안의 아기를 흔들며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 주었다.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 〈향연〉
제이는 목사가 하는 말을 듣고 그 이면에 감춰진 뜻을 이해한다. 자신은 머리에는 털이 있어도 되지만 겨드랑이에 있어서는 안 되고, 팔에는 털이 있어도 되지만 다리에 있어서는 안 되며, 다리 사이의 털은…… 남자 취향에 달려 있다는 것. 구경당할 수는 있어도 구경할 수는 없다는 것. 그의 굴을 쳐다보려니, 제이의 눈에 눈물이 점점 차오르고 심장은 목구멍에서 쿵쿵거린다. 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목사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도 없고, 면전에서 는 울지 않을 생각이다. 결국 제이는 시선을 떨구었고 목사는 뒤로 기대어 앉으며 무릎을 놓아준다. 그러고는 제이가 나갈 수 있게 문을 연다. 하느님은 너를 축복한단다, 꼬마야, 목사가 말한다.
- 〈혀들〉
드디어 더크가 입을 연다. 그만할 수는 없는 거야? 제이는 그 말뜻을 짐작해본다. 내가 달라진 것, 못되게 구는 것 말이겠지. 제이는 동생의 보드랍고 덥수룩한 머리에 손을 넣고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꼰다. 동생을 이해시킬, 마음이 놓이게 할 만한 그 어떤 말도 찾을 수가 없다. 환히 비추는 것이 빛의 속성이며, 많은 이들이 그랬듯 제이는 이미 본 것을 잊을 수는 없으니까. 제이는 이 정도 유대의 순간으로 충분하기를 바라지만 더크가 아직 기다리고 있으니 뭐라도 대답하기는 해야 한다. 진실은 아름다운 거야,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여 동생에게 답을 해본다. 하지만 거짓말 역시 아름다운 것.
- 〈혀들〉
프레드는 글로리아가 자신을 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말하지 않는 모든 것들, 자신의 모든 질문에 “괜찮다”라고 대답하며 자신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막는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프레드는 위장이 콱 옥죄어드는 느낌이었다. 프레드는 어쩐지 글로리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암 덩어리가 글로리아의 몸을 끊임없이 갉아먹으며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대가로 글로리아에게 일종의 신성한 앎을 선사한 것이 틀림없었다.
- 〈천국을 잃다〉
어른들은 주지 않을 답을 찾는 기분으로. 나는 묻고 싶었다. 자기 전에 트위트가 두 손을 모을 때면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지 아니면 그들이 죽인 남자를 위해 기도하는지. 그리고 무엇에게 기도했는지. 트위트가 믿는 하느님은 트위트를 닮은 두 얼굴에다 청바지 허리춤에 권총을 숨기고 있었을까? 샤일라의 하느님은 전당포의 금붙이와 2달러 위조범들의 하느님이었을까? 금방 돌아올게, 약속해놓고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그자들의 하느님? 그렇다 해도 나는 트위트가 찬송가를 부르듯 내 귀에 그 답을 들려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이 주제는 “어른들 이야기”였고 우리끼리도 금지된 것이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돌을 던졌지만 여전히 빗나갔다.
- 〈배의 바깥에서〉
빌리는 어쩌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블랙홀, 어떤 몸, 어떤 선택 모두 하나의 관문이 될 수도 있으며, 관측되지 않는 다른 어디에서든 택하지 않은 모든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대신 노래를 만드는 빌리가 있고,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혼자 사는 빌리도 있고, 지금에 있는 빌리와는 평행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빌리는 악몽이 손짓하는 어둠 속에서 엄마의 그 직감으로 손에 따뜻한 우유 잔을 들고 있다. 무수한 또 다른 빌리들은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단지 닿지 않는 다른 세상에 있다. 어딘가에서는 어떤 아이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빌리가 그들을 볼 수는 없어도 그 잉어들은 아직 헤엄을 치고 있지 않을까? 빌리는 눈을 감았다. 자신을 둘러싼 밤의 맥박을, 빌리라는 물질에게 다시 말을 거는 암흑 물질을 느꼈다.
- 〈필요한 몸들〉
12월의 마지막 정찬의 밤에 우리는 식탁 위에 크리스털 잔을 올려놓고 아치형 입구 위를 겨우살이로 장식하다가 문득 부엌에서 들려오는 졸음 섞인 칭얼거림과 요리사들의 쉿! 쉿!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장가 소리도 들었다. 우리가 옛날에 들었고 지금은 우리가 부르는 그 자장가들, 그 선율이 우리의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분노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다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우리는 접시들을 식탁으로, 관능에 가까운 기대감으로 헐떡이는 숨소리들 앞으로 가져다주고는 뒤로 물러나 시선을 떨구었다. 보지 않으면 계속 못 본 척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은식기가 방 안을 음악으로 채웠다.
하느님 맙소사, 카나리아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양에게 말하는 걸 우리는 들었다. 우리는 알았다. 그들은 먹을 수만 있다면 그분까지 먹어치울 사람들이라는 것을.
- 〈색다른 것들〉
[추천사 이어서]
모든 이야기가 불같다. 데뷔작인 이 단편들에는 끈기가 있다. 단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즐거움을 음미할 만한 작품들이며,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고 가르치고 되풀이해 읽어야 할 단편집이다.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이 어둠침침하고도 감정적인 이야기들은 각자의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맞은 다양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특히 소녀시절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모니즈의 이야기들은 단정하게 정돈된 결말을 거부한다. ─북라이어트
본능적이고 육감적이며 도발적인 이야기들이 어딘가 불편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형제자매, 사촌, 엄마, 딸 들이 서로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하려 애쓰는 엉망진창인 수많은 방식을 담아내는 섬세하고도 관능적인 문장들이 음미할 만한 맛을 낸다. ─숀더랜드
모니즈의 글은 가족, 결혼, 계급, 상실,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현명하고도 친밀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마다 온전히 독립된 이미지들과 문장들로 가득하다. 모든 이야기가 대담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럼퍼스
각 단편으로 수없이 많은 상을 받았던 모니즈의 이 근사한 단편집을 보면 그가 왜 인간의 노골적인 감정으로 인한 괴로운 순간들을 관능적이면서도 단도직입적인 언어로 들춰내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단편집이 동일한 주제, 인물, 플롯의 반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이 단편집은 이야기들이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것 말고는 사실상 유사점이 없다. 저마다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놀라게 한다. 이 단편들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모니즈 특유의 시선이다. 강력 추천한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이 신예 작가를 당장 붙잡을 것! ─라이브러리저널
이 단편집의 모든 이야기는 모니즈의 적확하고도 근사한 문장들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지리적 배경이나 주제 면에서 공통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야기들의 관점이나 등장인물들은 꽤나 다양하다.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독자로 하여금 페이지를 계속 넘겨가며 비극과 자기발견, 배반과 화해, 트라우마와 행위로 이뤄진 여러 장면들을 통과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각 인물을 끌고 가는 하나의 목소리다. 모니즈는 거의 모든 단락마다 새로운 생각을 펼쳐놓고는 그것들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마치 찻잎처럼 우러나와 가만히 자리 잡은 뒤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응집되고 강력한 정서적 경험이 되게 만든다. 작가의 뛰어난 재능이 느껴지는 마술 같은 감각이다. ─북페이지
엄청난 작품이다. 단시엘 W. 모니즈는 사랑과 상실을 우아하게 탐색한다. ─일렉트릭리트러처
만일 여자들에게 궁금해할 자유가 더 많이 허락되었더라면
세상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생을 감각하게 만드는 강렬하고 경이로운 단편집
최근 해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작가인 단시엘 W. 모니즈의 첫 소설집에 실린 열한 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독특함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살아 있는 듯 힘차게 박동하는 문장들은 읽는 이를 생각지도 못한 발견의 순간으로 이끌어, 세상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고 또 깊어지게 만든다. 표제작인 〈우유, 피, 열〉은 열한 편의 단편들 중 가장 감각적인 순간이 날카롭게 터져나오는 이야기다. 키라와 에바는 다르지만 닮아 있는 자신들이 순순하지 않은 세상과 어떻게 조응할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리고 결국 어떠한 선택 앞에서 십대 소녀들은 각자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을 만난다. 평행선을 걷는 듯한 모녀의 관계를 다룬 〈적들의 심장〉은 엄마의 부적절한 행동 때문에 어린 소녀가 느꼈을 수치심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해 성폭력 교사에 대한 엄마의 복수로 마무리된다.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누가 너를 괴롭히거든 걔네한테 말해. 우리는 적들의 심장을 먹는다고.” 이렇듯 추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니즈의 모든 이야기들은 황홀할 정도의 통쾌함을 맛보게 하고 가슴 아픈 사건을 읽는 이의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저마다 인생의 파고를 헤치는 인물들을 탐색해나가며 힘을 북돋우기도 하고 일말의 낙관을 보여주는 《우유, 피, 열》은 필시 강렬하고 아름다운 단편집으로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에바의 머리속에 이미지가 스쳐간다. 공기가 거세게 밀려나고, 뼈가 부러지고, 덩어리들이 시뻘겋게 철퍼덕. 끔찍해. 키라에게 이 말을 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눈앞에는 그 흉측한 건물들 뒤로 펼쳐진 하늘뿐이다. 진정한 신의 파랑.
아래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다.
-〈우유, 피, 열〉 중에서
소녀들의 피로 시작해 보름달 아래 여자들의 숲으로 끝나는,
치밀하게 직조된 열한 편의 이야기
어떤 장르로도 규정하기 어려운 단시엘 W. 모니즈의 《우유, 피, 열》은 그 배치부터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이를 파악하려면 각 단편의 내용과 메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하얀 우유가 담긴 그릇에 두 소녀가 손바닥을 그어 새어나온 피를 떨어뜨리는 표제작 〈우유, 피, 열〉로 시작한다. 이어 배 속에서 사산된 아이의 조각을 일상 곳곳에서 발견하는 〈향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어리고 착한 여자아이가 되기를 거부하며 눈을 치켜뜬 채 버티는 〈혀들〉, 암에 걸린 아내를 두고 술집에 드나들며 공허함을 달래려는 〈천국을 잃다〉, 딸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학교 교사가 보낸 성적인 내용의 쪽지를 발견하는 〈적들의 심장〉, 한낮의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배의 바깥에서〉, 남편과의 권태로운 결혼생활을 견디는 과정에서 미스터리한 인물을 만나는 〈스노우〉, 임신한 몸으로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필요한 몸들〉, 아빠의 유골을 뿌리러 가는 여정에서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는 〈물보다 진한〉, 상상도 못 할 무언가를 먹어치우는 모임의 서빙을 맡은 〈색다른 것들〉로 이어졌다가 세계를 여행하다가 가끔 돌아오는 엄마에 대한 감정을 대면하면서 숲에서 모닥불 파티를 여는 〈뼈들의 연감〉으로 끝난다. ‘피’로 시작해 ‘불’로 끝나는 이 뜨겁고 강렬한 이야기들의 화자는 대부분 다양한 방향에서 삶의 가능성을 붙잡아보려는 여자들이다. 단짝 친구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소녀가 겪는 혼란과 슬픔, 거기에 존재하는 피와 열기, 생의 감각부터 “네 자신으로 있는 법을 배우라”는 충고로 엄마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마지막 작품까지, 겪고 느끼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구조로 치밀하게 짜인 《우유, 피, 열》은 〈타임〉지가 극찬한 대로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내밀한 순간들이 서로 얽히며 완성해낸 한 장의 멋진 태피스트리”다.
감각적인 읽기 경험으로
현장과 인물, 사건 속으로 독자들을 유인하다
《우유, 피, 열》의 가장 큰 특징은 생생한 감각적 독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빨강과 하양, 분홍 등의 컬러는 작품 전반에 시각적인 모티브를 제공해 ‘우유, 피, 열’이라는 제목에서 오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친구와 우유를 담은 그릇에 피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나눠마시는 장면(〈우유, 피, 열〉), 태아가 사산할 때의 핏덩이를 묘사하는 부분(〈혀들〉) 등이 강렬한 컬러 감각을 눈에 보일 듯 그려낸다.
또한 자신을 놀리고 동생을 괴롭힌 소년을 불러내 주요 부위를 움켜쥐는 장면(〈향연〉)이나 오랫동안 수집한 동물의 뼈를 더듬는 순간(〈뼈들의 연감〉)은 읽는 이에게 직접 만지는 것처럼 생생한 촉감을 선사한다. 작품 안으로 당장이라도 발을 디딜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이고 선명한 풍경 묘사 또한 저자가 페이지 밖으로 걸어나와 우리의 손을 잡아끌고 다음 장면으로 데려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여성으로 살기와 여성으로 살지 않기
연령도, 피부색도, 직업도, 성격도, 경험도, 상상도 모두 다른 여성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플로리다의 여성들에게 교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결국 ‘여성으로 살기’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장소와 시대를 뛰어넘어 전달되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녀들을 비롯한 여자들은 무언가 거대한 것 되기, 다시 말해 어른 되기, 엄마 되기, 사랑과 상실, 죽음의 아슬아슬한 날 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두고 포기하지 않고 고심하는 다양한 처지의 여성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절대 친절하지 않은 사회에서 성별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여성으로 살기와 동시에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여성으로 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등장인물들을 꿰뚫어 보는 모니즈는 자신이 만든 여성들을 방황하게 만들면서도 끝까지 목적지로 이끈다.
한편 《우유, 피, 열》은 자살 사고思考, 강간, 성폭력, 유산, 우울증 등 성인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각 인물과 우리 사회의 여러 압력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에 십대 청소년들 역시 매료될 것이다.
강렬한 이미지의 표지 그림과
한국어판만의 또 다른 읽을거리 역자 후기
이 책의 표지 그림은 작품이 지닌 이미지를 경쾌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으로 구현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이빈소연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다. 빨강, 하양, 분홍이라는 컬러를 활용해 뼈와 심장, 피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단절과 흐름, 유연한 힘과 단단한 믿음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한 이빈소연 작가의 그림과 함께 《우유, 피, 열》의 단편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이 책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한편 책의 말미에 실린 역자 후기는 이 책의 단편들을 모두 읽고 난 후 미처 깨닫지 못한 주제와 메시지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작가정보
저자(글) 단시엘 W. 모니즈
Dantiel W. Moniz
충격적인 데뷔작 《우유, 피, 열》로 〈타임〉,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 내 유수의 매체로부터 열띤 찬사를 받은 신인 작가. 키웨스트 문학 세미나가 수여하는 세실리아 조이스 존슨 신인 작가상, 앨리스 호프먼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은 단시엘 W. 모니즈는 현재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유, 피, 열》에 실린 열한 편의 소설은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에너지, 붉고 하얀 색감, 퀴퀴하고 야릇한 냄새 등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건드리는 기이한 읽기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더불어 작가는 타인이자 우리 자신이기도 한 소녀, 엄마, 딸, 친구, 자매 등 사랑스러우면서 가슴 아픈 여성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초라함과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직시한다.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시작해 솔직하면서도 세련된 문장들로 매혹적인 인물들을 내밀하게 파헤쳐 보여주는 이 놀라운 향연은 자극과 압도를 원하는 독자의 가슴에 선명한 인장을 새길 것이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했다. 《레드 로자》, 《악의 해부》, 《거짓은 어떻게 확산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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