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2023년 02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2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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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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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소위 ‘고전’, ‘걸작’으로 소개되고 읽혀온 이들 작품을 비판적으로 재독해하여 고전, 걸작의 조건을 질문한다.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문학을 지배하는 시선은 누구의 시선인가. 문학 작품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위 작품에서 여성 인물은 대개 악녀, 속물, 거짓말쟁이, 정신질환자, 마녀, 억압자, 예술적 객체 등으로 재현되었다. 긍정적으로 그려질 때도 있지만, 철저히 남성에게 종속되어 그들에게 돌봄과 재생산 노동을 제공했을 때만 그러했다. 반면 남성들은 여성들이 모욕을 감내하는 동안 위대해지고, 자유를 얻으며, 초월적 지위를 얻고, 보편적인 권위를 확보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다는 점이다.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영향을 끼치며 자신의 관점을 재생산한다. 때문에 이들 작품의 여성혐오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욕당한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을 통해 그들의 빼앗긴 명예를 복권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여덟 명의 저자가 여성의 관점에서 걸작을 다시 읽는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의 시도는 고전의 의미를 확장적으로 재정의한다. 고전은 의미가 고정된 채 절대적 권위를 뿜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거리를 풍부하게 가진 작품이야말로 고전이라 불릴 만하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동시대의 관점에서 고전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해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말괄량이는 정말로 길들었을까? _한승혜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
‘미투 이후’의 세상에서 《달과 6펜스》 읽기 _박정훈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그 여자를 찾아내 퇴치하라 _김용언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
‘위대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_심진경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아름답게 미친 여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_이라영
앙드레 브르통, 《나자》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로운 남자’라는 환상 _조이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식민지 남성성과 미소지니 _정희진
이상, 〈날개〉
고통을 대가로 자유를 선택한 해방의 여신 _장은수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이 필요하다. (…)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비평이 이어지길 바란다. 소수자들의 다시 읽기와 다시 쓰기는 해석하는 위치를 점령한 주류 서사에 균열을 내는 저항 행위다. (16쪽)
예술적 남성 동맹이 추구해온 자유ㆍ아름다움의 개념과 방향성을 의심하지 않으면 전위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자유를 갈구하지만 여성을 착취하는 현실은 외면한다. 권력을 분석하지 않고 자유를 말하는 것, 타자를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예술적 사기다. 자유와 아름다움이 타자를 모욕하며 형성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구속이며 추함이다. (17쪽)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괴롭고 우울한 순간을 맞이하지 않는가. 우리가 괴롭거나 슬퍼할 때 또는 고통을 토로할 때마다 ‘정신병’을 앓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앞에 언급한 여성 예술가들은 모두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33쪽)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남성은 단순히 슬픔이나 무기력으로 인한 우울한 상태로 여겨져 피해자로 간주되었던 반면, 여성은 정신병을 앓고 있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35쪽)
《달과 6펜스》는 여성을 ‘뮤즈’로 만들거나 착취하는 것을 긍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성 예술가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는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55쪽)
나는 《달과 6펜스》가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살았는지, 동시에 그 속에서 남성 예술가들이 어떤 권력을 누리면서 타인을 착취해왔는지를 이야기해주는 하나의 기록물로 남았으면 한다. (61쪽)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들은 자조의 대명사인 근면 성실한 자영업자이자 노동자다. 그들은 대개 가난했고, 탐정 업무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면 쫄쫄 굶어야 했지만, 일단 일을 맡으면 직업적 자존심을 지키며 임무를 완수하고자 했다. 그들이 맡는 사건들은 대부분 어떤 여자가 사라지거나 살해되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이후 전개는 ‘그 여자를 찾아라’라는 명제를 따라간다. (71쪽)
여성들에게는 뭔가 수상쩍고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기에 말로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신뢰 관계를 쌓을 정도의 관심도 없다. 여성의 외모와 태도와 옷차림 등을 일별한 후 내리는 말로의 선택과 판단이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길이다. 미스터리 장르의 제1원칙은 ‘사람, 사물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가 아니다’이다. 그러나 《안녕 내 사랑》의 여성들의 경우,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대한 말로의 판단이 끝까지 고수된다. (96-97쪽)
그 자체로는 결코 위대하다고 볼 수 없는 ‘평범한’ 욕망의 소유자인 개츠비는 그렇게 소설의 윤리적 중심축인 닉과 긍정적으로 연대하고 세계의 도덕적 타락을 대표하는 데이지와는 부정적으로 단절하여 비로소 ‘위대한’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데이지를 비롯한 소설 속 여성 인물은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못된’ 존재로 타자화된다. (106쪽)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집안의 천사’ 역할을 전면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와 경제적 자립을 요구한 신여성. 그러나 신여성은 가정을 벗어나자마자 대중매체의 자극적 이미지화를 거치면서 재빨리 “버릇없고, 성적으로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며, 그러면서도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플래퍼가 되고 만다. (111쪽)
초현실주의에서 여성은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다. 현실을 바꿀 새로운 사유를 강렬히 원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이 여성을 이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줄 통로로 여겼기 때문이다. (140쪽)
나자가 가혹하게 구타당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브르통이 느낀 거부감은 나자의 몸이 인격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마주한 것에 대한 당혹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자가 겪었을 고통에 감정 이입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 감정 이입이 나자를 신비화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수수께끼처럼 묘한 나자가 아니라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자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52쪽)
좀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나는 자연인이다’를 꿈꾸는 남성 판타지다. 나약한 지식인인 ‘나’가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남자 조르바에게 바치는 열렬한 찬사다. (164쪽)
이로써 조르바의 성욕은 자연의 순리이자, 정열이며, 자유를 꿈꾸지 못하므로 인간이 될 수도 없는 존재에게 무한한 연민을 느껴 자기 한 몸 불살라 마지막 한 방울의 정액까지 쏟아내는 살신성인의 정신이자, 끔찍한 암컷에게서도 신성을 보고 봉사하는 고귀한 정신으로까지 승화된다. (179쪽)
〈날개〉는 노동하지 않음, 노동하기 싫음을 초월적 자아로 포장한다. (193쪽)
‘나(이상)’는 혼나는 아이다. 이러한 관계는 남성이 공사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하며 힘겹게 사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살면서도, 자신이 아이처럼 취약한 존재라며 피해자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게끔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도와 부정의가 의심 없이 수용된다. 이것이 미소지니다. (205쪽)
‘생계부양자 남성’ 개념은 계급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모순을 배제한 무지다. 인종, 계급, 식민 지배, 장애 등으로 경제력이 없는 대다수 남성은 생계부양자가 될 수 없다. 많은 가난한 남성이 그들을 지배하는 남성(일제, 부자, 미국……)과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여성 모두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전자의 경우 계급투쟁으로, 후자의 경우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의 연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식민지 남성성 때문이다. (207-208쪽)
남성 지배 사회에 맞서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유리 천장을 깨려는 여성들은 누구나 자기 내면에서 메데이아를 발견할 것이고, 부당한 차별 탓에 ‘마녀’로 몰려 고통받은 적 있는 여성들 역시 머릿속에서 메데이아를 떠올릴 것이다. (217-218쪽)
메데이아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가장 치명적인 방식으로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응징하는 피식민 심판자인 동시에 더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주창하는 첫 번째 페미니스트 전사로 변신한다. (228쪽)
“타자를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예술적 사기다.”
타자화된 채 박제된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
여성의 관점으로 ‘고전’, ‘걸작’의 조건을 질문하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 《안녕 내 사랑》, 《위대한 개츠비》, 《나자》, 《그리스인 조르바》, 〈날개〉, 〈메데이아〉. 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국가에서 쓰인 작품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첫째, ‘걸작’으로 불리며 오래도록 읽혔다는 점. 둘째, 모두 여성을 모욕하여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는 점.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소위 ‘고전’, ‘걸작’으로 소개되고 읽혀온 이들 작품을 비판적으로 재독해하여 고전, 걸작의 조건을 질문한다.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문학을 지배하는 시선은 누구의 시선인가. 문학 작품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위 작품에서 여성 인물은 대개 악녀, 속물, 거짓말쟁이, 정신질환자, 마녀, 억압자, 예술적 객체 등으로 재현되었다. 긍정적으로 그려질 때도 있지만, 철저히 남성에게 종속되어 그들에게 돌봄과 재생산 노동을 제공했을 때만 그러했다. 반면 남성들은 여성들이 모욕을 감내하는 동안 위대해지고, 자유를 얻으며, 초월적 지위를 얻고, 보편적인 권위를 확보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다는 점이다.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영향을 끼치며 자신의 관점을 재생산한다. 때문에 이들 작품의 여성혐오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욕당한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을 통해 그들의 빼앗긴 명예를 복권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악녀, 속물, 거짓말쟁이, 정신질환자, 예술적 객체…
모욕당한 여성을 복권하기 위한 여덟 가지 질문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쓴 여덟 명의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여성을 모욕한 걸작을 고발한다. 먼저 한승혜는 사회가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정신병’을 활용해온 역사의 연장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독해한다. 단지 남성에게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했다는 이유로 ‘말괄량이’ 취급받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교정’당하는 주인공 카타리나에게서 ‘미치광이’로 몰린 모든 여성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박정훈은 실존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삼은 《달과 6펜스》를 거슬러 읽으며 ‘위대한 남성 예술가 신화’가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추적한다. 여성을 철저히 도구 취급하는 남성 예술가의 폭력성이 ‘천재성’으로 해석되어온 역사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김용언은 하드보일드 장르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을 좌절된 남성성의 어긋난 발현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한다. 전쟁 후 남성들이 겪은 존재론적 위기가 ‘여성을 퇴치하라’라는 장르 문법의 확립으로 이어졌다는 독해는 ‘중립적’이라 여겨지는 장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심진경은 낭만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정말 위대한지를 질문한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미국의 신여성인 ‘플래퍼’를 타자화한 후에야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라영은 초현실주의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를 거슬러 읽으며 초현실주의자들이 예찬한 ‘발작적 아름다움’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지를 심문한다. 노동계급 여성 나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의 구체적 삶을 보기를 거부했을 때만 ‘발작적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고발한다. 조이한은 현대인들이 자유의 대명사로 여기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가 철저히 남성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었다는 점을 성토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여성혐오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그 안에 담긴 남성 중심적 인식을 폭로하기도 한다.
정희진은 ‘식민지 남성성’이라는 키워드로 〈날개〉를 독해한다. 식민지 남성성 개념을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남성이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라 주장하는 역설을 중층적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은수는 모든 ‘마녀’의 원형인 〈메데이아〉의 주인공을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전사로 재해석한다. 메데이아의 ‘악행’이 사실은 능력 있는 이방인 여성을 향한 당대의 차별적 시선에서 연유했다는 점을 밝혀 그녀의 억울함을 달래주는 것이다.
여성을 모욕하는 문학적 관습에서 벗어나
고전 목록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
여성이 문학에서 어떻게 모욕당해왔는지를 살펴보는 보다 간편한 방법도 있다. 몇 명의 저자가 공통으로 사용한 방법은 작품의 성별 뒤집기다. 아무도 천방지축 남성을 ‘말괄량이’로 부르지 않고, 남편을 두고 ‘길들인다’고 표현하지 않는다(〈말괄량이 길들이기〉). 남자가 자신을 유혹한다며 ‘악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여성은 상상할 수 없다(《그리스인 조르바》). 남성성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고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데도 남편이 자신을 억압한다며 비난하는 아내(〈날개〉),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으나 처참하게 버려지는 남편(〈메데이아〉)도 마찬가지다. 즉, 수많은 ‘걸작’은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고정시켰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 구조를 활용한다.
중립을 가장한 남성 화자를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달과 6펜스》, 《안녕 내 사랑》, 《위대한 개츠비》, 《나자》, 《그리스인 조르바》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화자는 ‘객관적 관찰자’를 표방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며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 작중 남성 화자는 끝내 남성 주인공이 설파하는 가치를 독자에게 설득시키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중립적, 객관적 관찰자는 여성 타자화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하다.
여성의 관점에서 걸작을 다시 읽는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의 시도는 고전의 의미를 확장적으로 재정의한다. 고전은 의미가 고정된 채 절대적 권위를 뿜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거리를 풍부하게 가진 작품이야말로 고전이라 불릴 만하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동시대의 관점에서 고전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해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는 고전의 목록을 다시 작성할 수도 있다. 여성을 타자화하지 않는 걸작, 여성을 주체로 존중하는 고전의 목록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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