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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 편지 한 장으로 족합니다

고문서와 옛 편지에 관한 에세이, 독사수필 讀史隨筆
김현영 지음
역사비평사

2022년 10월 31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07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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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42.68MB)
ISBN 9788976968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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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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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소리와 그림의 형태로 군자와 소인이 드러난다.” 중국 한나라 양웅의 『법언(法言)』에 나오는 말이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글씨를 마음의 그림, 즉 마음이 형상화된 것으로 보았다. 글씨에 대한 생각이 이러했기 때문에 안부를 묻는 간단한 내용의 간찰에서도 성정이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이 책은 간찰과 고문서를 통해 조선시대의 역사, 정치, 문화, 생활을 살펴보지만 단순히 간찰과 고문서의 내용과 그 해설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특히 1장 「간찰로 글씨를 읽다」에서는 간찰 속에 나타난 역사적 배경, 편지 발신인과 수신인의 사연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추사체’, 연암 박지원의 생동감 넘치는 서체,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이른바 실용적인 서체 등을 간찰의 내용과 함께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간찰과 고문서의 실제 유물을 생생히 볼 수 있도록 해당 도판을 모두 싣고 있으며, 1~3장은 간찰을 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편지에 쓰인 주인공의 필체를 빠짐없이 느껴볼 수 있다. 그런데 1장에서는 더 나아가 글씨에 대한 편지 주인공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송하 조윤형은 정조로부터 재능을 인정받고 당대에 표준이 되는 글씨를 구사한 인물이다. 그는 옥동 이서, 공재 윤두서, 백하 윤순, 원교 이광사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서체, 즉 동국진체의 맥을 잇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는 첫째로 경홍景洪(한석봉)을 칩니다. 그런데 백하白下(윤순)가 손가락과 팔뚝 사이의 기운을 펴내는 삼매경도 역시 좋지 않습니까?” -19쪽.

연암 박지원은 족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윤상서체가 비록 벼슬하는 사대부들의 모범이 되기는 하지만 대가의 필법은 아니라고 주의를 주었다. 김수항이나 윤급의 글씨가 우아하기는 하지만 풍골이 전혀 없어서 대가의 필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박지원의 글씨는 어떠했을까? 저자는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 그의 글씨에서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글씨를 ‘기운생동’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다. 조선시대 글씨와 학문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글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들의 글씨도 느껴볼 수 있는, ‘책 속의 서예작품 전시관’이라 할 수 있다.
1. 간찰로 글씨를 읽다
동국진체와 송하 조윤형 /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간찰체는 따로 없다 / 기운생동, 연암의 글씨 / 현란한 문장: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 실용의 도구로서 간찰: 다산의 생각 / 19세기 조선의 ‘동파열’과 소동파의 「백수산 불적사 유기」

2. 간찰로 역사를 읽다
부채 정치와 책력 정치 / 책력 하나 보내오니 산중 갑자 헤아리십시오 / 소치의 그림값 / 소치의 아들 / 슬픔을 달래주는 편지 / 선비에게 가장 핍근한 것, 『유자최근』

3. 간찰로 생활을 읽다
선비들이 쓰는 꽃 편지, 시전지 / 세 벗들의 우정 어린 편지, 『삼현수간』 / 나리님 덕택이라고: 신현이 지방 수령인 형 신진에게 보낸 간찰 / ‘구름 위 진사’ 이야기: 이이기가 재종 최몽현에게 보낸 간찰 / 연담 선사를 그리며: 다산이 완호 화상에게 보낸 편지 / 노사심화: 노사 기정진의 간찰

4. 고문서로 역사를 읽다
바위틈에 핀 들꽃: 장예원 속신입안 / 노비가 된 대학자: 정의의 법정, 「안가노안」의 재해석 / 노비를 사고팔다: 백문문기와 관서문기 / 이계송, 송씨 가문을 계승하다: 1580년 담양부 입안 / 집안의 기대주, 문과에 합격하다: 임장원의 문중과채수기 / 온 집안이 축하하는 과거 합격: 신응망의 등제 별급문기 / 18세기 서울의 샐러리맨: 녹패

5. 고문서로 정치를 읽다
문서의 양식, 의례의 표현: 조선시대의 외교문서 / ‘즈다오’, ‘즈다오러’: 거행조건 / 영조의 어필 정치: 갱재첩 / 정조의 비답 정치: 상소와 비답 / 제대로 천거하지 않았다면 재앙을 입으리라: 사관의 자격 317 / 율곡의 붓 아래 완전한 사람 없다: 사초와 사필 / 송강이 겪은 임진왜란: 『백세보중』

6. 고문서로 생활을 읽다
추노, 그리고 비첩의 정조 / 면앙정 선생의 가마를 메다: 하여면앙정 / 북을 울려 공박하다: 정약용의 명고시 / 너무 마음이 아파 기록한다: 『순암책력일기』의 이면 / 임금이 사랑한 소나무, 어애송 / 국왕의 친인척 관리: 정조가 김한로에게 보낸 간찰 / 문안 편지 한 장으로 족합니다: 서애 유성룡이 만경 현령 이준에게 보낸 편지

간찰 속 다양한 생활 모습
그림값을 요구하고, 슬픔을 달래주고...

추사 김정희로부터 ‘압록강 동쪽에서 최고의 솜씨’로 인정받은 소치 허련은 호남 문인화의 비조이며, 헌종의 부름을 받아 궁궐에서 그림을 그려 올려 극찬을 받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해남 향리에게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내비친 편지를 보냈다.

“… 폐일언하고 객지에서 수족을 마음대로 하는 일이 과연 어렵습니다. 그에 구애받지 말고 10량을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 돈이 없으면 보존하기가 어렵지만, 당신은 이 돈이 없어도 축이 나지 않을 것 같으니 이름에 맞게 의리를 생각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99쪽.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소치 허련은 김정희, 권돈인, 흥선대원군, 민영익 등 명류들과 폭넓게 교유 관계를 가지며 당대에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그림 솜씨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해남의 한 향리가 그에게 그림을 부탁하고 그림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림값을 제대로 쳐달라는 소치 허련의 요구는 굉장히 노골적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림 그리는 일만으로는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가 어려웠다.

『이재난고』의 저자 이재 황윤석과 송상은은 열세 살 차이지만 한 스승 아래서 과거 공부를 함께하고, 서로 학문을 강론하는 벗이었다. 돌림병과 굶주림으로 인해 친구 송상은이 세상을 떠났지만 돌림병이 가라앉지 않아 황윤석은 조문을 가지 못하고 그 아들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위장 또는 조장이라고도 하는 이 조문 편지에는 벗과의 교유 관계가 그려지고 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은 깊은 감동과 슬픔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여러 간찰이 소개되고 있는데, 동생이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신현의 편지), 아비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연암 박지원의 간찰과 소치 허련의 간찰), 스승이 제자에게 보낸 편지(노사 기정진의 간찰) 등에서 조선시대 다양한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집안의 최고 경사, 과거 합격
재산을 물려받기도 했지만, 빚도 져야 했던...

두 건의 대비되는 고문서가 눈길을 끈다. 둘 다 온 집안의 경사인 과거 급제와 관련 있는 문서다. 소과를 거쳐 대과에 급제하는 일은 양반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바람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 과장(科場)에만 출입할 뿐 합격의 영예를 누리지 못한 양반도 많다. 기껏해야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이나 진사가 되는 것이 고작이고, 대과에 합격하여 관리로 임용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니 대과에 합격하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문과 문중의 크나큰 영광이고 경사였다. ‘삼일유가’라 하여 사흘간 스승과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거리에서 풍악을 울렸으며, ‘도문연’이라 하여 친지들과 지역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이 도문연을 벌이기 위해 전라도 보성 양반 임장원은 문중에서 논을 빌려 팔아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겠다는 ‘과채 수기(科債手記)’를 썼고, 영광 양반 신응망은 이 도문연에서 어머니로부터 과거 합격을 축하받으며 재산을 상속해준다는 별급문기를 받았다.

양반에게 과거 합격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또 빚을 지고서라도 잔치를 크게 벌여야 했던 현실, 집안과 가문을 빛낸 과거 합격자에게 미리 재산을 떼주는 모습까지 고문서가 알려주는 정보는 생생하다.


영조의 어필 정치, 정조의 비답 정치
고문서 속에 나타난 영·정조의 정치

영·정조 시대는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영조가 세손 및 여러 신하들과 함께 운자에 맞춰 시를 짓고 화답하여 만든 『어제갱진첩』, 그리고 정조가 홍문교 교리 이동직의 상소에 대해 친필로 비답한 문서이다.
1770년 영조는 『중용』 읽기를 마친 세손과 16명의 신하들과 함께 갱재(?載), 즉 시를 이어 지으며 화답하는 자리를 가졌다. 영조가 먼저 ‘중(中)’ 자 운으로 “孫仝講一堂中(할아비와 손자가 한곳에서 공부를 하네)”라고 하니, 세손이 “聖誨欣承一部中(성스러운 가르침이 기꺼이 한 부의 중용에 있네)”라고 화답하였다. 이어 채제공 등 여러 신하들도 갱재하였다. 자리가 파한 뒤 영조는 함께 시를 지은 신하들에게 글씨첩을 만들어 나눠 주었다. 어필을 받은 신하들이 얼마나 감격했을지 짐작된다. 『어제갱진첩』에 보이는 영조의 글씨는 노쇠하고 병약한 말년의 글씨인데, 부드럽지만 강인한 느낌을 준다.
영조는 기회만 되면 신하들에게 어필 시를 비롯하여 갱재시를 첩으로 만들어 하사하였다. 행사 자리의 시종신들에게 어필을 하사함으로써 그것을 받은 신하들의 충성심을 끌어낸 셈이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어필 정치’라 하였다.

호학 군주로 알려진 정조는 신하들이 올리는 상소나 차자에 일일이 꼼꼼하게 비답을 내렸다. 홍문관 교리 이동직의 상소에 대해 직접 쓴 비답은 폭 37cm, 길이 240cm, 1,100여 자에 이르는 장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상소나 차자가 올라오는데, 그중에서 정치적 함의가 짙은 것은 직접 답변을 썼다. 정조는 이동직이 문체를 빌미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 한다 생각했고, 이를 엄히 꾸짖는 비답을 내렸다. 『정조실록』과 『홍재전서』에서는 빠지고 친필 비답에만 있는 정조의 비판은 아주 맹렬하다.
정조는 비답뿐만 아니라 신하들에게 편지를 많이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4년간 350여 통의 밀찰을 보냈으니 1년에 거의 100통 가까이 편지를 쓰고, 그 밖에 남인의 영수 채제공에게도 비밀 편지를 보냈다. 저자는 정조의 이러한 정치를 ‘비답 정치’라 하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과로’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편집자 노트】
그림 또는 공예품 전시회를 관람하거나 박물관엘 다녀오면 너무 많이 본 탓에 간혹 무엇을 보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도 학생 시절 사찰 답사를 다닐 때 너무 많은 사찰을 둘러봐서 어느 절이 어느 절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는 말을 했다(136쪽).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다 담아내지 못한다면 마음을 끌어당기는 서너 점만 떠올려보라고...
이 책에 소개되는 간찰과 고문서는 하나같이 귀하고 음미해볼 만한 자료들이다. 거기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고,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느껴진다.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만 꼽으라면 다음을 말하겠다.
1. 연암 박지원의 간찰(1장 「기운생동, 연암의 글씨」 34~43쪽)
2. 소치 허련의 간찰(2장 「소치의 그림값」 98~107쪽)
3. 초의 선사가 그린 〈다산초당도〉(3장 「연담 선사를 그리며」 180쪽)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간찰은 저자가 그의 글씨를 ‘기운생동’이라 표현했듯이 그 진본을 보는 즐거움이 있고, 집안을 챙기는 아버지의 살뜰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또, 그의 문도인 박제가를 ‘망상무도’하다며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전혀 거리끼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내보이라는 말까지 한다. 솔직하다. 문도에 대한 신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소치 허련은 그림으로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 산수화의 대가이지만 화업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상황이 간찰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해남 향리에게 그림값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사흘 뒤 그 그림값을 받은 뒤에는 돈과 함께 받은 술을 ‘신선의 물’이라 비유하는 답장까지 써서 보낸다. 당시 전업 화가의 곤궁한 처지를 짐작할 수 있는 간찰이다. 그림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생활 모습이다.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 머물렀던 곳으로,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유적이다. 이름은 짚으로 엮은 초가집, 곧 초당인데 현재 모습은 기와집이다. 그래서 이상했다. 초의 선사가 다산 정약용에게 그려준 〈다산초당도〉는 확실히 초가집으로 표현되어 있다(180쪽). 옆에는 네모난 연못도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허름한 이 집에서 실학을 집대성하고 강진만의 바다를 바라보았을 대학자를 상상해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무엇이 가장 마음에 와닿을까?

작가정보

저자(글) 김현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시대사와 고문서학을 공부했다. 1999년, 2003년에는 그동안 공부해왔던 연구를 정리하여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사회』(집문당, 1999),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회사』(신서원, 2003)로 간행하였다.
근래에는 『동사강목』을 저술한 역사학자 순암 안정복의 자료를 정리하여 그 성과를 발표했고(『순암 안정복의 일상과 이택재 장서』, 성균관대 출판부, 2013), 박제가나 통신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선진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공부하였다(『통신사, 동아시아를 잇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초정 박제가 연구』, 사람의무늬, 2013). 최근에는 간찰 강독의 성과를 모은 글들을 기획 편집하여 펴냈다(『내가 읽은 옛 편지』, 도서출판 다운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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