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2023년 02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2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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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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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작가 하재영이 어머니의 생애사를 인터뷰하며 그와 교차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해석한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사적’으로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필경사가 되었다.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어머니라는 텍스트를 읽기 위한 작가의 치열하고 용감한 시도 끝에 피어난 두 여성 사이의 교감이 우리 시대 어머니를 해석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첫 번째 앨범. 평범한 여자아이 되기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닌
아무것도 나를 완전히 꺾지는 못했다
두 번째 앨범. 실어의 시간을 경유해 다른 목소리로
있지만 없는 사람
오래된 이야기를 거부하는 여자가 될 것인가,
오래된 이야기 속의 ‘그 여자’가 될 것인가?
세 번째 앨범. 여자가 여자를 키우는 데에는 모순이 있다
너를 다시 키운다면
입안에 갇힌 말과 패배한 몸
네 번째 앨범. 여성의 일에 대한 두 가지 신화
‘스위트홈’이라는 의무
나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폭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앨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
어머님의 식사
두 명의 갇혀 있는 자
여섯 번째 앨범. ‘비존재’의 계보를 기록하기
황혼을 바라볼 때
결여된 이야기
주
어릴 때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애썼다. 청소년기에는 반항하고 상처 주려고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가 처한 상황을 견디느라 엄마를 멀리했다. 시간이 흘러 엄마의 삶을 나의 글 안에서나마 살아보고자 결심했을 때, 그리고 어떤 의미로든 이 작업에 실패하리라 확신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못해도 네 잘못이 아니야. 내 삶이 별 볼 일 없어서야.” 이 글은 엄마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안간힘이기도 했다. 누구의 삶도 별 볼 일 없지 않으며 엄마의 삶 또한 마찬가지라고. 나는 엄마에게,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엄마 세대의 수많은 여성에게 그것을 증명하려고 실패를 예감하면서, 성공해야 했다. - p.13
문학과 역사 성적이 특히 좋았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교생의 국어 점수를 그래프로 만든 성적표가 나왔는데 한 학생만 그래프 선이 끝까지 올라가 있더라고. 그게 나였어. 마흔 중반에 동기 몇 명과 당시 국어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보고 반색하면서 물었어. “뭐 하고 사니?” 네 아빠가 사업에 실패해서 집안이 어려울 때였어. 나는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었는데 차마 그 말은 못 하고 “살림해요.”라고 대답했어. 선생님이 의아해하더라. “뜻밖이네. 너는 자의식이 강해서 네 이름으로 뭔가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약간 씁쓸했어. 예전에는 나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었는데 싶어서. 하지만 그런 생각도 지나가는 거지, 먹고살기 바빠서 금세 잊었어. - p.26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나대는” 아이였다. 더 나쁘게 표현하면 “설치는” 아이였다.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기면 내가 노래를 잘한다는 확신에 차서 앞으로 나섰고, 선생님이 발표할 학생을 찾으면 문제를 맞히겠다는 의욕에 부풀어 팔을 높이 들었다.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그냥 해내는 정도가 아니라 ‘잘’ 해낼 수 있다. 엄마가 걱정한 점은 바로 그것, ‘특별한 사람’이라는 나의 자아상이었다. 또 한 번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엄마는 나를 “꺾으려” 했다. 과도한 자신감과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진 “나대는” 여자아이는 “꺾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아동기에 엄마가 일관되게 가졌던 교육적 신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는 왜 그래야 했느냐고 물었다. 엄마가 말이 없기에 다시 물었다. “여자아이라서?” 엄마가 대답했다. “응, 여자아이가 나대면 미움받으니까.” 잠시 뒤 엄마가 말했다. “미안해.” - p.33
기나긴 문학사에서 소수자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처럼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 울프적인 행위”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그리하여 여성 작가가 되는 것은 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로부터 이어져온 계보의 말단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임을 깨달았더라면 나의 삶과 글은 달라졌을까?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쓴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를 다루는 첫 장 ‘여왕의 거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작가에게 자아 정의는 자기주장보다 반드시 선행한다. 창조적인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한다면 언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에게 자아 정의의 본질적 과정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끼어든 모든 가부장적 정의 때문에 복잡해진다. -p73
1. 하재영, 어머니를 기록하는 필경사가 되다
-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어머니’를 쓰다
아이의 자존감, 문해력, 창의성, 영어, 수학, 과학, 미술, 돈… 제목에 ‘엄마’가 포함된 책을 검색하면 자식을 키우는 일에 관한 어머니의 온갖 책무가 쏟아진다. 먹이고 입히는 일이 당연함은 물론이고 한 인간의 성장과 관련한 일이 오로지 어머니의 손에 달린 것만 같다. 시대에 따라 ‘훌륭한 어머니’ 상은 달라지고 있지만, 오늘날 ‘어머니 역할’은 더 촘촘히 분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이 모든 영역을 관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가까스로 다가서면 상찬을 바치고 미치지 못하면 가혹한 평가를 쏟아내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우리는 세계의 실패를 직시하는 대신 그 실패를 어머니라는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 근본적 원인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도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실패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찬양과 불가능한 기대로 박제된 명사 ‘어머니’를 넘어 한 ‘인간’으로 그를 대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재영은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에서 ‘사적’으로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필경사가 되었다. ‘엄마’는 한 사람의 개별자이자 생을 통해 연결된 존재이기에, 그를 알고자 하는 모든 딸에게 ‘난제’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치열한 시간을 통해 또 한 번 모녀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2. ‘나대는 여자아이’를 꺾으려 했던 엄마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상처 주려고 모든 힘을 쏟아부었던 딸
각자의 생을 통과해 다시 마주 앉은 모녀의 서사
- “나의 글은 엄마라는 한 인간을 온전히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 또는 알기에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다.”
1955년생, 남 앞에서 엉덩방아 찧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스케이트를 배우지 못한,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결혼 후 목소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30년 시집살이를 견디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을 부양한,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고된 시간을 통과한 지금의 내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고선희.
1979년생, 고집 세고 자신만만하던, 발레와 함께 어린 날을 보낸, 타고난 신체로 평가하는 세계에서 환영하지 않는 몸이기에 좌절한, ‘일’과 ‘폭력’의 관계 안에서 수없이 꺾이고 꺾여야 했던, 생존자임를 감각하는 행위로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자, 하재영.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모녀 관계의 두 여성을 만날 수 있다. 하재영은 유년에서 청년,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선희의 삶을 인터뷰하며 엄마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딸이자 그와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반추한다.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는 여자들은 알 것이다, 엄마와 마주 앉아 생을 돌아보는 일의 지난함을. 딸과 엄마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혹은 알아주기를 기대하기에 어쩌면 상대의 진실에서 가장 먼 사람들일지 모른다. 서로에게 닿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모녀는 타이핑한 문서와 육필로 쓴 글을 사진으로 찍어 서신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의 삶으로 들어서고 물러나는 시간을 통과해 공동의 회고록을 완성해냈다.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을 떠올리는 엄마의 이야기. “내가 처한 상황을 견디느라 엄마를 멀리했던 시절” 감당해야 했던 생의 무늬를 돌아보는 딸의 이야기. 앞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 여성의 시간이 교차하는 기록 속에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왔는지 그 세월의 흔적이 남긴 상처와 긍지가 섬세한 필치로 펼쳐진다. 동시에 모녀가 ‘여성’이라는 조건 안에서 세대를 넘어 경험한 공동의 지형은 무엇이었는지 짚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자기의 시간을, 어머니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우리는 모녀라는 관계의 타자로서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 또는 알기에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을 실행하기에 이 작업의 결말은 확실시된 실패이지만 의미 있게 실패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의 손끝에서 어머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머물지 않고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사건’을 만났다.
3.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 그 서사적 단서를 찾아서
- 모계를 기록하는 일의 의미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에는 엄마와 딸 외에도 중요한 인물이 한 사람 더 등장한다. 바로 하재영의 할머니이자 고선희의 시어머니, 송영임이다. 고선희는 송영임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며느리이자 딸이고, 말동무이자 시녀였어. 그분의 세계에서 그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유일한 사람.” 하재영의 기억 속 송영임은 고선희의 그것과 다르다. “나에게 할머니는 애증의 대상이다. 할머니를 사랑하기에 두렵다. 나의 글쓰기로 우리의 사랑을 배반할까 봐, 할머니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나쁜 시어머니’로 만들어버릴까 봐.”
하재영은 모녀도, 자매도, 친구도 아닌 두 여성의 관계를 둘러싼 시간의 흔적을 살피며 가부장제 안에 있던 ‘두 명의 갇혀 있는 자’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또 한 사람, 고선희의 어머니 채무식은 어디로 갔을까?
저자의 글이 ‘모계의 기록’에 충실하려면 책의 첫 장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시작되어야 했고, 마지막 장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끝나야 했을 것이다. 이 책에 채무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재영은 “이 책의 숙명적 한계는 어느 장에서도 나의 모계,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에 대한 ‘서사적 단서’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엄마의 삶을 기록해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계보에 ‘비존재’인 할머니가 있음을 기억하고, 할머니와 달리 엄마를 ‘존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4. 미시사의 기록을 넘어 페미니즘의 사유를 직조하다
- 글 쓰는 여자의 계보를 가로지르며 ‘여성-딸-어머니-인간’을 성찰하기
- 어머니가 어떤 텍스트이든 우리는 그로부터 나아간다
저자는 미시사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앞 세대 그리고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의 사유를 종횡무진 통과하며 삶과 공부를 하나로 직조해낸다. 에밀리 디킨슨, 시몬 드 보부아르, 에이드리언 리치, 베티 프리던, 수전 구바, 샌드라 길버트, 수전 손태그, 리베카 솔닛, 정희진, 김영옥, 하미나… ‘글 쓰는 여자’의 계보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유려한 문장을 따라 독자들은 ‘여성-딸-어머니-인간’으로서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어머니와의 관계는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어머니를 낯설게 바라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이도, 끝내 해결할 수 없는 의문과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백 쌍의 모녀에게는 백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어떤 텍스트이든 흉터로 영광으로 내 안에 남고 우리는 그로부터 나아간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수많은 어머니의 경험과 기억이 흩어지고 부유하다 휘발하지 않도록 하는 일, ‘모계를 기록’함으로써 단독자이자 연결된 자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게끔 하는 단초가 되어줄 것이다.
엄마에 대한 모름을 앎으로 바꾸기 위한 작가의 시도로 시작된 글은 다음과 같은 어머니의 말로 끝을 맺는다.
“나는 네 덕분에 또 조금 성장한 것 같다.”
생을 용감하게 마주하고 살아내는 또 하나의 길이 우리에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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