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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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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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항하여
김종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
신하영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
우재형 노동문제 동아리 활동기
신현아 대학이 해방구가 될 때
유상운 탐구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소진형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
황민호 졸업하기 싫은 학교
현수진 대학 안팎에서의 역사학
유리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
나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학력 무관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각자가 가진 능력들의 차이가 차별의 조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이 기대고 소통하는 힘이 되는 사회다. 경쟁이 아니라 실질적 필요와 보람을 위해 공부하고 배울 것이고, 이는 시험과 학교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 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항하여」
학생 자치의 뜻을 바로 세우기 위한 첫걸음으로 학생들이 새롭게 답하고 고민해야 할 질문은 대학에 왜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이슈가 필요한지, 왜 학생 간에 서로 갈등하고 대립해야만 하는지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익명의 그림자에서 나와야 한다.
─ 김종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
후기 청소년기 대학생들이 마주한 넓고 다양한 생각과 현실 앞에서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며 그 마음을 설명해 주는 이론과 개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바로 페미니즘과 여성학, 여성주의 관점이라는 것을 나는 알려 주고 싶었다.
─ 신하영,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
거창하고 설득력 있는 이념을 제창하는 것은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없는 것에 좌절하거나 무리한 시도를 하기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인 ‘한 사람에 대한 고려에서 노동문제 바라보기’의 확산과 설득을 시도하고 있다.
─ 우재형, 「노동문제 동아리 활동기」
청소 노동자들이 탈환하려고 했던 것은 그들의 일자리뿐 아니라 대학 그 자체였다. 지방 대학의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가 대학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대학 본부를 점거할 때, 대학은 우리에게 다른 공간으로 열리게 된다.
─ 신현아, 「대학이 해방구가 될 때」
학생들과 교수가 시장을 드나들면서 장비를 만들고 개조하고 수리하는 장면들을 복원하고 싶은 마음은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은 과거에 대한 지나친 미화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이공계 대학이 오늘날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하기까지, 과거 대학 구성원과 시장 기술자들 간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엿볼 수 있었던 탐구에 대한 활력은 어디로 갔을까?
─ 유상운, 「탐구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만약 실용적 학문 하나만 존재한다면, ‘실용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요컨대 실용적인 지식은 그 지식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 유의미한 것이며, 다양한 학문적 영역이 공존할 때 비로소 ‘실용적’이라는 레테르가 붙을 수 있다.
─ 소진형,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
학교는 맨 처음 지역에서 만들었다. 동네 유지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땅을 기부했고, 그 터 위에 학교가 세워졌다. 학교 운동회는 지역 축제와 다름없었다. 담장과 문턱이 없었고, 온 세대가 어우러져 학교 운동회를 즐겼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지역의 구심이었다.
─ 황민호, 「졸업하기 싫은 학교」
동아시아 문명에 존재한 거의 모든 역사서의 전범이 된 『춘추(春秋)』를 저술했다고 알려진 공자는 역사 서술에 관해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원칙을 천명했다. “(과거의 일을) 서술하되 (서술자가) 창작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그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학문으로서 역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그것과 매우 가깝다.
─ 현수진, 「대학 안팎에서의 역사학」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나 교정공이란 이를테면 사라지고 있다. 아와 어의 다름도 점차 사라지는 듯, 아와 어가 다르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들과 어와 어가 다르다고 우기는 사람들 사이의 다름도 사라지는 중인 것만 같다.
─ 유리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모르는 대학 이야기를 읽고
새로운 대학 서사를 쓰자!
남들처럼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청년기 서사다. ‘일류 대학’이 목표인 아이들의 학창 시절은 학생의 학습 태도와 그때그때의 운, 양육자의 정보력과 사교육비에 따라 변주된다. 스카이, 인서울, 4년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쓰는 다음 편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스펙 쌓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현실의 대학 경험은 이런 일류 대학 서사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대학에 못 간 것이 평생 한인 어른을, 일찌감치 대학을 자퇴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사는 친구를, 대학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누군가를 직간접적으로 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이 저마다 다르듯 20대면 누구나 다 간다는 대학 이야기의 속사정은 수만 가지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대학 서사 쓰기의 참조가 될 이번 《한편》은 사회학, 정치학, 교육학, 철학, 지역학, 과학기술학, 역사학, 국문학 등 대학 안팎에서 쓰인 열 편을 실었다.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
활동가, 출판노동자가
대학 안과 밖에서 얻은
역동적인 배움들
일류 대학 서사가 지배하는 사회는 각자의 고유성보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자격을 먼저 따진다. 대학 입시 거부 선언으로 만들어진 ‘투명가방끈’의 활동가 난다의 「학력무관의 세계를 항하여」는 학벌주의 다음의 논제를 던지며 10호를 연다. 능력들의 줄 세우기가 당연시된 사회에서 난다는 능력을 차별의 전제가 아닌 대화의 조건으로 파악하자고 제안한다. 한편 이번 호를 문 닫는 출판노동자 유리관의 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는 대학의 경계 끝자락에서 지식 분열의 현장을 전한다. 그가 가공하는 대학 교재는 학문의 성지에서 나온 문건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단어와 문단이 파괴되어 있다. 절망한 교정공이 마주한 분열된 문장에서 어떻게 진리의 빛을 찾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을 다니는 대학 안 사람들의 사정은 어떨까.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김종은의 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저격 글에서 시작된 학내 여론에 대응한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다. 총여학생회의 대처는 학생 자치의 기본을 따르는 데에서 힘을 얻는다. 같은 학부생인 서울대 철학과 우재형의 「노동문제 동아리 활동기」는 교내 청소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고민하며 겪은 좌절과 희망이 담겨 있다. 철학책을 읽으며, 학우들과 맞부딪치며 자기 이해를 갱신해 가는 우재형의 여정은 대학의 공부를 세상의 문제에 적용하는 솔직한 탐구 사례다. 교육학자 신하영은 교수자의 입장에서 ‘요즘 학생’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에서 신하영이 관철하는 교육철학은 다른 세계를 향한 반발감을 표현하며 상대의 입장도 들어 보는 연습 자체에 교육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후기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는 미래를 위한 단단한 자산을 주고, 교수자에게는 텍스트에 갇힌 연구를 현장으로 확장하는 공간이 된다.
혹독한 현실에도
대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자가 생산한 지식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더욱 혹독하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연구자 소진형의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은 예수회가 동아시아에 처음 서양 학문과 학제를 소개하던 17세기의 상황을 살핀다. 서양의 천문학과 기하학이 실용적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진실된 학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기록은 지금 ‘실용’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어지는 과학기술학 연구자 유상운의 「탐구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는 ‘산학연’으로 한 몸이 된 혁신지향형 대학 연구실의 과거를 파고든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진리의 위상을 상대화하며 학계와 협업하는 사람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지는 글이다.
《한편》이 만난 대학 안팎의 사람들은 배움의 위기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옥천신문》 대표 황민호는 체제로서의 대학이 아닌 생활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의 학교를 지향한다. 안남 어머니학교와 옥천저널리즘스쿨의 학생 이야기가 담긴 「졸업하기 싫은 학교」는 지역공동체의 문제에 관여하는 배움의 감동을 전한다. 「대학 안팎에서의 역사학」에서 역사가 현수진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활동을 통해 엄격한 학문 세계에 소통의 틈을 만든다. 이들이 낸 틈새에 닿은 독자는 역사 소비를 넘어 생산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맛본다.
문화연구자 신현아는 대학을 너무 사랑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오랜 매혹의 주술에서 벗어났다고 털어놓는다. 「대학이 해방구가 될 때」는 대학 강사가, 청소 노동자가, 학생이 사라진 대학이 곧 없어질 것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에게 학내에 여전히 ‘우리’가 살아 있다고 소리 높여 말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익숙하거나 낯설거나, 독자는 《한편》과 함께 대학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갱신하며 나의 배움 이야기를 새로 써 나갈 수 자극을 받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10호 ‘대학’에 적용된 글꼴은 궁서 흘림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HG한글씨앗으로, 유연한 획의 흐름에서 묵묵히 학문에 정진하는 힘이 풍긴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 ‘외모’, ‘대학’에 이어 2023년 5월 ‘플랫폼’을 주제로 계속된다. 창간 3주년을 맞아 기획한 한국의 젊은 연구자 인터뷰집 『공부하는 일』도 오는 2월 10일 출간 예정이다.
작가정보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 과학학과에서 한국 반도체 기술 개발의 역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밭대에서 과학기술사를 가르치며 공장과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20세기 후반 한국의 과학기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Innovation in Practice: The ‘Technology Drive Policy’ and the 4Mb DRAM R&D Consortium in South Korea in the 1980s and 1990s”, 「반도체 역공학의 기술사: TV 음향 집적회로의 개발, 1977~1978」 등이 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전공하며, 17~19세기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의 번역, 지식의 유통·변용과 그 지성사적 의미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조선 후기 성리학적 군주론 연구: 정조의 「대학」 해석을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조선 후기 왕의 권위와 권력의 관계: 황극개념의 해석을 중심으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Remapping the World from East Asia: Towards a Global History of the Ricci Map(근간)이, 공역서로 『서양을 번역하다』가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조선 지식인의 서양 번역서 독해방식: 전병훈,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의 사례를 중심으로」, 「신유사옥 이전 천주교에 대한 국가적 대응과 그 정치적 의미: 천주교에 대한 여론 형성과 사회의 보수화적 관점에서」, 「「황사영백서」의 유통, 인용, 참조의 방식과 역사적 기억의 재구성」 등이 있다. 《경항신문》에 ‘조선의 타자’를 연재했다.
옥천 주민, 옥천신문 대표, 사단법인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 이사장. 삶터의 공론장을 만들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더 변방으로, 더 낮은 곳으로, 더 소수자의 곁으로의 삶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변방에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으며 경계에서 꽃이 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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