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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역사판

어느 까칠한 역사교수의 일지선 놀이
주명철 지음
여문책

2023년 02월 17일 출간

종이책 : 2021년 08월 20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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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3.64MB)
ISBN 979116089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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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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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이 등잔을 닦으면 지니가 나타나듯이, 거울을 닦으면 대발과 발바리가 나타난다. 온세상은 그들에게 손가락을 보여준다. 그들도 그를 향해 손가락을 보여준다. 셋은 일지선 놀이에 푹 빠져 생각을 쉰다. 가끔 일지선의 변형도 곁들인다. 남이 보면 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동작이지만, 그들은 빙긋이 웃는다. 그저 웃어넘긴다. 손가락을 보여주는 행위의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다. 더욱이 웃는 행위에는 선악이 없다. 울어도 좋지만, 웃는 것이 자연스럽다. 울 때보다 웃을 때 근육이 덜 피로하기 때문에 ‘웃는 놈’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놈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일지선 놀이에 빠진 세 놈을 우연히 본 사람들이 흉내 내면서 일지선이 널리 퍼졌다. 형식이 화려하게 발달하면서 내용도 함께 발달했다. 사람들이 점차 일지선 놀이의 장점을 알게 되면서 슬기로운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권장했다. 놀이에 입문하는 순서가 반드시 깨닫는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온세상·대발·발바리 중 하나가 발명한 놀이가 분명하지만, 그들보다 늦게 놀이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 셋보다 먼저 자성을 찾아 생로병사의 고뇌를 끊고 항상 행복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놀이인가. (중략) 요즘 사람들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노래한다. “저 언덕에 갔다더니, 어째서 왔느냐? 나를 데려다주러 왔느냐?” 듣는 사람이 화답한다. “생사와 열반이 어우러졌더라.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이니 이판사판역사판理判事判歷史判이로세.”
- 「발문」 중에서
머리말 _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서

골동품 능화경
흰둥이 이름은 검둥이
발바리의 변신
온교수의 허허실실
대발을 그리며
갈등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믿는 대로
국뽕이나 주어라
바람을 분다
아카시 꽃향기에 하늘을 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옛 거울 깨뜨리고 새 거울 갖기
무슨 거울을 봐도 마찬가지
숨 쉴 자유

발문 _ ‘웃는 놈’의 본성

대발은 틈만 나면 거울과 그 뒷면을 번갈아 보는 발바리에게 ‘보지 말라’,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불견不見이라 말한 뒤 ‘찾지 말라’(불멱不覓)고 타이르고 나서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멱覓이란 불견不見을 조합한 글자로서 볼 수 없는 것을 찾는다는 뜻이다. ‘찾지 말라’는 뜻의 불멱은 ‘볼 수 없지 아니함不不見’이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대발은 간단한 말을 굳이 꼬고 또 꼬아서 말한다. 발바리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에 대발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전했다. “허상 말고 진상을 찾으라는 뜻이다.” (17쪽)

[온교수는] 역사시간에 글쓰기를 중시한 이유도 밝혔다. “역사는 인간의 모든 영역을 설명하는 학문이므로 필요한 경우 인문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용어를 빌려다 써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처럼 쉽게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말을 잘해야 역사는 물론 외국어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44쪽)

여러분, 인공지능을 눌러버릴 만큼 창의력이 우수한 한글에 감사하면서 1분간 묵념합시다.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발하는 사람이 많지요. ‘사실’을 말하면 되는데, 왜 굳이 ‘팩트fact’를 따지는지요. 팩트라고 하면 진실을 말하는 것 같고, 사실이라고 말하면 어딘지 거짓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는 자들이 스스럼없이 팩트라는 말을 쓰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진실을 알기를 사기꾼 가문의 가훈 ‘정직’처럼 아는 사람들이 사실을 강조하려고 팩트라는 말을 전유물로 씁니다. (45쪽)

언제나 시험문제를 “~냐?”로 끝내는 경제학 교수는 어느 날 “오물세도 조세냐?”라는 문제를 냈는데, 용감하면서 무식한 학생이 “조세다”라고 답해서 그분의 화를 돋웠다. 어느 날 결석 여섯 번에 지각 두 번을 기록한 그 학생이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교수가 그를 보자마자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는 나가!” 그 학생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그만 늦었다고 울먹였다. 교수는 증명서 떼 오라고 명령했다. 그 학생은 용도를 적는 곳에 출결확인용이라는 말을 적지 못했는지, 화장실 관리자를 만나지 못했는지 증명서를 받지 못했다.
(68~69쪽)

단일민족, 순수혈통주의는 신화일 뿐이다. 서글서글한 눈과 작은 눈으로 남방계와 북방계를 나눌 수 있고, 한 집안 자식도 다양한 용모와 사고방식을 가지는데, 어찌 한문화와 다문화를 국제결혼으로 나누는 것인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이상을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 뒤에서 읽을 수 있다. 요즘은 ‘담백’으로 통일하는 정서에 갑자기 ‘부분’이 유행이다. 뭔 말끝마다 ‘부분’을 들이대는지. 각종 방송에서 ‘그러한 부분이죠’ 어쩌고 하는 ‘부분’을 들으면 귀가 헐어버릴 지경인 ‘부분’이 있다. (82쪽)

예전에 학회에서 누군가 “문화란 물 흐르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에, 온교수는 딴지를 걸었다. 벽계수도 멈추지 않았던가.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고 생각하고,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흘렀다고 믿거나, 남방에서 북쪽으로 흘렀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또한 권력자가 강제로 문화를 주입한다고 주장해도 반박할 수 있다. 문화전파라는 관점을 문화수용이라는 관점으로 수정해야 한다. 문화수용은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렸다. 사회지배층이 민중에게 강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도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서양 중세에 기독교가 다신교 시대의 신앙과 관행을 미신으로 탄압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자 일부는 수용하면서 타협했고, 민간신앙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부모나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학생이 무조건 따르는가? 어린 학생도 촉법소년의 특권을 이용해서 반칙하고 또 반칙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좋고 선한 행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발전한다. (154~155쪽)

역사가는 낙원을 추구하지 않는다. 낙원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그에 앞서 어떤 제약이 낙원을 방해하는지 역사적으로 따지는 일을 해야 한다. 온교수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옳겠지만, 역사는 옛날 사람들이 어떤 세상에 태어나고, 어떻게 살아갔고, 어떤 세상을 꿈꿨으며,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판단하려는 학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100여 년 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으로도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지 못했으므로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일은 사회운동가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사회운동가는 사회를 좀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 역사가도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데 동참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온교수는 혁명을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보지 않고, 절대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정치적 변혁으로 보려 했다.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파헤칠수록 본질에 다가서기 쉽다. (163~164쪽)

온교수는 제자의 독창성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서 외국에서도 통할 만한 논문이므로 잘 연구해서 약점을 보완해보라고 과제를 안겨주었다. 제자는 마지막 고개에 올라선 줄 알았는데, 외국에서도 인정받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듣고 좌절하게 마련이다. 무릇 현명한 제자는 칭찬 한번 받으면 논문을 빨리 인증받은 뒤, 자기 나름의 절정에서 박수받고 떠나려고 생각한다. 야단을 맞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야 공부를 계속할 텐데, 만족 한 번에 평생 공부를 졸업한다. 온교수는 그러한 습성을 잘 알기 때문에 잠재적 경쟁자를 죽이려 할 때 역설적으로 칭찬 따발총을 쏘고, 술도 한잔 권한다. 제자는 거기까지 가는 동안 고생했다는 생각만 나고, 앞으로 새 논문을 쓸 때의 고생을 미리 상상한 다음 졸업장만 받고 떠난다. 온교수는 남의 보고서 가로채기와 표절 신공으로 먹고사는 자들을 비웃으면서 잠재적 경쟁자를 물리치는 비법을 개발했다. (225쪽)

그는 뜬금없이 마르크스의 역사발전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원시 공동체 사회-고대 노예제 사회-중세 봉건제 사회-자본주의 사회-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을 누가 가지느냐의 관점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고려해서 다시 검토할 여지가 있는 이론이다. 역사발전을 잘 설명하려면 인간 중심의 원리를 세워야 하고, 역사적으로 지배자보다 피지배자가 훨씬 많았으며, 인권의 발달로 시민사회의 주역이 ‘깨어 있는 시민들’이라 해도 역시 그들보다는 ‘깨어나지 못한 시민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노예제라는 관점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온교수는 ‘원시 노예제 발아 시대-농업 노예제 시대-공업 노예제 시대-지식ㆍ정보 노예제 시대’에 대해 설명했다. 태초에 노예제가 생겼다. 힘과 지력의 차이로 생긴 노예제는 좀더 조직적 생산단계인 농경 시대의 노예제로 발전했다. 이때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종래의 로마제국 시대와 근대의 대농장제는 모두 노예 노동으로 생산력을 증가시켰다. 가내수공업에서 공장제 공업이 발달하면서 농업 노예들이 공장 노예로 바뀌었다. 농촌에서 일거리가 없는 노동자들이 공장이 있는 곳으로 쏠리면서 공업도시가 생겼다. 공업도시는 노예들의 생활터전이 되었다. 마지막 단계는 지식과 정보 산업이 발달하면서 자발적인 노예들을 양산했다. (248~249쪽)

가끔 온교수는 학생들을 격려해주자고 결심했다. 학생들은 강의를 열심히 듣고 필기하는 것 같은데, 시험답안지에는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반성문과 함께 해석의 자유를 맘껏 누리는 글을 써놓는 학생이 많다. 온교수는 답안지를 채점할 때 “일기는 일기장에, 편지는 다른 종이에”라고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다. 학생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강의한 사람이 내용을 제대로 전달했다면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까?
(297~298쪽)

“여러분 중에 부모님이 농사짓는 사람이 있지요? 겨울에 무엇을 하시는지 보셨죠?”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누군가 “야, 의성, 너 봤지?”라고 하자 의성 출신 학생은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나?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학교에만 있었는데.” 또 다른 학생이 “하멸, 넌?”이라고 화살을 돌리자 함열 출신 학생은 일부러 소리를 높였다. “읍에 살면 모두 농사짓냐? 요즘 농촌 지키는 사람 많지 않아. 너희들, 답사 다니면서 탑 많이 봤지? 우리 아버지가 황등이 돌 캐서 만든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비난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와, 너 진짜 뻥 쎄다.” “너희 아버지가 미륵사지 석탑 만드셨구나.” “아니지, 석탑에 시멘트 바르셨겠지.” “하멸 증조할아버지, 무영탑도 수출하셨대. 배째 무역회사.” 학생들이 깔깔 웃었다. “하멸 할아버지는 사업을 넓히셨어. 배째실라 무역회사.” “하멸 아버지는 더욱 넓히셨어. 배째실라고구랴 트레이더스.” 온교수는 무슨 배를 째는지 몰라서 눈치를 보다가 교실의 주도권을 찾으려고 한마디 했다. “투비 오어 낫 투비, 누가 한 말이죠?”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갑자기 왜, 도대체 왜? 답을 기다리던 온교수가 농담조로 말했다. “섹스비어 선생의 하멸 왕자가 홀로 중얼거린 말입니다.” 온교수는 학생들에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배째실라고구랴?” 그리고 되묻다가 어렴풋이 그 뜻을 깨달았다. “아, 백제·신라·고구려! 이래서 백번 읽으면 뜻을 알게 된다고 했구나.” (299~300쪽)

“독자는 침입자입니다. 그러나 착한 침입자죠. 무슨 뜻인 줄 아시겠죠? 야생 짐승이 농가의 꿈을 짓밟는 일이 많죠. 산골에서 노인네가 애써 일군 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심지어 인

◆ 진실ㆍ사실ㆍ팩트가 뒤섞이고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자유롭게 녹아든 독특한 에세이

『이판사판역사판』은 프랑스 사학자 주명철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2015년부터 2020년에 걸쳐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시리즈라는 대작을 펴낸 이후 지나온 삶을 성찰, 회고하면서 신명나게 써내려간 에세이다. ‘이판사판’은 조선시대에 생겨난 불교 용어로 교리공부와 참선에 힘쓰는 ‘이판승’과 절의 살림을 맡아보는 ‘사판승’을 아울러 이르며 막다른 지경에 이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에다 한국전쟁기에 태어나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청춘을 보낸 후 30여 년간 수많은 역사교사를 양성해온 저자의 폭넓고 깊이 있는 직간접 체험이 녹아든 ‘역사판’을 덧붙여 탄생한 제목이 바로 ‘이판사판역사판’이다. 한편 부제에 들어가 있는 ‘일지선 놀이’ 역시 예로부터 선승들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에 착안해서 책의 주인공들이 개발한 놀이를 지칭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허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인 달(진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발한 놀이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한평생 ‘사실’에 충실한 글만 써오느라 스스로에게는 물론 숱한 제자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었던 갈증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책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종횡무진 내달리면서 거침없는 몽상ㆍ환상ㆍ상상ㆍ회상ㆍ명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직조해낸 시대적ㆍ역사적 진실과 사실, 깨달음의 단편이 흡인력 있는 에피소드들 속에 녹아 있는, 소설 같기도 하고 회고록 같기도 한 에세이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일흔 넘은 노교수가 스스로를 ‘꼰대’라고 인정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독자들에게 절절하게 전하고픈 메시지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고 곳곳에 따분한 잔소리가 매복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과는 다른 결의 흥미로움이 가득하며 해학과 풍자, 진솔한 성찰의 격조 있는 즐거움 속에서 독서의 진짜 효용을 절감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 페르소나의, 페르소나에 의한, 페르소나를 위한 ‘방구석 여행기’

이 책의 7쪽에서 11쪽까지는 「머리말」이다. 그 「머리말」에 달린 제목은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서”인데 맨 끝에는 “2021년 좋은 날 기다리며 / 온세상ㆍ대발ㆍ발발 쓰다”라는 문구가 달려 있다. ‘온세상ㆍ대발ㆍ발발이라고? 저자 주명철의 신작 에세이라며? 뭔가 좀 이상하네, 딴 건 몰라도 여느 에세이와는 분명히 다른데’라고 느낄 개연성이 초반부터 농후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머리말에 분명히 나와 있듯 셋이다. 온세상 교수, 대발, 발발. ‘온교수’는 저자의 페르소나이며 대발과 발발은 온교수의 페르소나다. 대발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자 선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이며 그의 제자 발발은 두어 발자국 걸은 뒤에 반드시 뒤를 돌아보는 습성을 지닌 ‘발跋’이라는 동물을 닮으라는 의미로 그가 지어준 이름인데 대개는 ‘발바리’로 불린다. 그런데 저자는 왜 굳이 자신의 페르소나와 그 페르소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내세웠을까? 무려 10권이나 되는 대작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또다시 심심해진 차에 새로운 글감을 찾던 중 “어느 새벽에 이불 속에서 유튜브를 검색하다 종범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고, 비몽사몽간에 스님이 ‘발跋’이라는 동물의 습성에 대해 하는 말씀을 듣고 이 책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살아온 날들과 비례한 추억의 가지가 마구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의식의 흐름이 저속하든 고급지든 상관없이 재미있게 따라가다 보니 현실과 꿈, 상상의 경계마저 흐릿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저자 자신의 체험과 지인들의 체험이 한데 어우러지고, 현실에서 겪었던 일들 중 일부는 웃음과 진지함이 넘치는 강의실 풍경과 옛 시절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한편, 어떤 이들과의 인연은 꿈의 형태로 증폭되어 주인공을 숨 막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읽는 이는 함께 웃으면 그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이 독특한 주인공들이 전해주는 시대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단, 가치관, 숱한 체험, 인생에 대한 깨달음 등등을 접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해가는 고차원의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온갖 ‘잡념’과 더불어 노닐며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 ‘온세상’ 교수는 누구인가?

주인공 온세상 교수는 꽤나 까칠한 인물이다. 원칙주의자이자 뼛속 깊이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맞닥뜨린 안타까운 사정을 너그럽게 헤아려주기보다 원칙에 어긋났을 때는 가차 없이 ‘F’ 학점을 발사하는 쪽을 택한다. 이는 자신의 학과에 소속된 제자들도 예외가 없다. 한편 그동안 놀랄 정도로 근대화ㆍ민주화되었는데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식민지 근성을 떨치지 못한 자들을 몹시 경멸하며, 무분별한 일본어투 남용이나 우리말의 잘못된 쓰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또 불합리한 조치 앞에서는 위아래를 불문하고 이의를 제기해서 원칙대로 돌려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할 때는 늘 빨간 펜으로 신랄하게 지적을 해서 학생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외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 귀가하자마자 클래식을 듣는 그는 ‘붙박이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그런 반면 온교수는 강의 준비를 하다 잠드는 것을 가장 행복하게 여기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수할 때가 제일 기쁘다고 말할 만큼 강의에 온힘을 쏟으며 해마다 꼬박꼬박 논문을 써내는 성실한 학자다.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유머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학생들이 반드시 깨쳐야 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원칙을 지키느라 제자들의 사정을 봐주지 못한 것이 내심 안타까워 자주 악몽을 꾸기도 하고 불행한 일을 당한 제자들을 떠올리며 절절하게 가슴 아파하는 따뜻한 인물이다. 정년퇴임 후에도 “늘 사실과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개인의 경험을 되살려 타인의 경험을 재체험하고 공감하는 교육자가 되라고 분명히 말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스승이다. 그런 그가 제자들과 ‘착한 침입자’인 독자들에게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신화를 깨야 역사가 산다”는 점과 근대화의 여러 성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화를 산업화와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근대화를 너무 잘못 알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노동자의 인권과 삶의 질도 향상시켜서 민주주의를 확실히 정착시킬 때 근대화를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36쪽)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문화적 변화과정을 요약하면, 정교분리·산업화·합리주의·민주주의 발전을 근대화의 중요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네 요소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지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라면 민주주의를 내세워야 한다.” (171쪽)

“사람들은 신화를 창조하고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면만 보고,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부정적인 면만 본다. 교훈을 강조하고 싶은 역사는 미화하고, 그 반대의 역사는 저주한다. 신화를 깨야 역사가 산다. 아니면 역사를 올바로 연구해서 신화를 깨야 한다.” (267~268쪽)

작가정보

저자(글) 주명철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2015년 8월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쓰고, 역사교사가 될 학생들에게도 이른바 ‘꼰대’가 되어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라고 닦달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해도 듣는 사람이 들을 생각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사실만 계속 확인했지만, 되도록 그런 말만 하라고 나라에서 주는 월급의 무게를 이겨내고자 비교적 성실하게 살다가 정년퇴임했다. 지나온 과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만난 학생들은 반드시 가르쳐야 알아듣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되 섣불리 좋다거나 싫다고 판단하지 않고 당대의 공동선에 비추어 판단하려고 애쓰리라 믿으며 안심한다. 그러나 늘 사실과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개인의 경험을 되살려 타인의 경험을 재체험하고 공감하는 교육자가 되라고 분명히 말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내가 퇴임한 후에 급변한 정치 상황과 그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수많은 매체가 날마다 ‘팩트’라고 전한다. 과연 진실성을 믿을 만한 ‘사실’이 몇 개나 될까? 따분하고 화나는 현실에 마음공부를 하자고 결심하고 불가의 고승들이 모든 물질과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본받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판단은 역사적 판단’이라는 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현실세계에서는 물질과 정신이 인연에 따라 얽히고설켜 있지만, 역사적 판단으로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곁가지를 하나하나 떼어내는 작업은 세상의 본모습에 다가서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않는다. 게다가 글쓰기는 몸이 기억하는 직업병이다. 그래서 ‘이판사판역사판’을 마음에 새기면서, 진실·사실·팩트가 뒤섞이고 과거·현재·미래가 뒤얽힌 글을 자유롭게 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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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판사판역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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