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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

김남희 지음
계명대학교출판부

2019년 12월 20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11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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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516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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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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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를 연대기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그것도 선생의 작품을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다루고, 선생이 추상을 지향하는 가운데서도 현실의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사실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비평가로서, 교육자로서 선생의 면모가 그려진다.
서문 004
프롤로그 013

1. 어린 시절과 하얼빈 시절(1917~1945)

‘약전골목’과 예술적 기질 017
그림을 동경하다 019
책에서 길을 찾다 026
교토에서 하얼빈으로 029
쓰다 세이슈를 만나다 034

2. 해방의 그늘과 전쟁의 빛(1946~1956)

해방 후의 한국화단 041
1940년대의 대구화단 043
‘6·25전쟁’이라는 문예부흥기 049
첫 개인전과 두 번째 개인전 052

3. 지역화단을 넘어 중앙화단으로(1957~1969)

‘모던아트협회’와 <현대작가초대미술전> 065
극재 예술의 본질과 주술로서의 예술 071
체험의 조형화와 체온이 깃든 추상 084

4. 미술대학 개척과 교육자의 길(1964~2001)

기초와 모험정신을 강조하다 095
미술대학을 빛내다 101
<대구현대미술제>와 해외전을 유치하다 105
미술교육의 특성화와 장학제도 107

5. ‘곰탕거리’ 같은 그림을 그리다 (1970~1983)

1970년대의 한국화단과 대구화단 113
‘남들이 모르는 그림’ 117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에 들다 127

6. ‘예술의 독학적 경험주의’(1984~1995)

비평가 극재 135
서문과 공감의 비평 144
서로 다른 두 경향의 화해무드 151
‘중용’의 입장과 평형감각 164

7. 한국 추상화의 별이 되다(1996~2009)

찬란한 황혼기 175
1999년의 어느 인터뷰 179
정신의 자유를 구가하다 182
극재미술관과 ‘2004 올해의 작가’, ‘이동훈미술상’ 193
비평으로 본 극재의 예술세계 198
극재의 화집들 213

에필로그 219

주 224
참고문헌 247
찾아보기 252

연보 266
저서,논문,화집 278
연구자료 280

“선생이 떠난 세상에는, 해마다 목련꽃이 피고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정점식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소식을 접했다. 순간, 나는 선생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철없던 시절에는 은사의 높고 깊은 가르침을 실감하지 못했다. 늘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기에, 선생의 존재감이며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선생이 한 국 추상화에 큰 족적을 남긴 예술가이자 뛰어난 교육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을 위해, 아니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해 21세기를 사는 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선생의 일생을 반추해보기로 했다.”(5쪽)

“「토함산」(1939)은 토함산 풍경을 부감시(俯瞰視)로 굽어보며 산들의 골격을 리드미컬하게 스케치한 것이다. 가늘거나 두툼한 선의 혼용에서 비롯되는 회화성이 살아 있다. 회화성이 있기로는 「석굴암」(1939)도 매한가지다. 이 작품은 한 화면에 본존불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들 중에서 문수보살과 부처의 제자를 함께 그린 것이다. 부드러운 필치로 보살상 특유의 곡선미를 생동감 있게 살리고 있다. 이 두 작품에 나타난 드로잉의 ‘선맛’은 훗날 극재의 누드 드로잉의 선묘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200여 점에 이르는 극재의 드로잉은 거의 대부분 여체를 빠르게 그리 되 특유의 생체 리듬감이 실린, 흐르는 선묘의 맛이 일품이다. 더불어 극재에게 잠재된 서체충동을 확인시켜준다. 내가 이들 드로잉에 주목 하는 이유다.”(21쪽)

“어려운 시절마다 극재를 지탱한 것은 독서였다. 독서는 교양을 쌓는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식민주의가 일으킨 전쟁과 전쟁에 따른 정신적 물질적 압박을 견디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억눌린 상황에서 선택한 자발적인 망명처가 책이었다.”(26쪽)

“낯선 땅에서 그림을 독학(獨學)한 극재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할 곳이 없었다. 예술작업에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업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절실한 법이다. 폴 세잔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줄 몇 사람의 벗을 아쉬워했듯이 극재도 그랬다. 불가(佛家)에서 제 자가 스승에게 인가를 받는 것처럼, 작가적 인생에도 때로는 격려가 필요하다. 쓰다 세이슈는 극재에게 일생일대의 격려를 선사했다.”(35쪽)

“극재가 대구에 정착할 무렵, 대구의 서양화단은 자연주의 일색이었다. 조선미전에서 두각을 보인 대구 화가들의 작품이 거의 대부분 풍경과 정물, 인물 등 사실에 기반한 자연주의적인 목가적 작품이었듯이, 해방 후에도 서동진, 박명조, 주경, 서병기, 배명학 등 사실에 충실한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을 하는 선배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극재는 이들의 작품과 체질이 다른 작품들을 해방공간에 선보였다.”(46쪽)

“하얼빈에서 쓰다가 호감을 보인 극재의 매너는 낡은 건물의 벽면이나 돌담, 지층이나 바위 같은 물질의 결, 또는 때묻은 반점이나 얼룩 등이었는데, 작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런 모티브에 대한 관심은 해방 후에도 계속된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이나 햇빛에 바래이고 마멸 된 흔적들, 미생물이나 이끼가 침식하면서 새겨진 주문(呪文)과 같은 음영들이나 때로는 나뭇잎이나 돌멩이 같은 것들이 이미지를 자극”한다. 40년대 말에서 50년대에 이르는 작품에 이런 점들이 두드러진다.”(62쪽)

“극재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언급되는 것은 이들 ‘모던아트협회’와 <현대작가초대미술전>과 관련해서다. 그 이후의 전시 활동이나 변모된 작품 세계에 관해서는 빠진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보니, 서울 중심 의 동년배 작가들에 비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극재에 관해 알 수 있는 정보도 이들 시기의 작품에 국한된다.”(70쪽)

“극재는 자신의 내면에 축적된 심상을 단순화한 형상의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하되, 고풍스럽게 숙성시키고자 한 것 같다. 이때의 심상은 어려운 시절에 겪은 온갖 체험이 용해된 세계이다. 작품은 그것의 조형적 표현이 된다. 비록 이미지가 추상적이기는 하나 극재의 작품은 한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치열한 고민의 표상이었다. 그래서 극재의 작품은 추상적인 이미지임에도 자연이나 생명의 체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극재의 회고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89-92쪽)

“극재는 서문에서 해당 작품세계와 관련된 미술이론이나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작품이야기를 펼치고 맺었다. 이는 한 개인의 작품을 미술의 드넓은 지평에서 보고 생각하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문체도 감기는 맛이 있다. 비평가 특유의 건조한 논문 형식이 아니라 문장가다운 체취가 밴 글이어서 길지 않은 서문일망정 여운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서문에는 예술에 대한 극재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서문에서 극재의 예술관을 추출해낼 수도 있다.”(146쪽)

“극재의 작품에는 회색톤이 많다. 극재는 회색의 근원을 ‘사색’이라고 생각했다. 극재의 회색은 단순한 회색이 아니라 수많은 색이 한데 섞여서 생성된 색이다. 이는 「부덕의 비」 같은 작품을 하던 때의 묵직한 마티에르가 색으로 발현된 것이라 하겠다.”(164쪽)

“먼저 200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2004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회(6. 2~8. 8)가 성대히 열렸다. ‘올해의 작가’는 국립 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마련한 것으로,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 크게 기여하거나 괄목한 성과를 보여준 작가를 선정하여 그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큰 행사다. 극재의 ‘올해의 작가’ 선정은 지역화단에서 활동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196쪽)

‘과연 이길 수 있을까?’에서
‘반드시 이겨낸다!’로
극재(克哉) 정점식, 스스로 호(號)를 짓고 예술로 우뚝 서다

옛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정작 가까이 있는 것은 제대로 모른다는 뜻이다. 저자에게 스승이 그랬다. 크고 작은 인연 속에 대학원 때 가르침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자동차로 간간이 전시회에 모시고 다녔다. 그러면서 스승이 살아온 파란 많은 인생사와 우리 근·현대미술사 속의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이야기를 신기하게 듣곤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는 그것의 중요성을 몰랐다. 스승이 타계하고, 탄생 100주년이 되기까지 스승의 존재도 막연했다. 여전히 큰 작가이자 교육자라는, 막연한 상태였다. 한 번도 그 막연함 속의 실상을 디테일하게 좇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스승을 비로소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스승의 저서와 관련 자료, 작품들을 공들여 찾아 읽고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 이 책은 제자가 그린 스승의 초상화이자 스승의 삶과 예술의 지형을 눌러 담은 서사시 같은 책이다.

‘극재’라는 화두를 공부하다
여기서 ‘스승’은 극재(克裁) 정점식(鄭點植, 1917-2009) 선생이다.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인 선생은 제1회 남조선미술전람회(1936)에 입선한 뒤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 졸업(1938-41)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 기점으로 통하는 1957년에 결성된 ‘모던아트협회’ 회원(1958-63)이자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재야전인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초대 출품(1958-70)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현재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의 전신인 ‘미술공예과’(1964~77) 출범과 예술대학 미술학부(1978~80)로의 승격, 다시 미술대학(1980-83)으로 자리 잡고 성장하기까지 씨를 뿌리고 가꿔온 교육자였다. 작가로서는 평생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 박고석, 한묵 등의 동년배 작가들에 비해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추상화에 투신하여 구십 평생을 추상화가로서, 돌올한 예술세계를 일구었다. 만년에 은관문화훈장(1998)을 받았고, ‘2004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2005년에는 제3회 이동훈미술상을 수상하였다.

선생에 관한 공부의 키워드는 ‘극재(克哉)’라는 자호(自號, 스스로 지은 호)였다. 극재에는 ‘이길 수 있을까’와 ‘이겨낸다’는 뜻이 공존한다. 저자는 학부에서 강의를 할 때 선생을 초청해서 학부생들에게 특강을 맡겼던 시절을 회상한다.

“나는 극재가 호를 스스로 지었다는 사실과 심오한 뜻에 내심 놀랐다. 그때까지 한 번도 극재의 자호(自號)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극재’야말로 그 도저한 예술적 인생을 압축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파괴에서 얻은 가산’은 극재의 예술적 전략이고, ‘인간생활에서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대용물’로서의 예술은 극재 예술의 지향점이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파괴의 모험을 단행하며, ‘평형을 잃은 정신의 불모지’에서 마치 저울추로 균형을 잡듯이 예술로 평형상태를 추구했던 것이 아닐까.” (「프롤로그」에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6·25전쟁 등 격동의 시절을 거치면서 수많은 갈등(‘이길 수 있을까?’)을 겪는 가운데 자신의 길을 간 선생은 마침내 자신을 이기고(‘이겨낸다’) 한국적인 추상화로 우뚝 섰다. 선생은 호(號)로 자신을 세우고, 호에 자신을 새겼다. 그리고 후학들의 빛이 되었다.

이 책은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를 연대기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그것도 선생의 작품을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다루고, 선생이 추상을 지향하는 가운데서도 현실의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사실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비평가로서, 교육자로서 선생의 면모가 그려진다.

비평가 정점식―공감의 비평으로 응원하다
선생은 미술이론에 밝았다. 한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1963-70)이었을 만큼 비평가로도 대구미술 발전에 일조했다. 물론 이 협회 회원이 되기 이전부터 날선 비평의 글을 발표해왔다. 전쟁 중에 발간된 『전선문학』(1952)에 현역 대가들이 명화를 모사하며 의기양양해하는 것을 비판한「저회(低徊)하는 자아도취」 등이 실렸는데, 이는 선생이 가진 비판정신의 일단을 확인시켜준다. 비평가가 드물던 시절, 선생은 대구지역의 비평을 주도하며 대구 추상화의 정착과 개화를 견인했다. 선생의 비평은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비평가가 아니라 ‘작업을 잘 아는’ 작가-비평가였다. 당시에는 작가들이 비평을 겸하곤 했는데, 김영주, 정규, 박고석 등이 선생처럼 비평의 빈 자리를 메웠다. 선생의 비평은 정도에서 어긋난 일에는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지만, 대부분 척박한 풍토에서 작업을 하는 동료 작가들을 향한 비평적 격려에 무게를 두었다. 해방 무렵, 선생이 하얼빈에서 만난 쓰다 세이슈(1907-52)의 조언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었듯이, 선생도 그런 역할을 하며, 미술은 물론 현대미술이 생소하던 시기에 현대미술과 예술에 관한 각종 논문과 ‘서문’ 작업을 통해 미술인구의 저변확대와 작가층을 두텁게 했다. 저자는 선생의 비평을 ‘공감의 비평으’로 명명한다.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동료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밀착하되, 그것을 미술사나 이론의 맥락에 비춰서 의미를 묵직하게 발효시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미술인구의 숫자가 적고, 미술과 생활의 거리가 큰 상황에서 우선 필요한 비평은 다양한 미술의 적극적인 소개이자 작가들에 대한 응원이었다. 선생은 이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이로써 대구미술을 튼튼하게 했다.

선생은 다독가였다. 일찍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가까이해서 평생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이런 독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국내외의 미술동향을 꿰고 작품의 내실을 다지는데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6·25를 계기로 유명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가 잦아졌고, 비평을 겸하며 지속적인 글쓰기를 이어갔다.

선생은 문장가였다. 4권의 저서를 통해 선보인 글들을 사유의 폭과 깊이에서 인문학자를 방불케 한다. 물질문명과 현대미술을 사유하면서 일관되게 그것이 가진 문제점들을 헤아리고 작업도 그 연장선에서 해나갔다. 원고 청탁과 필요에 의해 쓰여진 글들은 미술과 예술 전반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지금도 그 정보의 적확성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는 선생이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술을 사유하고 펜을 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술과 무관한, 일상을 다룬 글들은 생활인으로서 선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선생의 글에는 그것이 논문이든 일반 에세이든 일관된 생각과 체취가 배어 있다.

그런데 선생의 사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저서들은 모두 절판된 지 오래여서,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다. 또 전시회 때 발간된 화집들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화집에 실린 평문들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극재의 삶과 작품세계에 관해 알고자하면, 쉽게 접근 가능한 자료 부족으로 곤란을 겪게 된다.

이 책은 이런 현실을 고려하여 저자의 육성을 접할 수 있게 최대한 원문을 인용했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세계를 다룬 비평가나 미술사·미술이론가들의 평문과 논고를 독자들이 한 자리에서 원문대로 음미할 수 있게 이 역시 인용과 축약으로 길게 소개했다.

‘부록’으로 마련한 「연보」와 「연구자료」에도 충실을 기했다. 특히 「연보」는 그동안의 오류를 최대한 바로잡았다. 기존의 화집들과 선생의 글과 구술, 그리고 극재미술관의 연보에도 오류가 한둘이 아니다. 연보 정리에 마지막까지 신경을 쓴 까닭이다. 그리고 「연구자료」는 극재의 예술을 조명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을 위해 최대한 그러모았다.
교육자 정점식―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짓고 가꾸다
선생은 교육자였다.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하얼빈으로 가서 보통학교 교사를 시작했고, 해방 후에는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4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만들고 가꾸었다. 재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전시하는 <교수미전>을 개최하여 사제간의 유대는 물론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1983년 정년퇴임한 후에도 명예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쳤다. 저자는 졸업생들의 인터뷰를 통해 극재 교육의 일단을 보여준다. 기초실기의 강조와 엄격함(장이규), ‘파괴에서 얻은 가산’으로 요약되는 완성 단계에서의 모험 걸기(정민영), 특성화 교육과 장학제도 등은 미술교육에 열정을 쏟아온 교육자로서 선생의 단면을 증거한다. 선생의 제자사랑은 졸업 후에도 이어졌다. 전시회에 ‘서문’을 보태고, 전시장을 찾는 것으로 실천했다. 그것은 제자를 넘어 작업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선배이자 동료 작가로서의 따뜻한 응원이었다.

그리고 <멕시코문명전> <샘 프란시스전> <전화황전> 등의 해외전과 70년대의 미술계를 뜨겁게 했던 <대구현대미술제> 유치로 재학생들은 물론 대구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해외전을 관람할 수 있게 했고 전국적인 현대미술제의 붐을 일으켰다.


작가 정점식―환원적 ·구축적 세계에서 서체적 추상으로
선생은 ‘남들이 모르는 그림’을 그린 추상화가였다. 자연주의 일색의 대구화단에서 선생은 ‘회화의 유전자’가 달랐다. 일찍부터 자연주의와는 다른 세계에 마음을 주며, 비구상의 추상세계로 나아갔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자신의 생각을 올곧게 밀고 나갔다. 덕분에, 대구에 추상미술이 뿌리내리는데 든든한 지주이자 리더였다.

선생의 작업은 크게, 환원적·구축적인 세계에서 서체추상으로 전개되었다.

“극재는 한국적인 뿌리를 가지면서도 시대감각을 담아내는 미술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 특히 묵화기법은 ‘시대감각을 담은 한국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환원적이고 구축적인 화면’과 ‘서체적 충동’이라는 두 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62쪽)

1983년 정년퇴임을 기점으로 그 이전까지가 환원적 수축적 화면을 보였다면, 그 이후는 서체충동에 의한 자유로운 붓질이 역동적인 전개를 보였다. 물론 환원적 구축적 작업 시기에도 서체충동의 흔적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80년대 중반부터 분출한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내면에 축적된 심상을 단순화한 형상의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하되, 고풍스럽게 숙성시키고자 했다. 이때의 심상은 어려운 시절에 겪은 온갖 체험이 용해된 세계였고, 작품은 그것의 조형적 표현이었다. 비록 이미지가 추상적이기는 하나 선생의 작품은 한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치열한 고민의 표상이었다. 그래서 선생의 작품은 이미지가 추상적임에도 자연이나 생명의 체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피카소와 다른 점은, 나는 타고난 생리적인 그것으로써 완전히 자연에서 벗어나는, 어떤 생명에서 벗어나는 예술은 하고 싶지가 않았지. 그래서 누가 내 그림을 볼 때 추상이라 하지만 실은 추상이 아닌 것 같은, 자연적인 숨소리 같은 것 그건 것이 들어갔지. 언제든지. 그랬기 때문에 이런 점을 눈치 채고 아는 사람이 있었어. 좋다며 그림에서 체온을 느끼기도 했지. 그랬지. 나는 형은 단순화시키고 추상화시키더라도, 작품에서 어떤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걸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지.”(92쪽)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항은, 선생은 추상을 했지만 그 속에는 누드 같은 형상이 있거나 해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피카소가 해체의 극한에서 순수추상으로 넘어가지 않고, 확인 가능한 형상에서 멈췄듯이 선생도 형상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않았다. 선생은 문인화가들이 형상을 통해 심의(心意)를 표현하는 것처럼, 즉 대나무 형상으로 관념적인 절개를 드러내듯이 형상에 의지해서 추상의지를 발휘하고 표현했다. 만년에 선보인 캘리그래피한 작품에서 비록 누드 같은 형상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것은 누드의 곡선이 리드미컬한 붓질로 승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고모부 앞에서 자유롭게 놀렸던 붓질이 오랜 시간 잠재되어 있다가 서서히 드러났는데, 그것이 서체적 추상으로 폭발하듯이 만개한 것이다.

“이 무렵(80년대 중반―저자 주)의 10년간은 제작방향을 하나로 결집시키며 완숙미를 더해간다. 화면 전체가 생체적인 리듬감으로 충일한 가운데, 가는 선들이 서로 섞이고 간섭하면서 색의 깊이를 자아낸다. 한결같은 것이 있다면 토속적 마티에르와 시정적 분위기이다. 그리고 여기에 회갈색의 완숙한 색조가 어우러져 작품에 무게를 더한다. 19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필선의 구성이 두드러지면서 정신의 자유가 화면을 밝힌다. 그린다는 것은 정신의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란 사실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인다.”(192)

평생 파괴의 모험(‘파괴에서 얻은 가산’)을 지속하며 깨어 있었던 선생이 거대한 화업을 마감하고 떠난 자리에, 평소 내면화했던 경구가 유난히 빛난다.

“예술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대용물이다.”(몬드리안)


기초자료의 아카이브 작업 절실
저자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극재의 작품세계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 구비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평전이나 심도 있는 연구를 하려면 극재의 글이나 작품, 극재에 관한 자료의 아카이브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자료 부실이 초래한 오류는 화집마다 제각각으로 표기된 제목들로 나타났다. 그리고 들쭉날쭉인 연보도 문제였다. 저자는 출간 전까지, 이런 오류를 최대한 바로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정확한 기초자료의 구비와 아카이브 작업 위에 심도 있는 연구나 평전, 전기 등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극재의 작품세계는 해석을 기다리는 텍스트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독자는 제자이자 후배작가인 저자의 해석과 가이드를 통해 선생의 예술혼을 그 일단이나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독자가 극재 정점식 예술의 준령(峻嶺)을 답사할 차례다.

극재 정점식(1917~2009)
191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1936년 제1회 남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1938~41)를 졸업했다. 모던아트협회 회원(1958~63)으로 활동하고,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초대 출품(1958~70)했다. 195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십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국제현대미술제> <한국현대미술의 시원전> 등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했다. 대구미술가협회(1955~57), 신상회(1964~69), 창작미술가협회(1974~77), 한국미술평론가협회(1963~70), 신조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계명대학교 미술공예학과 교수 및 학과장(1964~77)·미술학부 교수 및 학부장(1978~80)·미술대학 교수(1980~1983)를 각각 역임했다. 1979년에 계명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명예교수(1987~2001), 국전 초대작가·운영위원, 이중섭미술상 창설위원(1988), 이인성미술상 운영위원장(2002~09) 등을 지냈다. 1998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2004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제3회 이동훈미술상(2005)과 제54회 대한민국 예술원상(2009)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아트로포스의 가위』(1981), 『현실과 허상』(1985), 『선택의 지혜』(1993), 『화가의 수적』(2002)이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남희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1987) 및 동 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1992)했다. 2009년에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조선시대 감로탱화에 나타난 시간성과 공간성 표현에 관한 연구」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동양화에 있어서의 여백 연구―중국회화의 사상적 배경 고찰을 중심으로」가 있고, 그동안 17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한라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계명대학교에서 미술 실기와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 「19세기 감로탱화와 풍속화의 비교연구」(2012), 「19세기 풍속화와 우키요에에 나타난 인물상 분석」(2016), 「선사시대 미술에 나타난 기호의 예술적 의미」(2016), 「조선 후기 감로탱화에 나타난 민화적 요소 연구」(2017)가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미술 특강』(2012), 『중국회화 특강』(2014), 『일본회화 특강』(2016), 『조선시대 감로탱화』(201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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