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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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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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뉴욕. 스물여섯 살의 가난한 마술사 제니 마턴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토끼, 비둘기와 함께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탐정 회사인 〈핑커턴〉의 수장 로버트 핑커턴이 제니를 찾아와 미제 사건을 맡아 달라며 거액의 보수를 제시한다. 그가 맡긴 임무는 심령술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폭스 자매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과연 제니는 수십 년간 이어진 수수께끼를 타고난 기지만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저명한 사설탐정이 무명의 마술사에게 이렇게 큰 사건을 의뢰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루아침에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제니의 위험천만한 대모험!
「넌 할 수 있어, 이미 했잖아, 늘 하는 일이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익숙한 붉은 커튼이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새삼 눈앞에 버티고 있다. 매번 그러듯이, 공포를 이겨 내고 두려움을 몰아내며, 흔들거리는 간이 의자에 올려놓은 작은 거울을 마지막으로 마주 봐야 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가짜 웃음을 지었고, 그 상태로 굳어 버린 얼굴 때문에 인형처럼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두 손에 용기를 그러모아 커튼을 젖혔다. 전투가 시작됐다.
- 9~10면
가장 간파하기 힘든 거짓말은 진실이 배어 있는 거짓말인 법이고, 바로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당신의 위조 신분을, 가명을 꿰뚫어 볼 수 없다. 그 위조 신분의 개인사가 당신의 개인사가 될 때까지, 그 사람과 당신 자신이 혼동될 때까지 내용을 완벽하게 암기하라.
- 65면
「저세상의 심령들이여, 제가 한 번 더, 달도 뜨지 않은 이 밤에, 그대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너무 일찍 떠났던 그대들이여, 우리를 이끌기 위해 돌아와야 합니다. 오, 가엾게도 우리는 얼마나 무지하고 유한한 존재들인가!」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오, 산 자들 사이로 돌아온 망자여, 당신이 누구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제게 알려 주어 그 사람을 고를 수 있게 하소서.」
- 74~75면
제니는 자신을 괴롭히던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폭스 자매 건으로 누가 10만 달러를 내려고 하는 거죠?」 제니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캐물었다.
「마거릿에게나 신경 쓰고 보상금을 회수하는 노고는 회사에 맡겨요. 그저 당신이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면, 그에 따른 수당을 받게 되리라는 것만 알아 두고.」 그는 그런 대답을 던지고는,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서류 더미 속에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 182면
「팀을 파견해요.」 제니가 계시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뭐라고?」
「데이비드의 아내가 시장에서 산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늘 3인분의 고기를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 거예요. 등심 세 개, 달걀 여덟 개 혹은 닭 한 마리가 그들에게는 고작 한 끼 식사거리네요. 강낭콩과 감자의 양이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아요.」
- 224~225면
「당신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이 조사 때문에 다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해 봐요.」
제니는 가방에 한 손을 올려놓았고, 침착하게 몸을 일으켰다.
「진실이요. 난 진실 추종자예요. 난 이 이야기의 진상을 원해요. 내가 직접 자매들의 입에서 진상이 튀어나오게 해야만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아니까요.」
- 227면
목소리 주인이 한 발 앞으로 내딛더니, 손에 든 작은 통으로 그녀를 떼밀었다. 윌리엄이 거울에 석유를 흠뻑 뿌리는 중이었다. 제니가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매듭이 어둠 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터라, 줄에 묶인 그녀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깨어날 시간이란다, 얘야.」
카우보이가 가죽신 뒷굽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뒤, 거울을 향해 던졌다. 성냥이 닿는 순간, 술에 취해 잠들었던 제니는 총소리가 들려 갑자기 잠에서 빠져나왔다.
- 314~315면
「거짓말.」
「당신의 심령이 틀렸어요.」
새로운 딱 소리가 울렸다.
「거짓말!」
영매가 벌떡 일어섰는데, 달빛을 왕관처럼 쓴 음울하고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우리가 만난 뒤로 진실을 강력하게 요구하던 당신이, 그런 일은 내게 단 하나도 털어놓지 않았어. 이제 다 말하든가 아니면 떠도는 심령들의 분노를 받아 보든가!」
케이트는 정말로 무시무시했는데, 은빛 후광에 싸인 산발 머리는 제니가 빠져 있는 혼란의 메아리 같았다.
- 324면
「아빠, 신호 하나만, 내가 한 이 모든 일이 헛짓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아무거라도요. 이 끝에 나를 위한 뭔가가 있다고요.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없었다. 제니는 주먹을 쥐고 있는 힘껏 묘석을 내리쳤다. 한 번 내리치고, 무력한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또 한 번 내리쳤고, 곧 손가락이 피부가 벗어지며 피투성이가 되었다.
- 432면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어려운 일, 그건 함께 일할 좋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거지.」
- 571~572면
진정한 마술사는 공연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살아가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가능한 것에 대해 갖는 인식을 바꿔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관객이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 가운데 현실 세계의 규칙들을 비트는 데 성공하고, 관객이 믿어 왔던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관객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계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 605~606면
거리의 마술사 제니 마턴,
우당탕 기상천외한 수사에 뛰어들다!
앞으로 쭉 눈여겨봐야 할 신인이라는 평을 들으며 대중의 찬사 속에 화려하게 데뷔한 젊은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의 첫 장편소설. 경쾌한 추리,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들, 감동적인 깨달음이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조화를 이루는 이 화려한 모험담은, 심령술과 마술, 탐정 수사가 뒤얽힌 기이하고 매력적인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1888년, 뉴욕. 스물여섯 살의 가난한 마술사 제니는 시장 바닥에서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공연을 펼친다. 대가로 돌아오는 건 코 묻은 동전 몇 개뿐. 제니와 홀어머니, 반려 토끼와 비둘기까지, 네 식구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탐정 회사인 〈핑커턴〉의 수장 로버트 핑커턴이 제니를 찾아와 일자리를 제안하며 거액의 보수를 약속한다. 그가 제시한 임무는 〈마술사들의 공연을 보고 비법을 알아내는〉 것. 업계 거물이 무명의 마술사에게 접근해 온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당장 필요한 지폐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내 눈이 놓치는 건 아무것도 없답니다.」 그때 제니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자신만만한 한마디로 자신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모험에 뛰어들었는지…….
매일 반복되는 삶을 뒤바꿀 모험은 어느 날 우연히 들이닥친다.
거기 뛰어들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만!
제니가 맡은 사건의 중심에는 심령술사 폭스 자매가 있다. 큰언니 리아, 둘째 마거릿, 막내 케이트로 이뤄진 3인조는 망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내세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성을 떨쳐 왔다. 산 사람이 혼령과 대화한다니 분명 교묘한 속임수가 있을 텐데, 폭스 자매가 심령주의 교단을 창시하고 금은보화를 쓸어 모은 40여 년간 비밀은 털끝만큼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제니가 나설 차례.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진정한 마술사가 되려는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을 믿어 보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매일같이 갈고 닦은 마술 실력과 어떻게든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집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둑한 배짱이 제니의 가장 큰 무기가 되어 준다.
제니는 핑커턴 탐정 회사의 지침에 따라 위조 신분을 가면처럼 바꿔 써가며 수사 대상에게 접근한다. 먼저 떠나보낸 남편의 혼령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헤이즐 바월 부인으로 변신해 둘째 마거릿 폭스와 친분을 맺고, 런던에서 온 여행객 애덜리아 말릭으로 변신해 막내 케이트 폭스에게 다가간다. 물론 일은 무엇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는 모험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주는 법. 행동하는 용기를 지닌 제니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저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고,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나고, 한참 좌절에 빠져 있다가도 끝내 다시 일어선다. 그 과정에서 제니가 보여 주는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은 적조차 결국에는 친구이자 동료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책 속의 책,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문장
곳곳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과 사건을 알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표지 그림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폭스 자매는 실제로 19세기에 심령주의의 번영을 이끌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핑커턴 탐정 회사는 1850년 설립되어 수많은 비밀 요원을 거느리고 활약을 펼쳤으며 오늘날에는 보안 업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에 활용된 〈우리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는 핑커턴사의 유명한 표어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저자는 남북 전쟁, 포이즌 스프링 전투 등 같은 시기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흡입력 있는 허구의 이야기로 엮어 내는데, 낯선 시공간의 풍경과 움직임, 소리와 냄새까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재생하듯 생생히 전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런 장면들이 모여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기존의 추리물 독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이룬다.
한편 이 작품에는 큰 줄기가 되는 현재 진행형 이야기 중간중간에 책 속의 책과 문서가 삽입되어 있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구스타브 마턴이 집필한 『마술의 길』은 제니가 언제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바이블로, 진정한 마술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기술과 마음가짐을 모두 담고 있다. 핑커턴 탐정 회사의 창립자 앨런 핑커턴이 남긴 『완벽한 요원을 위한 핑커턴 지침서』는 비밀 요원으로 활동하며 주의하고 명심해야 할 사항이 하나부터 열까지 담긴 교과서다. 독자는 제니가 각각의 책을 펼쳐 든 순간에 같은 책의 같은 대목을 제니와 함께 읽어 내려가게 되며, 이 책 속의 책들과 더불어 〈임무 지시서〉와 〈위조 신분 설명서〉 또한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몰입감을 한층 더해 준다.
내 손으로 써내려 가는 운명
「내가 추구하는 것, 그리고 늘 추구했던 것, 그건 자립이에요. 난 그저 내 마술을 할 수 있기를, 사람들이 나를 내버려 두기를, 어머니의 생활비를 대드릴 수 있기를 원해요.」 처음부터 제니의 가장 큰 바람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마술을 하며 사는 것이었다. 제니는 어쩌다 휘말린 이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다시 마술을 시작할 수 있을까? 보잘것없는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거대해 보이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풀어 낼 수 있을까? 아버지의 조언에 더는 기대지 않고도 언젠가는 진정한 마술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 혼자 시작한 여정을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정으로 바꾸는 마술에 성공한 제니, 어떤 위기에 처해도 맨몸으로 덤빌 용기를 가진 제니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작가정보
Jonathan Werber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가 방향을 틀어 시청각 연출 전문 학교 ESRA에서 시나리오 창작을 공부했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몇몇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현재는 깃펜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 〈플륌〉과 함께 살며 소설 집필에 매진 중이다. 2020년 첫 장편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로 대중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3대학 통번역 대학원(ESIT)에서 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 출판 기획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번역 논쟁』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집착』, 『카사노바 호텔』, 『그들의 말 혹은 침묵』,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식탁의 길』, 레몽 크노의 『연푸른 꽃』, 『지하철 소녀 쟈지』, 마리즈 콩데의 『세구: 흙의 장벽』 전 2권,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울고 웃는 마음』, 바네사 스프링고라의 『동의』, 발레리 라르보의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앙드레 고르스의 『에콜로지카』, 에두아르 루이의 『에디의 끝』, 쥘리 마로의 『파란색은 따뜻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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