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엽서
2023년 01월 0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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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228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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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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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맑고 고운 영혼의 노래!
그늘지고 보잘것없는 데서 씨앗을 일구어 어엿하고 멋진 시로 길러내는 시인과의 만남
임문혁 시인의 신간 '반가운 엽서'
시 한 편 읽은 날
잘 산 날
시 한 편 쓴 날
더 잘 산 날
시처럼 산 날
정말 잘 산 날
- 시인의 말 중에
제1부 몸에 관한 명상
이어걷기 - 12
나를 흔들어보네 - 13
딸에게 - 14
길 - 16
무늬 - 17
넥, 타이 - 18
구멍에서 구멍으로 - 19
몸에 관한 명상 - 20
입이 몇 개냐고? - 21
귀 - 22
거울처럼 - 23
싫어해서 - 24
원시인에게 - 26
하루살이 - 27
그분은 뭐라 하실까 - 28
다시 태어난다면 - 29
손바닥 도장 - 30
뚜껑을 그리며 - 32
거미 - 33
일벌 - 34
문, 문, 문들 - 35
사거리에서 - 36
제2부 나무와 강물
부활 - 40
사다리를 타고 - 42
연필을 깎다 문득 - 43
나무를 듣다 - 44
느티나무 - 45
나무의 거리 - 46
웃는 나무 - 48
하느님의 수화 - 49
서로 손 잡으면 - 50
일생 - 51
나무를 꿈꾸며 - 52
호수 - 53
물의 비밀 - 54
자라나는 물방울 - 56
탈주 - 57
중심 - 58
반짝이는 물빛 - 59
깊이 - 60
강을 보내며 - 62
내 생의 바다 - 63
인드라망 - 64
노을강 - 66
제3부 봄 여름 가을 겨울
심욕心浴 - 68
반가운 엽서 - 69
봄 편지 - 70
접시꽃 - 71
개화 - 72
꽃의 말 - 74
선물 - 75
무엇으로 왔는가 - 76
때 늦은 꽃 배달 - 77
뚜껑별꽃 - 78
5월의 반성문 - 80
밤비 - 82
봄비 - 83
바람을 나는 보네 - 84
합정을 돌다 - 85
차마 - 86
바람은 불어가고 - 87
상객 - 88
제4부 단풍을 보다가
귀 기울여 - 92
끊긴 물 - 93
두 개의 방 - 94
집 한 채 - 95
면도날 - 96
호리병에 담아 - 97
달항아리 - 98
계영배 - 99
살 - 100
솥 - 101
종 - 102
딱 둘만 남게 된다면 - 104
별의 거리 - 106
종소리 - 107
달리는 벤치 - 108
모퉁이 - 109
수건돌리기 - 110
소를 타고 - 111
초상화 한 폭 치켜들고 - 112
단풍을 보다가 - 113
평설 I 시처럼 사는 길 닦기 노래 - 114
이상호(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이어걷기
아내가 구두 한 켤레를 주워왔다
내 발보다 한 치수 위였지만
발을 넣으니 담쑥 끌어담는다
밑창이 바깥쪽으로 좀 닳았어도
아직은 한참 더 걸을 수 있을 구두
버린 주인이 미웠을까, 새 주인이 그리웠을까
내 발을 맞는 품이 사뭇 살갑다
옛 주인은 왜 이 구두를 떠나보냈을까
구두 벗고 맨발로 세상 밖으로 떠난 건 아닐까
아내는 그냥 버리기 너무 아까워 가져왔다지만
그렇다고 공으로 신으면 안 되겠지
이 구두 신고 이제부터 내가 걷는 길은
옛 주인이 그렇게 걷고 싶어 했던 길
이어걷는 길이 될 것이다
노을의 가슴이 붉다
---------------------------
나를 흔들어보네
서가에 유리 종 하나 올려놓았네
하루가 졸리면
댕그랑 흔들어보고
책 읽다 시들하면
또 한 번 흔들어보고
시 쓰다 앞뒤 얽히면
또 한 번 댕그랑 생각을 고쳐보네
내가 텅 빈 날
댕그랑 댕그랑 소리 날 때까지
나를 흔들어보네
-----------------------------------
딸에게
외할머니 시집오실 때
외할머니의 어머니는 딸 품속에
조약돌 하나 넣어주셨단다
돌이 말하면 비로소 너도 말하렴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돌이 되어
입을 닫으셨단다
우리 어머니 시집보내실 때
외할머니는 딸 품속에
모란꽃잎 자수를 넣어주셨단다
모란이 하는 말을 따라서 하렴
그때부터 어머니는
모란 입술 같은 말만 따라 하셨단다
딸아, 이제 네 차례가 왔다
네 품속에 무얼 넣어 보낼까?
시 한 편 곱게 적어 넣어준다면
네게서 새록새록 시가 피어날지도 모르는데
시처럼 노래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딸아, 이제 네가 시를 완성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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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나무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잘리고 꺾이고 못 박혀도
죽지 않는다
기둥으로 문짝으로
안방 장롱으로 침대로
밥상으로 도마로
다시 태어난다
집은
나무들의 천국
장롱이며 문들을
닦고 또 닦아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세상 나무들 깎고 다듬어
새 사람 만드시는
목수, 그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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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타고
평생 나무를 다듬어온 그는
무얼 만들었을까
그걸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실은, 그가 만든 것은 사다리였다
골고다 언덕
온몸 나무 기둥에 못 박아
완성한 사다리를 타고
그는 하늘로 올라갔다
옆에 있던 강도까지 데리고
곧 다시 내려오마
천둥이 쳤다
연필을 깎다 문득
연필을 깎다 문득
옛일을 떠올린다
일기장에 눌러 쓴
삐뚤빼뚤한 글자들 눈에 선하다
아직도 여기 불쑥 저기 불쑥
콩콩대며 뛰어다니는 글자들
어디서 향나무 향긋한 바람이 분다
바람에 절로 넘어가는 일기장
키를 쓰고 소금 받으러 가는 꼬마
구슬치기 딱지치기에 새까매진 손등
참외 서리 갔다가 풀밭에 잃어버린 신발 한 짝
어디서 나를 기다릴까
여기저기 추억 속 헤매다
훌쩍 자정을 넘는다
임문혁 시는 시인이 시를 거창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창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반가운 엽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날 새 시집 원고를 받고 처음 열어보았을 때 얼핏 다가온 느낌이 그렇다. 그는 무엇보다 시의 생활화에 대한 꿈이 커서 거대한 기중기인 양 한없이 무거운 삶을 시라는 지렛대로 슬쩍 들어 올려놓고는 이러쿵저러쿵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런데도 의식과 행실을 바꾸지 않을 수 있겠냐고 자문자답으로, 또는 우리에게 보란 듯이 노래한다. 그 일의 본질이 시여서 노래라 일컬었지만, 무슨 타령처럼 삶의 애환을 절절히 부르며 때로는 아픔을 삭이거나 즐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어떤 작품들은 겉으로 건성건성 일별하면 다소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아프고 답답한 자아와 세계를 까발리듯 들어내어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절박한 시심의 명령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너무 아픈 삶에 관한 회의는 꾸미고 감추고 에두르고 시치미뗄 겨를이 없다. 그런 작의는 사치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다른 어떤 작품들은 시성詩性이 알차게 배어 자세히 읊고 뜯어보게 만들어 그 길로 따라가면 한껏 솜씨를 뽐내며 잘 빚은 결실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작품을 만나면 압축과 함축성, 적절히 내면화된 리듬, 시치미떼기와 반어-역설 따위의 표현 의장들로 말미암은 시적 모호성이 상당해 알맹이가 쏙 빠지도록 털려면 상당한 도리깨질로 땀깨나 흘리겠구나 하는 즐거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 해설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임문
임문혁 : 충남 당진 출생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물노래」 당선
저서
시집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반가운 엽서』 등
이메일 : ymmh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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