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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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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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개정판 시인의 말
1부
살얼음 / 우듬지 / 석유 냄새 때문에 / 코스모스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 수면 내시경 / 꽃 / 흰 모습 / 지금 몸이 좀 아파서 / 천천2리 / 예쁘기를 포기하면
2부
유월 비 / 풍경이 흔들린다? / 역류 / 발 지도 / 몸한다 / 당나귀와 당나귀 같은 아이와 / 벚꽃, 아프다 / 파티, 좋아하나요 / 발목을 잡는다고 / 알고 보면
3부
와리바시라는 이름 / 그늘값 / 탁본 / 말은 안으로 한다 / 낮달 / 부록 / 님짜장 / 비닐 까마귀 / 국물 냄새 / 일박(一泊)한다
4부
만지면 아프겠다 / 날개, 무겁다 / 대낮 / 젖는다 / , / 연속극처럼 / 서서 오줌 누고 싶다 / 삼각김밥 / 화물 트럭 주차장 / 예행연습 / 가위
5부
사물함 / 공휴일 / 그 비린내 / 매독 / 잘 가라, 환(幻) / 소주 넥타이 / 슬픔 / 월정사 귀고리 / 커튼 / 젖
6부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 뒷모습 / 봄, 싫다 / 3면과 4면 사이 / 아직 때가 안 돼서 / 젊은 의사가 좋긴 한데 / 이런 일, / 돌아간다 / 물 이야기 / 추위 속을 들여다보다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스름하고
낮게 내려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 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처럼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 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스름한 어머니라는
오, 나라는 무덤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전문
작가정보
작가의 말
초판 시인의 말
끌어모은 이삭들.
말(馬)안장에 얹어 보낸 뒤, 살펴보니
말(言)을 따라간 것들 거의 뒷모습이다.
뒷모습엔 눈물이 있다.
묵묵히 견딘 시간들이 있다.
그 측은한 모습들을 베끼고 옮겨보았으나
말은 없고 말이 많으니 그 수레 멀리 가진 못하겠다.
2006년 가을
이규리
개정판 시인의 말
말이 많았던 때는 불충분할 때일 것이다.
돌아보니 말이 많았다.
무성했던 시절이 다 무용한 건 아니겠으나
이후에
어떤 나는 남고 어떤 나는 버려질 것이다.
형식을 고심하는 동안
참을성 많은 저녁이 옆에 있어주었다.
2022년 9월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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