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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전혜원 지음
서해문집

2021년 12월 11일 출간

종이책 : 2021년 11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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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208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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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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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화폐를 얻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사전이 그리 정의할뿐더러 현실에서도 그렇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노동의 가치’와 연동된다.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좌우하는 것은 개인의 노동에 매겨지는 가치(임금)다. 값비싼 노동자일수록 촉망받는 인재로, 각광받는 결혼 상대자로, 존경받는 부모로 살아가기 쉽다. 반면 노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임금 노동자, 나아가 실업자는 최소한의 권리와 존엄조차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책은 노동력을 사람의 가치로 환산하는 오래된 현실이 합당한지에 대해 애써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크고 머나먼 차원의 일이다. 대신에, 좋든 싫든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주목한다. 요컨대 이 책은 플랫폼 노동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9가지 질문으로 엮어낸 ‘밀레니얼 한국의 노동여지도’다.

자신의 이주 노동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저자는, 모두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의 보편적 보호망이 왜 어떤 노동자에게는 미치지 않는지를 묻는다. 내가 하는 노동이 다른 이의 노동과 같을 때 적용되어야 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왜 작동하지 않는지 묻는다. 수년째 ‘공정’을 명분으로 벌어지고 있는, 들어갈 자격(공채 정규직)과 일할 자격(숙련된 비정규직)의 다툼에 숨은 차별의 구조를 묻는다. 쿠팡과 타다 등 신산업의 총아들이 뽐내는 ‘혁신’이 실은 ‘약탈’의 다른 이름이 아닌지 묻는다. 기술이 일자리를 잠식하며 숙련공들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 때, 공동체가 지녀야 할 태도와 처신에 관해 묻는다. 왜 우리는 일터에서 날마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 죽음들을 멈추기 위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의 공과를 묻고 또 묻는다.

질문을 던지는 이는 저널리스트 이력의 과반을 노동 현장에서 채워온 1988년생 시사주간지 기자다. 그는 반(反)신자유주의나 시장주의 같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관념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선악의 이분법을 따르지도 않는다. 두 눈과 두 발로 겪어온 취재현장이 그에게 ‘노동은 결코 신성하지 않으며, 노동 문제는 이해를 달리하는 행위자들 간 합리적·비합리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담론을 뒤로한 채 개별 노동자와 조직 노동, 기업과 정부, 해묵은 관행들과 제도의 역학을 파고든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 복잡다단한 현상들은 ‘숙련의 해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일목요연한 한국 노동의 풍경’으로 재구성된다.

저자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음에도 이 책에 치밀한 비평과 질정을 건넨 소설가 김훈은 그러한 문제의식이 “‘정의란 무엇인가?’라기보다는 ‘무엇이 정의인가?’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책은 ‘이념의 깃발로 펄럭이지 않으며, 질문이 추구하는 정의는 실용적이며 생활적이다. 이 책의 질문들은 가치중립적이되, 탈가치가 아니라 충돌하는 여러 가치들을 함축하는 넓은 시야를 가졌다. 이를 통해 원리가 아니라 방법으로서,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작동되는 정의의 모습을 힘겹게 그려내고 있다.’

소멸하는 일자리에 대한 치열한 관찰과 모색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한 세대 전의 고전 《노동의 종말》(1996)을 잇고 있다. 그 숙련 해체를 주도해온 기술 혁신의 은밀한 착취 구조를 고발한다는 점에서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1963)의 통찰을 닮았다. 일터에서 모멸받고 쫓겨나는 이들의 인간적 상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난쏘공》(1978)이나 《전태일 평전》(1983)의 리부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불세출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이 한 세기 전 당부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다. 소설가 김훈이 이 책에 붙인 추천사의 마지막은 이렇다.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려고 했다지만, 결국 그도 가치판단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윤리의 범주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전혜원 기자는 알고 있다.”
·추천사

프롤로그: 노동이 신성하다고요?

1. 종속적 자영업자의 시대
-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진짜 사장님일까?

2. 고용 없는 노동
- 플랫폼 일자리와 진화하는 노동법

3. 기술이 산업을 대체할 때
- 혁신은 어떻게 약탈이 되는가

4.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때
- 사라지는 직업과 사라지지 않을 권리

5. 로켓배송의 빛과 어둠 Ⅰ
- ‘물류 혁명’의 두 얼굴

6. 로켓배송의 빛과 어둠 Ⅱ
- 떠오르는 기업의 추락하는 노동

7. 들어갈 자격 vs. 일할 자격
- 공정은 어떻게 차별이 되는가

8.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
-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9. 한국 노동의 딜레마
- 정년, 호봉제, 주휴수당

에필로그: 제도에서 유인으로

·주

딸랑. 손님을 알리는 소리다. 재빨리 손님 수에 맞는 물수건과 에다마메(枝豆)라고 하는 찐 콩을 그릇에 담아 내놓아야 한다. 보통은 미리 준비해두는 편이지만, 손님이 몰릴 땐 금방 동이 난다. 그럼 낭패다. “손님이 기다리잖아!” 점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손님이 우왕좌왕하게 내버려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재빨리, 친절하게 맞이하지 않으면 금세 다른 가게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님을 놓칠 때마다 점장의 한숨이 귓가에 꽂힌다. 2010년 봄 교토역 부근의 한 닭꼬치 가게에서, 나는 ‘파블로프의 개’였다. _11쪽 (프롤로그)

진보 언론의 노동 기사에는 ‘감성팔이’라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민주노총은 사회악’이라는 둥 노조에 강한 반감도 드러낸다. 누군가는 댓글 따위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런 댓글 들이 진보 언론이 문제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 점을 꿰뚫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가능한 모든 반론에 진지하게 답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지위에 있는 존재를 대변하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다. _22~23쪽(프롤로그)

프랜차이즈가 대행하는 것은 ‘표준화된 숙련’이지 ‘장인의 숙련’이 아니다. 한계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창업자들이 프랜차이즈에 뛰어든다. 왜 그럴까? 자신도 숙련을 갖추지 못하고, 프랜차이즈에게 숙련을 외주 주지도 못한 자영업자의 현실에 답이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폭로하는 현실이 바로 여기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식당을 열었으면서도, 식당 운영에 요구되는 숙련의 핵심인 메뉴 선정, 재료 조달, 조리, 접객, 나아가 서는 장사하는 사람의 ‘자세’까지도 새로 배우곤 한다.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은 외식업 프랜차이즈의 대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_39~40쪽(1장. 종속적 자영업자의 시대)

아플 위험은 불규칙하다. 실업의 위험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과 교원,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은 해고될 위험은 거의 없다. 실직 위험이 취약 노동에 집중되어 있고, 그걸 분산하기 위해 상층 노동이 비용을 내는 구조다. 고용이 안정된 사람도 전 국민 고용보험에 들어와 보험료를 내야 할까? _70쪽(2장. 고용 없는 노동)

타다 논란을 기사로 쓸 때마다 전화하던 기사님이 있다. 언제부턴가는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커피숍으로 불러내 귀찮게만 했지 실질적으로 보탬이 된 적은 없으니까. 지금쯤 다른 법인택시 회사에서 일하며 사납금을 내고 있을까? 그 기사님은 언젠가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일을 한 뒤 땀에 젖은 채로 집에 돌아온 이야길 해주었다. 대기업인데 샤워실도 없더라면서 혀를 내두르던 모습이 잔상에 남아 있다. 그는 분명 ‘프리랜서’로서 의 자율성은 별달리 누리지 못했지만, “50대에 이런 일자리 찾기 쉽지 않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더 좋은 다른 일자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근거가 당시의 내게는 없었다. 고용형태에 문제가 있으니 직접고용을 위해 싸우시라고 할 용기도. _94쪽(3장. 기술이 산업을 대체할 때)

수납원의 약 80%는 여성이다. 네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할 때 공동체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서, 우리가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 이 사건은 보여주었다. 어쩌면 수납원이 취약노동에 속한 일자리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정규직화 갈등으로도, ‘없어질 직업’을 둘러싼 해프닝으로도 읽을 수 없다.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 0.5평짜리 톨게이트 부스에 담겨 있었다. _109쪽(4장.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때)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쿠팡 같은 온라인 배송업체 주문량이 늘면서 물류 노동 종사자도 증가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이 중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이나 소득 감소 위기의 희생자도 포함되어 있다.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이 땅의 취약계층은 대거 쿠팡으로 향했다. 나는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이라 할 쿠팡의 물류 현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비극을 기록했다. 그것은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는 이 독특한 업체가 도달한, 인공지능을 활용한 눈부신 성취의 뒷면이다. -137~138쪽(6장. 로켓배송의 빛과 어둠Ⅱ)

보안검색 업무는 인천공항에 필요한 ‘상시·지속 업무’다. 정부 가이드라인상 정규직 전환 대상이다. 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자격’은 정말 ‘시험’과 같은 공개채용으로 측정해야 하는 것일까. 보안검색 요원들은 평균 5년간(3년 이상 근무자 72%) 하루 12~14시간씩 12조 8교대로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208시간의 항공보안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1년에 한 번씩 별도 평가도 받는다. 만일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자격’이 기준이라면,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그 일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격의 증거일 수 있다. 소속이 바뀐다고 해서 이들이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_169~170쪽(7장. 들어갈 자격 vs. 일할 자격)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 들 건배하자!” 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 Years)〉에 등장하는 대사다. 극 중 화자는 영국 사회가 망가져가는 과정을 지켜본 아흔이 넘은 여성으로, 그는 ‘우리가 계산대 여자들을 기계가 대체하도록 내버려두었다’며 자조한다. 거리에 나가서 시위하지도, 항의 편지를 쓰지도, 다른 가게로 가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운 좋은 소수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심지어 목숨 부지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 운이 아니라 재능 있는 소수라고 해도 이런 낙차는 정의롭지 않다. 아니, 지속가능하지 않다. 늙은 나도, 젊은 나의 자식도 언젠가 그곳으로 떨어질 것이므로. _195~196쪽(7장. 들어갈 자격 vs. 일할 자격)

마스크와 방진복을 구하지 못한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안전지대에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코앞에 가서도 차마 발들이지 못하는 일터에서, 그날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 수 6명의 작은 업체였다. 그렇게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_242쪽(8장.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

문재인 정부가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조의 양보를 자판기에서 음료수 나오는 것처럼 기다렸다. 비전과 전략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노조가 ‘노답’이라고 언제까지 푸념만 할 수 있을까. 협력할 최소한의 명분도 주지 않았으면서. 테이블에 안 나오는 노조를 탓한다면, 테이블에 앉히는 것도 실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실력을 발휘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전체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더 정의롭게 작동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여전히 유효한가. 증세로 사회안전망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임금 평준화를 이룰 방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여기에 노사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유인을 무엇으로 줄 수 있을까. 우리 공동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공정 담론’이니 ‘능력주의의 폐해’이니 논하기 전에 진보의 대안을 의심하는 게 먼저 아닐까. _300~301쪽(9장. 한국 노동의 딜레마)

부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3년 7개월간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허태준 씨는 “누군가가 안정감을 느끼는 울타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 울타리는 학벌일 수도, 공채일 수도 있다. 때로 노조일 수도 있다. 어떻게 노조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가 될 수 있을까. 이걸 해내는 데 공동체의 미래가 달렸다. _308쪽(에필로그)

소멸하는 일자리와 모멸받는 사람들에 관한
한국 노동의 9가지 질문과 대답

노동
: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화폐를 얻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사전이 그리 정의할뿐더러 현실에서도 그렇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노동의 가치’와 연동된다.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좌우하는 것은 개인의 노동에 매겨지는 가치(임금)다. 값비싼 노동자일수록 촉망받는 인재로, 각광받는 결혼 상대자로, 존경받는 부모로 살아가기 쉽다. 반면 노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임금 노동자, 나아가 실업자는 최소한의 권리와 존엄조차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책은 노동의 가치를 사람의 가치로 환산하는 오래된 현실이 합당한지에 대해 애써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크고 머나먼 차원의 일이다. 대신에, 좋든 싫든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주목한다.

저자의 짧은 이주 노동 경험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모두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의 보편적 보호망이 왜 어떤 노동자에게는 미치지 않는지를 묻는다. 내가 하는 노동이 다른 이의 노동과 같을 때 적용되어야 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왜 작동하지 않는지 묻는다. 수년째 ‘공정’을 명분으로 벌어지고 있는, 들어갈 자격(공채 정규직)과 일할 자격(숙련된 비정규직)의 다툼에 숨은 차별의 구조를 묻는다. 쿠팡과 타다 등 신산업의 총아들이 뽐내는 ‘혁신’이 실은 ‘약탈’의 다른 이름이 아닌지 묻는다. 기술이 일자리를 잠식하며 숙련공들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 때, 공동체가 지녀야 할 태도와 처신에 관해 묻는다. 왜 우리는 일터에서 날마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 죽음들을 멈추기 위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의 공과를 묻고 또 묻는다. 요컨대 이 책은, 플랫폼 노동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9가지 질문으로 엮어낸 ‘밀레니얼 한국의 노동여지도’다.

우리 시대 노동의 공통분모,
숙련의 해체

질문을 던지는 이는 저널리스트 이력의 과반을 노동 현장에서 채워온 1988년생 시사주간지 기자다. 그는 반(反)신자유주의나 시장주의 같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관념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선악의 이분법을 따르지도 않는다. 두 눈과 두 발로 겪어온 취재현장이 그에게 ‘노동은 결코 신성하지 않으며, 노동 문제는 이해를 달리하는 행위자들 간 합리적·비합리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거대담론을 뒤로한 채 개별 노동자와 조직 노동, 기업과 정부, 해묵은 관행들과 제도의 역학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기술발전과 고도 분업이 가져온 ‘숙련 일자리의 감소’라는 전 지구적 현상으로 집약된다.

오랫동안 기업이 정규직을 뽑는 이유는 ‘숙련’이라고 알려져 왔다. 일을 오래 해서 숙련 노동자가 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 그럼 기업은 해당 노동자를 오래 고용할 유인이 생긴다. 오래 일할수록 숙련이 쌓인다고 가정하고 근속연수에 따라 높은 임금을 주는 시스템이 바로 호봉제다.
이러한 숙련이 해체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논의되는,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노동 문제들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숙련 해체라는 공통분모와 곧잘 마주치게 된다. 기업은 점점 숙련이 필요 없는 업무를 밖으로 털어낸다. 자영업이 요구하는 숙련을 갖지 못한 자영업자는 가맹비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가격 책정을 비롯한 경영의 핵심을 프랜차이즈 본사에 맡기고, 본사는 점포 확장의 비용과 리스크를 가맹점주에 넘긴다. 프랜차이즈라는 ‘혁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노동관계다(1장). 저숙련 인력을 그나마 고용이라도 하던 기업들은, 하청을 주는 것을 넘어 아예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같은 이름의 개인사업자와 계약을 맺어도 되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고용하지 않고도 일의 수행 여부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니까(2장).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타다’와 택시를 둘러싼 갈등은, 길 찾기라는 택시기사의 숙련을 내비게이션이 해체한 것과 관련이 있다(3장).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나선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가 내세운 것이 자신들의 ‘숙련(일할 자격)’이 아니라 ‘공채(들어갈 자격)’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이 숙련과는 거의 무관한 다른 것(입직 과정)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기 때문이다(7장). _(본문 19~20쪽)

차가운 머리, 따뜻한 심장으로 쓴
노동 이야기

저자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음에도 이 책에 치밀한 비평과 질정을 건넨 소설가 김훈은 그러한 문제의식이 “‘정의란 무엇인가?’라기보다는 ‘무엇이 정의인가?’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책은 ‘이념의 깃발로 펄럭이지 않으며, 질문이 추구하는 정의는 실용적이며 생활적이다. 이 책의 질문들은 가치중립적이되, 탈가치가 아니라 충돌하는 여러 가치들을 함축하는 넓은 시야를 가졌다. 이를 통해 원리가 아니라 방법으로서,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작동되는 정의의 모습을 힘겹게 그려내고 있다.’
꼰대 또는 지독한 허무주의자라는 세상의 평가가 무색하게 노동, 특히 산업재해 문제에 천착하며 울림 깊은 문장과 호소를 쏟아내고 있는 이 노작가의 말마따나 이 책에는 ‘사이다’가 없다. 극성맞은 비판과 손쉬운 대안 대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며 벼려지는 저자의 생각은, 넌지시 혹은 노골적으로 기업 편을 드는 보수 진영과 충돌할뿐더러 노동을 ‘선량한 피해자’로만 그리는 진보 진영과도 곧잘 불화한다.

훨씬 논쟁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공론장에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예컨대 로켓배송과 인공지능 기술이라는 ‘혁신’을 경제지가 소개하고, 그로 인해 파편화되는 노동의 아찔함을 진보지가 지적할 때, 나는 그 빛과 어둠을 모두 보고 싶었다(5, 6장). 톨게이트 수납원 해고 사건에서 ‘하이패스가 있어서 수납원이 필요 없는데 왜 세금으로 정규직화해야 하느냐’는 포털사이트 댓글의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고 싶었다(4장). 형사처벌을 전제한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진에게 ‘안전 의무’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묻는 것 아니냐는 보수 쪽 의문을 피해가지 않으려 애썼다(8장). 인천공항 정규직화 갈등이나 호봉제, 정년연장에 대해 진보 언론이 좀처럼 말하지 않는 바를 들여다보려 했다(7, 9장). _(본문 22쪽)

‘인천공항 사태’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서 저자는, 유사 신분제의 특권층으로 군림하는 공공부문 정규직을 비판하면서도 진보가 죄악시하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고민해볼 만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타다 서비스와 택시 업계의 충돌에 관해서는 혁신(사납금 폐지, 승차거부 등 택시 업계의 부조리 해소)과 약탈(노동법 위반)이라는, 신산업의 출현이 일으키는 사회변동의 모순을 입체적으로 포착해낸다. 잇따른 산재 사망 사건의 처방으로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를 하나하나 짚으면서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미디어의 섣부른 평가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정년연장과 주휴수당이 실제로는 노동시장의 약자들에게 전혀 이로운 정책이 아님을 폭로한다.

숙련 해체의 시대, 소멸하는 일자리에 대한 치열한 관찰과 모색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한 세대 전의 고전 《노동의 종말》(1996)을 잇고 있다. 그 숙련 해체를 주도해온 기술 혁신의 은밀한 착취 구조를 고발한다는 점에서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1963)의 통찰을 닮았다. 일터에서 모멸받고 쫓겨나는 이들의 인간적 상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난쏘공》(1978)이나 《전태일 평전》(1983)의 리부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노동계급을 위한 진혼곡’이 아니다. 노동자와 그들의 일자리가 겪어온 좌절과 고난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추상화된 거대담론과 진부한 구호에만 머물러온 진보-보수의 통념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 불세출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이 한 세기 전 당부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다. 소설가 김훈이 이 책에 붙인 추천사의 마지막은 이렇다.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려고 했다지만, 결국 그도 가치판단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윤리의 범주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전혜원 기자는 알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전혜원

1988년생 〈시사IN〉 기자. 2013년부터 기자로 일했다. 2017년부터 주로 노동 기사를 썼다.
많은 기자들이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곤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사람 눈을 잘 못 본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고역이다. 그래서 취재 과정보다는 기사를 쓰는 순간을 더 좋아한다. 정확히는 다 쓰고 나서 찾아오는 잠깐의 희열이 좋다. 그거 하나로 버틴다. 아, 물론 마감 뒤 마시는 맥주도 빼놓을 수 없다.
기자인데 민첩성이 제로다. 일간지 갔으면 진작 잘렸을 텐데, 주간지라서 용케도 계속 다닌다. 이 디지털과 뉴미디어의 시대에, 나는 인쇄 매체 종사자로서 느리더라도 ‘좋은 질문’을 던지려 애써왔다. 밑도끝도 없이 노조를 혐오하는 보수 언론과, 노동을 선량한 피해자로만 그리는 진보 언론 사이에서 갈증을 느꼈다. 그런 질문을 모아 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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