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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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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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 없는 자들에게
바치는 거룩한 송가
거친 대지와 거센 바람 위에 써 내려간
사소하지만 위대한 존재들의 일생
나는 하늘과 책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배웠다. 비굴한 놀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세상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아도 됨을, 세상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세상이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봐도 됨을, 세상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쾌락으로 바뀔 수 있는 고통과 더불어 경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간과 책들이 교차하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몸이 태어났고, 그 몸 역시 나였다. 그 몸은 책에서 읽은 것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현기증에 맞춰 보고자 하는 불가능한 소원 탓에 끝없이 떨었다. 공간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것들도 현기증을 일으켰고, 과거의 것들이 기억 속에 남긴 흔적은 말이 불완전하듯이 불완전했다. 나는 기억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본문에서
앙투안 플뤼셰의 삶
외젠과 클라라의 삶
바크루트 형제의 삶
푸코 영감의 삶
조르주 방디의 삶
클로데트의 삶
어려 죽은 여자아이의 삶
옮긴이의 말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구원받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부활하기 위해서다.” -피에르 미숑
“눈부신 섬광 같은 걸작!” -≪르 몽드≫
“피에르 미숑은 삶의 거대한 몸짓과 미세한 감각을 총체적으로 포착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정교하고 넉넉한 문장을 선보인다.” -≪월스트리트 저널≫
“우리는 그의 작품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피에르 미숑은 문학을 현존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리베라시옹≫
“놀랍도록 풍부하고 신화적인 글쓰기로 현대 프랑스 문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가이 대븐포트(소설가)
현대 프랑스 문학의 신비이자 기적으로 불리며, 프란츠 카프카상 등 전 세계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신화적 존재, 피에르 미숑의 장엄한 대표작 『사소한 삶』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마침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피에르 미숑은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프랑스에선 익히 ‘국민 작가(grantécrivain)’로 군림하며, 공인된 저자의 작품만이 오를 수 있는 총서 「카이에 드 레른(Cahiers de L’Herne)」에 선정되는 등, 그야말로 프랑스어 산문 문학 자체를 대변하는 존재다. 외지고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대학교 때 잠시 연극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청춘의 대부분을 술과 약물로 물들인 미숑은 서른아홉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한평생 작가가 되기를 갈망했음에도 매번 텅 빈 백지 앞에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미숑은 기나긴 방황을 마치며 자기 영혼과 생명의 근원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절대적인 고전, 완전무결한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허황한 소망과 잔인한 백일몽에서 깨어난 뒤 미숑이 가장 먼저 다다른 곳은 바로 자신의 고향, 쇠락한 옛집이었다. 미숑은 과거의 거장들과 겨루겠다는 아집을 뒤로하고 자기와 같은 사람들, 하찮고 쉬이 잊히고 소리 소문 없이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존재들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그제야 미숑은 문학이란 화려한 미사여구의 나열, 거창한 웅변이 아님을, 이를테면 티끌 같은 삶과 바람결에 사라진 울음소리와 한없이 부옇게 빛바래 가는 기억을 되살리고 치유하고 지탱하고 화해하게 해 주는 과업임을 깨닫는다. 결국 『사소한 삶』은 시커먼 절망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던 미숑이 치열하게 도달한 문학의 진실이자, 끝내 가닿은 생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책에서든 결코 찾아낼 수 없고, 고작 한두 세대만 흘러도 영영 미지로 남게 될 사람들의 인생, 그토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인 것이다. 미숑은 사실상 모든 이들의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사소한 삶’을 되살려 냄으로써 황폐한 세계와 상처받은 영혼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광활한 종이 위에 거세게 눌러쓴 문장을 통해 확신했다. 어쩌면 『사소한 삶』이야말로 벌써 잃어버리고 무자비하게 사라져 버린 세월, 즉 우리 모두의 ‘삶’을 되찾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플뤼셰, 팔라드, 무리코, 게오동, 미숑, 쥐모……. 피에르 미숑의 『사소한 삶』은 프랑스 사람들에게조차 생경하게 들리는 외딴곳, 낯선 성(姓)을 지닌 조상들의 터전에서 돌연 시작된다. 우리는 미숑이 호명하는 사람들, 당최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고, 아무리 애써도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인물들의 삶 속으로 다급히 붙잡혀 들어온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선 작품 속의 세계 역시 수수께끼다. “자비로운 고사리들이 병든 땅을 가려” 주는 외진 땅, “겨울이면 까마귀 울음소리가 땅의 주인이 되어 붉게 물든 저녁과 바람을 지배”하는 삭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피에르 미숑이 태어난 레카르, 그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플뤼셰 가족의 터전인 샤탱, 부모인 에메와 앙드레 미숑 부부가 첫딸을 잃고 짧은 결혼 생활을 한 마르삭,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어린 미숑이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무리우, 친조부모인 클라라와 외젠이 사라진 아들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갔던 마지라, 미숑이 학창 시절을 보낸 게레, 외조부모인 펠릭스와 엘리즈 게오동이 “어려 죽은 여자아이”와 나란히 묻혀 있는 샤틀뤼, 퇴색한 수호성인과 함께 언젠가 자신이 묻힐 묘지가 기다리고 있는 생구소, 또 중등 학교에서 만난 바크루트 형제의 고향 생프리스트팔뤼스, 정신 병원 환자들이 주말마다 찾았던 생레미 등의 장소가 온갖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인생, 즉 그들의 기쁨, 절망, 비애, 회한, 향수 따위와 한데 뒤섞인 채 우리 삶으로 밀려든다. 마치 위인이나 성인의 고귀한 삶을 기술하듯, 미숑은 기억 속에 내려앉은 지난날의 풍경과 어긋난 인연과 사그라진 바람을 기록함으로써 곧 망각되어 영원히 사라질 우리 모두의 삶을 예찬한다. 드높은 하늘 아래, 과연 하찮고 사소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모진 세월을 거역하며 용감히 살아가는 한, 아무리 사소하고 작디작은 삶일지라도 언제든 위대하게 부활할 수 있으리라.
작가정보
Pierre Michon
1945년 프랑스 중부 크뢰즈 지방의 레카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마르삭,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어머니가 교사 생활을 이어 간 무리우, 칠 년 동안 기숙 중등학교에서 수학한 게레까지 어린 시절을 모두 크뢰즈 지방에서 보냈다. 클레르몽페랑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앙토냉 아르토의 연극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대학교 무렵부터 극단 활동을 시작했고, 한동안 특별한 직업 없이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방황했다.
피에르 미숑은 자전적 작품 『사소한 삶(Vies minuscules)』(1984)을 시작으로 느지막이 작가의 길에 들어선 뒤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우체부의 초상을 탐구한 『조제프 룰랭의 삶(Vie de Joseph Roulin)』(1988), 시인 랭보의 일생을 독특한 시각에서 조명한 『아들 랭보(Rimbaud le fils)』(1991), 문학 거장들(사뮈엘 베케트, 귀스타브 플로베르, 윌리엄 포크너, 빅토르 위고 등)의 이야기를 명상적으로 들려주는 『왕의 몸(Corps du roi)』(2002), 프랑스 혁명기 때 공안 위원회의 인물들을 다룬 소설이자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 『11인(Les Onze)』(2009)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2015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상, 2017년 노니노 국제 문학상, 2019년 프란츠 카프카상, 2022년 프랑스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상을 받았다.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자서전의 규약』, 『문학 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사탄의 태양 아래』, 『위험한 관계』, 『벨아미』, 『목로주점』, 『알렉시·은총의 일격』, 『주군의 여인』, 『에로스의 눈물』, 『물질적 삶』, 『태평양을 막는 제방』 등이 있고, 출판 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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