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작업
2022년 12월 16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12월 0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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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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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일과 돌봄을 양립시키는 방법, 어려움, 보람,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감정과 생각뿐 아니라 일과 창조적인 작업, 돌봄이 서로 복잡하게 침범하고 상호작용하는 측면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기록했다. 구체적인 기록들이 돌봄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와 전통과 과학과 자연의 요구가 얼마나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사소하고 하찮은 모성적, 양육적 선택에도 엄마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마디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서 항상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정답이 너무 많고 늘 바뀌는 상태에서 현대의 양육자들은 오히려 끝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가장 어두운 욕망까지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엄마됨’에 관한 언어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열한 명의 필자들은 모두 정직하고 용감하게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준다.
ㆍ editor’s note | 돌보며 읽고 쓰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
ㆍ 정서경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ㆍ 서유미 |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ㆍ 홍한별 |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ㆍ 임소연 |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과 살아가기
ㆍ 장하원 | 지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양육
ㆍ 전유진 | 사라지는 마법으로 사라지지 않기
ㆍ 박재연 | 여러 세계를 연결하며 살아가기
ㆍ 엄지혜 |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ㆍ 이설아 |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ㆍ 김희진 | 양육 간증: 나를 잃었다 찾은 이야기
ㆍ 정서경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 정말로 아이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자고, 먹고, 씻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거울을 보는 나 자신. 아이를 재우고 기진맥진해진 밤이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가슴이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중요하지 않은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42~43쪽)
ㆍ 서유미 |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하늘과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떤 시기에도 아이는 자란다는 것과 어떤 일도 결국에는 지나가리라는 사실만이 희미한 위안이 되었다.(53쪽)
- 아이를 낳은 뒤 나는 줄곧 어떤 방향의 생각 쪽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은 대부분 후회와 관련된 것이었고 들여다보면 검게 출렁였다. 시간이 많았다면 소설을 더 잘 쓰지 않았을까, 돌아보는 게 대표적이었는데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건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55쪽)
ㆍ 홍한별 |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 베이비시터가 놀이터에서 아이의 주의를 끄는 동안 나는 몰래 도망쳤다.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속였다. 아이가 울면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몰래 도망쳤다.(69쪽)
- 내가 우는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도망친 적이 있으니까.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아이를 외할머니집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으니까. 어린이집에서 아침에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두고 사정없이 돌아 나온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내 아이를 무수히 버렸으니까. 세상 모든 엄마는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가엾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된 모든 어른, 한때 아이였던 사람도 모두 가엾다. 세상의 모든 여리고 약한 자들, 아이, 노인, 소수자, 장애인, 빈민, 외국인, 난민은 가엾다.(74~75쪽)
ㆍ 임소연 |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과 살아가기
- 임신 중 매일매일의 성취감도 컸다. 나는 그저 매일 먹는 세 끼를 먹을 뿐인데 배 속의 아이가 쑥쑥 커갔다. 임신 중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나에게는 임신 기간이 내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하는, 효율성 두 배의 시간이었다. 성취감, 한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나같이 성취감에 미친 여자한테는 최고의 일이었다. 와, 남자들은 이걸 모른단 말이지? 이 존재의 충만함을 모른다는 거지? 내 몸 안에서 다른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이 감각을 전혀 모른다는 거지? 내 안의 이 엄청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거지?(81쪽)
ㆍ 장하원 | 지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양육
- 아이의 개성을 지켜주는 것과 아이의 일탈을 교정하는 것 사이에서 보호자들은 종종 망설이지만 그때그때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과학적 지식과 옆집 엄마의 노하우는 충돌하고, 소아정신의학에서 주양육자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한국사회가 주문하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은 모순된다. 이런 분열 속에서 많은 엄마들은 꿋꿋하게 아이의 몸과 마음을 보조하고, 아이를 더 잘 돌보기 위해 갖가지 지식과 정보를 체화하고, 민감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가 되기 위해 마음을 추스른다. 그렇게 돌보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엄마가 된다.(110~111쪽)
ㆍ 전유진 | 사라지는 마법으로 사라지지 않기
- 출산과 육아를 하는 것에 관해 당사자가 아니면 그 어떤 말도 보태지 말자,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생각하자는 말이 아니다. 육아란 스스로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의 과정이며, 때로는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을 원한다.(129쪽)
ㆍ 박재연 | 여러 세계를 연결하며 살아가기
- 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 밥을 지으면서도 글을 지을 수 있음을, 돌봄의 영역 바깥에서 나를 실현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146쪽)
ㆍ 엄지혜 |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 부모가 되기 전이었다면 스쳐 지나쳤을 말들이 마음속에 수시로 박혔다. 인터뷰이가 부모인 경우, 양육에 관한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공감의 진폭은 저절로 커졌다. [……]
부모가 된 후, 나의 시선은 생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타인에게 더 친절한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 젠체하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157~160쪽)
ㆍ 이설아 |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낯선 타인들이 만나 가족이 되는 건 미디어에서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한 아이를 품기까지 거치는 수많은 감정적 혼란, 인식의 변화, 끝도 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상상 이상의 인내와 헌신을 요구한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며 헌신하는 일은 자신을 먼저 건강히 돌보는 시간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든 과정이다. 아름답고 선한 일이라는 핑크빛 꿈만으로는 절대 완주할 수 없는 길, 평생 나와 우리 가족, 내 삶으로 들어온 아이와 아이 뒤에 연결된 모든 인연을 돌보는 여정이 입양이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이 생태계를 오간다. 홀로 가면 안 되는 이 길의 길목을 지키는 중이다.(172쪽)
ㆍ 김희진 | 양육 간증: 나를 잃었다 찾은 이야기
-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여자들이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사회에서 내 몫 이상을 해내려는 여자들. 마치 늘 쓸모를 증명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를 몰아붙이는 여자들. 예전엔 그냥 대체로 여자들이 더 근성 있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
그 여자들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증명하지 않아도, 입증하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당신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충분히 수용받았다면, 당신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권리감 있는 인간들이 되었을 거라고. 그렇게 해서 열심 끝에 마주하는 결말이 번아웃이 아니라 창조적인 삶이 되었을 거라고 말이다.(187~188쪽)
열한 명의 필자들이 열한 가지 색깔로 드러내는,
다양하고 복잡한 돌봄과 작업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양육을 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엄마됨’, ‘양육’, ‘모성’ 같은 오해받기 쉬운 주제에 대해 용기 있게 발언하거나 표현해온 매력적인 필자들이다. 물론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필자들이기도 하다.
외동을 키우거나 아이 셋을 키우거나, 직접 낳았거나 입양을 했거나, 아이가 어리거나 크거나, 아이의 기질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아무 도움도 못 받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협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풀타임 직장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결혼과 출산에 익숙한 문화에서 자랐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이 먹거리나 교육에 힘을 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양육서를 읽거나 읽지 않거나. 열한 명의 필자들은 이 다양한 변수들을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공유한다.
이 책은 돌보면서 작업을 할 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혹은 올바른지 따지지 않는다. 열한 명의 필자들이 돌보면서 작업하는 방식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많은 필자들이 고백하듯 한 사람의 선택 안에서도 일관성보다는 모순이 두드러질 때가 많다. 가령 우리는 엄마들에게 너무 쉽게 모순적이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양육 지침 때문에 상처받고 자책하고 분노하지만, 또 누구보다 열심히 그런 지침들을 수집하고 시도해보기도 한다. 또 아이의 교육 문제라는 예민한 주제에서는 어디까지가 아이의 개성을 함양시킬 지원이며, 어디부터가 과도한 개입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책임진다. 또 아이와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 붙어 있는 것과 아이와 잘 분리해 떨어져 지내는 것 사이에서도 양육과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각자의 방침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양육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언어들은 지나치게 명료하고 단호하고 해맑고 건전하고 평가적이다. 이런 언어들을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 가치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관찰과 숙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와 전통과 과학과 자연의 요구가 얼마나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사소하고 하찮은 모성적, 양육적 선택에도 엄마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마디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서 항상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정답이 너무 많고 늘 바뀌는 상태에서 현대의 양육자들은 오히려 끝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가장 어두운 욕망까지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엄마됨’에 관한 언어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열한 명의 필자들은 모두 정직하고 용감하게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준다.
읽고 쓰고 만드는 여자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존중과 응원의 말들
돌봄과 작업이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하기만 하는 잘 구획된 삶의 측면일 리는 없다. 돌봄과 작업은 서로 뒤섞인 채로 닥쳐온다. 이 책에서는 ‘돌봄’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양육과 여성에 대한 단순화된 언어들을 피하고자 한 것처럼, ‘작업’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직업, 일에 대한 통념을 피하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각각의 필자들이 지금 왜 그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여서 직업, 몰입과 창조성과 성취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작업’이라고 함으로써 일의 창조적인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되기를 바랐지만, 창조적인 일을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 가두지는 않았다. 연구든 예술이든, 다른 종류의 글쓰기든, 번역이든 인터뷰든 상담이든, 혹은 아직 이름이 없는 어떤 일이든 모두 창조적인 과업의 범주에 속한다고 믿는다. 작업이란 외부의 잣대나 규정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이다. (조금 겹칠 수도 있지만) 취미와도 다르고 직업과도 다르다.
이런 주제로 단순히 유명인들의 직업적 성취를 자랑하는 홍보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읽힐 만한 출간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으리라는 확신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을 양육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된다. 양육을 기점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업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물론 양육이 시간과 체력 등의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활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양육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염없이 아이가 집중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고 또 나에게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온전히 나의 욕망(욕심), 나의 자원, 나의 곤란에 집중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더 명료하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 있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한 책이다.
이렇게나 다르지만 이렇게나 공감이 가는,
웃기다가 슬프다가 아름답다가 서늘한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들은 앞서 말한 대로 모두 다르고 때로 모순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모두 내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지만 “사람은 너무 비싼 걸 사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긴다던데 어쩌면 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걸 투자했는지도 모른다.”고 쓴 정서경의 사실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자조적 고백도, “열 살 된 아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속에 좀 더 어린 아이, 그보다 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서유미의 정확한 비유도 양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동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아기들이나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예전처럼 '귀엽다'는 감정이 아니라 '가엾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며 아이에게서 도망친 기억을 들려준 홍한별의 이야기는 돌봄의 마음이 어떻게 더 넓은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 의외의 방향에서 드러낸다.
“한 인간을 잉태해서 키워내는 수많은 여자들의 말씀이 포함되지 않은 철학은 아무리 고상해도, 아니 고상할수록 더더욱 ‘다 무효다!’라고 외치고 싶다.”는 임소연의 씩씩한 선언은 이 책의 출판 가치를 웅변해주는 듯하다. “인류의 수많은 여자들이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육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한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육아의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일과 육아에 모두 성공했다는 알파 우먼에 대한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아무리 사연을 미화해도 그 삶에 있었을 온갖 고통이 다 읽혀 괴롭다.”는 전유진의 속 시원한 일갈도 이 책이 예민하게 살피려고 했던 대목을 콕 짚어준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슈퍼맘, 알파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응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잘 해냈다는 자랑도 아니다. 돌봄과 작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배치하는 와중에 어떤 다양한 어려움과 곤란들이 있고 어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지, 또 그 와중에 어떤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이 오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대표성을 띈다기보다는 영감을 주는 쪽이다.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이라는 말에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엄지혜처럼 우리는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걸핏하면 불쑥 고개를 들어 나를 좀먹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간다."라는 박재연의 말이나 “타협만이 살 길이다!”라는 주문에 가까운 임소연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상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실을 받아들이느라 아파하는 아이 곁을 지키려니 20년 가까이 잠재워두었던, 충분한 애도를 끝내지 못한 상실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몇 년에 걸쳐 함께 울고, 조금 가벼워진 마음을 나누고, 삶을 긍정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른이 되었다.”는 이설아의 말처럼 돌봄의 과정에서 우리가 부쩍 성장해 어른이 되어왔다는 것은 확고한 사실이다.
작가정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모두들, 괜찮아요?」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시작으로 2006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9년 「박쥐」, 2016년 「아가씨」, 2022년 「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과 주로 작업했다. 드라마로는 2018년 「마더」와 2022년 「작은 아씨들」을 썼다.
「박쥐」를 쓸 때에 첫째 아이를 가졌고 미국 영화 「스토커」 작업을 할 즈음 둘째 아이를 가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시나리오 쓰는 일보다 아이들 키우는 일을 우선에 두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10대가 되어 그러지 않을 수 있다. 가끔은 아이들이 나서서 엄마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은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쓰지 못했을 시나리오들을 쓰고 있다.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이 세상에서 나 하나 건사하며 사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결혼도 하고 늦은 나이에 아이도 낳았다. 가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해 어떤 이야기, 문장을 보탠다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것, 완전한 것, 의미가 깊은 것들은 이미 어떤 상태로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다만 그 부스러기, 그림자에 대해 적어보려 이렇게 저렇게 애쓸 뿐이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틈』, 『홀딩, 턴』,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에세이 『한 몸의 시간』을 썼고,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을 펴냈다.
삶이 이어지는 한 오래 계속 쓰고 싶다.
번역가. 한때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무리한 설계를 하기도 했으나 첫째를 가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래도 세 살 터울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번역 일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둘 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반일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을 하려면 아이들을 종일반에 맡겨야 하는데, 엄마들이 와서 반일반 아이들을 데리고 간 다음에 남아 있는 아이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에는 양육자들이 운영을 나눠 맡아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 같이 아이를 키운 사람들이 친구로 남은 것만은 분명한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하루에 여덟 시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일할 수 있다고 해서 꼭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글을 쓰고, 대학원에서 학생 들에게 번역을 가르친다.
『밀크맨』, 『클라라와 태양』,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해방자 신데렐라』, 『달빛 마신 소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쓴 책으로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동료 번역가 노지양과 공저), 『아무튼, 사전』이 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공과대학교에서 박물관학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과 젠더, 인간향상기술과 몸, 신유물론 페미니즘 등을 주제로 강의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프랑스 인문과학재단(Fondation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의 지원을 받고 파리의 세계학연구소(Coll?ge d'?tudes mondiale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낸 후 귀국했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었다. 한참 연구 실적을 쌓아야 할 시기여서 전전긍긍하며 일에 몰두해왔지만 가족을 돌보고 나를 돌보는 시간의 중요함도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겸손한 목격자들』(공저), 『과학기술의 시대 사이보그로 살아가기』 등의 책을 썼고 Asian Women, Social Studies of Science, Medical Anthropology, Ethnic and Racial Studies,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등에 논문을 실었다. 현재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해 과학자의 길을 택했지만 대학원 실험실과 대기업 산하 연구소를 거치며 실험에 질려버렸다. 학창 시절 내내 우등생이었지만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등수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과학기술학 연구자로서, 과학에 대한 애정도, 내 아이에 대한 사랑도, 과학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내 일에 대한 열정도 적당히, 그러나 평생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다.
서울대 과학학과(구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 포닥 남편을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수년간 붕 떠 있는 일과 가정, 아이를 저글링 하듯이 돌보다 보니 ‘돌봄’이라면 지긋지긋해졌지만, 결국 그래서 무언가를 돌보는 사람들의 앎의 방식과 일상적 실천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고 믿으려고 노력 한다). 지금은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 소속되어, 자폐증과 같은 발달장애부터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까지 우리 사회에서 질병과 장애를 돌보는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해 기록하면서 좋은 의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공저로 『겸손한 목격자들』, 『마스크 파노라마』 등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늘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어느 시기든 새로운 것에 몰두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배우고 시도하는 시기가 언젠가 끝이 나겠지, 저러다 말겠지, 한때는 나도 주변도 생각했지만, 내 삶이 끝나지 않는 한 도전도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당당히, 더 알차게 즐기기로 결심했다. 특히 30대 초반에 희귀병에 걸려 삶의 덧없음을 통감하고 절대 안 하겠다던 결혼도, 육아도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저질렀다. 후 회를 한 순간도 안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후회하기엔 또 시간이 아깝다고 합리화와 달래기를 오간다.
20대에 영화음악으로 창작을 시작했고, 지난 10년간은 설치 위주의 전시와 장르 경계 없는 실험 공연을 만들었다. 2013년에 ‘물속의 물’이라는 첫 번째 개인전을, 2021년에 두 번째 개인전 ‘안티바디와 싸이킥에너지’를 열었다. 한때는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동료이자 남편 홍민기 작가와 서울익스프레스라는 팀을 결성하고 「언랭귀지드 서울」, 「인더스트리얼 퍼포먼스」 등 서사를 실험하는 다원예술 공연을 발표했다. 2017년부터는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WOMAN OPEN TECH LAB)’을 세우고 기술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하는 교육과 커뮤니티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자리와 매체를 통해 예술의 의미와 효용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이다. 욕심도 많고 자기애도 강해 돌보고 키우는 일에는 소질도 적성도 없다고 여겨왔는데 생각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기대 이상의 재미와 의미를 느껴 스스로에게 놀랐다. 서른의 나이에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큰아이를 낳았고 3년간의 코스워크를 마치고 둘째 아이를 낳았다. ‘외국인/학생/엄마’라는 애매한 신분이었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기본적으로 유연하고 협력적인 마인드를 장착한 프랑스 사회에서 큰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레 돌봄의 길로 들어섰다.
학위를 마친 후 다섯 살, 두 살 아이와 함께 한국에 돌아와 당혹스럽고 막막한 여러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작업과 돌봄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일상적인 좌절과 대상 없는 울분에 몸부림치는 시간을 보냈다. 2020년 가을부터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물리적으로, 또 심정적으로 이곳저곳을 오간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숨겨진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런 메시지를 담은 좋은 책들을 꾸준히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정신없이 동동거리며 지내는 매일이지만 결국은 이러한 동동거림이 여러 세계를 연결하리라 믿는다.
엄마, 독자, 직장인의 정체성으로 산다. 또 다른 정체성(아내, 딸, 저자 등)도 있지만 세 가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요한 글감이기 때문이다. 책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현실을 파고드는 소설,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 생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질문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삶은 언제나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고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직장맘 9년차로 외동아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노력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부모, 편안한 부모가 되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다. 에세이 『태도의 말들』을 썼고, 예스24에서 《채널예스》, 「책읽아웃」을 만들고 있다.
입양에 대한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2008년 생후 한 달 된 아들 주하의 부모가 됨으로써 ‘창의적 가족 만들기’의 첫발을 떼었다. 주하가 보여준 사랑과 기쁨에 힘입어 연장아 입양(나이 가 있는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결심하고 다섯 살 미루를 만났다. 단단히 마음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을 만드는 일, 부모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탄생』이라는 책을 썼다. 주하와 미루가 함께해준 사랑과 기쁨, 고통과 성장을 바탕으로 개방 입양(생부모와 입양부모가 아이를 위해 열린 관계를 이어가는 입양 형태)에 도전해 완이를 만났다. 생부모와 입양인, 입양부모가 함께 행복하지 않은 입양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겪으며 다시 『가족의 온도』라는 책을 썼다.
2015년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를 설립해 대표로 활동하며, 입양 부모 중심의 입양에서 ‘아동이 경험하는 입양’으로 관점을 변화시키는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부터 만 1세 이상의 아이를 입양하려는 예비 입양부모를 위한 심화교육을 ‘아동권리보장원’과 함께 진행해왔고, 국내 최초로 ‘입양 삼자 자조모임’을 시작하여 입양의 세 주체인 성인 입양인과 생부모, 입양부모의 목소리가 세상에 흐르도록 했다. 2022년 입양 생태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모두의 입양』을 출간했으며 같은 제목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공부한 후 나이 든 학생 신분이 지겨워질 무렵 돈 벌며 공부할 수 있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10년을 일한 후 민음사로 옮겨 인문교양 브랜드 반비를 만들었다. 첫 책이 나온 직후 임신해 1년도 안 돼 출산휴가에 들어갔다.(마지막 근무일 새벽 1시에 퇴근해 다음 날 낮 12시경에 양수가 터졌으니 휴가 열두 시간 만에 출산한 셈이다.) 이 회사에서 10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하다 2020년 봄 퇴사했다. 아이가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했던 팬데믹 2년 동안 평생 해온 밥보다 더 많은 밥을 지었다. 그사이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 창간에 참여해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22년 9월 첫 책을 발행하며 정식으로 돌고래 출판사의 대표이자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돌봄 인문학 수업』, 『사회과학책 만드는 법』, 『서경식 다시 읽기』(공저)가 있다. 특히 『돌봄 인문학 수업』은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이 책 덕분에 ‘돌봄’이라는 주제로 많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이번 책도 기획할 수 있었다. 틈틈이 SBI 출판예비학교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에서 책 만드는 일에 관한 강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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