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
2022년 12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10월 0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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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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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아는 마음
더러는 꿈결에 잠깐 마주친 엄마의 얼굴을 이삼 일
기억하는 마음
_임경섭, 「우는 마음」 부분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는 나를
아이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_조혜은, 「개도(開度)─굳은살 엄마」 부분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순한 모국어
마흔 명의 시인이 부르는 우리들의 ‘엄마’
난다에서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라는 ‘엄마’에 관한 특별한 시집 한 권을 펴냅니다. 22년 10월 7~8일 열리는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의 일환으로 펴내는 이 시집은 축제 예술감독을 맡은 시인 오은이 기획하여 엮고 경기도에 사는 마흔 명의 시인에게 저마다의 ‘엄마’를 부르는 신작시 1편과 산문 1편씩을 청탁해 실었습니다. 1979년 조선일보로 등단한 장석주 시인부터 2018년 한국일보로 등단한 이원하 시인까지 세대와 성별을 폭넓게 아우르며 섭외한 마흔 명의 시인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갑니다. 이 시집에 실릴 시를 쓰는 과정은 시인들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엄마’라는 말 앞에서 멈칫해야 하는 골똘한 사정이 저마다에게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렇게 삶에서 마주하는 ‘엄마’라는 빛은 마흔 개의 시편 속에서 굴절되어 반짝입니다.
엄마는 내게 엄청난 두께의 텍스트이다. 무엇을 메모하고 받아써야 할 것이며, 무엇을 검은 빗금으로 지워야 할지 도통 알 수 없는 문제집 같다. 엄마- 부르면, 떠오르는 몇 개의 풍경이 있다. 그 풍경에 나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어린아이로 짙게 음각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미 아득히 오래전에 넘겨진 페이지에 불과하다.
_김경인 산문, 「엄마, 나의 마트료시카」 부분
“하나의 세계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밑천”(송기영), 그렇게 우리의 시작에 있었던 엄마, 너무도 당연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무명씨 같았던 엄마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사연을 톺아보는 이 시편들은 넓고도 깊은, 높고도 짙은 엄마의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그렇게 엄마의 삶을 그려보고 엄마와의 관계를 곱씹는 시간 속에서 엄마는 입을 갖게 됩니다. 시와 함께 덧붙인 엄마에 관한 짧은 산문에선 “서로가 오롯이 남인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권민경)이라는 깨달음을 앞에 두고 때론 탄식을, 안도의 웃음을 짓게도 되지요. “항아리 속에 봄의 생기도 있었고, 푸르게 반짝이던 여름의 감나무 잎도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깊게 비어 있어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까마득하기만 하다”(최갑수)고 쓸쓸히 울리는 글을 읽다보면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나는 어긋지게 살았다”(이향지)는 회한이 읽는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면 문득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오늘의 기분은 어때?”(김승일)
“엄마를 통해 세상에 툭 떨어진”(이현호) 이 시집에 함께한 마흔 명의 시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민경, 김경인, 김경후, 김기형, 김명리, 김상혁, 김승일, 김연아, 문보영, 문성해, 서효인, 성동혁, 손택수, 송기영, 안정옥, 유계영, 유병록, 유형진, 윤석정, 이문재, 이원하, 이재훈, 이향지, 이현호, 이혜미, 임경섭, 임승유, 임지은, 임현정, 장석남, 장석주, 정한아, 조혜은, 채길우, 채호기, 최갑수, 최문자, 최지인, 함성호, 황유원.
제1회 경기 시 축제가 열리는 경기 상상캠퍼스(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에는 시인들의 시를 활용하여 ‘엄마에게 가는 길’이라는 산책로를 조성한다고 합니다. 이 푸른 가을, 시집 한 권 들고 천천히 걸으며 엄마에게 떠나보심이 어떠실지요.
권민경 시 식물의 수도원 16
산문 그러나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18
김경인 시 마트료시카 20
산문 엄마, 나의 마트료시카 24
김경후 시 크로마키 26
산문 엄마와 심장과 물고기 28
김기형 시 이제 구름을 타세요 30
산문 캄캄하고 아름다운 32
김명리 시 엄마, 휘몰아치는 저 한 점 분홍 34
산문 가을빛이 쌓이는 오후 35
김상혁 시 드라마 38
산문 남편과 자식 41
김승일 시 폭우를 낭독하는 엄마-엄마의 책 44
산문 엄마의 지시대명사 47
김연아 시 피의 속삭임 50
산문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52
문보영 시 펑크 54
산문 몰로코후 55
문성해 시 나사는 나사를 낳고 58
산문 엄마의 춤 60
서효인 시 센터에서 생긴 일 64
산문 그들이 센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66
성동혁 시 계단 68
산문 계단 70
손택수 시 피리 74
산문 어떤 연기는 생보다 더 생생하다 75
송기영 시 평생회원권 78
산문 나는 씁니다 79
안정옥 시 나를 사랑하는가 82
산문 내 엄마의 숙주는 외할머니였다 84
유계영 시 유해조수 88
산문 걸어서 앞지르기 91
유병록 시 딸이 웃으면 94
산문 나는 한 번도 할머니의 엄마를 본 적이 없다 95
유형진 시 엄마의 서른 살 98
산문 지옥에서도 잊을 수 없을 사랑 101
윤석정 시 엄마는 아르바이트생 104
산문 사라지지 않는 탯줄 106
이문재 시 칠만삼천삼백예순다섯 108
산문 늙마에야 드는 생각 110
이원하 시 감정에 있는 빙점을 발견하게 되고 114
산문 엄마와 나의 로맨스 116
이재훈 시 올갱잇국 118
산문 엄마표 120
이향지 시 엄마 되기 122
산문 후회 124
이현호 시 천 개의 단어 126
산문 시작 노트 127
이혜미 시 아무도 모르게 아모르 130
산문 엄마는 내가 입었던 첫번째 외투 132
임경섭 시 우는 마음 134
산문 오늘이 시네 136
임승유 시 양육 138
산문 기댈 데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141
임지은 시 파꽃 144
산문 항상 뒤늦게 이해되는 사람 147
임현정 시 Cell cycle 150
산문 한 점 152
장석남 시 어머니 풍경 154
산문 그 온기 156
장석주 시 엄마, 엄마, 왜 이렇게 작아지셨어요? 158
산문 ‘엄마’ 약전 160
정한아 시 황 할머니, 나의 진짜 엄마여 164
산문 있었다가 없어진다 167
조혜은 시 개도(開度)-굳은살 엄마 170
산문 오늘의 초대 174
채길우 시 꽃병 180
산문 애매미 소리 183
채호기 시 어머니-Etude no. 8 186
산문 속도와 직선 188
최갑수 시 창가에 누군가의 얼굴이 있다 192
산문 항아리의 집 194
최문자 시 엄마와 여름 196
산문 엄마가 운 적이 있었다 198
최지인 시 전망 200
산문 시린 발 203
함성호 시 엄마 206
산문 「엄마」라는 시 207
황유원 시 작은 종들 210
산문 어느 옥상에서 작은 종들이 212
엄마는
내가 사랑하는 커다란 바늘
평생을 갈아 나를 한땀 한땀 꿰매는
_김경인, 「마트료시카」 부분
어느 봄, 엄청난 폭우였는데 그가 문득 우산을 버리더니 비를 맞아보자 했다.
어느 가을, 집에만 있는데 무슨 재미로 살아? 그에게 물었더니 몸은 늙었는데 마음이 늙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40년이 더 된 일이지만 그때 엄마와 잘 지냈던 것 같다.
_김상혁, 「드라마」 부분
오지 마 여기에 오지 말고 너의 햇살 속으로 가
우리집은 왜 이렇게 구부러진 것들로 가득하니
물속에서 온전하게 잠든 제자리의 얼굴 같은 눈물들
_김승일, 「폭우를 낭독하는 엄마─엄마의 책」 부분
엄마는 돈도 안 벌고 집에만 있으면서 것두 못해, 엄마가 집에서 노니 너희 돌보잖아, 돌보는데 왜 물은 안 줘, 엄마 바빠, 엄마가 뭐 바빠 일은 아빠가 하는데, 너 핸드폰 이리 내, 핸드폰 아빠가 사준 건데 엄마가 뭔데, 엄마가 뭐냐고? 그래 엄마가 뭔데, 엄마가 뭘까, 엄마가 무언지 나도 모르겠다.
_서효인, 「센터에서 생긴 일」 부분
할머니,
지금도 엄마 보고 싶을 때 있어?
엄마 얼굴 기억나?
_유병록, 「딸이 웃으면」 부분
힘들게 왜 또 올갱이 잡으러 가셨어
무릎 아픈데 가지 마라니깐
우리 아들이 올갱이를 좋아하니깐 갔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게 해놨어
_이재훈, 「올갱잇국」 부분
“다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을 거야”
삼베 수의 안쪽에 물색 비단 도포
동정 고름 도련 깃 섶 구겨지거나 흩어지지 않게
꼭꼭 여미어 꿰매어 붙여둔
엄마의 부탁,
_이향지, 「엄마 되기」 부분
누군가는 세상의 모든 소리로 신을 찾지만, 나는 한마디에 응답하는 신을 알고 있다. 그 한마디에 천 개의 단어와 천 송이 꽃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꽃을 바치지 않아도, 당신이 부르면 그는 언제나 뒤돌아본다.
_이현호, 「천 개의 단어」 부분
나이 사십에 울다 잠들어도
쉬이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아는 마음
더러는 꿈결에 잠깐 마주친 엄마의 얼굴을 이삼 일
기억하는 마음
_임경섭, 「우는 마음」 부분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는 나를
아이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_조혜은, 「개도(開度)─굳은살 엄마」 부분
여름 속에서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
초록을 옮길 수는 없었다
_최문자, 「엄마와 여름」 부분
작가정보
작가의 말
엄마 하고 부를 때
2022년 10월 7일과 8일,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가 열립니다. 시경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시 경찰청을 뜻하는 시경(市警)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인 시경(詩經)이 두번째로 등장하고 시의 경지를 뜻하는 시경(詩境)이 그뒤를 잇습니다. 시가 있는 경기를 줄여 ‘시경’으로 부르기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니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시 축제가 없는 한국에서 연례행사로 시 축제를 선택한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경기도가 ‘시의 수도’라고 불릴 만하다고, 시의 경지를 목도하는 데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 시 축제에 걸맞게 경기도에 살고 있는 마흔 명의 시인들에게 ‘엄마’에 대한 시와 짧은 산문을 요청했습니다. ‘경기도에 이렇게 많은 시인이 살다니!’ 경탄하면서도 전국에 흩어져 있을 엄마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한결같이 거기에 있어줄 것만 같은 엄마,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깝다는 이유로 날 선 말을 던지게 되는 엄마,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것이 오해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해주는 엄마⋯⋯ 시들을 읽으며 엄마의 세계는 넓고도 깊음을, 높고도 짙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를 헤아리는 사이, 엄마가 된 시인도 있었습니다.
제1회 경기 시 축제의 키워드로 ‘엄마’를 정한 것은 우리의 시작에 엄마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당연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는 무명씨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의 사연을 톺아보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나사못이나 피리를 보고 엄마를 떠올립니다. 또다른 누군가는 책과 책 사이에서 문장으로, 불꽃놀이와 심벌즈에서 불꽃으로, 소리로 나타난 엄마를 마주합니다.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보면서 엄마의 삶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엄마와의 관계를 곱씹는 시간 속에서 엄마는 입을 갖게 됩니다. 도처에 있는 엄마들이 시편에서 이야기합니다. 힘듦을, 나이듦을, 모여듦을, 젖어듦을, 그리하여 물듦을. 신산하기만 한 ‘드는 일들’이 깃드는 일로 한데 모이게 됩니다.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의 슬로건은 “시는 만난다”입니다. 흔히 사람이 시를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살면서 뜻하지 않게 시를 마주치고 그 시가 삶을 어떤 식으로든 뒤흔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쩌면 시가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거기가 어쩌면 시가 당도하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1년에 하루이틀쯤 시가 직접 만나러 가는 자리가 있어도 좋지 않겠어요? 우리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 엄마가 직접 말하고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시는 만난다”는 말은 “엄마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 참여해주신 마흔 명의 시인들께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상상과 기획을 실행으로 옮겨주신 경기문화재단과 경기상상캠퍼스 담당자 여러분께도 각별한 마음을 건넵니다. 원고 청탁부터 편집, 디자인, 발간까지 발 벗고 나서준 출판사 난다가 아니었다면 이 시집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빛 뒤에는 빚이 늘 그림자처럼 남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살겠습니다. 엄마, 하고 부를 때 입안에 고이는 시금한 느낌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년 가을
오은(시인ㆍ제1회 경기 시 축제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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