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선물
- eBook 상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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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3745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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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12
가까운 거리 15
여전하네, 잘 지냈어? 18
평일 21
좁은 방 24
표범의 마음 27
처음 보는 사람 30
조용한 사람 32
트램펄린 35
체조 경기를 보다가 38
근린공원 40
최근 42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선 길을 가로지르는 사람 44
시먼딩 46
여의도 48
일곱 시 51
아웃 포커스 54
옆에 있는 사람 56
아홉 시 58
파리공원 61
에게 64
끝 67
생일 70
주말 73
안방해변 76
CLOSED 79
생활감 82
안목해변 85
누수 88
한 동네에서 오래 91
이브 94
편식 97
잠이 쏟아지면 울기 어렵다 눈이 자꾸 감기기 때문이다 100
소금 항아리 102
백년서점 104
참외의 길이 106
다름 아닌 땅콩 108
마침 110
음악 때문에 112
가방의 깊이 114
셔츠의 크기 116
좋은 하루 되세요 118
OPEN 120
그런 사람 122
풍선의 무게 124
BREAK TIME 126
일기예보 128
펜팔 130
잘 찾아오실 수 있겠죠? 132
여력 134
작품 해설-박혜진(문학평론가) 137
저어도 저어도 매끈한 죽의 표면
듣고 있어요?
식당 한쪽에서
무언가 깨뜨리는 소리가 들리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직원이 걸어가는 동안
그는 죽을 깨끗이 비운다
그릇을 긁어내면
수저에 죽이 묻어 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 부분
너무 가벼워서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다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도 입는 것은
아직 더러움이 모자라기 때문에
하나를 오래 입는 것은
입는 한
도무지 가벼워지지 않기 때문에
옷 같은 마음을 갖고 싶다
-「잠이 쏟아지면 울기 어렵다 눈이 자꾸 감기기 때문이다」 부분
어쩌다 이런 곳에 땅콩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문득 손바닥에 거칠게 만져지는 게 있어 들여다보니 땅콩이 틀림없구나. 손바닥 한가운데 땅콩이 박혀 있는데도 아프지 않다니. 나는 땅콩 나무가 되어 가는 것일까?
이렇게 구체적인 굳은 살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낙엽을 떨구듯 옷을 홀랑 벗고 거울 앞에 서 본다.
-「다름 아닌 땅콩」 부분
넉넉한
셔츠를 입고
그는 찌르듯이 걷고 있다
셔츠가 그의 몸을 드나든다
그네처럼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나는 그에게 달려가 손을 뻗는다
셔츠를 움켜쥐면
셔츠가 날아간다
-「셔츠의 크기」 부분
■사려 깊은 이가 문득 덧붙이는 물음표
『가벼운 선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질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조해주 시의 화자들이 물음표를 건네는 순간은 일상적이면서도 시적이다. 무심히 건네는 것 같지만 상대방의 상태나 의식이 나와 같은 곳에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들. 시 속에서 그런 질문을 받아든 이들은 그 상황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자리, 혹은 존재를 재인식한다.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에 대체로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조해주 시의 상황은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세계를 확장시킨다. 이를테면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으로. 조해주에게 물음표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열쇠처럼 작동한다. 아주 작지만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지닌 버튼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이 이 신기한 작동법을 지닌 물음표를 붙이기까지 사려 깊은 얼굴로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작은 병에 든 물약을 마실까 말까 고민할 때처럼. 조해주의 시 속에서는 “여기서 뭐 하니?”같은 안부 인사마저 질문을 받는 이로 하여금 어느덧 공간을 벗어나고 거리를 넘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앞에서/ 만리장성 위에서/ 폭포 밑에서/ 붉은 광장 한가운데서”(「여전하네, 잘 지냈어?」) 새로운 현실을 감각하는 일. 시인의 작은 물음표 하나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나의 삶에 불쑥 들어오려는 작은 것, 시 같은 것
조해주의 시 속 화자들은 종종 비일상의 순간과 맞닥뜨린다. 그때마다 그들은 익숙했던 세계의 질서를 벗어난 것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변해 버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서두르지 않고, 우왕좌왕하지도 않고, 자신의 상태를 조용히 납득하고자 하는 마음. 조해주는 적응하는 화자를 탄생시킨다. 평소처럼 물컵을 들여다보다가 “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자세히 살핀다는 것이 그만/ 눈동자 안에 통째로 유리컵이 들어가 버렸다”고 진술하는 화자는 어떤가. 그는 눈에 물컵이 들어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일상에 돌입한다. “컵에 물이 찰랑이고 있어서” “함부로 물구나무를” 서지 않는다. 눈에 들어온 물컵과 함께 사는 일이 일상적임을 받아들이려는 비일상적 화자. 우리가 조해주의 시에서 사귈 수 있는 독특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충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쪽이므로, 그로부터 오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컵이 눈에 들어온 뒤로/ 무엇을 보면 쉽사리 잊히지도 않아서”(「좁은 방」)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조해주의 화자들이 그들의 몸에 불쑥 들어온 작은 것들을 받아들이려는 시도, 순식간에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그것들을 이리저리 느껴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시를 읽는 순간과 닮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는 어느새 우리 마음에 붙어 아주 작은 변화들을 일으킬 것이다. 『가벼운 선물』을 읽은 뒤 우리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제 우리가 시를 받아들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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