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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지음 | 고영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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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03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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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3.19MB)
ISBN 978895468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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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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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는 독보적이고 탁월한 단편소설로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 불리지만 시로 문학에 입문하였으며, 『대성당』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생의 남은 시간은 시인으로 살고자 했다. 1983년부터 오직 시쓰기에만 매진한 그는 198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불』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울트라마린』 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죽는 순간까지 정리한 원고인 네번째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이 사망 이듬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후 출간된 미발표 시 모음집 『영웅담은 제발 그만』까지 다섯 권 분량의 시집을 한데 묶은 책이 『우리 모두』이다. 640쪽 분량의 방대한 시집인 『우리 모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카버의 시집이며, 그가 한평생 다다르고자 했던 시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낸 레이먼드 카버 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불(1983)

1부
운전중 술 마시기/ 운/ 괴로운 장사/ 네 개가 죽는다/ 내 아버지의 스물두 살 적 사진/ 하미르 라무즈(1818~1906)/ 파산/ 제빵사/ 아이오와의 여름/ 술/ 무인정신武人精神을 갖춘 셈라를 위해/ 일자리 찾기 1/ 건배/ 로그강에서 제트보트 타기, 1977년 7월 4일, 오리건주 골드비치

2부
너넨 사랑이 뭔지 몰라

3부
아침, 제국에 대해 생각하며/ 푸른 돌/ 텔아비브와 미시시피강에서의 생활/ 마케도니아로 전달된 소식/ 야파의 모스크/ 여기서 멀지 않은 데서/ 갑작스러운 비/ 발자크/ 시골 사정/ 이 방/ 로도스/ 기원전 480년, 봄

4부
클래머스 근처/ 가을/ 겨울 불면증/ 프로서/ 밤에 연어가 움직인다/ 카위치 시내에 접이식 낚싯대를 드리우고/ 여성병리학자 프랫 박사를 위한 시/ 웨스 하딘: 사진을 보고/ 결혼/ 다른 삶/ 암환자로서의 우편배달부/ 헤밍웨이와 W. C. 윌리엄스를 위한 시/ 고문/ 찌/ 치코에서 시작되는 99E 고속도로/ 쿠거/ 물살/ 사냥꾼/ 11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려 애쓰며/ 루이즈/ 최고의 공중곡예사, 칼 월렌다를 위한 시/ 데슈츠강/ 영원히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1985)

1부
1954년, 울워스 상점/ 라디오 전파/ 움직임/ 호미니와 비/ 길/ 두려움/ 낭만주의/ 재떨이/ 여전히 일번만을 생각하며/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2부
행복/ 옛날/ 우리의 새크라멘토 첫 집/ 내년/ 내 딸에게/ 끔찍한 일/ 에너지/ 등뒤로 문을 잠그고, 다시 들어가려 애쓰며/ 의학/ 웨나스 능선/ 독서/ 비/ 돈/ 사시나무

3부
최소한/ 보조금/ 내 보트/ 내가 쓰지 않은 시/ 작업/ 2020년에/ 천국의 문 앞의 저글러/ 딸과 사과파이/ 상업/ 익사한 사내의 낚싯대/ 산책/ 아버지의 지갑

4부
그에게 물어보라/ 옆집/ 캅카스: 단편서사시/ 대장간, 그리고 큰 낫/ 파이프/ 들으면서/ 스위스에서

5부
돌풍/ 나의 까마귀/ 파티/ 비 오던 날들이 지나고/ 인터뷰/ 피/ 내일/ 슬픔/ 할리의 백조들

6부
엘크 캠프/ 여름 별장의 창문/ 기억 1/ 멀리/ 음악/ 게다가/ 그녀가 사는 내내/ 모자/ 안개와 말이 있던 늦은 밤/ 베네치아/ 전투 전야/ 절멸/ 잡은 것/ 나의 죽음/ 일단은/ 두루미떼

7부
이발/ 콘월에서의 행복/ 아프가니스탄/ 워싱턴주 세킴 근처의 등대 안에서/ 독수리/ 어제, 눈/ 식당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노래하는 새들에 반대하는 건 아닌 시/ 1984년 4월 8일, 늦은 오후/ 내 일/ 다리/ 테스에게

울트라마린(1986)

1부
오늘 아침/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 어느 오후/ 순환/ 거미줄/ 발사나무/ 발사체/ 편지/ 부검실/ 그들이 살았던 곳/ 기억 2/ 차/ 멍청이/ 유니언 스트리트: 1975년 여름, 샌프란시스코/ 보나르의 누드화/ 진의 TV/ 메소포타미아/ 정글/ 희망/ 이 집의 뒷집/ 허용량/ 섬세한 여자

2부
미뉴에트/ 떠남/ 주문/ 동방에서, 빛이/ 터무니없는 주문/ 그녀가 처한 불운의 저자著者/ 화약 운반수/ 집게벌레/ 나이퀼/ 가능한 일/ 일하지 않는/ 멕시코시티의 어린 차력사들/ 식료품들이 간 곳/ 내가 할 수 있는 것/ 작은 방/ 달콤한 빛/ 정원/ 아들/ 카프카의 시계

3부
빛의 속도로 흐르는 과거/ 함께 깨어 있기/ 델마요호텔 로비에서/ 브라질, 바이아/ 현상/ 바람/ 대이동/ 잠/ 강/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 가늠/ 일행/ 어제/ 책상/ 식기/ 그 펜/ 상賞/ 어떤 이야기/ 초원/ 빈둥거리기/ 힘줄/ 기다림

4부
논쟁/ 그것의 경로/ 9월/ 흰 벌판/ 총질/ 창/ 뒤꿈치/ 공중전화부스/ 캐딜락과 시/ 단순한/ 상처/ 어머니/ 그 아이/ 들판/ 『프로방스의 두 도시』를 읽고/ 저녁/ 나머지/ 슬리퍼/ 아시아/ 선물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1989)

1부
젖은 사진/ 테르모필라이/ 두 개의 세계/ 연기와 기만/ 대프니 근처의 그리스정교 교회 안에서/ 기록으로 남도록/ 변신/ 위협/ 공모자/ 사랑이라는 이 단어/ 도망가지 말아요/ 여자가 물가에 있다

2부
이름/ 일자리 찾기 2/ 외국 책 세일즈맨/ 발가락들/ 달, 기차/ 두 대의 마차/ 기적/ 내 아내
와인/ 화재 이후

3부
부엌/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 멜빵/ 낚시질을 위해 알아야 할 것/ 물고기를 미끼로 유인하기 위한 연고/ 철갑상어/ 밤의 습기/ 또하나의 미스터리

4부
1880년, 크라쿠프로의 귀환/ 일요일 밤/ 화가와 물고기/ 정오에/ 아르토/ 조심/ 하나 더/ 새를 파는 시장에서/ 메모로 가득찬 그의 목욕가운 주머니/ 러시아로의 진격/ 시에 관한 약간의 산문/ 시/ 편지/ 젊은 여자애들

5부
문제를 일으킨 장어/ 수영/ 다락/ 마고/ 내 아들의 오래전 사진을 보며/ 새벽 다섯시/ 여름 안개/ 벌새/ 밖/ 하류로/ 그물/ 거의

6부
예감/ 조용한 밤/ 참새의 밤/ 레모네이드/ 놀라운 다이아몬드/ 눈 떠/ 의사가 말한 것/ 울부짖읍시다, 선생님/ 청혼/ 소중히 여기기/ 횡재/ 필요 없는/ 가지를 통해/ 잔광/ 말엽의 단편斷片

미수록 시들: 영웅담은 제발 그만(1991)

놋쇠반지/ 시초/ 오늘밤 팜파스에서는/ 그 시절/ 일광욕을 하는 사람, 그녀 자신에게/ 영웅담은 제발 그만/ 불륜/ 7월 2일, 내 생일에 대한 시/ 귀환/ 아든, 오늘 준 이집트 동전, 고맙소/ 로버트 그레이브스와 함께 참호에서/ 밖에 있는 사내/ 씨앗/ 배신/ 접촉/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새크라멘토에서의 여름/ 손을 뻗으며/ 소다크래커

해설_레이먼드 카버의 시 세계-단편소설과 시의 사이

우리 모두, 우리 모두,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불멸의 영혼을 구원하려 애쓰는데,
어떤 길들은 다른 길들보다 더 빙글빙글 돌고
종잡을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머지않아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_「스위스에서」

나도 언젠가 서른다섯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서른다섯 때 내 심장은 텅 비고 시들어 있었다!
그것이 다시 흐르기 위해서는
다섯 해가 더 지나야 했다.
이 강가의 내 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여기서
마음껏 오후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강을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강의 원천까지 거슬러올라가며
사랑하는 일.
나를 불어나게 하는 모든 걸 사랑하는 일.
_「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아직 달이 물위에 창백하게 걸려 있지만,
하늘에 서서히 빛이 들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죽음과 야망, 심지어 사랑조차
잠시 진입을 멈춘다.
행복. 그것은 예기치 않게
온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른 아침의 대화
너머로까지 이어진다, 정말로 그렇다.
_「행복」

나는 내 삶을 다시 한번 살고 싶은가?
용서하기 어려운 똑같은 실수들을 또다시 저지르면서?
그렇다, 절반의 기회가 있으니까. 그렇다.
_「비」

여긴 조용한 곳이다. 내가 산책을 멈추고, 앉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나의 죽음을 예비하기에는
다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좋은 장소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 아름다운, 땀이 나는 삶, 내 것이든
다른 누군가의 것이든,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잠시 후면 죽은 자들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있는
이 놀라운 장소에서 일어나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묘지에서.
그리고 가는 것이다. 우선 하나의 레일을 걷다가
또다른 레일로.
_「산책」

누구도 그들을 거부하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든 이 둘의 일을 폄훼하려 들지
않았다. 행복이란 드문
사건인 것이다! 저녁마다 그는
벽난로 앞에 앉아 시를 들었다. 시를, 시를.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은 없었다
_「콘월에서의 행복」

당도한 어떤 것도, 그대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사내는 칼로 사과 껍질을
벗긴다. 흰 섬유질, 사과의
과육은, 사내의 눈앞에서 점점 짙어지다가
갈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변했다. 완전히 탈진해버린 죽음의 얼굴!
빛의 속도로 흐르는 과거.
_「빛의 속도로 흐르는 과거」

나무 꼭대기로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었어.
해협으로 불어가는 것과 같은 바람이지, 하지만
다른 바람이기도 하고. 한참 동안, 내가 죽었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그리고 그것도 괜찮았어, 최소한 몇 분
동안은, 그것이 정말 깊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죽음이.
이러다가 정말 내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면
어떨까 상상하자마자, 당신 생각이 났어.
눈을 뜨고 바로 일어나서
다시 행복한 상태로 돌아갔어.
그러니까, 당신한테 고마워. 이걸 말하고 싶었어.
_「테스에게」

그의 진짜 재능은 시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카버가 그의 소설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고, 또한 그것은 시의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이니 말이다. _황인찬(시인)

소설가로서 그는 취해 있었지만, 시인으로 그는 깨어 있었다. _김연수(소설가)

1980년대 이후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미국의 체호프’로 불리며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레이먼드 카버의 시집 『우리 모두』가 출간되었다.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등을 펴낸 그는 1983년 소설집 『대성당』을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아 일약 세계적인 문학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평생 단편소설과 시만을 써온 작가로는 드물게 전 세계 많은 젊은 작가들이 주저 없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그를 꼽으며,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열성팬을 자처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카버는 독보적이고 탁월한 단편소설로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 불리지만 시로 문학에 입문하였으며, 『대성당』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생의 남은 시간은 시인으로 살고자 했다. 1983년부터 오직 시쓰기에만 매진한 그는 198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불』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울트라마린』 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죽는 순간까지 정리한 원고인 네번째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이 사망 이듬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후 출간된 미발표 시 모음집 『영웅담은 제발 그만』까지 다섯 권 분량의 시집을 한데 묶은 책이 『우리 모두』이다. 640쪽 분량의 방대한 시집인 『우리 모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카버의 시집이며, 그가 한평생 다다르고자 했던 시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낸 레이먼드 카버 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후세에 전해줘야 할 보물이다. 레이먼드 카버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풍부하면서 간결할 수도, 그처럼 완전할 수도 없다. _뉴욕 타임스

그의 맑은 시선은 당신의 마음을 부수어놓을 것이다. _워싱턴포스트

최고의 시는 단편소설과 같이 섬세하고 마음 저린 장면으로 공명한다. 그의 시에 담긴 서정적 성찰은 그의 비할 데 없는 소설들만큼이나 막대한 유산이다. _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레이먼드 카버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살만 루슈디는 그가 남긴 시집을 읽고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카버가 쓴 모든 글을 읽으라.” 매우 적절한 조언이다.
_아이리시 타임스

레이먼드 카버의 시를 읽으며 느낀 감정은 통쾌함이다.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카버의 시는 최근 수많은 미국 시인들의 지루한 우주적 투덜거림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_타임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카버가 담아낸 이야기로서의 시

문학사에서 현대 단편소설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 레이먼드 카버일 것이다. 카버가 완성시킨 단편소설 미학은 미국문학의 범주를 벗어나 이미 세계 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기’, 카버가 그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 미니멀리즘은 하나의 문학 사조를 넘어 이제 단편문학의 주요한 전범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설가로 국한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시쓰기에 매진했다. 그런 그의 행보가 놀랍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해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시와 소설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소설과 시를 같은 방법으로 쓰고, 그 효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편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언어와 감정의 압축이 있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단편소설과 시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보다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시를 쓸 때 이미지에 기초하지 않고, 이야기에서 이미지가 발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시는 단편소설과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그의 시와 다른 현대시들의 가장 뚜렷한 차별점을 찾는다면 바로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언어로 작품을 쓰겠다”는 카버의 선언은 시에서도 유효하다. 그는 추상적인 언어 대신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감각되는 이미지 대신 살아내는 이야기로 삶 그 자체의 숨결이 선명히 각인된 시를 써냈다.

나도 언젠가 서른다섯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서른다섯 때 내 심장은 텅 비고 시들어 있었다!
그것이 다시 흐르기 위해서는
다섯 해가 더 지나야 했다.
이 강가의 내 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여기서
마음껏 오후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강을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강의 원천까지 거슬러올라가며
사랑하는 일.
나를 불어나게 하는 모든 걸 사랑하는 일.
_「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에서


카버가 살아낸 삶
고뇌, 절망 그리고 희망
꾸미지 않고도 아름다우며 마음을 뒤흔드는 시

이 책에 실린 305편의 시는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시, 술에 대한 시, 일상과 가족에 대한 시, 자연에 대한 시, 죽음과 그 너머에 대한 사유가 담긴 시 등이다. 그가 평생 동안 쓴 거의 모든 단편소설이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시 역시 많은 것이 경험을 토대로 쓰이고 있다. 그는 시를 쓰는 데 자신의 삶의 경험을 주된 연료로 사용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 경험이 대부분 실패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자로 보낸 젊은 시절, 가정에서의 불화, 그리고 작가로 성공한 이후에도 젊은 시절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일. 말년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오랜 세월을 산 그는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삶의 경험이 그의 작품에 더욱 강렬한 울림을 부여했으니, 예술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마지막으로 쓴 소설보다 더 나중에 쓰인 것들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얻은 통찰이 담겨 있다. 통렬한 실패의 경험, 깊은 절망,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이가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윽고 삶을 사랑하게 되는 모습은 사뭇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그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쓴 「2020년에」는 2020년이 지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준다.

친구들이여, 그대들을 사랑한다, 진심이야.
그리고 내가 운이 정말 좋아서, 특별한 혜택을 받아서,
오래 살아남아 증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믿어줘, 나는 그대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함께 지냈던 시절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에 대해서만 말할 거야!
살아남은 자가 기대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지. 늙어가고 있고,
모든 것들을 모든 이들을 잃고 있는데.
_「2020년에」에서

카버는 시의 전통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형식을 모색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를 읽으며 우리는 카버의 것 외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웃음을 자아내는 통렬한 유머로 빛나는 시 「너넨 사랑이 뭔지 몰라」는 동시대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부코스키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고, 반복되는 노동에 대한 실존적 고뇌를 담은 「카프카의 시계」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를 시로 옮겨적은 것이다. 또한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사랑했던 그는 체호프 소설의 일부를 변형 인용해 자신의 시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는 다른 이의 언어가 카버라는 프리즘을 거쳐 새로운 작품이 된 독창적인 시도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카버의 시가 만들어내는 가장 강렬한 심상은 그의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전달되는 감정과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형성되는 시적 이미지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읽었을 때 극대화된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 이윽고 도달한 마지막 문장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진동은 카버의 시만이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시적 경험일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 모두,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불멸의 영혼을 구원하려 애쓰는데,
어떤 길들은 다른 길들보다 더 빙글빙글 돌고
종잡을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머지않아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_「스위스에서」에서

작가정보

Raymond Carver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하였으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1938년 5월 25일 오리건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2일 워싱턴주 포트앤젤레스에서 폐암으로 사망했으며,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등을 펴냈다. 1979년에 구겐하임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 밀드레드 앤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했다. 1988년에는 전미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하트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인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83년 『대성당』으로 소설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남은 평생을 시쓰기에 전념했고, 사후 그 시기에 쓴 다섯 권의 시집을 한데 모은 『우리 모두』가 출간되었다.

극작가, 소설가, 번역가. 대학에서는 신학을, 대학원에서는 영상 제작을 전공했다. 제6회 벽산문화상을 수상한 「에어콘 없는 방」을 비롯한 여러 편의 희곡과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의 『레이먼드 카버』를 썼고,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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