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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평전 3: 포위당한 혁명

토니 클리프 지음 | 이수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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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8일 출간

종이책 : 2010년 06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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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9.99MB)
ISBN 978897966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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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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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평전. 3: 포위당한 혁명』은 4부작 중 세 번째 책으로 1917년 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와 레닌을 다룬다. 레닌이 노동자들을 이끌고 국가기구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 제헌의회가 해산되는 과정, 독일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체결한 혹독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과 그것을 둘러싼 논쟁, 적군이 자신들보다 훨씬 잘 무장한 국내외의 군대에 맞서 내전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책에서 단호하지만 인간적이고, 당의 지도자였지만 소수파로 전락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굉장히 뛰어나지만 실수도 자주 저지르는 미화되지 않은 레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머리말

<b>01 볼셰비키 정부의 첫 조처들</b>
소비에트 대회/포고령, 포고령, 포고령 ……/평화 포고령/토지 포고령/소수민족의 자결권/노동자 통제 포고령/그 밖의 많은 포고령/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소비에트 정부/사보타주에 맞선 투쟁/적색테러의 시작/대중의 주도력에 의존하기/지도자들과 노동자 대중의 긴밀한 관계

<b>02 권력의 강화</b>

<b>03 제헌의회 해산</b>
선거 결과/볼셰비키가 제헌의회 해산을 결정하다/투표와 총탄/제헌의회에서 내전으로

<b>0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b>
강화조약의 가혹한 조건/트로츠키의 태도/현실주의와 원칙 있는 정치

<b>05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b>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인간 본성’을 바꾸기/10월 혁명 직전 레닌의 견해/길고 복잡한 이행기

<b>06 “우리는 국가 자본주의가 필요하다”</b>
혼란스런 경제 상황/“우리는 국가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부르주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1인 경영/프티부르주아지의 위협/수많은 사람들을 조직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 한다/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기/결론

<b>07 전시 공산주의(1918~1921년)</b>
산업국유화가 노동자 통제를 대체하다/산업 생산의 붕괴/곡물의 강제 징발/식량 배급/굶주림, 전염병, 혹한/평등주의/경영의 극단적 중앙집권화/공산주의 천년왕국이 도래했는가?/되돌아보기

<b>08 영웅적 비극</b>
혁명의 발전/레닌의 혁명적 현실주의/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가혹한 상황/꿈과 현실

<b>09 전시 공산주의 시기의 프롤레타리아</b>
프롤레타리아가 투쟁 속에서 자신을 불사르다/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공장위원회, 노동조합, 국가/노동조합과 국가/노동조합, 군사 전선, 노동 전선/노동자 군대/수보트니크/프롤레타리아의 와해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b>10 전시 공산주의와 농민</b>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농업 프롤레타리아/빈농위원회/강제 징발에 대한 농민의 저항/농민의 저항이 국가의 형태를 좌우하다/결론

<b>11 국가의 시들기?</b>
이상/국가 행정/지역 소비에트 권력의 쇠퇴/체카의 구실/적군(赤軍)/관료주의로 일그러진 거대한 국가/결론

<b>12 볼셰비키의 정치적 독점 확립</b>
순진한 나날들/카데츠/우파 사회혁명당과 우파 멘셰비키/멘셰비키/좌파 사회혁명당/볼셰비키당의 정치적 독점/당과 소비에트/국가기구에서 민주주의의 쇠퇴

<b>13 당의 변모</b>
당의 사회적 구성 변화/출세주의자들의 입당을 저지하기/극소수의 고참 당원들/당내 권력의 중앙집중화/주요 직책의 임명/노동조합에서의 임명/“낡은 오물이 되살아날 것이다”/당의 민주적 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이 지속되다/레닌, 당, 프롤레타리아

<b>14 레닌과 군사 전선</b>
차르 군대 장교 영입과 레닌/전쟁 전략을 둘러싼 견해 차이/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성격

연표
후주
찾아보기

<b>● 소비에트와 제헌의회의 관계에 대한 레닌의 견해</b>
제헌의회 선거는 몇 주 동안 치러졌다. …… 득표수로 보나 의석수로 보나 사회혁명당이 명백한 다수였다. ……
그래서 볼셰비키의 기대와는 반대로 우파 사회혁명당이 제헌의회를 지배하게 됐다. 레닌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선거법이 낡아서 사회혁명당 후보들 중에서도 우파에 지나치게 유리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5월부터 10월까지 대중, 특히 농민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던 정당(사회혁명당)이 1917년 10월 중순에 제헌의회 선거 후보자 명단을 제출한 뒤 11월에 분열했다. 그때는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된 뒤였지만 아직 제헌의회가 소집되기는 전이었다.
따라서 유권자 대중의 의지와 제헌의회의 구성이 형식적으로도 일치하지 않았고 일치할 수도 없었다.

결코 볼셰비키 당원이 아니었던 라드키조차 레닌의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그러나 제헌의회와 소비에트가 충돌한 주된 이유는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소비에트보다 제헌의회의 포괄 범위가 훨씬 더 넓었다. 제2차 소비에트 대회는 약 2000만 명을 대표한 반면, 제헌의회 선거의 투표자 수는 4000만 명을 넘었다. 볼셰비키는 좌파 사회혁명당과 함께 도시 프롤레타리아, 공업 중심지 인근의 농민들, 북부와 북서부 전선 군대의 압도 다수를 대표했다. 이들은 대중 가운데 가장 활력 있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사람들이었고, 혁명의 생존은 그들의 능동적 지지에 달려 있었다. 제헌의회를 지배한 사회혁명당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우유부단한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나 수도와 공업 중심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지역의 수많은 농민을 대표했다.
제헌의회를 계급투쟁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혁명의 이익이 제헌의회의 형식적 권리보다 중요했다. 이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2차 당대회에서 플레하노프는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가 민주적 권리들을 억압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묻고 나서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바 있었다.
제헌의회는 1918년 1월 5일(18일) 개최했다. 체이카를 대표해서 스베르들로프가 레닌이 작성한 “피착취 노동 대중의 권리 선언”을 낭독했다. 그것은 소비에트 정부의 주요 포고령들, 즉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토지 포고령, 평화 포고령, 노동자들의 생산 통제 등을 요약한 것이었다. 이 선언을 승인해야 한다는 스베르들로프의 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져서 찬성 136표 대 반대 237표로 부결됐다. 이로써 제헌의회의 운명은 끝났다. 하루 만에 해산된 것이다.
연립정부 문제에서 볼셰비키 지도부의 견해가 갈렸던 것과 달리 제헌의회 해산 결정은 당내에서 의견 충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다.
12월 13일(26일) <프라우다>는 레닌이 쓴 “제헌의회에 대한 테제”를 실었는데, 이것이 볼셰비키의 최종 전술 방침이 됐다. 레닌은 “1917년 혁명 초기부터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제헌의회가 있는 보통의 부르주아 공화국보다 소비에트 공화국이 더 고차원의 민주주의 형태라는 사실을 거듭거듭 강조했다”는 원칙으로 시작해, 선거 결과도 민중의 실제 의지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0월 혁명 이후 대중은 더 좌경화했지만 이런 변화가 제헌의회 선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시작되고 있던 내전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계급투쟁이 절정에 이르고, 역사가 러시아 민중에게 제기한 첨예한 문제들을 형식적 민주주의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모조리 파괴됐다.” 따라서 제헌의회가 “소비에트 권력, 소비에트 혁명, 평화·토지·노동자 통제 등에 관한 소비에트의 정책을 무조건 승인한다”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제헌의회와 관련된 위기는 오직 혁명적 방식으로만, 소비에트 권력의 가장 강력하고 신속하고 확고하고 단호한 혁명적 조처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이 제헌의회 해산을 정당화한 논거는 두 가지였다. 근본적인 것은 제헌의회가 부르주아 의회이고 반혁명 세력들의 집결지가 됐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다양한 부차적 이유들(사회혁명당의 분열, 선거 시기 등) 때문에 제헌의회의 구성이 러시아의 실제 세력 균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토니 클리프가 쓴 ≪레닌 평전≫ 4부작은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꼼꼼히 살펴보고 주의 깊게 분석한 바탕 위에서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같은 사회사적 연구 성과도 흡수해서 레닌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래서 레닌을 신성시하거나 악마화하는 기존의 레닌 전기와는 달리 레닌의 정치적 장점과 위대성뿐만 아니라 오류와 한계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책은 ≪레닌 평전≫ 4부작 중 세 번째 책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직후부터 1920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레닌이 노동자들을 이끌고 국가기구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 제헌의회가 해산되는 과정, 독일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체결한 혹독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과 그것을 둘러싼 논쟁, 적군이 자신들보다 훨씬 잘 무장한 국내외의 군대에 맞서 내전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다룬다.

≪레닌 평전≫ 4부작은 2000년에 작고한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본명은 이가엘 글룩스타인)가 쓴 레닌의 정치적 전기다. 이 책에 나오는 레닌의 모습은 옛 소련의 스탈린주의적 해석과도 다르고 최근 슬라보예 지젝이나 일부 자율주의자들이 새롭게 해석하는 레닌의 모습과도 다르다. 전자가 레닌을 당대 현실을 초월한 성인(聖人)처럼 묘사하고 그의 말과 글을 종교 경전이나 교리처럼 떠받든다면, 후자의 해석은 나름대로 색다르고 독특하지만 대부분 아전인수에 가까운 듯하다.
그와 달리 이 책은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꼼꼼히 살펴보고 주의 깊게 분석한 바탕 위에서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같은 사회사적 연구 성과도 흡수해서 레닌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래서 레닌의 오류와 한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그의 정치적 장점과 위대성을 인정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레닌 평전 3 : 포위당한 혁명≫은 1917년 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와 레닌을 다룬다. 무명의 정치 세력에서 극적으로 부상해 권력의 정상에 오른 볼셰비키와 레닌은 경제 파탄과 내전, 14개국 군대의 침략에 직면한 엄청나게 광대한 후진국에서 노동자들을 이끌고 국가기구를 운영해야 했다. 맨손으로 노동자, 농민의 군대를 창건해야 했고, 그렇게 만든 군대를 이끌고 훨씬 더 잘 무장한 국내외 군대들에 맞서 싸워야 했다.
많은 볼셰비키와 노동자들의 영웅적이고 헌신적인 희생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 냈지만, 러시아의 후진성과 농민의 보수성이라는 암울한 현실에 직면한 데다 국제 혁명도 지체되자 볼셰비키와 레닌은 점차 무기력해지고 현실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 레닌과 그의 당이 불가항력의 상황에 직면한 이 시기는 레닌의 삶에서 비극적 시기였다. 그렇지만 레닌이 프로메테우스처럼 투쟁한 이 기간 내내 미래가 볼셰비즘의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비교적 소규모였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제 노동계급이 자유와 노동자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무엇을 쟁취할 수 있는지를 어렴풋이 보여 준다.

<b><책속으로 추가></b>

<b>● 독일과의 강화조약 체결에 대해</b>
볼셰비키 정부가 초기에 부딪힌 문제 중 하나는 독일과 계속 전쟁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강화조약을 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
1917년 12월 3일(16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표들과 러시아 대표단 사이에 정전협상이 시작됐고 곧 협정이 체결됐다. 12월 9일(22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강화 협상이 시작됐다. 볼셰비키 대표단의 지도자는 트로츠키였다. 트로츠키는 협상장에 카를 라데크를 데려갔다. [독일에서 돌아와] 방금 러시아에 도착한 라데크는 독일군 참호에 뿌릴 독일어 신문 <디 파켈>(횃불)의 편집자였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 도착하자마자 라데크는 소비에트 대표단을 환영하러 승강장에 나와 있던 [독일]군 장교들과 외교관들이 보는 앞에서 독일군 병사들에게 혁명적 소책자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12월 14~15일(27~28일) 독일 측 협상 대표가 가혹한 합병 조건을 내건 강화조약 초안을 낭독했다. 트로츠키는 협상을 결렬시키고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왔다.
레닌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의 견해를 테제 형식으로 압축해서 내놓는 버릇이 있었다.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으니 전략을 급격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레닌은 또다시 테제를 작성했다. 1918년 1월 7일(20일) 그는 “단독·합병 강화조약을 즉시 체결하는 문제에 대한 테제”를 발표했다.

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고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에 거는 우리의 기대는 모두 이런 확신과 과학적 진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반으로는 우리의 선전 활동, 구체적으로는 [교전국 병사들 간의] 친교를 조직하는 활동은 더 강화되고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유럽, 특히 독일에서 앞으로 6개월 안에(또는 그와 비슷한 단기간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러시아 사회주의 정부의 전술을 수립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단기간에 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지 어떨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런 노력은 모두 객관적으로 말해서 맹목적 도박일 뿐이다.

군대 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에는 군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지금 우리 군대가 독일군의 공세에 맞서 반격할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정부는 지금 한시도 늦출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합병을 인정하는 이 강화를 지금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즉시 혁명전쟁을 벌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사실, 그 중간의 타협책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필요한 전술을 일반적 원칙에서 곧장 끌어내서는 안 된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강화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근본 원칙을 완전히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분명히 틀렸다. 파업에 패배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고 자본가에게 유리한 작업 재개 조건에 서명했다고 해서 그 노동자들이 사회주의를 배신한 것은 아니다.

레닌은 강화 정책이 독일 혁명에 해로울 것인가 하고 물은 뒤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가 단독 강화조약을 체결하더라도 객관적 조건만 보면 독일 혁명의 성공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러시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은 모든 나라 국민들에게 생생한 사례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이 사례의 선전 효과와 혁명적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가 직면한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영웅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경멸하며 거부했다.

즉시 혁명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론은 그런 정책이 아름답고 극적이고 인상적인 것을 갈망하는 인간적 염원에 부응할지는 몰라도 지금 진행 중인 사회주의 혁명의 현 단계의 객관적 계급 세력 관계와 물질적 요인들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레닌은 당내에서 매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10월에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레닌의 태도에 경악했다. 대체로 10월에 레닌의 무장봉기 주장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즉시 강화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가장 열렬히 주장한 사람이 지노비예프였고, 10월 혁명 때 레닌을 지지했던 당내 좌파들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강화 정책을 반대했다.

<b>● 부르주아 전문가들의 필요성에 대해</b>
레닌은 부르주아 기술자들과 전문가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과제는 부르주아 지식인들을 우리의 과업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다양한 지식, 기술, 경험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지도하지 않으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면 자본주의와 비교해서 그리고 자본주의가 이룩한 바탕 위에서 노동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레닌은 문제의 실천적 측면도 논의했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에 최상급 과학자와 전문가 1000명이 필요하다고 하자. …… 그리고 우리가 이 ‘최고 스타들’에게 …… 1인당 연평균 2만 5000루블씩 지급해야 한다고 치자.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총액(2500만 루블)을 갑절로 늘려야(가장 중요한 조직적·기술적 과제들을 신속하게 특별히 성공적으로 해결한 대가로 이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해야) 하거나 심지어 네 배로 늘려야(더 많은 보수를 요구하는 외국인 전문가 수백 명을 채용해야) 한다고 하자. 문제는 소비에트 공화국이 현대의 과학·기술 정책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노동을 재조직하는 데 연간 5000만 루블이나 1억 루블을 지출하는 것이 지나치거나 너무 무거운 부담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아닐 것이다.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농민의 압도 다수는 이런 지출을 승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러시아의 후진성 때문에 우리가 수십 억 루블씩 잃고 있다는 사실을 실천적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고액의 연봉이 소비에트 당국뿐 아니라 …… 노동자 대중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려 깊고 정직한 노동자와 빈농이라면 누구든지 우리가 당장 자본주의의 해로운 유산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얻은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트러스트 조직자들한테서 배우지 못하면 사회주의를 건설하거나 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명실상부한 공산주의자들이다. 사회주의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의 전위가 트러스트의 성과를 흡수하고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즉 프롤레타리아의 당이 트러스트 방식으로 대규모 생산을 조직하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자본주의의 최상급 전문가들한테서 그런 능력을 배우고 익히는 것뿐이다.

그러나 레닌은 가혹한 진실, 즉 전문가들에게 특권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은 공산주의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부르주아 방식에 의존해야 하고 일류 부르주아 전문가들에게 ‘서비스’ 대가로 고액의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 분명히 이런 조처는 타협이고, 파리 코뮌과 모든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파리 코뮌과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원칙은 모든 사람의 봉급을 보통 노동자의 임금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출세주의에 맞서서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싸울 것을 촉구한다.
더욱이, 이런 조처는 특정 분야에서 특정한 정도로 자본에 대한 공세를 중단하는 것(왜냐하면 자본은 화폐 총액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관계이기 때문이다)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주의 소비에트 국가권력으로서는 일보 후퇴이기도 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고액의 봉급을 보통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낮추는 정책을 선포하고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에게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고액의 봉급을 주고 부르주아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것이 파리 코뮌의 원칙에서 후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정치인의 수준으로 전락한 사기꾼과 마찬가지다.

<b>● 레닌의 매우 소박한 생활 방식</b>
볼셰비키당은 엄격한 평등주의를 주장하고 실천했다. 세르주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의 봉급은 ‘공산주의자의 최대치’로 제한돼 있었는데, 이는 숙련 노동자의 평균 임금에 해당했다.” 그는 또, 지노비예프의 처남으로서 소비에트 집행위원이자 국립 도서관장인 이오노프의 큰아들이 굶어 죽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크렘린에서 그[레닌 - 지은이]는 여전히 궁중 하인의 거처로 지어진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두 번째 겨울에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레닌의 집에도 땔감이 없었다. 이발소에 간 레닌은 남들이 자신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레닌은 자신의 봉급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다. 1918년 5월 23일 그는 인민위원회 사무국 관리자인 V D 본치브루예비치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다.

1918년 3월 1일부로 내 월급을 500루블에서 800루블로 인상한 근거가 무엇인지 내가 계속 물었는데도 당신은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인상은 명백히 부당하므로 나는 당신을 호되게 질책하는 바입니다.

크룹스카야는 늘 크렘린 식당에 가서 가족의 식사를 받아 왔다. 겨드랑이에 검은 빵 한 덩어리를 끼고 수프 냄비를 앞에 받쳐 든 채 크렘린의 얼어붙은 길을 걸어가는 크룹스카야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크룹스카야가 레닌의 귀가 시간에 맞춰 식당에 다녀왔지만 레닌이 제때에 집에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레닌의 누이인 마리아가 레닌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면 레닌은 금방 가겠다고 대답했다. 10~15분 뒤에 마리아가 다시 전화를 걸어 음식이 식기 전에 빨리 오라고 독촉했다. 마침내 레닌이 집에 왔을 때는 이미 음식이 차가워진 뒤였고, 그래서 그 벌로 레닌은 음식을 다시 데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크렘린의 정부 고위 관리는 <맨체스터 가디언>의 특파원인 아서 랜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이 건물에 난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여기서 외투를 껴입고 털모자를 쓴 채로 영하의 추위에 떨면서 일을 해야 했어요. …… 많은 동료들이 병에 걸렸습니다. 어제만 해도 두 명이 발작 비슷한 것을 일으켜 집에서 쉬어야 했어요.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오랫동안 앉아서 일했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이유로 저도 오른손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b>● 혁명의 국제적 성격에 대해</b>
내전이 끝났을 때 레닌은 볼셰비키가 가혹한 시련을 견디고 마침내 승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엄청났다! 1920년의 사회·정치 체제는 1917년에 볼셰비키가 내세운 이상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혁명의 목표는 계급 장벽이 없고, 사회 성원 전체가 사회를 운영하고, 관료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시민의 복지가 자주성, 독창성, 창조적 능력 같은 인간의 개성을 발전시킬 것이다. 내전을 치른 러시아는 결코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 혁명은 대중의 지지, 열정, 의지력 덕분에 가까스로 반혁명 세력을 격퇴하고 승리했지만 혁명을 일으킨 프롤레타리아의 해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그들이 건설한 국가기구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1917년의 사회주의 국가는 이제 일당 국가로 변모했다. 소비에트는 살아남았지만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볼셰비키 권력의 외피로 전락했다. 당 자체는 노동계급의 당에서 정치국, 조직국, 사무국의 통제를 받는 관리들의 매우 중앙집권적인 당으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1917년의 이상과 1920년의 현실을 레닌보다 더 분명히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레닌은 볼셰비키가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현실이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말이다. 파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국제 혁명의 승리뿐이라고 레닌은 생각했다.
레닌은 세계 혁명의 발전이 러시아 혁명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그는 1918년 1월 11일(24일) 제3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최종 승리를 거둘 수는 없습니다. 소비에트 권력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 노동자·농민 분견대는 위대한 세계 군대의 일부입니다.” “…… 우리가 겪는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리 결함이 많더라도, 세계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날 것입니다.” “…… 절대 진리는 독일 혁명 없이는 우리가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대중 정당들로 구성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급성장했다. 러시아 볼셰비키의 운명과 세계 공산주의의 운명은 아주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작가정보

저자 토니 클리프(Tony Cliff)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에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가 됐고 트로츠키 지지자가 됐다. 팔레스타인에서 소규모 혁명 조직을 건설하다가 제2차세계대전 기간에 영국군에 의해 투옥된 직후 영국으로 이주했다. 1950년대에 소련과 동유럽을 깊이 연구한 후 이 사회들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며 정설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했다.
그가 창설한 ‘사회주의 평론 그룹’은 1960년대에 ‘국제사회주의자들’이 됐고 1970년대에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으로 발전해 영국에서 가장 큰 급진 정당이 됐다. 자서전 ≪쟁취해야 할 세계A World to Win≫가 출간되기 직전인 2000년 4월에 사망했다.
≪레닌 평전≫ 4부작과 트로츠키 전기 4부작을 포함해 많은 책을 쓴 저술가이자 저널리스트였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책갈피, 공저), ≪여성해방과 혁명≫(책갈피), ≪새천년의 마르크스주의≫(북막스), ≪로자 룩셈부르크≫(북막스), ≪소련 국가자본주의≫(책갈피) 등이 있다.

역자 이수현은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했고,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레닌 평전 2 :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책갈피), 《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책갈피), 《좌파의 재구성과 변혁 전략》(책갈피),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책갈피),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책갈피),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책갈피), 《세계를 뒤흔든 1968》(책갈피), 《미국의 이라크 전쟁》(북막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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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 평전 3: 포위당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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