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작가 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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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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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읽은 가장 불가사의한 소설집이다.” _김하나(작가)
“이미상의 소설은 언제나 내 혼을 다 쏙 빼놓는다.” _강화길(소설가)
그 누구의 이름도 ‘미상(未詳)’으로 잊히지 않도록
현실의 폭력을 부수어 새로 쓰는 열망의 글쓰기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이미상 첫 소설집 출간★
2018년 여름, 젊은 평론가들이 매 계절 주목할 만한 단편소설을 발 빠르게 소개하는 첨예한 현장인 『문학동네』 계간평에 한 신인 작가의 데뷔작 「하긴」이 언급되었다. “독보적으로 문제적인 소설”(문학평론가 한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 작품은 이듬해 “요즘 신진 작가들에게서는 구하기 어려운 풍속희극적 일화”(문학평론가 황종연)를 담았다는 찬사를 받으며 젊은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이후 다시 한번 신인 작가가 데뷔작으로 젊은작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례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정도로 힘있는 소설을 써낸” “데뷔작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는”(문학평론가 권희철) 작가가 누구인지 설왕설래가 이어진 것은 수상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거니와 그 수상작이 신춘문예 혹은 문예지라는 전통적인 지면에 발표된 것이 아니라 웹진에 투고된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문학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신예’라는 호명에 값하는, 낯설고도 반가운 작가 ‘이미상’은 그렇게 한국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그 이채로운 출현 이후 이미상은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벼려 특유의 실험정신을 발휘한 단편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생존 게임의 현장처럼 과장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문학평론가 조연정) 지하철 여성 승객의 불안을 형상화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2020년 겨울)로 선정된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무거운 질문들을 감당하면서도 문장 속의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문학평론가 조연정)다는 평을 받으며 ‘이 계절의 소설’(2021년 겨울)로 선정된 「이중 작가 초롱」, 모험 서사와 공포 장르 문법을 전유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돌봄에 관한 기존의 서사를 해체하고 전복하면서 재구성”(안서현 문학평론가)했다는 평을 받으며 자음과모음 ‘2022 여름의 시소’로 선정되는 동시에 ‘이 계절의 소설’(2022년 여름)로도 선정된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등이 그 증거이다. 그런 이미상의 첫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에는 신랄한 화법과 과감한 형식, 읽는 이의 허를 찌르는 플롯을 자랑하는 여덟 편의 단편이 묶였다. 이 색다른 작품들은 새로운 소설에 목말라온 독자들에게 전율적인 문학 읽기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친구 _043
이중 작가 초롱 _071
여자가 지하철 할 때 _109
티나지 않는 밤 _153
살인자들의 무덤 _181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 _215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_273
해설| 혁명의 투시도 _313
전승민(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_349
나는 그 말이 좋았다. 하긴 하는 남자는 당위를 내세우는 남자와 무책임한 남자 사이에 있는 남자다. 하기로 했으면 해야만 하는 고지식한 남자도 아니고, 한다고 해놓고선 안 하는 불성실한 남자도 아닌, 약간 힘을 뺀 채 나른하게 완수하는 하긴 하는 남자.
_「하긴」, 18쪽
규의 상상은 거기서 멈춘다. 와이프일 리 없지. 남편이라면 자신을 결코 와이프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운동권 남자들은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니까.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니까. 동지의 대체어로서의 그친구. 그렇게 부르는 한 자신은 아직 젊고, 아직 투사니까.
_「그친구」, 69쪽
소설 창작반에서는 뜬금없이 어떤 말이 유행했다. 복기나 오독처럼 평소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유행했고 그러면 너도나도 아무때고 그 말을 썼다. 악하다, 도 그런 말 중 하나였다. ‘되짚다’보다 ‘복기’가, ‘잘못 읽다’보다 ‘오독’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듯, ‘생각이 짧다’ 정도면 족했을 텐데도 사람들은 기어이 초롱의 소설에 대해 악하다는 표현까지 썼고 거기에는 ‘아’ 해도 될 것을 ‘악!’ 하고야 마는 문학의 낯간지러운 과장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부당한 환기가 맴돌이치고 있었다. 초롱도 그 점을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_「이중 작가 초롱」, 74~75쪽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렸다. 글만으로는 내 편을 알아볼 수 없다는 무력감과 글이 발산하는 강렬함이 진정함의 징표가 되지는 못한다는 당혹감이, 진짜에, 글과 글쓴이의 심장이 하나인지에 더욱 집착하게 했다.
_「이중 작가 초롱」, 80쪽
수진은 매일 얼굴에 세로선을 긋는다. 정수리에서 시작해 미간을 지나 콧날을 거쳐 입술을 쓸며 죽 내리긋는다. 그럼 일순 정적이 흐르는데 약간 상투적인 정적이다. 어차피 곧 난리가 날 거면서. 아니나다를까 수진의 머리가 곧 반으로 쪼개진다.
_「여자가 지하철 할 때」, 111쪽
“살았다!”
‘살았다!’
수진과 얼굴들이 환희에 차 지하철 계단을 뛰어오른다. 수진이 껑충 뛰자 얼굴들이 토끼 귀처럼 펄럭인다. 불그죽죽한 절단면이 허공에서 손뼉 치듯 짝, 소릴 내며 붙었다 떨어진다. 온몸에 팅팅 튕기는 얼굴들!
_「여자가 지하철 할 때」, 152쪽
수진은 다시 혼자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못 쓴 밤엔 적어도 단어 공책이라도 쓰려 했다. 그러다 점점 소설쓰기와 단어 쓰기 사이에 차등을 두지 않으려 했고 그래야지만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종이 뭉치라 불렀고,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내리려 했고, 종국에는 ‘내리다’라는 표현도 지우려 했지만, 그 안에 어떤 자격지심 같은 게 있다는 걸 모르지 못했고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의 투쟁임을, 비밀스러운 투쟁임을 알았다.
_「티나지 않는 밤」, 170쪽
하드보일드 레이디가 뛰기 시작한다. 거대한 샌드위치가 그녀를 쫓고 있다. 바다 이끼에 뒤덮인 샌드위치. 무엇도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그녀는 점점 더 빨라진다. 무감해진다. 잔인해진다. 자유로워진다.
_「살인자들의 무덤」, 212쪽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_「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310쪽
우리 사회 문화의 병폐를 꼬집는 신랄한 웃음의 소설
이미상 소설의 출발점인 「하긴」과 「그친구」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86세대 부부인 남편 ‘김’과 아내 ‘규’, 그리고 그들의 모임 친구 ‘지경’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 성격의 작품이다. 「하긴」에서 화자 ‘김’은 자신의 딸 ‘보미나래’가 친구들의 자녀들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기고, 어떻게든 딸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소위 ‘배운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운동권 세대인 ‘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학벌주의와 속물근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처럼 「하긴」은 겉으로 보기에 올바른 듯 보이는 인물의 도덕적 허위를 꼬집으며 웃음을 자아내는 강렬한 블랙코미디이다.
「하긴」이 남성 화자 ‘김’의 목소리로 전개되었다면 「그친구」는 여성 화자 ‘규’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규’는 남편과 함께 나가는 모임의 일원인 ‘지경’이 남편 ‘김’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소설은 ‘규’가 같은 여성으로서 ‘지경’과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지 호소력 있게 펼쳐 보인다. 「그친구」는 기존의 남성적 시선으로 그려져온 운동권 문학을 비트는 남다른 후일담 소설이자 여성 연대를 의미화하는 작품이다.
표제작 「이중 작가 초롱」은 주목받는 소설가 ‘초롱’이 누군가에 의해 습작 시절에 쓴 작품을 인터넷에 무단으로 유포당하며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그린다. 동일하게 불법 촬영 피해자 여성을 다루었지만 데뷔작에서는 온전히 인물의 내면 묘사에 초점을 두었으면서, 습작품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손쉽게 화해시키는 결말을 짓는 이중성을 용납할 수 없다는 뭇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초롱’은 순식간에 기만적인 작가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전국의 글쓰기 공모전에서 ‘초롱’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쓴 당선자들이 우후죽순 출몰하면서, 문단에서 매장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진 ‘초롱’은 역설적으로 다수의 익명 작가로서 문단을 장악해가기 시작한다.
「이중 작가 초롱」은 한 명의 특정한 작가의 이름으로 존재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초롱’이 모두의 이름이 됨으로써 살아남는 풍자적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그럼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외설적인 면만 부각해 공격하는 작금의 문화 세태를 꼬집으면서, 글쓰기와 재현의 윤리를 따져 물을 때 진정 누락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도발적인 문제작이다.
“대체 초롱이 어떤 소설을 썼기에 악하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한때 인터넷에 나돌아 쉽게 읽을 수 있었던-이제는 읽기 어려워진-「이모님의 불탄 진주 스웨터」는 악하기는커녕 관습적인 소설이다. 아마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 ‘악하다’는 말이 나온 까닭은 소설이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악하다는 말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_74쪽
“하드보일드 레이디가 뛰기 시작한다.
그녀는 점점 더 빨라진다. 무감해진다. 잔인해진다. 자유로워진다.”
이미상의 소설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작품 전반에 여성주의적 시선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그러한 특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진’이 지하철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를 실험적인 형식으로 극화한 이 소설에서, ‘수진’이 얼굴 I과 얼굴 II로 분열되어 벌이는 연극적인 독백은 기괴한 낯섦을 자아낸다. 그간 ‘지하철’이라는 장소에서 벌어져온 한국사회의 여성 혐오적 사건들을 떠올려보건대, 그 낯섦은 도리어 지하철을 이용해온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현실적 공포이자 불안의 감각일 것이다.
「살인자들의 무덤」은 「여자가 지하철 할 때」와 짝으로 읽었을 때 그 매력을 십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국내외에 실존해온 악명 높은 살인범들이 ‘살인자들의 무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함께 묻혀 있다는 설정을 통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묾으로써 독특한 스릴을 전해준다. 특히 여자를 죽인 자들이 묻힌 구역과 남자를 죽인 자들이 묻힌 구역을 나누어놓고, 같은 연쇄 살인마임에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 사이에서는 “하찮”(188쪽)게 여겨지는 구역에 묻힌 에일린 워노스를 호명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더 나은 묫자리를 지향하라!”(189쪽)라는 살인자들의 반복적인 선언은 범죄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성별 간의 위계와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괴한 상상력과 풍자로써 보여주는 듯하다.
앞선 두 작품의 스릴러적 면모와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색다른 플롯으로 보여주며 독자를 긴장케 하는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작가의 최근작으로, 고모가 목경과 무경 자매를 데리고 산속으로 사냥을 떠나는 모험 서사이자 고모와 조카 사이에 싹튼 연대감을 오롯하게 그려낸 유사 모녀 서사이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고모와 목경과 무경 세 사람의 과거 서사가 ‘내부’이고 그것의 ‘외부’를 또다른 이야기가 감싸고 있다. 소설의 예술적 기법을 의미하는 “한 방”, 즉 “문장을 아껴 쓰며 굽이굽이 나아가다 순간 탁, 터뜨리는 에피파니”(276쪽)에 대해 논하는 작가 자매의 대화 장면이 그것이다. 이 ‘외부’에 위치한 작가 자매 이야기가 고모와 목경, 무경의 ‘내부’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상호 영향은 오직 하나의 중심부만을 지닌 텍스트의 위계를 풀어헤치고, 이야기의 미세한 주름 속 숨죽인 인물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하는 귀한 미덕을 전해준다.
단을 기점으로 이제부터 너는 작가, 이 글부터 진짜 글, 하는 거 이상하지 않아요?”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는 작가가 『이중 작가 초롱』의 특별 소책자 ‘New Face Book’ 수록 인터뷰에서 밝힌바, 청소년 시절 사춘기를 극복하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떠났던 유럽 성지순례의 경험을 일부 녹여낸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작중화자인 ‘나’는 작가로, 금기시되는 성(性)과 강요되는 성(聖) 사이에서 활달한 욕망을 펼쳐내는 십대 인물들의 사연을 ‘우리’라는 1인칭 복수 화자를 통해 소설로써 되살려낸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 한 독자가 항의 편지 글을 보내와 낯선 타지에서 여성 청소년이 남성 청소년에 비해 더 큰 위험을 마주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나’는 그 차이를 무시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편지를 소설의 결말을 대신하여 붙임으로써 그 익명의 독자 또한 한 명의 ‘작가’의 위치로 올라서게 한다.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를 포함하여 이미상 소설에는 글(소설) 쓰는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이중 작가 초롱」의 ‘초롱’처럼 작가가 된 인물도 있지만, 「티나지 않는 밤」의 ‘수진’처럼 작가를 지망하는 인물도 있다. 수진은 미등단자의 투고작도 받아주는 K출판사에 꾸준히 소설을 보내고, 수진의 유일한 독자인 K출판사의 편집자는 괴팍할 정도로 진지한 반려 메일을 보낸다. 수진이 밤마다 소설을 쓰며 시간을 할애하듯, 편집자 또한 읽기라는 치열한 노동을 펼친다. 이들의 쓰기와 읽기의 시간이 상징하는 것은, 설령 작가로 공인받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렇게 쓴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면 그 행위 자체가 바로 ‘작가-되기’임을 역설하는 것일 터이다.
“등단을 기점으로 이제부터 너는 작가, 이 글부터 진짜 글, 하는 거 이상하지 않아요?”(「이중 작가 초롱」, 81~82쪽)라고 묻는 초롱의 질문은 「티나지 않는 밤」의 작품세계와 연동되며 시사점을 던져주는 듯하다. ‘쓺’과 ‘읽음’이 특정 신분, 세대, 성별만의 권리로 여겨지던 때를 생각해보면 이미상의 소설은 그 권위의 위계를 부수고 종내에는 자유로운 해방을 부르는 “혁명”(73쪽)을 꿈꾼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어디에선가 ‘수진’처럼 자기만의 언어로 글을 써나가는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의지, 그들이 익명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미상의 필명 ‘미상(未詳)’에는 그러한 이들과 함께하려는 작가의 뜻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앞으로 더욱 신선한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이미상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진다.
“문학을 너무 크고 위대하게 생각하면 글쓰기가 무서워진다. 그런데 글은 그런 무서운 게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나는 글이 ‘그래도’ 친구 같다” _‘작가의 말’에서
“시대를 이끌어온 모든 예술은 당대에 이미 불온했다. 소설이 지닌 힘이란 바로 이런 문학적 상상력, 발칙하고 도발적이며 독자들을 불편하고 난처한 처지로 몰아넣음으로써 그 누구보다 동시대 속에서 살아내게끔 추동하는 힘이다. 혁명하는 힘이다. 소설집을 덮고 깨닫는다. 이미상의 소설이야말로 그간 내가 기다려온 소설이다. 나는 이런 소설을 정말로 기다려왔다. ‘문학은 자유다.’” _전승민(문학평론가), 해설에서
*
마지막으로, 이미상 소설 특유의 범상치 않은 제목들이 각 작품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그’와 ‘친구’를 붙여 쓴 ‘그친구’(「그친구」)는 운동권 남성이 아내를 부르는 호칭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지하철’이라는 사물에 ‘하다’라는 동사를 결합한 조어 ‘지하철 하다’(「여자가 지하철 할 때」) 또한 그 장소에 놓인 여성의 불안과 안간힘을 감각하게 한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처럼 묘한 운율을 자아냄으로써 세 인물의 관계성을 질문하는 듯한 제목도 이채롭다. 이처럼 남다른 언어 조형으로 소설이 언어예술의 한 분과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무엇보다 그것을 통해 소설의 문제의식을 암시하는 이미상 소설의 제목들은 그야말로 ‘이미상스럽다’라는 형용사의 탄생을 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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