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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묻다

채운 지음
봄날의박씨

2022년 11월 15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04월 30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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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9.98MB)
ISBN 979119212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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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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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혹은 ‘예술적’이라는 말에 덧씌워진 (‘우와~’와 ‘쯧쯧’로 대변되는 양극단의) 편견과 통념에 질문을 던지며 지금까지의 예술을 묻어 버리고, 예술을 삶의 문제로 가져오고자 시도하는 책.
애초에는 가볍게(?) 『재현이란 무엇인가』의 개정판을 쓰려던 저자는 예술에 대한 편견과 환상은 널리 퍼져 있고,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은데, 예술에 대한 해석은 빈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이에 예술의 기원, 감각, 미추, 재현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질문하며 예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탐구해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애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책 『예술을 묻다』가 탄생했다.
저자는 “왜 예술은 대상을 창조하는 문제로 환원될까, 왜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는 걸까”라는 푸코의 질문이 그에게는 기존의 예술 개념을 삶으로까지 확장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예술 개념과 활동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저자는 인간, 인간의 활동, 예술작품, 작가와 같은 근대예술의 토대 자체를 되물으며, 인격이나 생활 양식 생각을 도야하고 연마하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기예(art)가 아닌가 질문하며, 예술적 윤리 혹은 윤리적 예술을 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예술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만나고 싶은, ‘향유’하고 싶은 길을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예술을 사유하고 발명하는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다.
서문

프롤로그. 세 가지 질문 혹은 세 가지 화두
첫번째 질문. 예술은 무엇인가
두번째 질문. 예술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세번째 질문.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장. 기원을 묻다 : 예술의 계보학

1. 뮤지엄의 추억으로부터

2. 미술관 환상
토대로서의 미술관
미술관, 디스플레이의 정치학
혁명, 그 다음날의 예술

3. 예술, 그 표면의 깊이
낮을 비추는 어둠
마음을 마주하다
아, 예술의 위대한 무용함이여!
예술과 영성

4. 예술의 비인간적인 기원을 찾아서
예술적인 너무나 예술적인 동물들이여
카오스와 코스모스 사이
넥스트 아티스트?

5. 예술의 영도(零度)에서
사물들의 영(靈)
멀티-플렉스 뮤지엄에 대한 상상

2장. 감각을 묻다 : 감관을 수호하라!

1. 비접촉 시대의 접촉에 대하여
‘거리두기’를 발명하라
감각, 쾌락, 죽음
모든 것은 접촉에서 시작된다

2. 감각의 역사
1900년, 스펙터클의 명
함께 먹음, 함께 나눔
감각도 배워야 한다

3. 감각의 논리
감각에서 사유로
세잔, 감각의 수련(修練)
감관을 수호하라!

4. 감각의 역량을 기르는 실험들
흥분계와 억제계의 세트플레이
그릇을 비우고 자신을 비우다
카프카의 단식-예술가
감각적 쾌락 너머의 쾌락

3장. 미추(美醜)를 묻다 : 미추의 저편

1. 우리, 아름다움의 포로들
아름다움이라는 유령
매끈함의 미학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취미와 미학, 그리고 배움에 대하여
대체 미학이 뭐예요?
‘취존’, 노 터치?

3. 미는 어디에 있는가
미는 자유에 있다
미는 실존에 있다

4. 미추의 저편
미추불이(美醜不二)의 세계
형상으로 형상을 넘어가기
무유호추(無有好醜)의 원(願)

4장. 재현을 묻다 : 리얼한 환(幻)의 세계를 마주하기

1. ‘카피’에 대한 몇몇 단상들
나의 아이패드 사용기
모작(模作)의 아우라
이발소 그림을 아시나요

2. 예술의 반(反)재현주의
마치 구두인 것처럼
재현(representation)의 논리① : 원본 중심주의
재현의 논리② : 예술의 비(非)도덕주의
푸코와 세 화가, 그리고 재현의 문제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모방

3. 모든 것은 환이다
리얼한 가상, 꿈의 현실
그림자와 유령의 유희
또? vs 다시 한번!

에필로그. 윤리적 예술 혹은 예술적 윤리
태도로서의 예술
명령하는 예
예술, 공생의 기예

모든 개념이 그러하듯 예술 개념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배치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지라 그 개념이 실체화하는 ‘본질’ 자체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예술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어떤 것이 예술이냐고 묻기. 지금 여기서 어떤 것이 예술로 기능하는지, 우리는 어떤 예술을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있는지, 예술의 외부로부터 육박해 들어가기.(「프롤로그 세 가지 질문 혹은 세 가지 화두」, 17~18쪽)

‘영화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1947~ ) 감독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나는 이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정의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나 표현 욕구의 분출이 아니라 세계와 삶, 타자에 대한 하나의 태도다. 그는 무엇에 주목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가? 무엇에서 기쁨을 혹은 슬픔을 느끼는가? 이것은 미학적 문제인 동시에 윤리적 문제다.(「프롤로그 세 가지 질문 혹은 세 가지 화두」, 39쪽)

시들어 버린 나무에 물 주기. 예술이란 어쩌면 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들어 버린 나무’는 우리가 함께 겪는 문제들일 수도, 지옥 같은 마음일 수도, 자폐적이고 획일적인 감각일 수도, 갈애에 시달리는 우리의 초상일 수도 있다. 시들어 버린 나무에 물을 주는 행위는 사소해 보이지만 숭고한 실천이다. 불쾌와 고통과 상실로서의 세계에 등 돌리지 않음, 뭐라도 해 봄, 손 내밀어 봄, 말 걸어 봄. 우리는 마주치고 느끼는 몸을 통해 세계로 진입한다. 인간의 감각은 모든 번뇌로 들어가는 문이지만, 동시에 그 번뇌로부터 빠져나가는 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 그 느낌 속에서 타자와 자아는 어떤 식으로 경험되고 구성되는가. 이에 대한 부단한 탐색이 예술이요, 그 과정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예술의 역량이며, 역량을 발휘하는 꼭 그만큼이 예술의 자유이다.(「프롤로그 세 가지 질문 혹은 세 가지 화두」, 42쪽)

예술은 삶을 구원할 수 없다. 사실, 구원해야 할 삶이라는 것도 없다. 삶은 이미 구원되어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예술은 그저 보여 준다.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다. 내 몸과 마음이 작동하는 이 세계를. 번뇌로 들끓는 이곳의 실상을. 그러나 빨간색을 오래 응시하면 주변으로 나타나는 녹색을 볼 수 있듯이, 번뇌로 들끓는 세계와 출렁이는 마음을 집요하게 응시하다 보면 바로 그 세계에 고요와 평안이 내재해 있음을 통찰할 수도 있다.(「1장 기원을 묻다 : 예술의 계보학」, 87쪽)

예술은 영감과 천재성으로 이루어지는 특권적 활동이 아니다. 이 뿌리 깊은 편견을 부수고 나면, 자연스럽게 예술이 영성으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 푸코를 따라, 또 매일 달리고 쓰는 하루키를 상상하면서, 나는 ‘영성’을 지속적이고 의식적(儀式的)인 자기변형의 실천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니체는 재능과 타고난 능력에 대해서만 말하는 자들을 경멸했다. 어떤 위대한 작가라도 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부분에서 출발해야 한다. (「1장 기원을 묻다 : 예술의 계보학」, 97쪽)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예술 행위는 자연 안에 있는 사물들의 활동 및 관계 방식을 체득함으로써 획득한 필연의 열매인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생산하는 산물들 모두 만물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빚어진 것이므로 오롯이 우리 자신의 소유일 수 없다. 예술이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은 삶의 반영이나 모방이 아니다. 우주 속에는 반영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실체적 삶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술은 인간의 특권적 활동이 아니다. 예술은 우주에 내재한 비가시적인 삶의 원리들을 가시화하는, 생명의 원초적 역량이다.(「1장 기원을 묻다 : 예술의 계보학」, 104쪽)

이 변화무쌍한 감각을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되지만, 그 감각이 수반하는 쾌와 불쾌의 느낌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아울러, 감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질문하지 않은 채 감각적 쾌/불쾌를 자신과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사유를 수반하지 않는 감각은 비록 쾌락을 생산하더라도 우리를 수동적이고 예속적인 상태로 구속한다. 하여, 감각도 배워야 한다. 걷는 법, 말하는 법을 배우듯이 듣는 법과 보는 법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낌적 느낌’에 머무를 게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언어로, 리듬으로, 이미지로 번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2장 감각을 묻다 : 감관을 수호하라!」, 164쪽)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의 진동과 흐름을 포착할 것인가. 화가들이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재주 탓이 아니라 화가를 덮고 있는 무수한 이미지들과 견해들 때문이다. 그래서 눈 앞에 사과를 마주하고서도 ‘있는 그대로’의 사과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사과만을 본다. 사과의 색, 맛, 감촉은 물론 사과의 상징, 앞서 그려진 무수한 사과 그림들 등등 화가의 머리는 사과의 클리셰들로 가득하다. 사과를 ‘보려면’ 먼저 이 모든 것들과 싸워야 한다. 종종 자신이 보는 것 앞에서 오랜 시간 붓을 들지 못하는 화가는 지금, 멈춰 있는 채로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세잔의 풍경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오랜 기다림과 침묵을 이해해야 한다. 신중하고 신중하고 또 신중할 것!(「2장 감각을 묻다 : 감관을 수호하라!」, 174쪽)

「예술을 묻다」 지은이 인터뷰

1. 예술의 기원을 묻고, 감각을 묻고, 미추를 묻고, 재현을 묻는 이 책의 질문들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금이 가게 합니다. 선생님께서 이처럼 네 가지의 물음을 통해 ‘예술’을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 현재 제가 예술을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이른바 예술 애호가도 아니지만,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를 쓰기도 했고(^^) 대학원에서 전공한 과목이 미술사이고 보니 여기저기서 미술 강의를 심심치 않게 하는 편이에요. 강의를 다니면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 예술에 대한 편견 내지는 환상이 아주 심하다는 겁니다. 물론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예술에 대해서는 유독 더한 것 같아요. 무턱대고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거나, 예술은 그냥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된다거나... 과학이나 철학을 배우듯이 무언가를 차근차근 배우려 하기보다는, 흡사 사랑에 눈먼 사람처럼 좋아하거나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거죠. 이래서 예술을 삶의 문제로 가져오는 데 실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원, 감각, 미추, 재현은,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예술을 말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들 혹은 너무 당연하게 수긍해 버리는 전제들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이 시공을 관통하는 보편관념일 거라는 생각, 감각의 배치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감각에만 탐닉하는 태도,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그리고 예술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기존의 통념을 읽어 내려는 태도 말입니다. 이렇게 기원, 감각, 미추, 재현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다시 질문하면서 예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예술 전반을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저는 주로 미술에 국한해서 얘기했지만, 이 주제들은 예술 일반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예술과 관련된 일종의 反지성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싶기도 했어요. 사실, 요즘처럼 ‘예술’이라는 말이 흔해진 시대가 있을까요?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예술이라는 게 외부를 꾸미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 정도로 이해되고 있달까요. 감각적이고 다재다능하다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지성을 느낄 수 없어요. 지성은 감각하는 걸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생각하는 역량 없이, 느끼는 역량이 확장될 수 있을까요? 즉흥적이고 습관화된 ‘반응’을 감수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성이 결여된 감수성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만큼 질문하고, 질문하는 만큼 느끼는 거죠. 느끼는 만큼 실천하는 것일 테고요. ‘예술’이라는 어떤 실체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예술을 매개로 생각의 길을 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예술’의 개념과 실천은 어디서 왔는가, ‘감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추’에 대한 가치평가에 내재된 욕망은 무엇일까,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과 동일할까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우리의 관성적 사고를 건드리고 싶었습니다.

2.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서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나 표현 욕구의 분출이 아니라 세계와 삶, 타자에 대한 하나의 태도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는 ‘인간 활동의 작품’으로서의 예술을 누락시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예술가와 예술가 아닌 이의 경계를 새롭게 그리고, 다시 지워나가는 과정을 지속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데요. 어떤 의미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 문제를 계속 의식했습니다. 어떤 장르가 됐든, 일반적으로 예술은 제작된 대상과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예술적'이라고 할 때 그 말이 지시하는 대상은 뭘까? 형식? 기능? 아니면 사물 자체?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모두를 포함하지만 그중 어느 것 하나를 꼬집어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이를테면 물질로서의 그림은 캔버스와 안료로 이루어졌고, 그려진 이미지들은 일정한 형태와 색채로 구성되었으며, 그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 중 어느 하나를 가리켜 예술이라고 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예술/예술적인 것은 그 다양한 차원들을 하나로 꿰어 의미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요? 예술가도 예술품도 ‘예술’을 이루는 구성요소일 뿐이지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조각가가 흙을 빚어 형상을 만들어 낸다고 할 때, 우리는 인간의 조형적 활동과 그 결과물만을 예술이라고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흙과 물의 활동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우유와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들어지는 ‘쿠키’라는 생산물이 인간의 노동 이전에 소와 햇빛과 바람 등등의 증여를, 증여와 노동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처럼 미디어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가져다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든가 기계의 노동 같은 것도 필요하죠. 제 생각에, 예술은 점점 더 예술가의 개인적 작업일 수 없게 되는 경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툴tool과 창작의 경계도 모호하고, 창작 자체가 이미 흘러 다니는 무수한 아이디어들에 기반해 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예술’이라고 불리는 활동, ‘예술가’라고 불리는 직업군들은 계속 남아 있겠지만, 그 의미는 이미 전과 달라졌고, 더 크게 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예술/비예술의 경계를 지우자 말자, 할 차원이 아닌 거죠. 저는 이미 지워지고 있는 경계 자체를 주시하면서, 우리가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예술 관념을 문제 삼아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예술을 결과물보다는 비가시적인 차원(태도, 삶, 비전 등)과 연관시키려 시도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작품은 예술적 대상이 아니라 ‘예술적인 것’을 매번 새롭게 정의하고 사유하도록 하는 방편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실, 오래전에 푸코가 던진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푸코는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왜 예술은 대상을 창조하는 문제로 환원될까, 왜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라고요. 제게는 이 질문이 기존의 예술 개념을 삶으로까지 확장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예술 개념과 활동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주 신선했죠. 맞아! 왜 예술은 가시적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하지? 인격이라든가 생활 양식, 생각을 도야하고 연마하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기예art가 아닐까?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지닌 ‘예술’ 개념이 대단히 편협하고 고정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걸 절감했어요. 그걸 넘어가고 싶었죠. 인간, 인간의 활동, 예술작품, 작가와 같은 근대예술의 토대 자체를 되묻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예술을 과거와 미래로 소급적용하는 대신, 어떤 형태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는 ‘미래의 예술’,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과거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현재를 낯설게 보고 싶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3. 예술은 감관을 제어하고 단련하는 수행이고, 예술 행위는 마치 탁발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얼핏 보기에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예술과 수행이 마주치는 지점에 대해 좀더 말씀해 주세요.

앞 질문하고 연관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미술을 ‘전공’하면서 만난 무수한 작가들로부터 얻게 된 게 있다면, 작품이라는 결과물이 삶이라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1999년인가 2000년인가, 아무튼 제가 그 무렵 처음으로 연구실에서 맡은 강의가 반 고흐 강좌였거든요.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화가라 자료도 많고 해서 시도해 본 건데, 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제가 예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된 건 8할이 반 고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의 생각들, 그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 삶을 살아가는 자세, 삶과 작업이 연결되는 방식... 제가 예술을 ‘수행’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반 고흐 덕분이었어요. 이어서 세잔, 클레 같은 화가들을 만났죠. 상투적 표현이지만 ‘위대한 화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화가들이에요. 작품이 곧 삶인 화가들이죠. 이 말은 참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건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차라리 종교적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화가들, 그리고 어떤 영화감독들과 작가들은 ‘예술’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삶에서 출발합니다. 이때 삶이란 비전vision(통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감정이라든가 즉각적인 감각, 혹은 예술가적 자의식이 아니라 우주의 진동에서 출발하는 거죠. 자신을 둘러싼 세계 전체의 신호를 읽는다고 해야 할까요? 블레이크의 유명한 시구절을 빌려 말하면,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는 경지인 거죠. 자신의 신체와 신경을 일종의 영매로 변신시키는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럴 때라야 들꽃이 아니라 들꽃 속에 담긴 천국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의 감각에 얽매이지 않아야 해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극도로 절제하고 수련하는 일종의 ‘능동적 금욕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병과 건강에 대해서도 자율적인 척도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이런 점에서 종교의 수행자와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비전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도무지 쉬는 법이 없어요. 늘 성실하게, 흔들림 없이, 누가 뭐라든 자신의 길을 갑니다. 내키면 하고 안 내키면 말고 식의 태도가 없어요. 계속 갑니다. 계속 시도하고 끊임없이 질문하죠.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건강과 긍정하는 법을 발명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예술적 산물이란 그런 삶의 잔여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상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사라질 날이 오겠죠. 하지만 그런 예술품을 만드는 근원적인 태도 내지 힘은 어떤 식으로든 감염되고 전파되고 기억되는 게 아닐까요. 예술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간 ‘길’이 남는 거죠. 예술은 짧고, 삶은 계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핵심적 문제를 종교적 수행과 동일한 차원에서 해석하고 싶었습니다.

4. 선생님께서는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대학원은 미술사로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선생님에게 ‘예술’은 어떤 것일까요?

『재현이란 무엇인가』 개정판을 쓰려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갑자기 예술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보니 잠시 멍해지네요.^^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당시만 해도 '문학'에 확신이 없었어요. 좀더 넓게 공부하고 싶었죠.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못다 이룬 꿈’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우선은 그림 배울 형편이 안 됐고, 또 성적은 쓸데없이 좋았거든요.^^ 그렇다고 갑자기 그림을 그릴 순 없잖아요? 그럴 재능도 없었지만, 전 책을 읽는 게 더 좋거든요. 마침 90년대 초반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가 막 뜨고 있었는데, 이래저래 책들을 읽다가 ‘이거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미술사’라니, 역사도 공부하고 문학도 공부하고 적절하게 철학 공부도 할 수 있겠구나, 게다가 미술작품을 논한다니, 그림은 못 그려도 그림에 대해 떠들 수는 있지 않을까... 미술이라는 창을 통해 한 시대를 들여다보자! 뭐 대충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공부를 해 보니, 생각과 너무 달랐어요. 학부 때 공부한 분야도 아닌데다, 난 배우고 싶어 죽겠는데 강의는 거의 없고 프레젠테이션은 많고, 돈 버는 족족 화집 모으고 슬라이드 찍다가 허송세월했죠.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싶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학교 바깥으로 돌며 철학을 공부하고, 근대를 공부하고... 역시 학교 체질은 아니었어요. 되려 미술사로부터 동떨어져서 공부를 하다 보니 새롭게 보이게 된 것들이 있었죠.
결론적으로 대답을 마무리하자면, 예술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예술’에 대한 약간의 환상과 허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기까지의 과정은 그 허세를 내려놓는 과정이었고요. 아마도 그 덕분에 책을 쓰면서 그러저러한 질문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채운

고전비평공간 ‘규문’에서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강의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미술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은 책으로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재현이란 무엇인가』,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느낀다는 것』, 『철학을 담은 그림』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루쉰, 길 없는 대지』 등이 있다.

작가의 말

“예술이라는 게 태생적으로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수단이었다고는 하지만, 예술이 삶의 액세서리가 되고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하는 걸 보는 일은 참 고역이다. 예술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런 허영뿐인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이 비루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산한 사물 앞에서 아부하고 굽실거리는 노예 꼴이라니. 대중이 당당하고 고귀해지지 않는 한 예술은 껍데기일 뿐이다. 예술품을 생산하는 건 예술가지만 예술품에 양분을 제공함으로써 시간을 이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대중이다. 그럴진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메타버스니 NFT니 하는,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숙고하고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 보는 일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는 건 기술이나 예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런 역량을 발휘하는 가운데 우리는 예술도 기술도 구원할 수 있다.”(서문 중에서)

“제가 예술을 결과물보다는 비가시적인 차원(태도, 삶, 비전 등)과 연관시키려 시도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작품은 예술적 대상이 아니라 ‘예술적인 것’을 매번 새롭게 정의하고 사유하도록 하는 방편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실, 오래전에 푸코가 던진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푸코는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왜 예술은 대상을 창조하는 문제로 환원될까, 왜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라고요. 제게는 이 질문이 기존의 예술 개념을 삶으로까지 확장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예술 개념과 활동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주 신선했죠. 맞아! 왜 예술은 가시적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하지? 인격이라든가 생활 양식, 생각을 도야하고 연마하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기예(art)가 아닐까?”(저자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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