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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생에 대하여
음악의 글 11
포노(PHONO)

2022년 12월 01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07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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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89716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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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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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하지만 어중간한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청중은 재깍 흡수되지도 않고 굉장하게 압도하지도 않는 예술에는 이해심과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_ R.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의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의 부친이 연주하는 호른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지며 뷜로의 리허설 현장에 있어 보고 싶어진다.” _ ‘옮긴이의 말’에서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

“빰- 빰- 빰~ 쿵쾅 쿵쾅 쿵쾅” 찬란한 금관에 이어 장엄한 타악이 뒤따른다. 달 너머 지구가, 태양이 떠오른다. 곧이어 초기 인류가 등장하여 도구를 집어 든다. 역사의 시작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첫 장면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명장면에서 되풀이하여 흐르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주제를 따라 작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의 들머리이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교향곡, 교향시, 오페라, 실내악, 가곡 등 서양 고전음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걸작을 남긴 거장이다. 뮌헨의 자랑이었던 명 호른 연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여섯 살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작곡하여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음악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뮌헨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예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슈트라우스가 남긴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로, 그의 예술관과 인생 이야기뿐만 아니라 출판을 고려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과 회고, 서신 등도 포함되었다.
총서 《음악》을 위한 서문 (1903)
음악에 진보파라는 게 있는가? (1907)
레오폴트 슈미트의 《현재의 음악계》를 위한 머리말 (1908)
어느 시장님께 띄우는 공개 서한 (1913)
도시 연합 극장: 하나의 제언 (1914)
오페라 공연 목록에 관한 생각 (1922)
열 개의 황금률 (1925경)
작곡과 지휘에 관하여 (1929)
한스 디스텔의 《어느 오케스트라 단원이 지휘에 관하여》에 부치는 서문 (1931)
고전 걸작들을 지휘한 경험
예술적 유언: 카를 뵘 박사에게 (1945)
바이로이트의 〈탄호이저〉에 관하여 (1892)
〈파르지팔〉 저작권 보호 문제에 관하여 (1912)
리하르트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 대하여 (1940경)
바그너의 《오페라와 드라마》에 관하여 (1940경 추정)
모차르트의 〈여자들은 다 그래〉 (1910)
모차르트에 대하여 (1944)
모차르트라는 챕터에 관하여 (1944)
슈베르트에 대하여 (연도 미상)
구스타프 말러 (1910)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하여 (1925)
프리드리히 뢰슈 추도사 (1925)
뮌헨 오페라 (1928)
빈 필하모닉 경축사 (1942)
작센 슈타츠카펠레 경축사 (1948)
음악 교육을 위한 시의적 단평: 한 교육자 친구에게 (1933)
인문 김나지움에 관한 편지: 리이징거 교수께 (1945)
〈요셉의 전설〉에 관하여 (1941)
〈간주곡〉에 부친 미출간 서문 (1924)
〈간주곡〉 서문 (1924)
〈이집트의 헬레나〉에 관한 인터뷰 (1928)
〈기상곡〉을 위한 머리말 (1942)
내 작품들의 좋은 조합 (1941)
선율 착상에 관하여 (1940경)
오페라 〈다나에의 사랑〉 최종 리허설에 대하여 (1944)
요제프 그레고어의 《연극의 세계사》에 관한 고찰 (1945)
마지막 메모 (1949)
한스 폰 뷜로에 대한 기억 (1909)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내 어린 시절과 수련 시절
내 오페라의 첫 공연들에 대한 기억 (1942)
파울리네 슈트라우스-데 아나 (1947)
여든다섯 살 생일에 가르미슈에서 드리는 말씀 (1949)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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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술은 문화의 산물이다. ‘법’은 임의로 고안하거나 당면한 난국에 부응해서 만들어진 후에 ‘영원하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예술의 ‘소명’은 그런 ‘법’을 따르면서 자기도취에 빠져 고답적 실존을 영위하는 게 아니다. 예술 본연의 소명은 외려 시대와 민족의 문화를 증명하는 것이다. _ 11쪽

청중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하지만 어중간한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청중은 재깍 흡수되지도 않고 굉장하게 압도하지도 않는 예술에는 이해심과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_ 17쪽

그런데 모든 예술 작품이 그 자체로 창작자의 의도를 완성된 형식에 다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영그는 것은 아니다. 자기들 작품을 최종적으로 기운차게 다듬고 매만지는 것, 이 작업을 시적이고 몽상가적인 예술가들이 항상 능히 감당해낸 것도 아니었다. 또 그렇게 감당해내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_ 26쪽

예술적 수준을 일정 정도라도 갖춘 오페라 기관은 절대로 순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위에 든 예처럼 오페라를 올리는 시립 극장이 감독에게 이른바 금갱인 곳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런 극장의 예술적 수준은 너무 낮아서 싸구려 동네 극장이라고나 해야 할 지경이니까요. _ 33쪽

우리의 의회들이 한 번쯤 독일의 민족 극장 창립을 제안한 바그너의 기획안 같은 것에 천착해보면 어떨지? 아니면, 그런 건 정말 일절 할 줄 모른다고 고백해야 할 처지라면, 진지한 예술 사안들은 관련 전문가를 소집해 새로이 구성한 입법 위원회가 처리하도록 맡기면 어떨지? _ 43쪽

1. 그대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청중들을 기쁘게 하려고 연주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2. 지휘할 때 땀을 흘리지 말지라, 관객의 가슴이 따뜻해져야 할 뿐. _ 52쪽

작곡’을 어떤 감각이나 감정을 음악이라는 상징 언어로 표현하는 거라고 이해하는 한, ‘모든 것’을 작곡할 수 있다는 말은 한마디로 맞지 않는다. 동시에 음과 음향으로 (무엇보다도 특정 동작 모티프들을) 그릴 수 있다는 말도 물론 맞다. 그렇지만 음악에 지나친 능력을 기대하고 무미건조한 자연 모방에 빠질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그럴 경우 제아무리 정신력과 기량이 동원되었다 한들, 그 음악은 영원히 2급 음악으로 남을 것이다. _ 54쪽

내 지휘 스타일이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도 때로 있었다. 특히 예전에 베토벤 해석에서 템포를 흠잡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묻겠다. “베토벤이 이 템포, 혹은 저 템포를 이렇게 하기를 원했으며 다르게(가령 나의 해석처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오늘날 누가 확실히 장담한단 말인가? 그 문제에서 확고부동한 전통이라는 게 대관절 있기는 한가?” _ 55쪽

지휘를 할 때 손목 관절만 까딱 움직여 사인 지시를 짧으면 짧게 할수록 실행이 더 정확하다. 이게 지휘 테크닉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같이 지휘하는 팔(일종의 지렛대 동작인데, 이 동작의 끝을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은 오케스트라에 마비와 혼란을 가져온다. (중략) 왼손은 지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조끼 주머니에 넣어두는 게 제일 낫다. 고작해야 한 번씩 꺼내어 디미누엔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나지막한 손짓을 한다든가 사소한 신호를 주면 된다. 하지만 그런 용도에는 가벼운 눈짓이면 족하다. _ 62쪽

유감스럽게도 〈파르지팔〉 저작권 보호 문제는 우리 문화를 고양하고 정제하는 것을 진심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법률가와 정치인 들이 내립니다. 이 문제를 보는 이들의 지평은 지적 재산권자의 무제한 권리를 헤아리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요. _ 108쪽

최소한 중등학교의 모든 학생(음악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며 어쩌면 악기도 하나쯤은 연주할 줄 아는)이 이런 공부를 체계적으로 한다면, 그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멋진 예술 향유의 원천이 김나지움 시절에 열리는 것이다(다른 학생들은 조형 예술 분야에서 어느 정도 전공 심화라 할 만한 과정을 거치도록 하면 되겠다). 중등학교 제도를 내가 약술해본 대로 개혁한다면 신기원적 공로이리라. _ 157쪽

애석하게도 여전히 우리의 카펠마이스터들은 총보에서 지시하는 연주 기호만이라도 정확히 지키도록 오케스트라를 교육할 줄도 모른다(드레스덴의 거장인 슈흐와 같은 모범적 지도까지는 바라지도 않겠다). (중략) 지휘자들의 이러한 무능, 지나치게 큰 오페라하우스, 유감스럽게도 아름다운 목소리보다 우렁찬 목소리를 선호하는 다수 청중의 심미안 부재, 이런 이유 때문에 아름다운 피아노(p) 가창과 메차 보체 가창은 거의 들어볼 수 없게 되었다. _ 170쪽

가수는 텍스트를 명확하게 발음하고 오케스트라는 지시를 엄격하고 정확하게 지킨다면 청자는 텍스트를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몇 안 되는 예외가 있다. 가수들이 굉장히 고조되어야 하는 부분들이다. 이때는 그에 맞춰 음량이 맹렬하게 커지는 오케스트라에 홍수처럼 덮여도 좋다). 내가 내 작품 〈엘렉트라〉의 지휘자로서 가장 흐뭇하게 듣는 칭찬은, “오늘 저녁에는 모든 가사를 알아들었습니다” 같은 인정의 말이다. _ 175쪽

가수가 각별히 기억해둘 게 있다. 제대로 조음한 자음만이 어떤 오케스트라든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오케스트라까지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최대 성량으로 부르는 최선의 모음 a일지라도 80~10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메조포르테로만 연주해도 쉽게 묻히고 만다. 폴리포니적인 오케스트라가 조용히 반주해주지 않고 앞으로 나설 때 가수가 여기에 맞설 유일한 무기는 자음이다. _ 179쪽

갑자기 떠오른 선율이 천공에서 곧장 내려와 불현듯 나를 엄습한다. 외부에서 감각적 자극이나 영혼의 동요가 없는데 떠오른다(영혼의 동요도 선율이 떠오르는 데 아주 개연성 높은 직접적 계기가 된다. 이는 전혀 딴판인 비예술적 성격의 흥분 상황에서 직접 자주 경험한 바다). 선율은 판타지 속에서 불쑥, 은연중에, 지성의 영향 없이 떠오른다. 신성의 최고 선물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_ 197쪽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을 또는 그가 지휘하는 바그너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언제 그의 피아노 수업에 한 시간이라도 참관해보았거나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하는 그에게 귀 기울여본 사람, 그런 사람에게 뷜로는 필시 재생산 예술가의 빛나는 덕목 제반에 대한 귀감이었으리라. _ 223쪽

아버지는 매우 성마른 분이셨다. 아버지와 하는 연주에는 언제나 살짝 긴장감이 감돌아 재미가 있었다. 아버지는 올바른 템포에 대한 빈틈없는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중략) 나는 아버지를 통해 좋은 연주가 무엇인지 배웠다.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호른 협주곡과 베토벤의 호른 소나타를 연주하는 아버지를 수없이 반주하는 과정에서. 나는 뷜로에게 고전 걸작들의 연주와 이해에서 귀한 가르침을 받았고 아버지는 그러한 배움에 걸맞게 미리 훈련을 시키신 셈이었다. _ 241쪽

우리가 네 생일을 잊어서 미안하다. 늦었지만 그렇다고 덜한 것은 아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부디 하늘에서 모차르트가 너를 축복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네 할아버지의 사랑이 내가 죽은 후에도 너를 이끄는 충실한 별이 되길 바란다. (중략) 너도 네 지난 생일을 기억할 때는, 항상 야만을 혐오하면서 같이 기억했으면 한다. 그 야만의 만행이 우리 아름다운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구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너는 네 형과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네가 30년 후에 이 애처로운 글을 다시 손에 쥔다면, 70년 가까이 독일의 문화, 조국의 영예와 명성을 위해 노력한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_ 315~316쪽 ‘옮긴이의 말’ 중

교양 시민이자 문화 엘리트의 아비투스를 지녔던 슈트라우스. 그러나 정치적 통찰력은 부족했기에 20세기 전반을 살던 그가 진심으로 소중히 여긴 바로서의 독일의 문화란 미심쩍은 면과의 교집합이 필연적이다. 그런 슈트라우스가 더구나 가족과 자손의 윤택한 삶과 본인 작품의 안정적 상연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리는 데 익숙했던 가부장 음악가요, 사업 감각까지 지녔다면 더더욱. 그리하여 그의 평생 신념의 소산 가운데는 유감스럽게도 나치 정권하에서 제국음악원장을 맡는다든가 뮌헨 문화 인사들의 안티 토마스 만 캠페인에 서명하는 등의 돌이키기 어려운 오류 또한 있었다. _ 318쪽 ‘옮긴이의 말’ 중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

“빰- 빰- 빰~ 쿵쾅 쿵쾅 쿵쾅” 찬란한 금관에 이어 장엄한 타악이 뒤따른다. 달 너머 지구가, 태양이 떠오른다. 곧이어 초기 인류가 등장하여 도구를 집어 든다. 역사의 시작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첫 장면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명장면에서 되풀이하여 흐르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주제를 따라 작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의 들머리이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교향곡, 교향시, 오페라, 실내악, 가곡 등 서양 고전음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걸작을 남긴 거장이다. 뮌헨의 자랑이었던 명 호른 연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여섯 살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작곡하여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음악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뮌헨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예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슈트라우스가 남긴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로, 그의 예술관과 인생 이야기뿐만 아니라 출판을 고려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과 회고, 서신 등도 포함되었다. 독일 교양 시민이자 문화행정가로서, 오페라 지휘자로서 슈트라우스의 면모와 사유가 이 글들에서 드러난다.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의 다시없는 천재성이 세상에 남겨준 유산을 감사히 가꾸고자 했고 문학과 음악 교육의 양과 질을 높일 것을 끊임없이 역설했다. 또한 예술가의 생계 보장과 예술의 수준 유지, 선구적으로 저작권 문제까지 발 벗고 나섰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시민들에게 가능한 한 수준 높은 예술을 제공하기 위한 제안들을 살피다 보면 당시와 오늘날의 문화계 형편이 그리 다른 것 같지 않아 씁쓸한 웃음이 난다. 확신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한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재능이 주어졌을까 하고 그의 음악과 예술을 향한 깊은 사유와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 특히 자신의 음악 인생에 큰 역할을 한 부친과 스승 한스 폰 뷜로에 대한 회고가 풍부하게 등장한다(슈만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바그너와 브람스의 주요 작품들을 초연했으며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혼인했으나 바그너에게 아내를 넘겨야 했던 바로 그 뷜로!). 두 사람은 당대 음악에 대해 서로 반대 입장이었지만 연주자와 지휘자로서, 슈트라우스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여러 일화를 남겼다. 글 속에 드러나는 두 사람의 신경전은 유쾌하다.

내가 방에 다시 들어섰을 때, 다른 쪽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깊이 감동하여 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셨다. 그거였다. 뷜로가 기다렸던 것. 성난 사자처럼 그는 아버지에게 퍼부어댔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저한테 감사하실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왕년에 여기서, 여기 이 망할 놈의 뮌헨에서, 당신이 제게 저지른 일을 저는 하나도 잊지 않았다고요. 제가 오늘 한 일은, 당신 아들이 재능이 있어서 한 거지, 당신을 위해서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대기실을 떠났다. _ 226쪽

브람스가 등장하여 젊은 후배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이어 나는 내 f단조 교향곡을 지휘했다. 청중 중에는 무려 요하네스 브람스가 와 있었고, 나는 내 교향곡에 대한 그의 판단을 듣기를 한껏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말수 없는 특유의 태도로 “썩 좋아요”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명심해둘 만한 교훈을 덧붙였다. “젊은이, 슈베르트의 춤곡들을 정확히 잘 보시고 8마디짜리 단순한 선율들을 고안하려 해보세요.” 이후 나는 거부감 없이 대중적 선율도 내 작업 안에 정말로 수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요하네스 브람스 덕분이다(오늘날 지고하신 비평가들이 지닌 학교 지식은 그런 선율을 참으로 하찮게 평가하겠지만, 그런 선율은 정작 몹시 드물게 그리고 운이 좋아야만 떠오른다). 위대한 마이스터가 한 또 하나의 일침인 “당신의 교향곡에는 테마의 유희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순전히 리듬상으로만 대비되는 많은 테마를 하나의 같은 화성 위에 이렇게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당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리듬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화성적으로 바짝 강도 높게 대비되는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주제가 시적 필연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합쳐질 수 있을 때라야만, 대위법은 타당하다는 것을. _ 231-232쪽

평생을 독일 음악에 헌신하며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치적 통찰력이 부족하여 나치 정권하에서 제국음악원장직에 오르거나 뮌헨 문화 인사들의 안티 토마스 만 캠페인에 서명하는 등 돌이키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가 열두 살 손자에게 보낸 생일 축하 편지에는 이런 씁쓸한 회한이 담겨 있다.

너도 네 지난 생일을 기억할 때는, 항상 야만을 혐오하면서 같이 기억했으면 한다. 그 야만의 만행이 우리 아름다운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구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너는 네 형과 마찬가지로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네가 30년 후에 이 애처로운 글을 다시 손에 쥔다면, 70년 가까이 독일의 문화, 조국의 영예와 명성을 위해 노력한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_ 315-316쪽 ‘옮긴이의 말’ 중

세계를 담아 낸 음악

슈트라우스는 새로운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노력한 음악가로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바그너를 특히 존경했던 그는 바그너의 악극과 관현악법을 이어받았으며 교향시와 오페라, 200곡 이상의 가곡을 창작했다. 그는 음악 인생 전반부에는 화려한 교향시에, 후반부에는 웅장한 오페라에 집중했다. 교향시와 오페라의 소재는 철학과 사상, 전설 등으로 다양했고,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던 그는 철학적, 문학적 관심과 사유의 결과를 음악 속에 녹여냈다.

문헌학자들은 음악가가 아니며, 음악가들은 철학적으로, 음악적으로 교양이 너무 부족한 상태다. 그렇지 않다면 쓸데없는 음악을, 멋모르는 오페라를 그토록 많이 쓰지는, 심지어 무대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_ 116쪽

악극이라는 목표를 가진 바그너, 그가 말에서 태어난 운문 선율을 음 예술적 판타지가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 (중략) 선율들은 바로 우리의 고전 대가들의 상상에서 솟아난 것이다. 이 선율들은 인간 영혼의 계시를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이들 선율이 실루엣의 아름다움과 선율 진행의 정갈함, 심오한 감정 내용 면에서 보여주는 형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_ 116쪽

갑자기 떠오른 선율이 천공에서 곧장 내려와 불현듯 나를 엄습한다. 외부에서 감각적 자극이나 영혼의 동요가 없는데 떠오른다(영혼의 동요도 선율이 떠오르는 데 아주 개연성 높은 직접적 계기가 된다. 이는 전혀 딴판인 비예술적 성격의 흥분 상황에서 직접 자주 경험한 바다). _ 197쪽

지휘란 청중을 위한 것

한스 폰 뷜로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슈트라우스의 지휘와 작품 해석 능력 역시 탁월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다채로운 음향을 추구했지만 지휘자로서는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게 곡을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손동작과 얼굴표정을 최소화하고 악보를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젊은 카펠마이스터에게 남기는 글에서 “지휘할 때 땀을 흘리지 말지라, 관객의 가슴이 따뜻해져야 할 뿐”이라고 지휘자들의 과장된 몸동작을 경계했다. 또한 텍스트의 가청성에 전무후무하게 심혈을 기울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당시에는 오페라를 연주할 때 가사가 또렷이 들리지 않는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분위기였지만, 슈트라우스는 청중에게 가사가 정확히 들리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그의 입장에 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공감했고, 이후 독일 성악 연주 수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대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청중들을 기쁘게 하려고 연주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_ 52쪽

지휘를 할 때 손목 관절만 까딱 움직여 사인 지시를 짧으면 짧게 할수록 실행이 더 정확하다. 이게 지휘 테크닉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같이 지휘하는 팔(일종의 지렛대 동작인데, 이 동작의 끝을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은 오케스트라에 마비와 혼란을 가져온다. _ 62쪽

가수가 각별히 기억해둘 게 있다. 제대로 조음한 자음만이 어떤 오케스트라든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오케스트라까지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략) 나는 특히 바그너의 악극에서, 가령 보탄이 들려주는 이야기나 〈지크프리트〉의 에르다 장면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성량은 크고 딕션은 안 좋은 가수는 오케스트라의 파도 속에 무력하게 침몰하는 반면, 성량은 크지 않아도 자음을 선명하게 발음하는 예술가들은 확실하게 프레이징하면서 오케스트라 교향악의 음향 홍수에 맞서 힘 안 들이고 대사를 관철해냈다. _ 179쪽

작가정보

(Richard Strauss, 1864-1949)
교향곡, 교향시,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가곡 등 서양 고전음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걸작을 남긴 대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1864년 독일 뮌헨에서 호른 연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음악 교육을 받았다. 6세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작곡하여 신동으로 불렸고, 11세에는 음악 이론과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바그너에 반하는 입장이었기에 그의 작품을 접하지 못하다가 1874년 처음 만난 바그너 오페라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1882년 뮌헨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다. 당대 최고 지휘자 중 한 사람인 한스 폰 뷜로의 보조 지휘자로 일하다가, 1885년에 뷜로의 후임으로 마이닝겐 궁정 극장의 음악 감독이 된 이후 많은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약했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 오페라 〈살로메〉(1905), 〈엘렉트라〉(1909), 〈장미의 기사〉(1911), 교향곡 〈가정 교향곡〉(1904), 〈알프스 교향곡〉(1915), 가곡 〈네 개의 마지막 노래〉(1948)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 E. T. A. 호프만, 로베르트 발저,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의 작품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영남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옮긴 책으로 《타너가의 남매들》, 《트인 데로 가는 길》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바그너 읽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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