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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찰하는 마음

생각정원

2022년 11월 04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10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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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13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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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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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의 첨예한 젠더 갈등, 남녀 갈등의 정점에 바로 ‘여성 경찰’이 있다. 현장에서 여경이 피의자를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는 일련의 사건이 보도되면서 여경은 불필요하다는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점화되었고, 맹목적인 여성 혐오로 번졌다. 조롱과 인신공격, 듣기에 불편한 혐오의 말들이 여경을 향해 쏟아졌다. 범죄자를 다루는 데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은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주 논리였다. 언뜻 타당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성별 나누기’와 ‘성차별’이 깊게 깔려 있다. 1947년 미 군정기 때 최초로 여경이 채용된 이후 경찰조직 내 여경 비율은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2022년 현재 13%를 조금 웃도는 정도이다. 뿌리 깊은 남녀차별 구조가 허물어지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경찰조직은 아직 요원함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 책은 여성 경찰 23인, 31편의 글을 모았다. 남성 경찰의 수가 압도적인 조직에서 여경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찰=남성’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그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을 알면서도 그녀들은 왜 굳이 힘들고 위험한 경찰 세계에 뛰어들었는지, 무엇이 그녀들의 가슴을 정의와 사명감으로 타오르게 했으며, 어떻게 조직 안팎의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버텨왔는지를 기록한 ‘여경 분투기’이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남다른 정의감을 외면하지 못하는 뜨거운 마음 때문에 경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고뇌와 활약상은 여경, 남경 논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찰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나아가 진짜 경찰을 만드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는 게 더 시급하다는 본질적 진단을 이끌어낸다.

‘우리 사회에 여경이 꼭 필요할까?’ 여경 혐오가 만든 가짜 뉴스와 왜곡된 비난에 한 번이라도 이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 답을 말해 줄 것이다.
1부 여경하는 슬픔 : 차별과 차이 사이 그 어디쯤

1장 여자랑은 말이 안 통해, 남자 경찰로 바꿔요
들어오지 말라니 더 들어가겠습니다
나를 만나려면 경제팀 쌈닭을 찾으세요
내장탕이요? 좋죠. 갑시다!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경찰한다는 그 말
‘왕초보’ 딱지를 떼던 날
나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여경은 반드시 열정을 증명해야 하지
연대 그리고 제복의 힘 덕분에, 다시!

2장 내가 먼저 정의가 되어야 했다
고맙다, 스물둘의 이지은!
면접장에서 선보인 뒤돌려차기
장쾌한 활극 ‘경찰청 사람들’을 꿈꾸다
출산휴가 들어가던 날
차별은 폴리스 라인 밖으로
왜 지금 고백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20대 여경의 쇼트커트 잔혹사
홍등가에 첫 둥지를 튼 김 순경

2부 경찰하는 기쁨 : 모두의 아픔과 고통이 지워지는 그 어디쯤

3장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정인이의 스웨터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싶다
여자 형사라서 여자 편에 서는 겁니까
은혜도 모르는 못된 딸이 경찰이 되었습니다
여기 여자가 어딨습니까, 경찰이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지구대!
아이야, 경찰서에 온 사실조차 잊으렴

4장 마음이 뜨거워서 경찰이 된 여자들
맨날 시체 보고 피 보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아프리카 유엔경찰이다
권력, 제가 탐해도 되겠습니까?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제압하라
꿀벌의 실종과 여경
함께하면 오래 멀리 갈 수 있다
나의 타임리프 이야기
지구대, 명품 드라마는 있다

조현병이 있는 아들이 칼을 들고 아버지가 몸으로 막고 있다는 신고에 순찰차 3대가 출동했는데, GPS가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던 중 내가 먼저 방향을 제대로 잡아 “이쪽입니다!”하고 알려주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솔직히 겁나지 않았다. 다른 경찰들이 오기 전까지 대치 중인 아들을 설득하여 아버지와 조심스레 분리시킬 때는 내가 여경인지, 남경인지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강승연)

나의 문제 제기는 수개월 간 가려져 있었다. 윗선에서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자 지쳐버린 나는 ‘나만 조용히 있으면 모든 게 잘 끝날 텐데…’, 나아가 ‘진짜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계속 나를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내가 경찰이 되어 성폭력 피해자를 만난다면, 그런데 그가 피해 진술을 꺼린다면, 나는 그에게 계속 용기를 낼 것을 바라지 않을까? 당신이 용기를 내어야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지금 좀 힘들더라도 용기를 내주시기 바란다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정의로운 경찰이 되려면 내가 먼저, 스스로 정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용기 내지 않는다면 누군가 또 피해를 볼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나쁜 사람 혼내주려고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이지은)
어둑한 저녁 순찰을 하다 보면 퇴근길, 공원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여성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녀는 직장에서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곧 들어가는 집에서도 피우지 못할 테고. 하루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만 불안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경찰복을 입은 나를 보고 잠깐 놀라고, 여성 경찰임에 안도했다. 나는 그녀 옆에서 조용히 담배를 꺼내 피웠다. 우리는 말 없이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안전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은애)

작은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다가오면 사람들은 병아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구나’ 하고 지나친다. 그런데 쌈닭 하나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쪼아대면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쌈닭이 노리는 것이 뭔지 쳐다본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과 남성 경찰관보다 여성 경찰관의 수사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 앞에서 나는 삐약거리며 발에 채는 병아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나는 경제팀에서 소문난 쌈닭이 되었다. (이비현)

경찰서를 옮겨서도 나는 경비과를 지원했다. 또다시 “여자가 왜 경비를 하려고 해?”라는 같은 질문을 받았다. (와, 또 시작이다)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금녀의 공간인 것이다. 어느 날 관내 한 대학교에서 화학테러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았다. 현장에 폴리스 라인을 치고 화학테러담당 부대를 기다려야 했다. 다급했던 나는 냄새가 나는 구역을 찾아 킁킁거리며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유해물질이었다면 사망인데…. 빨리 원인을 찾아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냄새의 원인을 좇았다. 원인은 희석하지 않은 청소 세제였다. 헛소동으로 끝나 다행이었지만,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었다. (이수진)

“딱 보니 미혼이신 것 같은데요, 이 사건은 남성 피의자 여럿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니 담당을 남자 경찰관으로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혼인 여부와 수사 능력은 별개라고 대답했지만, 고소인은 미혼 여성 경찰관은 사건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며 떼를 썼다. 어떤 민원인은 내게는 온갖 쌍욕을 해가며 소리를 지르더니, 나보다 고작 네 살이 많은 남자 수사관에게 수화기를 넘기자 고분고분 대화를 이어나갔다. (잠만보)

영상은 SNS와 각종 사이트, 유튜브에 도배 되다시피 했다. 댓글은 나를 포함해 여성 경찰, 나아가 여성 혐오로 번지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뒷걸음치는 모습을 들먹이며 ‘도망가는 여경’이라고 하더니, 나중에 목소리가 나오는 전체 영상이 공개되면서 ‘수갑을 시민에게 채우도록 시키는 정신 나간 여경’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고, 수갑을 시민에게 채우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체포를 돕던 교통경찰과 나, 여주인의 목소리가 뒤엉킨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한 것이다. 사건 장소는 ‘구로동’이었지만, 위험한 동네라는 인식이 강한 ‘대림동’으로, 40~50대의 두 남자는 술 취한 ‘노인’이라고 한 것도, 여경의 무능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작이었다. (이선영)

미숙하던 나도 많은 피해자를 만나 해결 방안을 찾으면서 더 단단해졌다. 과거의 내 상처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며, 때로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수사에서 피해자 진술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가끔 여경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에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빵과 편지를 주고 간 그녀를 비롯한 나의 ‘억울하고 힘없는 피해자’들을 떠올린다. (김영은)

생각해보면, 마음속 어딘가에 여성 경찰관에 대한 열등감이 숨어 있는지도 몰랐다. 여성 경찰이기에 불이익을 받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방어적으로 늘 동료들을 의식하고 잘 보이려 애썼을 것이다. 그 사이 권위적인 경찰의 모습을 닮아 갔을 것이다. 나 스스로 ‘경찰관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나는 비로소 마음 한구석 불편한 마음을 떨쳐낼 수 있었다. 여성 경찰관이라는 피해 의식은 ‘경찰’로서의 ‘나’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줄 때 사라질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김세령)

“너 만날 시체 보고 피 보고 할 수 있겠어?” 형사로서 업무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충고였다. 참혹한 변사현장을 접하면서 감정이 동요될 때가 많지만, 이성적인 판단이 사건 해결과 고인과 유족에게 더 필요함을 매번 느낀다. 생활고에 못 이겨 고시원에서 고독사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지병을 비관하며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가장, 아파트 화재로 현관 앞에서 죽어간 모녀 등, 여러 변사 사건에 출동하여 담담하게 사건을 마무리하지만, 훗날 사건 현장을 우연히 지나칠 때면 그날의 감정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마다 내가 할 일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수사관K)

“여기 여자가 어딨습니까, 경찰이지!”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담대한 목소리

추석날이었다. 명절이니 경찰관도 쉬라고 하는 건지 날씨도 좋고 신고도 없고 모든 게 평온하기만 했다. 그즈음 ‘00음식점에서 남성 두 명이 주인을 괴롭힌다’는 내용의 112신고가 떨어졌다. 현장에 도착하니 남성 두 명이 인도 경계석에 걸터앉아 있었다. 경찰관을 발견한 가해자 중 한 명이 나를 보고 “여자다!”라고 큰소리쳤다. 나는 더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여자가 어딨습니까! 경찰이지!” (-본문 중에서)

이 책의 필자로 참여한 김소영 경찰관의 이야기이다. ‘경찰은 곧 남성’이며, 여성 경찰은 경찰이기 전에 여성으로 보인다는 것, 여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딱 이만큼인지도 모른다. 김소영 경찰관은 이렇게 대응한다. “여기 여자가 어딨습니까! 경찰이지!” 그녀의 외침에 어떤 숙연함마저 느껴지는 건, 차별에 대한 저항과 경찰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이 우리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버드대 최초 여성학 교수를 지낸 저명한 심리학자 캐롤 길리건은 《담대한 목소리》(생각정원 펴냄)에서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나뉘면서 남녀 모두 ‘자기 목소리’를 잃고 상처 입고 불행해졌다는 것. 그리하여 차별을 반대하는 여성의 몸짓과 저항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인류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길리건 박사의 주장이다.

이 책은 70여 년 대한민국 경찰 역사 처음으로 여경들의 한목소리를 담았다. 경찰조직 안팎에서 일어나는 여경에 대한 편견과 차별, 혐오의 모습들, 남성의 수가 압도적인 조직에서 여경들 대부분은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경찰에 걸맞지 않은 사람, 남자 경찰과 다른 ‘그 밖의’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이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경찰이란 특수성으로, 차별에 대한 여경들의 항의마저 ‘관습에 어긋난다’하여 무시되어온 현실에서 이 책은 그간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았던 여경의 존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음이 뜨거워서 경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
진정한 페미니즘의 길을 보여주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시무시한 페미니스트 여경들의 투쟁기는 아니다. 지구대 순경부터 형사, 기동대, 무술교관, 서장까지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 경찰의 하루하루 일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한밤중 난동을 부리는 피의자를 제압하고, 폭력 남편에게서 피해자 아내를 보호하고, 폭발물 제거에 앞장서고, 마약사범을 새벽까지 추격하고, 학대받는 아동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등. 여느 경찰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 속에서 여경들은 조직 내에서 스스로 성추행의 피해자였음을 아프게 드러내고, 부당한 차별에 목소리를 크게 내고, 불의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도 여성이면서 여성을 혐오했던 과오를 고백하고, 민원인을 무시한 것에 반성하는 등 경찰의 권위마저 경계한다. 경찰이 먼저 정의로워야만 “서민, 피해자, 아동, 핍박받는 여성들에게 자신들이 진심 어린 동반자, 연대자가 될 수 있다.”라는 믿음 때문이다.

캐럴 길리건 박사는 말했다.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것,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무리에서 자기 자신을 빼놓지 않을 것. 즉 자기다움과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잘못된 권위에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다.” 23인 여경들이 풀어내는 담담하고 솔직한 이야기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여경은 없다
여경, 경찰과 세상을 바꿔놓을 신선한 힘!

“이딴 걸 여경이랍시고 뽑아가지고, 세금 아깝게!”
“이건 여경이 해결 못 해. 남자 경찰관으로 바꿔요.”
“여경이 과연 그 자리에 갈 수 있겠어?”
“여긴 남자들만 근무해요. 왜 오려고 하죠?”
“여경은 일 편한 부서에서 내근하며 승진이나 하려고 하지.”

여경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남녀차별 이슈 한가운데 있다. ‘정의구현=힘=남성’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은 애초부터 여경을 무용한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지난 2019년에 일어난 ‘대림동 경찰폭행 사건’이 대표적 예이다. 사건 영상은 ‘술 취한 피의자도 제압하지 못하는 여경’이란 제목으로 SNS와 각종 사이트, 유튜브, 공중파 방송까지 도배되었고, 여경 무용론으로 번졌다. 영상 내용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졌지만, 진실은 가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결국 이 사건은 ‘여경’이란 말에 덧씌워진 차별과 혐오로 인해, ‘대림동 여경 사건’으로 굳어져 버렸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경찰조직 내 여경들의 공부 모임인 ‘젠더연구회’에서 여경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는 성명을 발표, 여경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구회는 2017년 “여성이라서 차별과 불평등을 겪을 때 함께 이야기할 경찰 선배가 왜 없을까?”라는 물음을 던진 여경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이후 조직 안에 ‘성 평등한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독서와 세미나 활동을 이어오는 한편, 현장에서 만나는 여성 피의자, 여성 피해자 등 다양한 층위의 여성에 대해 경찰조직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연구회에서 이 책을 기획한 것은 조직 안팎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고심할 때 더 나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여경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 중심적인 조직과 우리 사회에 균열을 내고, 나아가 동시대 여성과 경찰 동료, 국민에게 용기와 지지, 연대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젠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또는 남성에게서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함께 돌아보자는 데 진정한 의의가 있다.

“여경이 여럿 모이면 자연스레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얼마나 부당한 차별을 받았고, 성희롱을 많이 당했는지 이야기하며 분노한다. 그런 차별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조직에 남아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비슷하게 답한다. 우리 사회에 여경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 지구대에서 여경은 기본적인 치안 수요를 감당하는 것 외에 여성 피해자와 가해자 관리, 아동청소년 보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업무, 행정절차 상에 공정성을 높인다. 경찰조직 내 공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의 의견이 없다는 것은 시민 절반의 의견이 무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경이 ‘여성을 대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엄마, 여자친구, 딸과 같은 다양한 역할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과 같다. 나 또한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또는 각 지방청에서, 사건처리 과정 중 여성에게 꼭 필요한 부분들이 배제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내가 이 조직에서 나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다.” (-본문 중에서)

작가정보

이수진, 이비현, 전지혜, 김세령, 이혜수, 잠만보, 강승연, 이선영, 이지은, 민새롬, 은봄, 김영인, O2, 김소영, 이은애, 김영은, 수사관K, 정수온, 주명희, 우아진, 정선영, 엄마는외계인, 황아이 (글 게재 순)

작가의 말

‘여기자’, ‘여교사’, ‘여류작가’와 같이 모든 직업에 ‘여성’을 의미하는 접두사가 붙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 차별적 의미를 알기에 쓰임이 줄고 있지만, 유독 ‘여경’이라는 단어도 사라지지 않고, 혐오는 넓게 퍼져간다. 이 책에서 ‘여경’을 대체하는 말을 찾고 싶었으나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또 한편으로는 여성 경찰관의 현실을 보여주기에 ‘여경’이라는 단어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여경들이 쓴 이야기이지만, 모든 경찰관의 이야기이고, 민원인의 이야기이고, 동시대를 사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경찰 그리고 여성 경찰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여경’이라는 단어가 혐오의 의미로 쓰이지 못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 인종, 경제력, 나이, 외모, 장애, 소수자 등 수많은 차별에 대해, 혹 우리 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차별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 전체가 평등을 지향할 때,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엮은이 주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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