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밤
2022년 11월 04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09월 0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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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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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세 개의 밤》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국가 권력이 자본의 권력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자본이 광고하는 유토피아란 얼마나 연약하고 기만적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본이 제공하는 화려한 눈속임과 헛된 말장난에 속지 않고 다른 존재를 짓밟거나 죽이지 않고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
- 정보라, 소설가
“판타지로 한 겹 감싼 감상적인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프도록 현실적이다.”
- 황모과, 소설가
1부_셋, 둘, 하나_11
2부_하나, 둘, 셋_137
에필로그_325
작품해설_329
작가의 말_339
21세기 판 ‘멋진 신세계’,
그 벽 너머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가상의 미래 영국은 계급 차별과 장애 차별 및 외모 차별을 사회구조 안에 체계화하여 차별과 착취를 기반으로 번영하는 곳이다. 여기에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야만인’ 존이 등장하여 이 ‘멋진 신세계’의 화려한 가면을 하나씩 벗겨낸다.
그런데 헉슬리가 묘사하는 ‘야만인’ 존의 장점과 미덕은 근본적으로 헉슬리가 작품 속에서 비판하는 장애 차별과 외모 차별에 기반해 있다. 존은 신체적으로 매력적이며(그래서 ‘멋진 신세계’의 시민 레니나가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 지적으로도 우월하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적재적소에서 자연스럽게 읊을 수 있는 높은 문화적 소양을 갖춘 ‘고귀한 야만인’이다.
‘야만인’ 존의 자살이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이렇게 신체적, 지적, 정서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에게 독자가 공감하고 그런 우월한 인물이 차별과 착취에 바탕을 둔 천박한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 존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고귀한 문화적, 정신적 소양을 갖추지 않았다면?
신체장애와 삶의 트라우마만을 짊어진 채 “멋진 신세계”에 도착했다면?
박문영 작가의 《세 개의 밤》은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세 개의 밤》은 2015년 제2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았던 〈사마귀의 나라〉에 작가가 뒷이야기를 이어서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소설에서 앞의 절반은 유해 폐기물 처리장이 되어버린 섬에서 태어나 자라난 아이들과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어지는 절반에서는 주인공인 세 아이가 거대기업의 비윤리적 결정으로 인해 학살의 땅이 되어버린 섬에서 탈출하여 ‘멋진 신세계’인 본토에 도착한 뒤에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꼬리가 달린 아이 사마귀는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얼굴이 물집으로 뒤덮인 반점은 공동체의 삶에 투신한다. 그리고 눈이 여덟 개인 팔룬은 자신을 돌봐주는 한 사람만을 믿으며 은거하는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사마귀에게도, 팔룬에게도, 반점에게도 유토피아는 없다. 섬에서는 섬 나름의 차별과 폭력이 존재했고 본토 ‘고르다’에는 고르다 방식의 차별이 존재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존에게 고향인 보호구역은 말 그대로 모든 인간성과 문화가 남아 있는 ‘보호’ 구역이었다. 반면 《세 개의 밤》의 섬은 질병과 재해와 굶주림의 공간일 뿐이다.
그리고 질병과 재해와 굶주림에 시달리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차별할 이유를 열심히 찾는다. 신체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빨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모아 꼬리가 달린 사마귀를 괴롭히며 우월감을 느끼고 자존감과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 섬사람들은 외지인인 궁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적대시하고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겪는 모든 불행의 책임을 덮어씌운다.
비윤리와 퇴폐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던 한 남자는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아 주먹만을 불끈 쥐었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사마귀와 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그들 모자는, 낯선 사람에서 나쁜 사람이 되어갔다. (p. 101)
섬의 차별과 폭력은 결핍과 두려움과 해결책 없는 고통에서 비롯되어 노골적이고 알아보기 쉬웠다. 하지만 본토인 ‘고르다’에서 세 사람이 겪는 차별은 은혜를 베푸는 듯한 내려다보는 시선, 동정과 감상이 뒤범벅된 매우 곤란한 종류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마귀의 예술작품을 본 관객들은 현실에서 벌어진 차별과 착취와 환경오염과 죽음의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구름 잡는 소리만 지껄여댄다.
“비참한 만큼 아름다워요. 화폭에 담긴 산호, 공룡, 고래를 좀 보세요. 이 아이는 인류의 죄를 일깨우고 있어요.”
“모르겠어요. 성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보는 순간 이렇게 울음이 나오네요.”
인파 뒤편에 있던 팔룬은 인상을 찌푸렸다. 상자 속 썩은 양파 하나가 다른 양파들을 썩게 하듯, 한 사람의 감상이 다른 이들의 감상도 오염시키고 있었다. (p. 253)
결국 사마귀와 반점, 팔룬이 각자 추구하려 했던 조그만 유토피아는 철저하게 배신당한다. 기업은 이익만을 추구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인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마치 기업 자체가 생명체인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는 인간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뉴스거리, 구경거리로서 사마귀의 신선함이 다하자 대기업은 사마귀의 ‘정상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반점의 공동체는 또 다른 억압의 공간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이 모든 악의 배후에는 대기업이 손을 뻗치고 있다. 세 사람은 다시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망칠 곳이 과연 남아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뜻밖에도 《세 개의 밤》은 추리 스릴러의 특징을 나타낸다. 스릴러의 본질은 음모다. 세상에 거대한 해를 끼치려는 음모를 꾸미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있는 것이다. 추리물의 본질은 수수께끼다. 범죄가 있고 피해자가 있고 그러므로 범인을 밝혀야 한다. 《세 개의 밤》에서 작가는 이 두 가지 장르 특징을 이용하여 소설 속 세상이 본토의 폐쇄적 유토피아와 섬이라는 지옥으로 나누어지게 된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제당하고 소외당하고 밀려나서 마침내 세상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냉정하게, 전략적으로 한 조각씩 보여줄 뿐 구구절절이 설명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 《세 개의 밤》의 흡인력이 있다.
앞서 언급한 《멋진 신세계》를 비롯한 고전적인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소설에는 ‘안내자’가 등장하여 유토피아가 성립된 과정과 역사를 강의한다. 그러니까 진짜로 역사 수업 장면들이 나오고 선생님이 강의를 한다. 유토피아 소설들은 대체로 절망적으로 재미가 없는데 대체로 이렇게 독자한테 강의하고 줄줄이 설명하려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세 개의 밤》에서 작가는 독자들이 읽으면서 질문을 쌓아가도록 기다린다.
이 섬은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지인이 흘러들어왔다니 그건 또 무슨 일인가?
섬사람들은 어째서 탈출하지 않는가?
탈출을 시도해본 사람은 없나?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이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런 질문은 모두 작품 안에서 대기업이 이윤을 위해 세상을 망치면서 꾸미는 음모, 생명의 터전과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 현장을 덮고 감추려는 범죄의 본질과 관련된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계속 궁금해하도록 이끌다가 생각도 못 했던 시점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덤덤한 문체로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의 압축적이고 충격적인 한 조각을 갑자기 내보인다. 그런 뒤에 작가는 또 덤덤하게 자기가 할 얘기를 계속한다. 그러니까 독자는 계속 읽게 된다.
《세 개의 밤》은 이렇듯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자본주의가 독식하는 세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미래 예측 보고서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 투쟁기이다. 또한 잔혹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 세 청소년의 성장기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의 대답을 찾기 위해 독자가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추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세 개의 밤》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국가 권력이 자본의 권력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자본이 광고하는 유토피아란 얼마나 연약하고 기만적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본이 제공하는 화려한 눈속임과 헛된 말장난에 속지 않고 다른 존재를 짓밟거나 죽이지 않고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
《세 개의 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질문한다. 물론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다시 말하지만 박문영 작가가 《세 개의 밤》을 통해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국가라는 행정적, 정치적 체제도 막지 못하는 거대 기업의 파괴적인 이윤추구 행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현실의 예시를 덧붙일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회사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만들어 팔았고 처벌을 받게 되자 회사가 어려워졌다며 2016년에 당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나 판매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책임도 없는 직원들을 집단 해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평생 남는 장애와 질병을 떠안고 살고 있지만 장애와 질병 때문에 자유롭게 외부활동을 하거나 일반시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어렵고 잊히기는 쉽다.
2017년에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지진 피해배상은 2020년까지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진의 원인은 지열발전소에서 땅을 뚫고 물을 주입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니까 자연지진이 아니고 사람이 일으킨 예측 가능한 지진이었지만, 서울 한복판이 아니고 경상북도 포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갑자기 집이 무너져서 3년간 체육관에서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흐지부지 조용히 사라졌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처음 일어났을 때 전 국민이 마치 대구 시민은 모두 코로나19 감염원이고 사이비종교 신자인 듯 몰아붙였지만, 지금은 코로나19 확진자 70퍼센트 이상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아무도 서울이 코로나19 확산의 근원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중심과 변방, 지배와 피지배의 영역을 나누고 그 이유를 갖다 붙이는 권력의 형태가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가였지만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은 기업으로 변했을 뿐 그 구분과 차별과 폭력의 구조는 완전히 똑같다. 나는 ‘그런 곳’에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차별과 착취의 구조에 동조하는 행위이다. 물론 권력을 갖지 못한 개인은 자기한테 편한 쪽으로 회피한다.
“그러니까 절망에 대한 우화가 아니었을까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니까요.”
“그 수식까지 연출인 거죠.”
“믿기 어렵나 보네요. 실제라면 너무 끔찍해서 그래요?”
사마귀가 남자들 뒤에서 말했다.
“뭐가요? 뭐가 그렇게 끔찍해?” (p. 305)
우화나 비유나 연출이 아니라, 차별과 착취와 환경오염과 재해와 질병과 폭력은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단지 불운하다는 이유로, 권력이 없고 돈이 없는 그냥 한 개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일들을 실제로 겪었고 지금 겪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첫 단계이다. 《세 개의 밤》이 그런 첫 단계로 독자를 이끌어주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그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비양심적인 기업들이 지금은 뭘 하고 그 피해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찾아보고 악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한 번이라도 동참한다면 세상은 그 한 걸음만큼 더 변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한 걸음만큼이라도 행동한다면 나는 최소한 타인의 고통을 ‘우화, 비유, 연출’이라 비웃고 합리화하는 비겁한 껍데기 안의 추한 소시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소비자로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복잡하고도 진실한 이야기 속에 함께한 독자로서, 다른 모든 생명체와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나 자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 정보라, 소설가
작가정보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자리를 못 잡고 겉도는 것, 기괴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대상에 관심이 있다. 제1회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면서 놀자》,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3n의 세계》, 《주마등 임종 연구소》 등의 책을 냈고 공저로 《봄꽃도 한때》, 《천년만년 살 것 같지?》,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등이 있다.
《사마귀의 나라》로 제2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지상의 여자들》로 제6회 한국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SF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그룹 ‘sf×f’에서 활동 중이다.
작가의 말
끝난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여는 일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전부 새로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 편이 나았겠지. 겁을 잘 먹으면서도 왜 이따금 덮어놓고 대담해지는지 모르겠다. 머뭇거리다 내리는 나쁜 결정 하나 더. 중편을 장편으로 이어갔으니, 초판본에 남은 작가의 말도 이어가보기로 한다. 0에서 3까지가 8년 전 글이다.
0.
날씨는 맑고 죄는 쌓인다.
1.
나이가 한 자리였을 때는 달리기에서 자주 1등을 했다. 먼지와 꽃가루로 뿌연 봄의 운동장, 출발선에서 주먹을 야무지게 쥐고 눈을 빛내던 아이를 떠올린다. 하얀 깃대가 내려가면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의지에 대해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티브이에서 다리를 펴지 못하는 사람을 봤을 때는 발을 마구 구르며 물었다. 이걸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면 되는데 저 사람은 왜 못 해? 나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혈색이 좋고 낙천적인 어린이였다. 그림책 바깥에 대한 상상력이 없었다.
2.
이 소설은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봄까지 성실히 쌓은 실패의 기록이다. 유독 깜깜한 심정으로 시작했던 글이다. 18대 대통령 선거일에 개표 결과를 보면서 만든 초고가 이 중편으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악습이 그대로 묻은 원고다. 쓰고 싶던 소설과 쓴 소설의 얼굴이 못 알아볼 정도로 다르다. 프랑켄슈타인이 꿰맨 괴물의 이마처럼 심란한 글 뭉치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형상이 지금의 나라면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지금의 나를 내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3.
작업을 못 하는 이유는 하나다. 어제 하지 않아서. 요새는 무슨 작업해? 라고 묻는 곁의 동행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만화와 소설을 만드는 인간에게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로 행운이다.
4.
책의 전신인 1부는 2013년에 쓰고 <사마귀의 나라>라는 중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2부는 2021년에 썼다. 헤어진 지 오래된 소설이란, 헤어진 지 오래된 사람 같아서 다시 마주했을 때 여러 번 멈칫했다. 치기로 똘똘 뭉쳐 심각한 얼굴. 하지만 그에게서 치기와 비약을 빼면 같은 사람일까. 입을 다문 내게 그가 말한다. 뭐해? 지금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5.
나침반을 열면 바늘이 영원히 돌 것 같은 나날. 많은 게 달라졌다고 믿었지만, 초고를 만든 그 날과 오늘 표정은 비슷하다. 방향 없던 아이들에게 방향이 생기는 이야기. 소설을 고쳐 쓰며 되새겼던 이 메모가 한 권을 줄인 한 문장이 될 수 있길.
2022년 여름
박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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