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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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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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우리는 성별과 젠더, 인종, 사회적 계급을 넘어 보편적 인권을 외쳤던 수많은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의 사유와 투쟁을 만난다. 저자는 독자들을 그 논쟁 한가운데로 이끌어, 우리가 미약한 성공과 처절한 실패 끝에 천천히 전진해왔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전진은 억압의 대상인 나약한 몸들이 이루어낸 것이라는 사실도. 평범한 인간의 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세계를 재형성해왔는지 보여주는 연대기인 동시에, 다시금 그 저항에 참여하길 촉구하는 선언문과 같은 책이다.
2. 아픈 몸-몸과 정신의 경계
3. 성적 행위-베를린이라는 거대한 실험실
4. 위험으로부터-우리가 벗어나고자 했던 것
5. 찬란한 그물-몸이라는 제약, 제약을 넘는 몸
6. 감방-갇혀야 했던 존재들
7. 블록/스웜-‘다른 몸’이라는 수사학
8. 22세기-실패로 쌓아 올린 미래
몸의 차이에 관련된 케케묵은 나쁜 뉴스가 온 사방에서 다시 들려왔다. 자유민주주의의 보루처럼 보이던 여러 나라에서 신문들과 정치가들이 10년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을 말과 문장을 입 밖에 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도 확보된 권리인 낙태의 자유가 미국의 여러 주에서 철회되거나 취소되었다. 체첸공화국에서는 완곡하게 “예방적 청소”라 묘사된 조치에 따라 게이 남자들이 수용소에 갇혔다. 사랑하고 이주하고 저항을 위해 모이고, 자녀를 낳거나 낳기를 거부할 권리가 라이히 본인이 살던 시절과 거의 비슷하게 지독한 시련에 처했다. -1장 ‘해방의 기계’ 중에서
몸의 경험 가운데 프로이트가 알아본 것들은 제자리를 잃은 감정적 고통이 암호화된 상징적이고 히스테리적인 증상들이었다. (…) 그러나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환자가 자기 불행의 원인을 의식하도록 돕는 것이 프로이트가 기대했던 것처럼 자동적으로 증상을 개선시키지는 않았다. 환자가 힘을 들여 증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 묻혀 있던 트라우마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증상들이 반드시 회복되지는 않았다. 분석가와 환자는 모두 해석과 치유 사이의 아직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영역에 묶이곤 했다. 꿈을 영원히 해석하고 있을 것인가? -2장 ‘아픈 몸’ 중에서
“실제적이고 상상 가능한 성적 다양성의 숫자는 거의 무한하다.” 히르슈펠트는 그해에, 성별을 넘나들며 시간 여행을 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걸작 《올랜도》에 담긴 말과 매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구성요소가 각기 다르게 섞여 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똑같은 잎사귀 두 개를 찾을 수 없듯,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특질이 종류와 숫자 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인간 두 명을 찾아낼 확률은 매우 낮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이셔우드가 왜 그처럼 히르슈펠트에게 현혹되었는지 이해했다. 나도 그를 사랑했다. -3장 ‘성적 행위’ 중에서
1970년대에 여성해방은 폭력과 강간과 구조적 성차별과 배제와 가정폭력과 학대와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이 모든 것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신체 내에 살고 있음에 따르는 비참한 처우였다. 물론 살인도 같았다. 옷이 벗겨지고 몸이 훼손되고 낯선 사람에게 발견된다. 그 공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실제 사람들에게 발생한 사건들에서 기인했다. 당신이 알거나 들은 적이 있는 여성들이, 신문에서 읽은 사건들이 세계를 살아가는 스스로의 신체적 경험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무엇을 입을지, 어떤 길로 다닐지, 어떤 말을 어떤 목소리로 하는지에까지. -4장 ‘위험으로부터’ 중에서
우리는 모두 몸속에 갇혀 있는데, 이는 그 몸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허용되며 금지되는지에 대해 상충하는 생각들의 그리드 안에 붙들려 있다는 뜻이다. 자유란 우리가 갖게 된 몸이라는 범주에 의해 파괴되는 일 없이, 혹은 방해받거나, 발이 묶이는 일 없이 살아갈 방식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5장 ‘찬란한 그물’ 중에서
파시스트가 권력을 장악한 경로 가운데 일부는 대중을 두 유형으로 쪼개는 것이었다. 규율 바르고 질서 있고 국가에 복종하는 대중과 혼란스럽고 관습을 거스르는 감화가 필요한 대중. 이러한 수사학은 나치가 권좌로 가는 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그 수사학은 또다시 주류 정치에 스며들었다. -7장 ‘블록/스웜’ 중에서
더 좋은 세상을 원했다고 말하라. 그것을 위해 싸웠다고 말하라. 자유가 꿈이었다고 말하라.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몸의 종류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증오받지 않고 살해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말하라.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라. 그 미래를 실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라. -‘22세기’ 중에서
《외로운 도시》에서 시작해 《이상한 날씨》를 지나 《에브리바디》까지,
‘자유와 연대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치열한 이야기
“위기의 시대에는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가만히 인도해주는 작가들이 필요하다. 올리비아 랭처럼 말이다.”_〈업저버〉
영국 대표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은 회고록과 비평을 유연하게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특히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 《이상한 날씨》에서 펼친 대담한 논의들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기본권조차 위태로워진 시대를 읽는다. 인간이 누려 마땅한 것들을 환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연대할 것을 촉구해온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치열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다.
“20세기의 해방운동이 21세기에 실패하고 있다”
비운의 사상가 빌헬름 라이히에서 시작한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라이히는 20세기의 가장 괴상하고 또 가장 예지적인 사상가로서, 논란이 분분한 몸과 자유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었다. 나는 여전히 신체적 자유를 제약하는 힘을 이해하기 위해 그를 안내자로 삼아 20세기를 관통하는 여정을 짰다. 그 여정에서 수많은 다른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를 만났는데, 그중 몇몇은 그의 연구를 그대로 이용했으며 또 몇몇은 지나온 경로는 아주 달랐으나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1장 ‘해방의 기계’ 중에서
“20세기의 위대한 해방운동이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임신 중지의 불법화, 시위와 파업의 폭력 진압, 골 깊은 양극화를 먹이 삼는 정치까지, 역행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저자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책은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되짚으며, 그 투쟁의 산물이 이토록 급속히 뒤집히고 있음을 환기하고, 나아가 또다시 쟁취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 중심에 빌헬름 라이히가 있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긴장의 형태로 몸에 남아 성격을 경직시킨다는 ‘성격 무장’ 이론으로 잘 알려진 사상가로, 자유로운 성이 그 무장을 해제하고 나아가 왜곡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애제자,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융합한 ‘성 혁명’과 ‘성 정치학’의 아버지라 불린 그가 어째서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20세기 해방운동을 관통하는 이 여정에서 그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로 이끄는 안내자인 동시에 비운의 주인공이다.
LGBT 운동의 선구자 히르슈펠트부터 감옥에서 탄생한 맬컴 엑스까지,
지나온 미래에서 찾은 더 나은 세계라는 가능성
드워킨 역시 그를 열심히 읽었다. 1987년에 그녀는 권력의 관점에서 성적 행위를 고통스럽게 심문하는 《성교Intercourse》를 출간했다. 그녀가 라이히를 성 해방론자 가운데 가장 낙관적인 인물, “강간을 진심으로 혐오하는 유일한 남성”이라고 설명한 것은 이 책에서다. 두 사람 모두 포르노그래피와 성적 폭력을 부자연스러운 문화적 징후, 가부장제의 산물이자 집행자라고 본다. 둘 다 가족이 그 이데올로기가 주입된 장소, 아기 때부터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장소라고 믿는다. -3장 ‘위험으로부터’ 중에서
그 속에서 우리는 성별과 젠더, 인종, 사회적 계급을 넘어 보편적 인권을 외쳤던 수많은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를 만난다. LGBT 운동의 선구자 히르슈펠트, 최악의 방종으로도 그 방종에 대한 경고로도 읽히는 사드 후작, 감옥에서 탄생한 흑인 해방운동가 맬컴 엑스,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그 자신이 여성 혐오의 피해자였던 앤드리아 드워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논의는 완전무결하지 않고, 서로 첨예하게 부딪치기도 한다. 히르슈펠트는 피임을 합법화하기 위해 우생학에 동조한 성 해방론자들과 뜻을 같이했다. 워싱턴 행진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낸 인권운동가 베이어드 러스틴은 성추문으로 끝내 이름이 잊히고 만다. 라이히에게는 정신분석학이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프로이트가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았고, 프로이트에게 라이히의 이론은 “취밋거리”에 불과했다.
랭은 이들의 사유와 투쟁, 실패를 균형감 있게 펼쳐 보임으로써, 그 논쟁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결정적인 한 순간의 산물이 아님을, 미혹한 인간의 처절한 실패와 미약한 성공을 통해 점진적으로 획득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몸은 힘이 있다, 현저히 약하기 때문에 힘이 있다”
억압의 대상을 넘어 세계를 재형성하는 몸이라는 깨달음
이 모든 사람들처럼 라이히는 더 나은 세상을 원했고, 나아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는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실제 인간의 몸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으며, 두 가지 모두 재편성되고 개선될 수 있다고도 믿었다. 에덴은 이 뒤늦은 시점에도 복원될 수 있다고 말이다. 자유로운 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인가. 그에게 닥친 상황에도 불구하고, 또 그가 참여했던 운동에 벌어진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낙관주의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진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1장 ‘해방의 기계’ 중에서
저자는 책 곳곳에서 기시감을 토로한다.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유혈 충돌한 ‘샬러츠빌 사태’를 바라보며 KKK단의 만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 아나 멘디에타가 온몸으로 고발한 아이오와대학 기숙사 여대생 살인사건은 여전히 같은 형태로, 더 잔혹한 형태로 반복된다. 나치가 선동을 위해 사용한 미개한 대중과 그렇지 않은 대중으로 나누는 레토릭은 오늘날 어디에서나 울려 퍼진다.
그러나 저자는 역행하는 세계를 개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여정의 끝에 “모든 것은 취소될 수 있으나, 모든 승리는 다시 싸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란의 히잡 시위 등 자유를 향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긴 여운을 남기는 메시지다. 평범한 인간의 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세계를 재형성해왔는지 보여주는 연대기인 동시에, 다시금 그 저항에 참여하길 촉구하는 선언문과 같은 책이다.
작가정보
Olivia Laing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드는 특유의 유려한 글로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라고 평가받는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제임스 설터, 리베카 솔닛 등 걸출한 작가들의 저술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영국왕립문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와 차별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The Lonely City》(2016)가 전 세계 12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영국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혼란한 시대를 제대로 목격하고 치유할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주목한 《이상한 날씨Funny Weather》(2020), 역행하는 세계 속에서 모든 몸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논쟁적 인물들을 재조명한 《에브리바디Everybody》(2021)까지 사유의 폭을 넓혀왔다. 또한 첫 소설 《크루도Crudo》(2018)로 제임스테이트블랙 기념상을 수상하는 등 소설가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 쓴 책으로 《강으로To the River》(2011)와 《작가와 술The Trip to Echo Spring》(2013)이 있으며,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유수 매체에 기고하며 왕성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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