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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2

이행기 지음
메이킹북스

2022년 09월 24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09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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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791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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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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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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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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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1850년-1885년)에 이어 2권은 1886년-1905년의 20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한반도 주변은 매우 복잡해지는데, 조선의 유생과 지배층은 유교 외 다른 모든 학문의 유입을 막을 뿐만 아니라, 각종 개혁 정책에도 반대하는데, 지석영은 상소로 인해 4년간 유배를 가고, 갑오개혁을 추진하던 총리대신 김홍집은 아관파천 당일에 고종의 명령으로 종로 거리에서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고, 탁지부대신 어윤중,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등도 잔인하게 살해되고, 유길준 등은 일본으로 망명한다.

호조판서는 돈이 없어 아무 것도 못하고 있음을 상소를 올려 하소연하고, 병조판서도 돈이 없어 군사들에게 식량도 제대로 못 주는 현실을 하소연하고, 외교를 담당하던 외부의 경우도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선 왕조는 왕실의 각종 행사나 왕릉 이장, 장례식 등에는 예산의 10% 이상을 집행한다. 곡창지대인 전라도에서조차 “밥 짓는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데, 신하는 신라 왕릉의 개보수를 상소하고, 이토가 을사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도착하기 8일 전에도 조선의 신하들은 450년 전에 죽은 신하들에게 벼슬을 내려주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주장할 정도로 조선의 지배층은 옛날에 살고 있었다. 전라도 백성들조차 “사람마다 열 손가락은 피가 흐르고 입은 푸성귀 색깔”일 정도로 수탈을 당할 정도였으니,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등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 전체에서 성한 곳이 없었고, 어느 한구석도 나라로서 작동되는 곳이 없었다.

한편, 영국, 러시아, 프랑스, 미국, 청, 독일 등은 조선을 분할, 공동점령, 중립화, 일본에의 양도 등을 주장하며, 조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협상을 진행한다. 그러나 조선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외부대신은 1903년에 최소한 열두 번이나 사직상소를 올렸고, 그해 말 고종은 러시아 땅으로 피난하는 것을 러시아 공사관에 문의한다. 이런 조선이 결국 1905년에 을사조약을 체결하는데, 이는 1904년 의정부 참정 신기선의 상소에서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신기선은 9월 상소에서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망하게 한 다음에야 남이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國必自伐, 而後人伐之”라 했고, 12월 상소에서는 “이 변고는 곧 백여 년 동안 차근차근 쌓여서 이루어진 것(是變也, 乃百年積漸而成者)”이라 했다. 즉, 조선은 그 무엇도 아닌 조선 내부의 문제로 인해 망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2권을 시작하며

1886년 조선
군사 1명 양성에 연간 최소 200냥과 쌀 10석이 필요 | 제2차 조러밀약과 고종 폐위주장 | “권력자들의 명령을 장님처럼” 따르는 조선 백성 | ‘조선대국론’, ‘유언사조’ ‘시사지무십관’ | 고종이 본 위태로운 조선 | 고종의 용기와 과단성 부족을 지적한 좌의정| 월급을 못 받는 관리들 | “어찌 뼈에 사무치도록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 러시아 상인이 본 금광 노동자들의 삶 | 김규식, 배재학당, 육영공원, 콜레라

1886년 일본
콜레라 사망자 11만여 명 | 건축학회, 학교령, 교과서 검정제도, 관료임용제도 | 불공정조약 개정 회의 | 김옥균의 상소문 | 이홍장의 거문도 철수 협상 | 화물선 침몰 사고와 영사재판권 문제 | 헌법 초안 기초 작업

1887년 조선
“오늘날의 도적은 오히려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합니다” |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지석영의 유배 | 조선의 독립에 비관적인 러시아·미국공사 |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부족하여 무덤까지 파고 있다” | 외교고문 데니의 활약 | 해외 공사 파견에 간섭하는 청 | 주미공사 파견과 청국에 항의한 미국 | 박정양의 신임장 단독 제정과 러시아 외무상의 보고 | 박정양의 귀국과 황현의 기록 | 외국 공사들의 반응 | 연무공원

1887년 일본
건전지, 수력발전소 | 일본적십자사 | ‘방어선’ 확장 | 조약 개정 반대 여론 | 시베리아 철도 건설 논의 | 헌법 교육을 받은 천황 | 보안조례 | 호예원 | 전자기파

1888년 조선
박영효의 ‘건백서’ | 궁전 공사비 50만 냥 |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오른손으로 네모를 그리는” 병조판서 | 러시아와 프랑스 정부의 대(對)조선 지침 | 외국인에 대한 소문 | 대궐 내에서 노름하는 군사 | “벙어리에 귀머거리, 소경까지 겸했으니” | “모리배들”에게 놀아난 화폐주조 | 조선이 청에 흡수될 것을 우려한 러시아공사 | “마른 수레바퀴 자국 안에서 헐떡거리는 붕어보다” 심각한 백성 | 관직매매와 ‘벼락감투’ | “상인들은 낮으로 울부짖고 행인들은 밤으로 통곡하는데” | 무정부 상태 | 데니의 외로운 투쟁

1888년 일본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 ‘제국헌법’안 심의와 추밀원 | 전국이 초토가 되더라도 저항할 것 | 불공정 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영국 | 물리학 용어의 번역 통일 | 롤 필름과 코닥 카메라 | 서태후, 해군 예산을 황실 별장 공사에 전용 | 데니, 《청한론》 발간

1889년 조선
제대로 안 되는 현지 보고 | 진주의 환곡, 징세 문제와 광양의 “반란” | 행동을 하지 않는 고종 | 신하들에게 탓을 돌리는 고종 | 출근을 거부하는 영의정 | “당장 부끄러움으로 죽고만” 싶은 호조판서 | 토목공사, 기도비용, 사치를 억제하라는 상소 | 평안감사의 사직상소 | 아직까지 세계 지도도 안 본 고종과 신하들 | “지옥으로부터 한 걸음 앞에” 놓인 조선 | 러시아 장교와 영국총영사가 본 조선 | 방곡령

1889년 일본
메이지헌법 발포와 선거법 | 오스트리아 교수가 강조한 조선의 중요성 | 서구의 메이지 헌법 평가 | 폭탄에 한쪽 다리를 잃은 외무대신 | 징병제 개정, 육군사관학교 1기생, 히비야 공원 | 에펠탑과 엘리베이터

1890년 조선
“모두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만 있습니다” | 조선의 차관 도입을 막은 청 | 대왕대비 장례비 122만 냥 | “털끝까지도 모두 병이 든 것과 같다” | “학정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백성들 | 속방의식을 본 외교사절 | 프랑스공사와 영국총영사의 보고 | 미국공사의 보고 | 러시아공사의 보고 | 원세개의 《사한기략》 | 끝없는 수탈에 시달리는 백성들 | “거북의 등에서 털을 깎아내야 할 정도”의 재정 상태

1890년 일본
민법, 민사소송법, 상법 공포 | 조약 개정 방침 | 첫 중의원 선거, ‘교육칙어’, ‘불경사건’ | 주권선과 이익선 | 비스마르크의 퇴진

1891년 조선
돈이 없는 군부 |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지 마시고” | “과연 제대로 다스려졌다고 보십니까” | “과거를 설행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 73년 전과 다름없는 과거의 문제점 | 천둥의 마지막 기록 | 조선의 관리를 “강도들”이라 부른 영국 인류학자 | 전 영국군 장교와 미국공사가 본 조선

1891년 일본
오쓰 사건 | 죄형법정주의와 사법부 독립 문제 | 시베리아 철도 착공 | 북양해군의 일본 방문 | 행정부와 의회의 충돌 | 삼국동맹, 독러 재보장조약, 러불동맹, 삼국협상

1892년 조선
“나라의 군대 위용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 “조정 백관들은 고식적인 의논을 능사로 삼고 지방관들은 탐학만을 일삼고” |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니” | “조석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몹시도 두렵습니다” | 좌의정이 지적한 당시 조선의 문제점들 | 11년 후의 러시아 민속학자 | 미국공사의 정확한 예측 | 청으로부터 20만 냥 차관 도입 | 함경북도와 평안도의 민란 | 동학교도의 삼례역 집결

1892년 일본
의회 해산과 총선거 |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 | 제국대학 교수 해임 사건 | GE, 디젤 엔진

1893년 조선
광화문 앞 ‘봉장규혼’ | ‘봉장규혼’ 비판 상소와 체포 명령 | 외국 군함들의 인천 입항 | ‘척왜양창의’ | 청국군 파견 요청을 제기한 고종 | 탐관오리와 조선왕조 | 동학교도들의 귀향 |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보아도 결국은 전혀 대책이 없고” | 무당과 점쟁이에 심취한 왕과 왕비 | 만석보 수세와 전봉준, 함경도 | 평안도와 황해도 민란

1893년 일본
정부와 의회의 타협 | 조선에 대한 주청 러시아 무관의 보고 | 육군참모차장의 조선과 청국 시찰 | ‘전시대본영’ 조례 | 군비의견서 | 조약 개정 반대 운동과 의회 해산 | 메이지 천황의 후회 | 기타무라 도코쿠 | 시베리아 철도 위원회

1894년 조선
고부군아 습격과 해산 | 고부민란에 관한 기록 | 주청 러시아공사의 보고 | “그의 사지를 찢고 그의 살점을 씹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 “이놈의 세상은 얼른 망해야 한다” | 러시아공사가 본 동학난의 원인 | 파병 준비를 건의한 일본 임시대리공사 | 청국군과 일본군의 상륙 | 전봉준의 원정서 내용과 고종의 책임 | 전주성 탈환 및 동학도들의 귀향 | 미국공사의 보고 내용 | 조선의 마지막 사신, 걸어서 북경까지 | 일본의 개혁 항목 제시와 조선의 거부 | 일본군의 경복궁 난입 | 청일전쟁 개전과 고승호 사건 | 190년 만에 폐지된 명나라 황제 제사 | 군국기무처, 갑오개혁, 그리고 방해 세력 | “청나라를 두려워하는 마음… 일본을 의심하는 마음” | 도량형과 〈신식화폐장정〉 | ‘교환의 매개’ 기능을 상실한 엽전 | 경장을 알리는 고종의 교서 | 〈조일 잠정합동조관〉, 〈조일동맹조약〉 | 박영효의 사죄의 글 | 평양전투와 황해해전 | 발각된 대원군의 밀서 | 동학도의 2차 봉기 | 옛 부하의 밀고로 체포된 전봉준 | 갑오개혁 비판 상소 | 일본의 개혁안 20개조 | 강원도와 황해도에서의 전투 | 김개남의 체포 | 홍범 14조 | 두 명의 탐관오리가 120만 냥 횡령

1894년 일본
중의원 선거와 야당의 승리 | 조약 개정 반대 운동과 의회 해산 | 대본영 설치 | 청과 일본의 파병 통지 | 내정 개혁 추진 방침을 청에 통보 | 청, 영국과 러시아에 공동철병 중재를 요청 | 조선 내정 개혁을 거부한 이홍장 | 조선 내정 개혁안 확정 | 미국·영국·일본공사들의 움직임 | 일본에 유감을 표명한 미국 | 공동철병에 대한 러시아와 영국의 조치 | 제2차 절교서 | 베베르와 이홍장의 회담 | 청 해군의 실상 |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청 | 조선의 운명을 예측한 주청 러시아 무관 | 청, 조선에 군대 증파 | 영일통상항해조약 | 외국의 자국 침략에 대한 일본의 의지 | 청국 내의 주전론과 일본의 출전 명령 | 청과 일본이 조선을 공동 점령할 것을 재촉하는 영국 | 청일전쟁 | 고승호 사건과 영국 여론 | 대조선 정책 결정 | 일본 의회의 방향 전환 | 주청 러시아 무관의 보고 | 확전론과 야마가타의 소환 | 독일, 러시아, 미국에 중재를 요청한 청 | 전쟁에 동원된 일본군 | 니콜라이 2세 즉위 | ‘사한기략’과 ‘속국’

1895년 조선
재산을 뺏기는 동학도 | 청나라 연호 사용 폐지 | 지방관의 저항으로 좌절된 징세 제도 개혁 | 회계법 | 이준용 모반 사건 | 독립경축 행사에 불참한 미국공사 | 베베르에 대한 고종의 신임 | 갑오개혁의 파탄 | 갑오개혁에 대한 고종의 불만 | 갑오개혁과 왕의 권력 | 갑오개혁의 반대 세력 | 죽음을 예감한 총리대신 | 콜레라 발생과 인구 변동 | 을미사변 | 민영준에 대한 프랑스공사의 보고 | 스기무라 서기관의 기록 | 러시아 황제에게 보호를 요청한 고종 | 양력, 소학교, 단발령, 연호, 의복제도 | 춘생문 사건 | 미국무장관의 훈령 | 영국 여행가의 눈에 비친 조선

1895년 일본
전염병으로 5만 3천여 명 사망 | 센카쿠제도 편입 | 일본은행, 조선에 300만 원 차관 제공 | 정여창 제독의 자결 | 러시아 무관의 일본군에 대한 평가 | 미국이 파악한 러시아의 만주에서의 움직임 | 러시아의 삼국간섭 방침 확정 | 시모노세키조약 체결과 청국 내 반대 세력 | 양계초, 엄복, 담사동의 비판 | 일본의 환호와 삼국간섭 | 러시아 함대의 중국 집결 | 일본, 요동반도 포기 결정 | 군사 1백여 명의 자결 | 1만 4천 명을 희생한 대만의 저항 | 일본, 조선에 대한 간섭 배제 결정 | “빗물로 머리를 감고 불어오는 바람으로 목욕을 하면서” | 향후 10년간 전함 건조 계획 | 미우라 고로 임명 | 청의 차관 도입과 러시아 | 요동반도 반환 각서 교환 | 미우라의 을미사변 보고서 | 시모노세키조약 체결에 감사를 표시한 조선 | 대조선 불간섭 정책 | 요동반도 반환조약 | 대폭 증가한 다음 해 예산안 | 러시아의 마산포 관심 | 과학사

1896년 조선
단발령 반대상소 | “머리카락과 구습을 한꺼번에 끊으며” | 단발령으로 인한 사회 혼란상 |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사회 혼란상 | “차라리 머리털을 보존하다가 (조선이) 망하는 편이 낫다” | 아관파천과 대신들의 처참한 말로 | 고무라 공사의 보고 | 단발령 철회 | 경인철도 부설권과 독립신문 창간 | 고무라-베베르 협정 | 경의철도 부설권 | “초조함과 근심은 갈수록 더욱더 심해집니다” | 관찰사들의 사직상소 | “백성들의 산업이 날로 쓸쓸해지고” | 압록강과 울릉도 삼림벌목권 양도 | 내각 폐지와 의정부 부활 | 외국인과 외국정부가 본 조선 |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조선 | 당시 조선 주변의 상황 | 조선군의 실상 | 예산의 98%가 관리의 월급과 비용 | 고종과 신하들에 대한 러시아 측의 보고

1896년 일본
일본과 러시아의 대화 채널 | 조선과 관련한 조약 체결을 건의한 주일 러시아공사 | 한반도 중립화를 제의한 영국 |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와 39도선 | 민영환의 러시아 방문 | 민영환 일행의 방문 기록 | ‘동청철도’와 남만주지선 | 러-청 비밀동맹 조약과 동청철도 협정 | 일본의 해군 확장 계획

1897년 대한제국
김홍집 등을 “역적”, “흉적”으로 본 고종 | 관찰사들의 사직상소 |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도리어 전보다 심하니” | 독립신문의 ‘조선병’ 치료 방법 | 고종의 환궁 | 미국무장관의 훈령 | 백성의 원망을 듣는 암행어사 | 외부대신은 56일, 군부대신은 64일 | 고종의 결의와 단발령 취소, ‘광무’ | 러시아 외무상의 훈령 | 황제로 칭할 것을 아뢰는 상소들 | 고종, 황제에 오르다 | ‘황제’에 반대한 서로 다른 이유 | 여전한 왕실 행사비 지출 | “상호 시기하고 의심하는” 군부 | 4만 호의 인구에게 1년에 5만 원도 큰돈 | 백성을 수탈한 지방군

1897년 일본
5연발식 무라타 총, 교토제국대학, 영화 | 야하타 제철소 | 러시아의 대일 정책 | 러시아의 현상 유지책 | 경봉철도 | 독일의 교주만 점령 | 러시아의 대련, 여순 점령 | 일본 외무성의 반응 | 독일의 해군증강책

1898년 대한제국
“조선 백성들은 몇백 년을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압제를 받아” | “나라의 재정은 꾸릴 방도가 없고” | 러시아의 철수 | 러시아와 프랑스공사의 본국 보고 내용 | ‘주막의 나그네’ | 장례비와 기민의 구휼비 비교 | 황국협회 | 최시형의 사형 집행 | 배신자는 가까운 사람이었다 | 유럽전권공사의 사직의 변 | “필요한 때에는 … 잡세”를 신설 또는 증설할 수 있다 | 조약 이행을 강조하는 외부대신 | “글이 매우 외람”된 상소 | 경부철도 부설권 | “협회라는 것”의 활동 금지 명령에 “분통이 치밀어” 오른 윤치호 | 헌의 6조 | 독립협회 “혁파”와 박정양 등 파면 | ‘익명서 조작 사건’과 독립협회 간부 체포 | 만민공동회의 철야 시위, 독립협회 간부 석방 | 보부상의 습격과 독립협회 복설 | 외국 공사들의 회의 | 고종의 약속 미준수 | 독립신문의 사설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해산과 집회 금지 |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다급한 탁지부 | 러시아·일본·미국공사의 보고

1898년 일본
일본의 우월한 이익을 인정한 러시아 | 양자강 연안 불할양 협정 | 독일 및 러시아의 조차 조약과 남만주지선 철도 부설권 | 일본과의 연합을 주장한 미국 해군 전략가 | 영국 식민상의 일본과의 동맹의사 | 니시-로젠 협정 | 미국 언론의 선동과 미국-스페인 전쟁 | 러시아와 영국의 철도 건설 상호 인정 | ‘무술변법’ | ‘무술정변’과 ‘백일유신’, 광서제 유폐 그리고 조선 | 담사동 | 강유위, ‘동아동문회’ | 영국과 일본 | 경봉철도 건설 차관계약 | 한반도 점령을 건의한 러시아 해군 제독 |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 | 세균학자 시가 기요시

1899년 대한제국
학부 예산은 세출 예산의 2.2% | 독립협회 지회 활동도 금지 | “구보나 하는 능력”의 군사들 | 주미공사 부임 거부의 변 | 프랑스공사가 보고한 관직매매 | 빈번한 법령 공포 | 무덤가 돌 장식 비용의 반도 안 되는 교육비 | 러시아 해군의 마산포 측량과 토지 매입 시도 | 대포 소리, 폭발 사고가 일어나는 경성 | 원수부 설치 | 대한철도회사 | 이승만의 탈옥과 체포 | 대한국국제와 홍범 14조 | 세금 체납을 “탄식”하는 고종 | “백성들이 …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합니다” | 매일신문, 독립신문 폐간

1899년 일본
소학교 학생 346만 명, 수족관 | 의화단의 등장 | 루즈벨트 주지사의 연설 | 이토의 부국강병론 | 영국과 러시아의 철도협정 |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 마산포를 원한 러시아 해군 | 남만주철도 건설 시작 | 제2차 보어전쟁 | ‘대한정책의견서’와 마산포 | 프랑스의 광주만 조차

1900년 대한제국
세출 예산 616만 원 | 각종 비용 항목과 금액 | 예산의 10%가 넘는 왕실 비용 지출 내역 | 땅에 떨어진 대신의 권위 | 내장원에 진 빚을 갚으라고 탁지부를 독촉하는 고종 | 고종 폐위 쿠데타 주모자 처형 | 마산포 조차 조약 |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해나가는” 군부 | “협잡꾼들”을 보내 세금을 걷는 황실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절박”한 경기도 | “위란이 곧 닥칠 형세입니다” |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신하들 | 귀임한 주일공사 | 족보 위조 | 가로등 3개 점등과 파리의 지하철

1900년 일본
세계의 주요 지표 | 선거권자 자격, 공중전화, 아드레날린, ‘무사도’ | 러시아 해군대학의 전쟁 도상 훈련 | 의화단의 난, 8개국 연합군, 러시아의 만주 점령 | 제2차 문호개방 선언 | 러시아의 한반도 분할론 | ‘북청사변선후책’과 일본의 만한 교환 제의 | 일본과의 비밀조약 체결을 제의 | 대한제국의 중립국안 제의 |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를 희망한 루즈벨트 | ‘국민동맹회’의 정부 압박 | 러-청 비밀협정 가조인 | 대한제국 중립화를 제의한 러시아 | 영국, 일본, 미국의 공동의 적이 된 러시아 | 독일, 함대건설법 통과

1901년 대한제국
세출 예산 907만 원 | 세출 예산의 약 20%가 황실 비용 |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일공사 | 이재수의 난 | 세금의 몇 배를 거두어들이는 봉세관 | 50일 묵는 데 2만 3천여 원 지출 | ‘저주받은 인민들’ | 200년 전에 살고 있는 신하들 | 경부철도 기공식 | 법집행이 안 된다 | “세금을 받아 낼 길이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다 | 고종의 세금 독촉 | “집들은 텅 비고 누더기를 걸친 굶주린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 “가죽을 벗겨 내고 뼈를 긁어내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습니다” | 신하들의 경고 | 순빈 엄씨를 순비로 책봉 | 백성은 쉽게 사형 당했다 | 유길준의 고종 폐위 쿠데타 실패

1901년 일본
야하타 제철소 완공 | 람스도르프-양유 협의 | 가쓰라 다로와 고무라 | 영국과 일본의 교섭 시작 | 베이징 의정서 | 배상금 포기 | 외무대신의 적극적 정책 | 영국의 동맹조약 초안 | 러시아와의 협상 우선을 주장한 이토 | 초조한 영국 외무상 | 외부대신의 일본 방문 | 이토의 러시아 방문 | 일본의 수정안 제시 | 서태후의 ‘변법상유’ | 유에스스틸, 노벨상, 로이터와 특약

1902년 대한제국
“곳곳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 “오막살이를 다 뒤져내어” 가져가는 세금 | “말류의 폐단”을 걱정하는 내장원 경 | 즉위 40주년 행사 | 제2의 수도 건설 결정 | “통탄”하는 탁지부대신 | “사람마다 열 손가락은 피가 흐르고 입은 푸성귀 색깔이니” | “별다른 대책”이 없고 “나라 창고는 비어” | 행사비와 건축비에 148만 원 | 왕실 경비와 서경 공사비가 예산의 최소 25% | 제2수도 공사비에는 은화 55만 원, 수만 명 죽은 전염병 퇴치에는 “특별히 은화 3,000원” | 관우 외에 유비와 장비에게도 제사지냈다 | 지방 유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 여전히 중화사상에 잠겨 있는 1902년 10월의 대한제국 | 1년은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본 미국공사 |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본 러시아공사들 | 굶어 죽은 백성들에 관한 기록 | 유길준과 이승만 | 군부의 실상 | 두어 달 근무한 유럽공사와 황족의 해외 유람 보고 | 권력 투쟁 | 하와이 이민

1902년 일본
무선 기술 연구, 해외 유학생 수 1만 1천여 명 | 나쓰메 소세키가 본 일본 | 청의 대규모 일본 유학생 파견 | 동사 사고 | 영일동맹 | 동맹 조약 제1조에 관한 주영 일본공사의 설명 | 일본의 지위 향상 | 프랑스, 독일, 미국의 입장 | 만주 철군 협약 | 드러난 영국의 문제점들 |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도할 것을 권유한 프랑스 대통령 | 대한제국의 양도를 주장한 주한 러시아공사 | 동청철도 파괴를 주장한 참모들

1903년 대한제국
“빼돌리는 것이 열에 여덟아홉입니다” | “정승의 직책은 한갓 이름만 있고” | “결국은 나라가 망하는 화를 만들어 내니” | 최소 열두 번 사직을 청한 외부대신 | 황성신문의 우려가 현실로 | 주일공사는 공석 중 | “귀머거리에게 듣는 일을 시키고 벙어리에게 말하는 일을 시키는” | “피골이 상접하여 다 죽어” 가는 경상도 백성들 | “밥 짓는 연기도 거의 나지” 않는 전라도 | “떠돌다가 점점 죽고 말” 경기도 백성들 | “백성의 근심은 죽음보다 심한” 충청도 | 제2수도 건설 공사비에 짓눌리는 평안남도 | “흩어져 떠돌고 있는 무리가 줄을 잇고” 있는 함경도 | 제2수도 건설 공사에 추가 지출 | 청과 러시아로 “흘러 들어가는” 백성들 | 대신들의 출근 불량 | 신라왕릉 보수 요청 상소 | 백동화의 폐단 | “100리도 안 되는데 세금을 거두는 곳은 열여덟 곳” | 순비 엄씨를 황귀비로 책봉 | 이태리 총영사의 기록 | 미국 기자의 기록 | 전 러시아공사의 기록 | 러시아 민속학자의 기록 | 러시아의 경의철도 부설권 요구 | 러시아의 용암포 땅 매입과 영국, 일본 | 조차 조약 체결을 부인하는 대한제국 | 신뢰를 잃어가는 대한제국 | 경성-개성 철도공사 계약 | 일본의 개전을 바라는 황성신문 |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 | 러시아 영토로의 피신을 문의한 고종

1903년 일본
제2차 만주 철군 취소와 동청철도 완공 | 러시아 해군의 전쟁 예측 | 러시아 내 강경파의 등장 | 만주 철군을 위한 7개 항 요구 조건 | 전쟁 불사 결정과 영국공사의 보고 | 주청 러시아 무관의 강경론 | 러시아 황제의 강경책으로의 전환 | 청국 내 반청 세력 | 러시아 육군상의 일본 방문 | 개전론과 어전회의 | 대한제국을 넘겨줄 것을 건의한 주일 러시아공사 | ‘7박사 건의서’ | 알렌과 록힐의 설전 | 총리의 사직서와 원로들의 퇴장 | 주일·주청 러시아 무관들의 보고 | 일본, 러시아에 6개 조 협약안 제시 | 러시아, 만주에 극동총독부 설치 | 일본과 러시아가 거부한 대한제국의 국외 중립 제의 | 러시아의 3차 철군 거부 | 일본의 제안과 크게 다른 러시아의 1차 회답 | 일본 내 반러시아 여론 | 고다마 겐타로와 도고 헤이하치로 | 러시아의 봉천 재점령과 일본의 2차 서한 | 더욱 커지는 반러 여론 | 러시아의 2차 회답 | 환영받지 못한 고종의 특사 | 개전을 결심한 일본 총리 | 주일 러시아 무관들의 보고 | 일본의 3차 서한 | 대한제국과 ‘보호 조약’ 체결 방침 확정 | 영국의 엄정중립 |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 포드자동차, 퀴리, 라이트 형제, 등대, 회전목마

1904년 대한제국
불안한 서울 민심 | 파천에 실패한 고종 | “어찌 야만인이라 하지 않겠는가” | 중립 선언 | 러일전쟁 발발과 황성신문 | 한일의정서 | 이때 일본의 피보호국이 되었다 | 한일협정서 | 백성들이 “구렁과 골짜기에 나뒹굴 상황”의 함경도 | “민력이 이미 고갈”된 평안도 | “도탄에 빠진” 황해도와 “이산하는 실상”이 심각한 강원도 | “소요”와 “유랑”이 계속되는 경상도 | “약탈”과 “민란”의 충청남도와 “탄식”과 “기근”의 전라도 | 신하들에게 탓을 돌리는 고종 | “조석도 보전할 수 없을 만큼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 | “나라의 비용을 소모하여 해악을 끼치는 자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 외교를 담당할 인재가 없다 | 파산 상태임을 알리는 탁지부대신들 | 부정부패와 “착취”가 일상임을 알리는 내부대신들 | 인재 육성이 없었다는 학부대신 | 1904년의 대한제국 | “오늘날 폐하의 백성들이 불쌍하고 가엽지 않습니까?” | 권한이 없는 의정부 | “폐하의 것”, “폐하만이 부유해질 리가 있겠습니까?” | “신의 허리가 작두에 잘려도 … 신의 목이 도끼에 찍혀도” | “장기짝”처럼 교체되는 대신들 | 내시, 점쟁이, 무당을 가까이 한 고종 | 직급이 낮다고 면박당한 상소 |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망하게 한 다음에야 남이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 “폐하가 과연 무엇을 믿고서 두려워하지 않는가를 모르겠습니다” | 손병희 | “자신만이 현명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 “성인군자의 학문에만 갇혀” 산 중국 사대부 | 두 명의 장례 비용이 예산의 최소 10% | “항상 그랬듯이 이 사람들은 주인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 실패한 의정부 중심의 국정 운영 시도 | 경운궁 화재 | 근무 기강을 질책한 고종 | “비옥한 땅을 그대로 버려두고 있습니다” | 해외 공관원들 철수 | 《독립정신》 서문 | 일진회에 대한 《매천야록》의 기록 | 민란 | 동학도 소탕을 명하는 고종 | 고위관리들의 도박 | “이 변고는 1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형성된 것”

1904년 일본
미국과 독일의 중립 선언 | 주일 러시아공사의 본국 건의 | 주일 미국공사와 러시아무관의 보고 | 러시아와 일본의 마지막 교신 | 러시아, 영국과 프랑스에 중재 요청 | 일본, 개전 결정 | 여순 공격과 선전포고 | 외채 발행에 실패하면 일본은 붕괴된다 | 에드워드 7세와 시프 | 목표의 8배의 외채 발행에 성공 | 루즈벨트와 미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 | 영불협정 | 일본의 승전을 바라는 중국 신문들 | 대한제국을 ‘피보호국’으로 삼는다 | 루즈벨트의 강화조건과 독일 황제 | 고무라의 12개 조 강화 조건 | 요양전투 | 미국의 ‘한일협정서’ 인정 | 영국의 러시아 함대 견제 | 도거 뱅크 사건 | 러시아 민심과 레닌의 러일전쟁 비판 | 여순전투 | 물리학자 나가오카 한타로 | 미쓰코시 백화점

1905년 대한제국
1월, “썩은 밧줄에 매달린 것 같고” | 2월, “언제 망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3월, “팔짱을 끼고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 4월, “강제로 빼앗고 토색질을 감행하여” | 5월, “나라의 운명이 안착할 곳이 어디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8월, “이는 바로 외국에서 말하는 무정부라는 것입니다” | 외국 공사들이 본 대한제국의 무정부 상태 | 한날에 올라온 4부 대신들과 협판들의 사직상소 | 경무사의 사직상소 | “집들은 모두 텅” 빈 함경도 | “물 없는 연못에서 몸부림치는 물고기” 같은 평안남도 백성들 | “구렁텅이에서 죽어” 나뒹구는 황해도와 다스리기 번거로운 강원도 | 도둑이 극성인 충청남도와 “이미 구제할 수도” 없는 경상남도 | 경부선 개통 | 일본군을 위문하고 온 위문사와 특파대사 |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를 보낸 고종 | 신하를 비난하는 고종 | 신하들의 고언 | 루즈벨트 딸의 방문 | 영일동맹 조약 내용에 항의한 외부대신 | 의병 소탕 명령 | 450년 전에 사는 신하들 | 이토 도착 5일 전 대한제국 궁궐 내부의 실상 | ‘한일협상조약’ 초안 | ‘한일협상조약’ 체결 | 을사조약 비판 상소 | 외국공사관의 철수 | 민영환과 조병세의 자결 | 해외 공사관 폐쇄 | 1906년 세출 예산 796만 원 | “신들이 실제로 범한 것이 없음을 밝혀”주기를 상소한 다섯 대신 | 고종이 신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사례들 |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충청남도 관찰사의 사직상소 | 알렌, “너무도 오랫동안 무사안일의 세월을 보냈다” |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이다

1905년 일본
대학의 독립과 학문의 자유 | 여순 전투 | 프랑스 무관의 러시아 해군 평가 | 피의 일요일 사건 | 대한제국 병합 의사 표명 | 독도 편입 | 봉천전투 | 비테, 대한제국 양여 등 종전 조건 제시 | ‘한국보호권확립’ 통과 | 중국신문, 일본의 승전을 기원 | 강화 조건과 제2차 일영동맹안 | 일본의 쓰시마해전 승전과 강화 협정 중재 요청 | 러시아 내 시위와 유혈 사태 | ‘중국혁명동맹회’, 일본과의 연대를 중요시 | 이승만의 석방과 미국 파견 | 주한 영국총영사,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를 건의 | 미육군장관의 일본 방문 | 강화 협상 시작 | 제2차 영일동맹 | 전쟁의 인적·물적 손실 |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고종의 밀서 | 포츠머스 조약의 내용 | 분노에 찬 일본 여론 | 루즈벨트와 고무라의 회담 | ‘만한시설강령’ | 영국,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에 지지 표명 | ‘10월 선언’ | 로마노프왕조의 최후와 조선왕조 | 기아선상에 놓인 주미공사관원들 | 보호 조약 체결에 관한 고무라의 구상 | 만주 철병과 철도 인도 | 을사조약 체결 사실을 해외에 통보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 이론 발표

책을 마치며
주석
2권 참고 자료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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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당시의 사관(史官)이나 당사자들이 남긴 기록이 매우 중요한데, 조선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이 그것이다. 이들 사료를 영어로 primary source라 하는데, “primary”의 단어 뜻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편찬한 영영사전에서는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즉,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이들 자료를 기본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조선사를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강준만 교수가 ‘한국근대사산책(인물과 사상사)’ 1권 서문에서 아주 솔직하게 1차 사료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1차 자료가 아니라 2, 3차 자료에 의존해 쓰였다는 것이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서 1차 자료까지 챙겨 읽는다는 것은 적어도 내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방법론상으론 비판을 받을망정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할 사람이 많으리라’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강준만 교수 외에 김학준 교수(서양인들이 관찰한 후기 조선,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0, p.6-23), 신복룡 교수(한국사 새로 보기, 풀빛, 2001, p.215)도 책에서 1차 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부분의 2차, 3차 자료, 즉 책이나 논문은 대부분 primary source, 즉, 1차 사료를 거의 언급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주 단편적이고 극히 일부분만 인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자료인 조선왕조실록 등에 바탕을 두지 않고 과연 조선사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요 문화유산이 아닌가.

이 책은 기존의 책이나 논문과 달리, 조선사의 경우 1차 사료를 기본으로 하고, 2차, 3차 자료는 선택적으로 참고했다. 많은 책과 논문에 1차 사료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성된 내용이 많았는데, 그런 것은 모두 이 책 내용에서 배제했다. 이처럼 이 책은 1850년부터 (어떤 내용은 1800년부터) 1905년까지 철저히 primary source에 바탕을 두고 서술되었는데, 이것이 기존의 조선사 책과 다른 점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행기

- 1962년 부산 수정동 출생
- 부산금성고등학교 졸업
-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 및 동대학원 중남미지역연구학과 졸업(석사)
- (주)대우 무역부문 근무
- 페더럴-모굴 코리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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