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가정 사정

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2년 10월 24일 출간

종이책 : 2022년 07월 14일 출간

(개의 리뷰)
( 0% 의 구매자)
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7.29MB)
ISBN 9788954635394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전자책 화면에 표기된 주석 등을 모두 읽어 줍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 '교보 ebook' 앱을 최신 버전으로 설치해야 이용 가능합니다. (Android v3. 0.26, iOS v3.0.09,PC v1.2 버전 이상)

소득공제
소장
정가 : 10,500원

쿠폰적용가 9,450

10% 할인 | 5%P 적립

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3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고독한 삶의 세목을 특유의 정교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기록해온 소설가 조경란이 4년간의 창작과 반추 끝에 선보이는 연작소설집『가정 사정』. 치유되지 못한 오래된 상처를 지닌 가족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생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마치 상처를 잊은 듯 살아가지만 그 사이로 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아픔을 자각하곤 한다. 조경란은 자주 어긋나고 맥연히 교차하는 가족의 대화를 세심하게 포착해내면서, 그저 희미해질 뿐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온 가족 구성원들이 마침내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감각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에 더하여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통의 면면을 신중하고 웅숭깊은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일면을 담아내려는 소설적 시도를 이어나간다.

표제작 「가정 사정」은 2020년 김유정문학상 후보작으로, 아내와 아들을 불시에 잃고 남겨진 부녀가 처음으로 둘만의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다. 고층빌딩에서 떨어진 종잇조각을 치우며 자신이 과연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는지 돌아보는 노년의 아버지와, 나이들어가는 아버지를 돌보며 그마저 떠나고 홀로 남겨질 자신을 막연히 그려보는 중년의 딸은 서로를 더욱 배려하고 생각해주려 하지만 그 방식 때문에 조금씩 어긋나곤 한다. 실제로 2018년 한 대기업의 새해맞이 불꽃놀이 행사로 빚어진 꽃가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잘 녹지 않는 종이 꽃가루와 같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들의 생활이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다정한 위트와 함께 남겨놓는다.
가정 사정 _007
내부 수리중 _043
양파 던지기 _079
분명한 한 사람 _117
이만큼의 거리 _157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_191
한방향 걷기 _223
개인 사정 _257

해설 리무버블 스티커의 마음_ 김미정(문학평론가) _293
작가의 말 _309

정미는 자신의 가족을 누가 먼 데서 본다면 한 차양 밑에 모여 서로 무심히 다른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같아 보일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도 때때로 어떤 일 앞에서는 그 차양 아래로 모여들 수밖에 없는 날들이 생겼다. _「가정 사정」, 17쪽

일찍 집을 나온 후로 몇 번인가 동거를 했고 엄마는 그 점을 내내 문제삼았다. 식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는 걸 두고 마치 사랑에 눈이 멀어 도덕마저 잊어버린 여자인 듯 몰아세웠으니까. 그러나 누군가와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나은지도 몰랐다. 가족과는 그럴 수 없으니까. _「가정 사정」, 18쪽

엄마 말대로라면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그럴 자신도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느끼던 때 생긴 애가 정욱이었다. 그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도 좋았을 것이다. 정미에게 그 말은 꼭 아무것도 모르던 스물에 자신을 출산한 일을 포함한 이전의 인생은 다 지워버리고 싶다는 의미로 다가왔고, 어쩌면 그 불가능함이 자신과 엄마 사이에 늘 끼어들었던 문제라고 느껴졌다. _「가정 사정」, 19쪽

글쎄, 생활이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느냐고, 아파트 애들이 와서 그런 걸 묻더라고. 학교 숙제라나 뭐라나. 그래서 박씨가 인터뷰를 했나, 애들하고? 그랬지. 뭐가 떠오른다고 했는데? 쪼들리다. 뭐, 그 말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고 했지. 에이, 그래도 초등학교 애들한테. 그러는 양씬 무슨 말이 떠오르는데? 거 뭐냐, 어려워지다? 꾸리다? 허, 그거 보라고, 거기서 거기라니까. 윤씨는? 얼른 생각이 안 나는데. 그게 뭐 어렵나. 책임지다, 라고 말할까 망설이다가 윤씨는 피다, 라고 대꾸했다. 어, 그거 듣던 중 제일 힘이 나는 말일세. 동료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말이야, 나 같으면 빨랫감 같은 거라고 대답했을 거 같네. 오십 중반부터 줄곧 홀아비로 지낸다는 앞 동 방씨가 운을 뗐다. 빨랫감이라니? 그 집은 매일매일 빨랫감이 나오지 않나? 어느 날은 양말짝만한 게 나오고 어느 날은 이불만한 게 나오고. 매일 끝도 없이 나온단 말이지, 혼자 사나 둘이 사나. 꼭 매일매일의 걱정거리처럼 말야. _「가정 사정」, 32쪽

작아도 언젠가 자신만의 번듯한 식당을 갖게 될 줄 알았다. 태선생이 기대했듯이. 분식집을 열게 됐을 때 기태는 선생에게 사실과 약간 다른 소리를 했다. 아내에게는 괜찮은 것들이 선생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부끄러움들이 솔직해지려는 감정을 가로막았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건 불가능해 보였고 그런 마음이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마흔이 넘었을 뿐인데 벌써 지쳐버린 기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_「내부 수리중」, 72쪽

선생은, 그런 때 없으십니까. 같이 양파를 던지러 갑시다.
농담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온 힘을 다해서 양파를 던질 줄은 몰랐다. (…) 기중구는 자기 안에 가라앉지 못하고 일렁이는 깊은 감정을 확인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것이 마침내 커지고 쌓여서 굳어갈 거라고 말했다. 마치 느린 퇴적처럼 말입니다, 라고.
그렇다면 저도 양파를 던지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자신이 기중구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믿었다. 그는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런 것이 없지 않았다. 잊으려고 하는 것, 잊고 싶은 일,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순간들. 자신 안에 겹겹이 웅크리고 있지만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것들. _「양파 던지기」, 109쪽

기중구는 앞으로도 구직에 실패할 거고 구 년은 보상받을 길이 없으며 환한 방에서 살 만큼의 월세를 내지 못할 터이고 좋은 데서 대접받으며 밥 한끼 먹지 못하리라. 양파를 던진다고 해서 기중구를 둘러싼 편견과 소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파를 던지는 일로 잠깐이나마 기중구가 그 밤을 견딜 수 있다면. 기중구는 말했었다. 밤을 무사히 보내야 아침을 보니까요, 그렇게 하루씩 더 삽니다. _「양파 던지기」, 111쪽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면 어때요. 오숙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오숙은 서른일곱 살이었지만 자신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나이들어버렸다고, 그래서 인생을 되돌리기 어려운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뭘 안 한다고 해서 누구한테 해가 되지는 않잖아요. (…) 새를 좇던 눈을 내리곤 남자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자신에겐 해가 될 때가 있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순간에 혼자 있으면 위험해지는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여기 모인 거 아닌가요. _「분명한 한 사람」, 122쪽

말이 없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무겁고 뜨거운 구식 철판 앞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옛날 과자를 일일이 한 장 한 장 손으로 구웠고 아버지 못지않게 과묵한 어머니는 그 옆에서 과자를 포장하고 진열했다. 가게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리고 손님이 들어서면 부부는 높낮이가 없는 소리로 쌍둥이처럼 동시에 말했다. 고맙습니다, 어서 오세요. (…) 오숙은 날마다 같은 사진을 보는 듯했고 사진은 가장자리부터 점점 눈에 띄게 바래갔다. 생과자를 굽는 달콤한 냄새가 어느 순간부터는 신선하던 생물이 썩어갈 때 풍기는 냄새처럼 느껴졌다. _「분명한 한 사람」, 128쪽

쓰세요, 어떤 글이든. 그런데 시작도 전에 포기하게 되거나 시작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힘들 때마다 그 책에 찬사를 해줄 사람을 떠올려보는 거예요. 한 사람은 있어요. 내 쪽의 그런 분명한 한 사람. 때론 그게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겠죠. 스스로에게 찬사를 보내고 또 받는 거예요. 그렇게 계속하다보면 뭔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 힘을 내서 살아야 할 때가 많으니까. _「분명한 한 사람」, 152쪽

가을이 되자 친구가 재혼을 하면서 학원을 정리했다. 동미는 한동안 다른 학원을 알아보다가 그만두었다. 마흔이 다 돼가는 자신보다 더 젊고 경험도 있고 실력도 갖춘 강사들이 많았으니까. 인생이 길어졌다고, 이제 다른 해보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라고 홍미가 옆에서 부추겼지만 언니는 누구에게나 그러는 사람이어서 그 말을 흘려들었다. 열 살 차이의 언니는 엄마처럼 빨래해주고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올해 1월에 홍미가 세상을 등졌을 때에야 동미는 자신이 언니 말을 충분히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이 긴 게 아니라 하루가 너무 길어졌어, 언니. _「이만큼의 거리」, 163쪽

상희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이력서에 배열되었다. 아버지와 기술과 젊음은 없었고, 있는 것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윤상희라는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엄마. 마흔을 지날 때만 해도 상희는 얼마나 갑작스럽고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오십 세가 오게 될지 짐작하지 못했다. 주변의 충고대로 기술 하나쯤은 배워두고 튼튼한 아들딸 자식을 두고, 그 외에 무엇을 더 준비해야 했을까. _「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194쪽

상희는 그 단순한 노동이 주는 피로함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으면 남동생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나, 내 인생은 이렇게 계속 우울해지고 나는 불행해질 거야. 마지막으로 상희를 만나러 온 날, 지친 동생을 그냥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 후회는 거둘 길이 없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이 상대에게 영원히 남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_「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198쪽

요보호 아동이란 말을 부경에게 처음 들었다. 그 ‘보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끝나고 그때부터는 보호 종료 아동이 된다고 부경은 설명했다. 그야말로 사회로 던져지는 거죠. 곱슬거리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부경은 시원하게 웃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나이에 퇴소 이후의 생활을 어떻게 지탱해나갈 수 있을까. 상희는 그애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할 계획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걸 물어볼 자격을 가진 어른은 따로 있을 듯해서. 어떤 어른은 오십이 넘어도 비빌 언덕 하나 없다고 느끼고 이미 너무 무거워진 하루 앞에서 헉헉거리기만 할 뿐이다. _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217쪽

때로 몸 어딘가 웅크리고 있는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미석이 어른이 된 미석의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쿵쿵 두드리는 것 같았다. 다정하게 속삭이는 말들,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확신에 찬 목소리들, 나한테 필요한 건 그런 거였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줘, 지금이라도. _ 「한방향 걷기」, 219쪽

아버지 밥이…… 엄마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한테 밥 짓기랑 인덕션, 레인지 쓰는 방법 엄마가 알려드리셔야 해. 엄마는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방으로 들어가 미석은 아버지에게 두번째로 긴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금요일에는 밥 짓는 방법을, 이번에는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서 누룽지를 불려 먹는 순서를. 아침 일곱시에 출근해 오층짜리 건물의 배관과 변기를 고치고 주차장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배우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한방향 걷기」, 250쪽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사가 방문한 날, 아들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그들이 물러날 때까지 방문 안쪽에다 머리를 쿵쿵 부딪쳤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는데 진짜 내 몸이 부서지는 거 같았어. 홍 언니는 그 말을 할 때는 웃지 않았다. 주근깨가 많은 갸름한 얼굴이 더 홀쭉해 보였다.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서 인주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홍 언니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었다. _「개인 사정」, 262쪽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오빠는 인주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난 지금 깊은 바다에 빠진 거라고.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한 거야.” 술이 덜 깬 오빠는 횡설수설 말했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만은 정확하게 안다고 인주는

아직 말해지지 못한 상처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서도
곁을 내어주고 마는 존재, 가족

부족한 손을 맞잡고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줄 때
아픔은 용기가 되고, 미움은 연민이 된다

고독한 삶의 세목을 특유의 정교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기록해온 소설가 조경란의 연작소설 『가정 사정』이 출간되었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관계’의 문제를 치밀하고 섬세한 문체로 다”룬다(현대문학상 심사평)는 감탄어린 평을 받아온 작가는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설과 글쓰기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성실하게 작품을 창작해왔다.
4년 만에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이번 연작소설에는 치유되지 못한 오래된 상처를 지닌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생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마치 상처를 잊은 듯 살아가지만 문득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아픔을 자각하곤 한다. 조경란은 자주 어긋나고 맥연히 교차하는 그들의 감정을 섬세히 포착하면서,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서도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곁을 내어주고 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이에 더하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상상하고, 보호종료 아동의 현실과 자살생존자의 트라우마 등 우리 사회 고통의 면면을 신중하고 웅숭깊은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일면을 담아내려는 소설적 시도를 이어나간다.

윤씨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종잇조각을 쓰레기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끝이 없는 일 같아 보여도 오늘은 이 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하루는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고 언제 끝장나버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예보에 없어도 내일 당장 장대비가 쏟아질지, 기록적인 남서풍이 또 불어올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내와 아들이 처음 함께 간 여행에서 그런 참변을 당할 거라고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표제작 「가정 사정」은 2020년 김유정문학상 후보작으로, 아내와 아들을 불시에 잃고 남겨진 부녀가 처음으로 둘만의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다. 고층빌딩에서 떨어진 종잇조각을 치우며 자신이 과연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는지 돌아보는 노년의 아버지와, 나이들어가는 아버지를 돌보며 그마저 떠나고 홀로 남겨질 자신을 막연히 그려보는 중년의 딸은 서로를 더욱 배려하고 생각해주려 하지만 그 방식 때문에 조금씩 어긋나곤 한다. 실제로 2018년 한 대기업의 새해맞이 불꽃놀이 행사로 빚어진 꽃가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잘 녹지 않는 종이 꽃가루와 같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들의 생활이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다정한 위트와 함께 남겨놓는다.
「양파 던지기」 「이만큼의 거리」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가족을 둔 자살생존자들의 일상을 다루며 원망과 후회가 뒤섞인 유가족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바늘 같은 언어로 세밀히 묘사한다. 작가는 그러나 ‘남겨진 자’들이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한다. 그들은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굴욕을 참고 생업을 이어나가며, 상실감을 공유한 사람들과 보폭을 맞춰 걷는다. 결국 서로를 지탱하는 건 서로임을 알기에 이들은 부족한 손을 맞잡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모르는 청년의 일로 가슴 아파하는 아주머니에게 인주는 말했다. 왜 슬픈 이야기는 사람들을 가깝게 만들어줄까요. 인주는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슬픈 이야기들이란 사실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_「개인 사정」, 291쪽

*
「내부 수리중」과 「양파 던지기」는 안전한 삶을 욕망하는 부부의 이야기로, 이뤄낸 꿈과 잃어버린 꿈,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관계를 묘사한다. 「내부 수리중」의 기태와 연호 부부는 녹록지 않은 환경에도 쉬는 날 없이 일하며 ‘내 집 마련’과 ‘내 업장 마련’이라는 두 가지 큰 꿈을 이루었으나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상처 때문에,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몰래 괴로워한다. 「양파 던지기」의 원진은 식물 세밀화를 그리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 대신 안정적인 직장과 결혼을 택한다. 중년의 나이에 좌천되다시피 고향 근처로 일터를 옮기게 된 그는 미국으로 떠난 아내와 아들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거리를 둔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된 두 작품의 부부는 서로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상대방의 온도를 실감한다. 아직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변화를 알아차리는 그들에게서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관계만의 애틋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불을 켜야겠어, 여보. 아내가 산의 젖은 흙을 여기저기 묻히고 있는 기태를 봤다. 기태가 가진 불안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눈빛으로. 이제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시작된 지 구 일 후 수색은 성과 없이 종료된다는 것과 그 일과 무관한 듯 조금씩 나빠져가는 것들에 대해서. 그래서 아내가 지금부터 자신들이 시도하는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밀어내는 힘으로 가게문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보여서 기태는 자신의 부족한 손으로 얼른 아내의 손을 맞잡았다. _「내부 수리중」, 78쪽

*
「분명한 한 사람」 「한방향 걷기」 「개인 사정」은 각각 교회 내 성폭력과 가정폭력, 자녀 살해 후 자살로 트라우마를 겪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가족과 따뜻한 한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정작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겨우 다할 뿐 입안에 맴도는 말을 삼킬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아픔은 결국 용기가 되어 곤란을 겪는 가족을 돕는 데에 쓰이고, 가족을 향한 미움은 서서히 타인을 향한 통찰과 연민으로 바뀌어 누군가를, 그리고 스스로를 일으키는 힘이 된다. 이해와 용서로 뭉뚱그려지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의 결말에서 벗어나, 작가는 함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가족이자 동반자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달라진 시대의 가치를 긍정한다. 그러나, 김미정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작가는 긍정하는 것으로만 소설을 끝맺지 않는다. 라면조차 끓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밥 짓는 법을 알려주고, ‘남자는’과 ‘여자는’을 어두에 붙여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광고 문구에는 언제든 떼어낼 수 있는 스티커를 조심히 붙여둔다. 자신과 타인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어느 누구도 섣불리 소외하지 않는 조경란의 글쓰기는 사려 깊고 다정하다.

쓰세요, 어떤 글이든. 그런데 시작도 전에 포기하게 되거나 시작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힘들 때마다 그 책에 찬사를 해줄 사람을 떠올려보는 거예요. 한 사람은 있어요. 내 쪽의 그런 분명한 한 사람. 때론 그게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겠죠. 스스로에게 찬사를 보내고 또 받는 거예요. 그렇게 계속하다보면 뭔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 힘을 내서 살아야 할 때가 많으니까. _「분명한 한 사람」, 152쪽

어느덧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는 익숙하던 것들의 사라짐을 의미하고 종종 쓸쓸함을 동반하지만 필요한 변화이기도 하다. 이때 작가는 달라진 시대의 가치를 긍정하면서도, 행여 그것에 동의하지 못할 이들을 쉽게 내치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심한 마음 씀은 조경란의 『가정사정』 전체를 관통한다. _ 해설 ‘리무버블 스티커의 마음’, 김미정 평론가.

『가정 사정』의 단편들은 주로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슬픔 앞에 의연해질 나이라고 생각될 법하지만, 과연 나이를 먹고 경험이 거듭되면 어린 시절의 상처는 잊혀지고 자연히 성숙해지는 것일까. 김미정 평론가는 말한다. “‘슬픔’이라는 말에 함축된 약함, 아픔, 나이듦, 불안정함 같은 말들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하는 말들이 아니라 과연 ‘살아가는 이야기’에 값”하며, “더는 기피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과 다름없다”(해설)고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오랜 상처에 무람없이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나아가 서로를 감싸 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은 아닐지, 조경란은 여덟 편의 작품으로 말하는 듯하다.

#가족소설 #외상후성장 #이춘재연쇄살인사건 #자살생존자 #보호종료아동 #자녀살해후자살

작가정보

저자(글) 조경란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중편소설 『움직임』, 짧은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백화점─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소설가의 사물』 등을 펴냈다.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작업을 하는 동안 내 삶은 더욱 단순해졌다. 소설은 간헐적으로 쓰지만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날마다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소설이 어떤 이상理想이었다면 이제 소설은 생활生活이 되었다. 잘 써야지, 좋은 걸 써야지, 하는 마음도 사라졌다. 오롯이 남은 것은 소설을 좋아하는 마음뿐이다. 그게 청년 시절부터 내가 원했던 일이었으니 그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믿고, 믿는 일을 위해 노력하라는 헤세의 문장을 기억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도 그렇다.
(……)
이 소설집을 쓰면서 나는 이야기가 서로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며 살아갈 위안을 준다는 걸 경험했다. 무력하고 쓸쓸한 밤에. 이 책을 읽는 분들께도 그 감정이 가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렇게 여덟번째 연작소설집으로 오랜만에 독자들께 인사를 전한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2022년 7월
조경란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Klover리뷰 안내
Klover(Kyobo-lover)는 교보를 애용해 주시는 고객님들이 남겨주신 평점과 감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보문고의 리뷰 서비스입니다.
1.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평점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 운영 원칙 안내
Klover리뷰를 통한 리뷰를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공간인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부탁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 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 입니다. 교보eBook 앱에서 도서 열람 후 문장 하이라이트 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신간 알림 안내
    가정 사정 웹툰 신간 알림이 신청되었습니다.
    신간 알림 안내
    가정 사정 웹툰 신간 알림이 취소되었습니다.
    리뷰작성
    •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최초1회)
    • 리워드 제외 상품 : 마이 > 라이브러리 > Klover리뷰 > 리워드 안내 참고
    • 콘텐츠 다운로드 또는 바로보기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
    감성 태그

    가장 와 닿는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사진 첨부(선택) 0 / 5

    총 5MB 이하로 jpg,jpeg,png 파일만 업로드 가능합니다.

    신고/차단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내용은 이용약관 및 정책에 의해 처리됩니다.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주세요.


    이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모든 글은 블라인드 처리 됩니다.

    문장수집 작성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eBook 문장수집은 웹에서 직접 타이핑 가능하나, 모바일 앱에서 도서를 열람하여 문장을 드래그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P.
    가정 사정
    저자 모두보기
    저자(글)
    낭독자 모두보기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프리미엄 이용권입니다.
    선물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
    sam 열람권 선물하기
    • 보유 권수 / 선물할 권수
      0권 / 1
    • 받는사람 이름
      받는사람 휴대전화
    • 구매한 이용권의 대한 잔여권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 열람권은 1인당 1권씩 선물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이 ‘미등록’ 상태일 경우에만 ‘열람권 선물내역’화면에서 선물취소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의 등록유효기간은 14일 입니다.
      (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이 상품의 총서 전체보기
    네이버 책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네이버 책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
    구글북액션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구글북액션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