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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명예의 전당

SF Award Winner 2014-2021: 乾
아작

2022년 10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04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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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2.12MB)
ISBN 9791166686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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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한국 SF 어워드’는 2014년에 시작되었다. 매년 그해에 발표된 SF 작품들을 검토하여, 우수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에 시상을 해오고 있다. 시행착오와 부침이 있었지만, 한국 SF의 역사를 통틀어 10년 가까이 이렇게 연속해 운영되고 있는 상은 아직 없다. 그러니 SF 어워드는 2010년대부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확장된 한국 SF의 궤도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년 가장 많은 응모작을 두고 가장 치열한 최종심을 거쳐 결정되는 중단편 부문의 대상작은 그야말로 그 시기 한국 SF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다.

‘한국 SF 명예의 전당’을 여는 첫 번째 책에는 2010년대 한국 SF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의 한국 SF 어워드 대상작을 모두 모아 실었다. 또한 가능하다면 ‘한국 SF 명예의 전당’을 통해 대상 수상작들뿐만 아니라 본상을 받은 모든 작품을 모아 독자들에게 선보이려 한다. 우수상을 받은 작품까지 모두 모으면 ‘한국 SF 명예의 전당’은 단행본 네 권 분량이 된다. 시리즈의 순서는 ‘건곤감리(乾坤坎離)’로 잡았다. 4괘의 순환이 만물의 순환과 세상의 운행을 보여준다고 하듯 이 시리즈를 통해 지난 10년간의 한국 SF의 흐름을, 작가들의 면면으로는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모두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추천사_5
서문_9

이서영 │ 지신사의 훈김?ㆍ 17
아밀 │ 라비?ㆍ 69
심너울 │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ㆍ 119
김보영 │ 얼마나 닮았는가?ㆍ 169
김창규 │ 우주의 모든 유원지?ㆍ 243
김창규 │ 우리가 추방된 세계?ㆍ 263
박문영 │ 사마귀의 나라?ㆍ 313
김창규 │ 업데이트?ㆍ 409

저자 소개_427
편집자 후기_431
부록 │ 역대 한국 SF 수상작 리스트_437

SF 어워드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는 책!
-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한국 SF의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 이지용, 문화평론가

추천사

SF 어워드의 존재 가치

“마음으로 자네를 내친 적이 없어.” 이서진이 말하자, 한상진이 대답한다.
“전하와 함께 한 모든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2008년 MBC 드라마의 한 대목이다. 당시 이 장면을 보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이서진의 배역은 바로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한 정조, 바로 이산이다. 그렇다면 한상진의 역할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정조의 비서실장(도승지)이자 경호실장(숙위대장)이며 수도방위사령관(금위대장)이었던 홍국영이다. 심지어 주치의 역할도 했다. 그 많은 직책을 일일이 호명할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은 홍국영을 도승지의 별칭인 지신사(知申事)로 불렀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데는 까닭이 있을 터. 정조의 권력은 불안했다. 정조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뿌리 깊은 노론 벽파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정조의 적은 곧 지신사의 적. 지신사는 자신의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입궁시키면서 원빈(元嬪)이라는 첩지를 받게 했다. 자기 여동생을 장차 궁궐의 근본, 즉 안주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원빈이 입궁한 지 1년 만에 사망했다. 지신사는 동생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 중전 효의왕후의 음모라고 여기고 왕비의 궁녀들을 잡아다 모진 고문을 했다.

이 책의 문을 여는 〈지신사의 훈김〉은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한다. “중전마마가 드셨사옵니다.”라는 문장으로 말이다. 누가 봐도 역사소설이다. ‘덕로는… 사람이 아닌데’로 시작하는 28번째 행을 읽기 전까지는 이 작품이 SF라는 걸 짐작할 수 없었다.

덕로는 홍국영이 되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왕을 보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의 독점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지독하게 행사해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그는 정말로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아닐까? 작가의 촉이 닿은 지점이다. 토머스 뉴커먼이 1705년에 발명한 증기기관은 1748년생 홍국영에게 안성맞춤인 장치다.

기기인 덕로는 요즘 말로 하면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런데 생애주기마다 그에 맞추어 학습 방법이 다르다. 초기에는 사람이 입력한 명령에 따라야 한다. 스승이 학습을 통해 입력한 유학의 논리에 맞춰 사고한다. 이산이 성장하여 정조가 될 즈음에는 자기 학습을 시작한다. 인공지능 학습의 변곡점에 달한 것이다. 난 이 대목에서 유럽 바둑 챔피언 판 후이를 5대 0으로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 판(Alphago Fan)에 관한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의 논문이 발표된 2015년 2월 26일자 〈네이처〉의 표지 카피를 떠올렸다. Learning Curve(학습 곡선)!

기기인 지신사는 결국 인간 군상의 집요한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다. 정조는 자신을 그렇게 지키려 했던 지신사의 목숨을 거두어야 했다. 하지만 사약을 내릴 수는 없다. 기기인이니 당연하다. 대신 정조는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일을 지울 수 있겠는가?”라면서 기기인에게 모든 기억을 지울 것을 요구한다. 그의 장례는 초라했지만 어느 낯선 풀숲에서 ‘도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눈을 떴다. 작가가 그에게 새로운 시작을 마련해둔 것이리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렇지 않은 시절이 없었겠지만, 요즘은 더욱더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SF는 궁극적으로 미래(혹은 과거)에 대한 상상을 통해 현재를 비추는 문학이다. 그리고 과학관은 그러한 SF 콘텐츠를 통해 전시와 교육, 연구가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는 과학문화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 과학문화가 허약한 대한민국의 실정을 고려하면 과학관, 더구나 국립과천과학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2014년, 어쩌면 한국 SF가 가장 암울하던 시절에 국립과천과학관에 의해 시작된 SF 어워드는 그간 국내 SF 시장을 넓히고 SF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는 데 공헌해왔다. 과학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한국 SF 작가들과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SF 어워드를 힘겹게 지켜냈고, 덕분에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지난해부터 국립과천과학관이 SF 어워드를 다시 주최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러한 SF 어워드의 역사 자체가 근래 한국 SF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SF 어워드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중단편 소설 대상 수상작들이 모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가끔 SF 팬을 자처해 왔지만 한국 작가는 매우 낯설었다. 기껏해야 듀나, 김창규, 김보영 정도가 떠오르고 최근 정세랑, 김초엽, 천선란의 작품에 빠져드는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왜 SF 어워드가 필요한지, 그것도 과학관이 왜 SF 어워드를 지속해나가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제 나는 이서영, 아밀, 심너울, 박문영 작가의 작품을 읽는 기쁨을 아는 독자가 되었다.

이서영의 〈지신사의 훈김〉은 인간과 기계에 관한 동양 철학을 돌이켜보게 하는 역작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유교 SF’라는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알았다. 기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밀의 〈라비〉를 읽으면서는 나 스스로 ‘자주콩나무’가 되었고,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에서는 프로그램 코드 몇 줄이 되는 경험을 누렸다. 그리고 박문영의 〈사마귀의 나라〉에서는 늘 다른 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소녀 ‘반점’과 조우하는 ‘사마귀’가 되어 국가와 자본에 대해 숙고하는 기회를 가져보기도 했다.

그뿐인가. 이제 전 세계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한 김보영과 김창규의 걸작들에 대해서는 어떤 칭찬의 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글을 실은 SF 어워드 수상 작가들은 이 상이 없었어도 각자의 작품 세계를 훌륭히 가꿔나갔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작가들이 걷는 길에 작은 꽃 몇 송이라도 뿌려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SF 어워드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학은 오랫동안 소수의 사람들만 집중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과학은 중요한 섹터가 되었다. 누구나 과학을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과학도 일종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SF도 마찬가지다. 남극과 북극 일부 지역의 기온이 평년 대비 30?40도 높다는 뉴스가 울려 퍼지고,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류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미래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는 SF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 SF를 대중과 함께 즐기고 가꾸며 더 풍성한 과학문화 콘텐츠로 가꾸어 나가는 데에 무엇보다 막중한 과학관과 SF 어워드의 소명이 있다.

-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서문

한국 SF의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한국 SF 어워드’는 2014년에 시작되었다. 매년 그해에 발표된 SF 작품들을 검토하여, 우수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에 시상을 해오고 있다. 시행착오와 부침이 있었지만, 한국 SF의 역사를 통틀어 10년 가까이 이렇게 연속해 운영되고 있는 상은 아직 없다. 그러니 SF 어워드는 2010년대부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확장된 한국 SF의 궤도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년 가장 많은 응모작을 두고 가장 치열한 최종심을 거쳐 결정되는 중단편 부문의 대상작은 그야말로 그 시기 한국 SF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다. 그러니 그간의 중단편 부문 소설 대상 수상작품을 모아보는 것은 한국 SF가 그동안 어떠한 형태와 의미들을 만들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지표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특성을 톺아보면 한국 SF가 보여주고 있는 의미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제1회 대상작이었던 김창규의 〈업데이트〉를 보자. 〈업데이트〉에 대해 김창규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부조리를 느끼면서 발표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사회는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거대 담론들에 종식을 고하고,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들, 그리고 이를 촉발하거나 저지하는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 및 인프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런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사고실험에 유용한 SF 장르에서의 시도들이 의미를 획득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창규의 〈업데이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창규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 〈우리가 추방된 세계〉와 〈우주의 모든 유원지〉를 통해 총 3회의 대상을 받게 되는데, 동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SF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들을 명확하게 구현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창규는 탄탄한 문장과 치밀한 서사 구조를 통해서 단편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 역시 구사하고 있다. SF에 대한 한국 독자의 관심도가 지금과 같이 높지 않았던 해당 시기에 발표된 김창규의 작품들을 뒤늦게 접한 이들이 한국에 이런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 것은 SF라는 장르와는 별개로, 김창규가 소설가로서 보여준 소설 형식의 완성도가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설적 완성도는 중단편 소설을 논할 때 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창규는 중단편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를 SF가 보여줄 수 있는 사고실험 및 경이의 세계와 버무려 구현하는 데 아주 탁월한 작가이다. 〈우리가 추방된 세계〉에서 보여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지나, 〈우주의 모든 유원지〉에 이르면 한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이슈들을 관통해 온 작가가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인, 인류 보편적인 가치들을 논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선언을 마주한다. 이러한 변화의 궤도를 통해 한국 SF가 2010년 이후 현대사의 흐름에서 문학으로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창규의 4회 연속 대상 수상을 저지(?)한 박문영의 〈사마귀의 나라〉는 SF의 전형적 세계관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용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사고한 현대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삶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터져 나오는 부조리의 묘사는 201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심화되기 시작한 자본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사고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SF가 보여줄 수 있는 시뮬라크르의 다양성은 사실주의 기반의 서사들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마귀의 나라〉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들에 대해 한국 SF는 회피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며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수상작들이 보이는 다양한 장르적 장치의 활용은 SF가 과학적인 정보나 경이와 환상의 세계라는 굴레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의 충분한 예시들이 된다. 더욱이 한국 사회의 현실들을 직면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외로부터 유입된 모방적 장르가 아니라 ‘한국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여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한국의 이야기를 사고실험하는’ 장르로서의 의미들이 다시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이후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반영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이다. 작품에 발표되던 시기에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던 이슈 중 하나는 젠더(gender)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감각들을 인공지능이라는 가장 SF적인 캐릭터를 통해서 사고실험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김보영 특유의 유려한 서술이 전체 서사를 관통하면서 개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젠더에 대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소리들이 격렬하게 터져 나오던 시기에 김보영의 작품이 보여준 메시지는 SF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가능한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SF로서의 세계관과 소재들을 완벽하게 구사한 이 작품은 젠더에 대한 편견 문제를 환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SF라는 장르에 입문하는 이에게 추천해도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이후 한국 SF는 점점 이전에 없던 사회적 관심을 받기 시작하며, 팬덤 위주의 작은 판에서 벗어나 한국의 서사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 형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양적인 성장도 두드러져, SF 어워드의 심사 대상작으로 집계되는 작품의 수 역시 이 시기부터 전년도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그에 따라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특색 있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독자층도 이러한 상황에서 SF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개성들을 폭넓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작가들은 이에 호응하여 이전보다 훨씬 더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다양성과 개성이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아밀의 〈라비〉, 이서영의 〈지신사의 훈김〉이라는 성과로 발현되었다.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한국 SF의 다양성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 SF의 트릭스터와 같은 재기발랄함을 보여주는 심너울은 경이와 환상의 세계보다는 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근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을 재치 있게 배치하여 소설을 구성한다. 심너울의 SF에는 사회적인 부조리에 대한 무겁고 심각한 문제 제기는 없지만,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들이 그 어떠한 비판적 사고실험보다도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역시도 이러한 형태인데, SF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21세기적인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대상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아밀의 〈라비〉는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들이 초래하게 되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들을 통찰하는 서사의 전개는 SF가 보여주는 경이의 세계와 모험 서사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주체가 인간이나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논의들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다양한 전 지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인류세(Anthtropocene)적 논의나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을 비롯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적 담론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SF가 보여줄 수 있는 현대적인 감각과 깊이를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서영의 〈지신사의 훈김〉은 한국의 SF가 얼마나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는지, 그리고 이를 수용하고 향유하는 독자와 평단의 역량 역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조선스팀펑크’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앤솔러지 《기기인도로》의 수록작이었던 이 작품은 하위장르적 분류에서 BL(Boys‘ Love)이라는 형식을 부여할 수 있기도 하다. 대중문화에서 이미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하고는 있으나 주류라고 불리지 못하고 있던 양식이 과감하게 시도된 작품에 SF 어워드 대상을 수여했다는 사실은, 물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완성도가 가능케 한 것이겠지만, 양식과 시도의 가치를 직시하고 과감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한국 SF 장(field)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SF 어워드의 중단편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들은 그 면면을 보았을 때 한국 사회가 그동안 변화해온 양상과 그 시대만의 문제를 파악함과 동시에, 그러한 문제들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몰두해온 한국 SF의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SF 작품들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부조리의 문제들로부터 시작해, 젠더 불평등 및 편견과 같은 내재된 문제들을 지나 미시적이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문제들에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후로의 한국 문학장에서 SF가 보여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작품들의 가치들을 외삽(extrapolation)해 보았을 때 몇 년 뒤 다시 모이게 될 한국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들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은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맥락들 때문이다.

- 이지용, 문화평론가


편집자 후기

한국 SF 명예의 전당을 열면서

2008년에 설립해 2011년까지 20여 권의 SF를 내며 활발히 출판을 하다가, 모기업의 부도로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어느 출판 브랜드에서 여전히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10년 넘게 판매 중인 책이 있으니 바로 ‘SF 명예의 전당’ 시리즈다. 미국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로버트 실버버그와 벤 보버가 각각 엮은 두 권의 원서가 나온 것이 1970년대 초인데, 영미권 SF 황금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 책들의 한국어판이 여전히 절판되지 않은 것은 한국의 SF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필독서와 다름없이 사랑받고 있기 때문일 터다.

들을 때마다 손사래를 치긴 하지만 근래 한국 SF의 황금기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작이 처음 책을 내기 시작하던 2015년 연간 출간 종수 10여 종에 불과하던 한국 작가의 SF가 2021년에는 70종 넘게 출간되었으니 매주 한 권씩 한국 SF 작품이 쏟아져 나온 셈이다. 아작 역시 그간 해외 SF를 주로 소개해왔기에 2020년까지의 출간 리스트에서 한국 SF는 연간 4, 5종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20종에 가까웠다.

분명 ‘SF’의 붐까지는 몰라도 ‘SF 출판’의 붐은 온 것 같다. 대형 문학 출판사는 물론이고 나름 전문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던 중소 출판사들까지 SF 출판에 가세해, 2022년 1사분기에만 벌써 30종에 이르는 작품이 출간되었다. 듀나와 김창규를 비롯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SF를 쓰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지난 30년간 총 500여 종의 한국 SF가 출간되었는데, 이제 한 해에만 100여 종이 쏟아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단편 소설의 물량이 압도적이다. 한국 SF 어워드 심사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SF 어워드에서 심사 대상에 오른 한국 SF 중단편이 300편이었는데 2021년 SF 어워드에서는 480편에 이르렀다. 2022년 SF 어워드에서는 몇 편으로 증가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이제 출간되는 한국 SF 작품을 일반 독자가 모두 읽는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본격적인 한국 SF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일종의 시금석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기에, 아작에서는 그에 합당한 작품들에게 마땅한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타이틀은 ‘한국 SF 명예의 전당’로, 이는 ‘SF 명예의 전당’에 바치는 헌사다.

‘한국 SF 명예의 전당’을 여는 첫 번째 책에는 2010년대 한국 SF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의 한국 SF 어워드 대상작을 모두 모아 실었다. ‘한국 SF 어워드’는 2014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시작된 상으로 몇 해를 이어오다 정부의 지원이 끊어지자 김보영 작가를 위시해 많은 작가와 팬들이 힘을 모아 어렵사리 명맥을 이었다. 그리고 이정모 관장이 취임하며 2020년 다시 제대로 된 어워드의 위용을 회복할 수 있었다. 부디 ‘한국 SF 어워드’가 10년, 20년을 넘어 계속 이어져서 한국 SF의 산증인이 되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또한 가능하다면 ‘한국 SF 명예의 전당’을 통해 대상 수상작들뿐만 아니라 본상을 받은 모든 작품을 모아 독자들에게 선보이려 한다. 우수상을 받은 작품까지 모두 모으면 ‘한국 SF 명예의 전당’은 단행본 네 권 분량이 된다. 시리즈의 순서는 ‘건곤감리(乾坤坎離)’로 잡았다. 4괘의 순환이 만물의 순환과 세상의 운행을 보여준다고 하듯 이 시리즈를 통해 지난 10년간의 한국 SF의 흐름을, 작가들의 면면으로는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모두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출간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SF 어워드’의 특성상 출판권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 책 역시 그간 아작에서 확보한 대상 수상작들의 출판권에 보태어 비채와 안전가옥 두 출판사에서 쾌히 재수록을 동의해주셨기에 가능했다. ‘한국 SF 명예의 전당’이 수록 작가들의 모든 작품으로 독서의 영역을 확장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외람되지만, 처음으로 단행본에 편집자 후기를 쓰는 이유다.

- 최재천, 편집장

작가정보

저자(글) 김보영

2004년 〈촉각의 경험〉으로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7인의 집행관》으로 제1회 SF 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얼마나 닮았는가〉로 제5회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 SF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SF 웹진 〈클락스월드(Clarkesworld)〉에 단편소설 〈진화신화〉를 발표했고, 세계적 SF 거장의 작품을 펴내 온 미국 하퍼콜린스, 영국 하퍼콜린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저 이승의 선지자》 등을 포함한 선집 《I’m waiting for you and other stories》가 출간되었다.
2021년 개인 영문 단편집 《On the Origin of Species and Other Stories(종의 기원과 그 외의 이야기들)》(Kayapress)로 전미도서상 번역서 부문 후보에, 〈Whale Snows Down(고래 눈이 내리다)〉으로 로제타상 후보에 올랐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게임 개발팀 ‘가람과바람’에서 시나리오 작가/기획자로 활동했다. 《이웃집 슈퍼히어로》, 《토피아 단편선》, 《다행히 졸업》, 《엔딩 보게 해주세요》 등 다수의 단편집을 기획했다.

저자(글) 김창규

1993년 공동작품집 《창작기계》에 첫 글을 실은 뒤 2005년 〈별상〉으로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에 당선되었다. 〈업데이트〉, 〈우리가 추방된 세계〉, 〈우주의 모든 유원지〉로 각각 제1회, 제3회, 제4회 SF 어워드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제2회 SF 어워드에서는 〈뇌수〉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우리가 추방된 세계》, 《삼사라》가 있고 《독재자》, 《백만 광년의 고독》 등 공동 SF 단편집에 참여했다. 옮긴 책으로 《여름으로 가는 문》, 《뉴로맨서》, 《이중도시》, 《유리감옥》 등이 있다. 창작활동과 번역 외에 SF장르 관련 각종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글)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자리를 못 잡고 겉도는 것, 기괴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대상에 관심이 있다. 제1회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면서 놀자》,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3n의 세계》, 《주마등 임종 연구소》 등의 책을 냈고 공저로 《봄꽃도 한때》, 《천년만년 살 것 같지?》,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등이 있다.
《사마귀의 나라》로 제2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지상의 여자들》로 제6회 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SF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그룹 ‘sf×f’에서 활동 중이다.

저자(글) 심너울

단편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출간했고, 세 권의 앤솔러지에 참여했으며, 〈한국일보〉 ‘2030 세상보기’에 매달 글을 기고하고 있다. 에세이집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장편소설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소멸사회》를 썼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제6회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저자(글) 아밀

소설가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본명으로 영미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창작과 번역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학적인 담화를 만들고 확장하는 작가이고자 한다.
단편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대산청소년문학상 동상을 수상했다. 단편 〈로드킬〉로 제5회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중편 〈라비〉로 제7회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 소설집 《로드킬》, 산문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가 있으며, 《그날 저녁의 불편함》, 《끝내주는 괴물들》, 《흉가》, 《캐서린 앤 포터》, 《조반니의 방》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저자(글) 이서영

여러 시공간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썼다. 기술이 어떤 인간을 배제하고 또 어떤 인간을 위해 일하는지, 혹은 기술을 통해 배제된 바로 그 인간이 기술을 거꾸로 쥐고 싸울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유도선〉으로 제7회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지신사의 훈김〉으로 제8회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았다. 혼자 쓴 책으로 《유미의 연인》, 《악어의 맛》,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가 있고, 같이 쓴 책으로 《기기인 도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다행히 졸업》,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등이 있다.

작가의 말

인간과 AI는 다르다. 인간은 결코 AI가 받아들이는 형상대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교의 온전한 세계를 인간은 현실에 구축해내지 못했다. 만약 AI라면 어떨지 궁금했다. 동시에 이 소설은 조선조 공식커플, 홍국영과 정조의 러브스토리다. 모든 신하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수 있었던 ‘만천명월주인옹(萬千明月主人翁)’의 이야기기도 하다.
- 이서영, 〈지신사의 훈김〉

열대의 한 식물이 들려주는, 사라지는 여자들과 여신들에 대한 이야기. 소수 민족 주술사 가문의 마지막 후예로 태어난 소녀의 일생을 다룬다. 현실 세계에서 사멸되어가는 옛 지식들이 허구의 서사 속에서 진실로 되살아난다.
- 아밀, 〈라비〉

{ char world[10]
strcpy(world, "HelloHelloWorldWorld");
return 0;
}
- 심너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기계 몸에 인간이 들어가는 대신, 인간 몸에 AI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소설이다. 우주 재난 추리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했다. 단지 AI가 인간 몸을 원할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한동안 접어두었다가 어느날 불현듯 답이 떠올라 뒤를 이었다. 초안만 써두었을 무렵 태양계 앤솔러지 기획이 들어와 맞춰 썼다.
- 김보영, 〈얼마나 닮았는가〉

혹한기를 닮은 이 중편은 2012년 12월의 메모로 시작했습니다. 중편을 장편으로 만든 작년엔 행간에 겨울뿐 아니라 다른 계절이 깃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10년 전, 메모를 이어나간 그 자리는 하필 보일러 파이프가 비껴가는 곳이라 발이 몹시 찼는데 별 수가 없어 거기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소설 속 춥고 밉고 좁은 기운은 그때의 제 것입니다.
- 박문영, 〈사마귀의 나라〉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다. 반대말인 디스토피아는 부정에서 탄생한 단어답게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 〈업데이트〉는 지금 당장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시각 이미지 속에서 방황하다가 제 나름의 길을 찾지만, 만약 현실 속 사건이라면 그만한 행운은 없을지도 모른다.
- 김창규,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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