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아들은 비혼자(非婚者)

권흥기 지음

석벽 2022년 06월 16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작가가 되리라는 꿈이 있었다. 나라 안이든 외국이든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품었던 젊은 시절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도 변변하지 않을 뿐더러 치열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오래 전에 푸른 시절의 꿈을 접었다. 생계활동에 쫓기느라 마음도, 시간의 여유도 여의치 못한 형편도 없지 않았다.
그냥, 소설 애호가로서 남을 것 같았는데 한국소설가협회에서 발행하는 ‘한국소설’에 단편 ‘배나뭇골 저택’을 발표함으로써 추천을 받아 ‘도장 찍는 사람’,‘요양원으로 가는 치술이 할아버지’두 편을 게재하여 작가적 역량을 보아 영 어울리지 않은 소설가라는 이름을 뒤늦어 얻었다.
중편 ‘외아들은 비혼자(非婚者), ‘이웃집 송씨(宋氏)’와 단편 ‘배나뭇골 저택’,‘도장 찍는 사람’을 묶기로 했다. 이왕 쓴 글이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고 싶은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외아들은 비혼자’는 인구가 줄어들어 사회문제가 되는 현실을 그리고자 한 글이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유럽의 한 때나 전쟁 시에나 있다는 일(1)에도 이르지 못하는 출생률이 일쑤 얘기된다. 0.8명의 지구촌 최저출생률이 최장기간 지속되는 문제의 속내를 파헤치고자 한 것이다. 한 사람도 안 되는 출생률의 뒤란에는 감소하는 젊은이들의 혼인 건수가 있을 터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망설이는 주된 원인의 하나는 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을 다그치는 기성세대의 말은 공허하다. ‘외아들은 비혼자’에서‘둥지’를 틀 수 없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현실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웃집 송씨’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 개인윤리, 사회적 규범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는가를 밝혀보고 싶어 붓을 든 글이다. 성은 날로 개방화 되는현실인데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형상화했느냐는 자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배나뭇골 저택’과 ‘도장 찍는 사람’은 인간의 심층에 도사린 이기적인 욕망을 형상화하고자 쓴 글이다. 초심은 순수하고 정의로웠지만 어느 샌가 개인적인 탐욕의 늪으로 빠져드는 이중성을 부각시켜보고 싶었다.

목차

1. 배나뭇골 저택

2. 외아들은 비혼자

3. 도장찍는 사람

4. 이웃집 송씨(宋氏)

책 속으로

매실댁은 그러고 보니 마흔이 가깝도록 명호가 결혼을 못한 것이 명호가 아니라 평생을 산골에서 흙을 파먹고 살아온 우리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도 살림을 차릴 집도 못 얻어주는 사람에게 딸을 맡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잘 사는 부모를 만나면 집이든 취업이든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명호는 있는 집에 태어나지 못했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삶이 흔들릴세라 결혼과 아기 출산을 유혹하지만 젊은이들도 어지간히 시달리고 고생을 해 보아 약아졌어요.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께는 죄송해요.’
명호는 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명호는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서 마당을 지나 골목을 걸어간다. 멀어지는 명호의 발소리를 따라 방을 나선 매실댁이 명호 뒤를 따른다. 마을 앞 한길에서 매실댁이 걸음을 멈추고 명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옆집 민성이는 내일도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텃밭에서 할아버지와 퀴즈 놀이를 즐겁게 할 것이다. 배실댁네 민성이와,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외아들 명호 얼굴이 번갈아 왔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는가 싶으면 다시금 다가온다. 아무래도 노예라는 말이 심상찮게 들린다. 세상에 누가 노예 되기를 바랄까.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노예로 만들까. 그렇다면 명호가 결혼을 포기한 것이란 말일까.
텔레비전을 보면 요즘에는 독신자 대신 비혼자로 일컫는다고 한다. 그 말이 그 말 같은데도 뭣 때문에 독신자를 비혼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기는 말뜻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독신자는 혼자서 산다는 의미이다. 비혼자는 혼인을 하지 않은 사람일 테고. 그렇다면 외아들 명호가 비혼자가 된다는 말인가. 매실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눈을 훔친다. 닦아도 눈물이 자꾸만 괴어든다. 매실댁은 고개를 늘여 동구 밖으로 나서는 명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눈물 괸 매실댁 눈에는 명호 언저리에 김이 서린 듯 흐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흐릿한 덩어리가 움직일 뿐이다.
죄라면 명호가 노예 될 형편인 게 죄일 테지. 매실댁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턱 밑 목으로 내려오는데도 정신을 잃은 표정이다. 외아들 명호가 이 해가 가고 새해가 저물어도 비혼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권흥기

경북 봉화 출생 월간문학 : 수필 산수화 당선 한국소설 : 단편 「배나뭇골 저택」 추천 단편 「도장찍는 사람」 「요양원으로 가는 치술이 할아버지」 「동거인(同居人)」 발표 한국문인협회 경북봉화지회장(전) 수필집 : 서로에게 등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아름답습니다. 수필과 소설 : 어느 초겨을 초저녁에 생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