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아니지만

지미준 e단편 3집

지미준 지음

천재창조 2021년 02월 01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지미준 세 번째 eBook 실험 《베토벤은 아니지만》. 이번 e단편 3집에는 재능 있는 대중음악가들의 이야기 두 편을 실었다. 안산 소설탄생 창작7집 《최경을 그리다》에 실린 단편소설 <운명 솔리스트와의 앙상블>은 천재와 범재인 두 친구의 운명과 질투, 동경을 다루고 있다. <베토벤은 아니지만>은 한국소설창작연구회 창작8집 《저울 위의 여자》에 실린 작품으로, 어느날 갑자기 귀가 이상해진 무명 작곡가가 스타로 거듭나기 위해 겪는 우여곡절을 그리고 있다.

〈운명 솔리스트와의 앙상블〉
자현과 유안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서로의 음악적 재능에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자현은 음악 재능이 뛰어나고 운명을 믿는 사람이다. 유안은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가정도 유복한 편이다. 음악가를 꿈꾸는 두 사람의 관계는 자현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부터 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베토벤은 아니지만〉
무명 작곡가 규한은 어느날 갑자기 청력에 문제가 생겨 큰 충격에 빠진다. 심지어 이상한 목소리가 그를 따라다니기까지 한다. 목소리의 정체는 일 년 전에 죽은 천재음악가 마해수. 미친 사람처럼 유령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규한에게 마해수는 어떤 협상을 제안한다. 규한을 대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는 그 협상을 규한은 받아들일 것인가.

목차

-운명 솔리스트와의 앙상블
-베토벤은 아니지만

책 속으로

계단 정상에서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봉투를 건네려 했고 여자는 손을 뒤로 빼며 한발 물러났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팔을 뻗어 여자의 반바지 주머니에 봉투를 억지로 욱여넣었다. 여자는 저항했다. 여자는 붕대 감긴 손으로 주머니 속 봉투를 다시 꺼내 잠시 바라보다가 바닥에 내려놓고는 골목 반대편으로 냅다 달렸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자를 말리지 못한 남자는 난감해하더니 양손으로 뒤통수를 감싸 쥐고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자현이 남자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인기척을 느낀 남자는 그제야 봉투를 주우려 허리를 굽혔고, 그와 동시에 자현 쪽으로 고개를 힐끗 돌렸다. 남자는 놀라서 그만 휘청거리다 바닥에 양손을 짚고 말았다.
“여기서 뭐해요?”
자현은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얼른 봉투를 주워 몸을 일으키고는 바지 주머니에 그것을 쑤셔 넣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오냐.”
“여기서 뭐하시냐고요.”
“…….”
“아빠가 왜 이 시간에 유안이를 만나요? 그 봉투는 뭔데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거 돈이에요?”
〈운명 솔리스트와의 앙상블〉 중에서
---

의사는 종이에 또 뭔가를 끼적거렸다.
[의식을 찾았으니 몇 가지 검사를 할 겁니다.]
“이 새끼 믿지 마. 돌팔이 새끼.”
“네? 뭐라고 하셨나요?”
규한의 귀에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마치 미세한 전파를 모아 공명시킨 듯한, 잡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의사는 어리둥절한 듯 “아무 말도 안 했어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잡아먹는 돌팔이라네.”
“돌팔이?”
잡음 같은 목소리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규한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했지만, 다른 병상의 환자들은 조용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방금 누가 돌팔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규한이 의사에게 큰 소리로 묻자, 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간호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고는 규한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검사받을 때까지 안정을 취하고 계세요.”라고 크게 말했다. 규한은 3초쯤 지나서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토벤은 아니지만〉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지미준

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 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에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직장인 록 밴드 활동을 취미로 했다.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가 계간 《소설미학》에 실리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사육장에 갇힌 개들의 가련한 눈망울을 바라보다가 장편 우화스릴러 《게토의 주인: 23일 폐쇄구역》을 완성했다. 지금은 가수가 싱글앨범을 발매하듯 전자책으로 단편소설 싱글앨범을 발간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두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전자책 소설집 《빌라에서 생긴 일》에는 그래서 ‘1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험은 계속된다.주요 작품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단편소설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유명인〉, 〈베토벤은 아니지만〉, 〈‘나의 투쟁’〉, 〈To Ryu〉e단편 1집 《빌라에서 생긴 일》, 2집 《‘나의 투쟁’》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23일 폐쇄구역》에세이 《취미가 Vol.2》(공저)